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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pr 18. 2016

셰익스피어, 어디까지 읽어 봤니?

(영화 ‘세익스피어 인 러브’의 스틸컷: UIP코리아 제공)


"설마 이 모든 것을 윌리엄이 썼다고 믿습니까"

<톰 소여의 모험>의 저자 마크 트웨인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20여 년 간 38편의 극과 4편의 시, 154편의 소네트를 쓴 불세출의 작가로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왕성한 집필 활동에 대해 후대의 작가들뿐 아니라 독자들까지 공동창작 내지는 대리집필까지 의심하곤 했다. 그리고 매 작품마다 빼어난 작품성을 평가 받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존경과 감탄의 의미로도 이와 같이 이야기하곤 했다. 내놓는 작품들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힘든 현실에서,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읽혀지고 무대로 올려지는 셰익스피어의 마법 같은 힘은 무엇일까?

영국의 위대한 왕들과 그들이 다스리던 시기에 대한 역사극을 주로 쓰던 초반부, <베니스의 상인>과 <한여름밤의 꿈>등 낭만적 희극뿐 아니라 <로미오와 줄리엣>을 빚어낸 중반부,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4대 비극을 내놓은 전성기, <폭풍우>와 <겨울 이야기>로 무르익은 필력을 자랑한 후반부까지 평생을 굴곡 없이 뛰어난 작품들을 쏟아낸 영국의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사후 400주년 기념 행사들이 2016년 4월 23일, 지구촌 곳곳에서 다양한 이벤트와 공연을 통해 소개된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들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들에 대한 후대의 해석이 들어간 작품들,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작품들까지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문학이 아닌 문화가 된 불멸의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통해 400년의 세월을 건너 보자.



[로미오와 줄리엣이 빠진 4대 비극 : 셰익스피어의 전성기]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뭐냐고 묻는다면 몇몇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릴 것이다. 원수 집안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져 비극적 죽음에 치닫고 마는 이 낭만적이고 슬픈 러브 스토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혹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형되어 나올 테지만 가장 대표적인 러브 스토리의 대명사는 역시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이 작품이 없다고?

그렇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저자가 가장 왕성하게 집필 활동을 하던 1600년부터 1605년 사이에 쓰여진 4개의 작품을 통칭한다. 우유부단함의 전형이 된 왕자 햄릿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미친 척 해 기회를 엿보다 결국 연인과 어머니를 잃고 스스로도 죽음에 이르는 비극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인상적인 대사와 함께 오래도록 사랑받아 왔다.

위대한 장군 오셀로가 아내와 부하의 불륜을 의심해 아내를 죽이고 파국에 치닫고 마는 <오셀로>역시 결점을 지닌 영웅의 전형을 내보이며 인간의 사랑과 질투를 강렬하고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나 악역 이아고 캐릭터는 ‘이아고와 오셀로’라는 연극으로 선보이며 매력적인 악역의 정수를 보여준다.

딸들의 애정을 시 험하다 위기에 빠지고 마는 아버지의 모습을 치밀하고 생생하게 그려낸 <리어왕>은 달콤한 말에 취해 경솔한 판단을 했다 끔찍한 파국을 맞는 노년의 왕을 통해 진실함의 가치를 조명하고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다.

권력의 욕망에 취해 살인을 저지르고 스스로 파멸하는 남자 맥베스를 통해 탐욕에 휘둘리지 말 것을 냉엄하게 경고하는 <맥베스> 역시 정치적 욕망과 왕위 찬탈을 다루며 그 과정에서 고통 받는 영혼의 붕괴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4대 비극을 통해 인간의 고통에 대해 냉혹한 성찰을 담고자 했던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을 담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출간된 최초의 셰익스피어 전집을 원본으로 삼고 국내 최고의 번역자들이 참여하여 가치를 높였다. 그리고 서거 400주년 기념 <셰익스피어 가이드북>을 별책으로 제공하여 작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원초적 질문부터 당대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각 작품들에 담긴 문학적 가치들까지 4대 비극에 대한 모든 것을 전달해 준다. 한 권의 책 안에 4대 비극을 중점적으로 담고 있는 책 외에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세트>와 <펭귄북스 오리지널 디자인 4대 비극 세트>는 각 비극 별로 특징적인 표지와 번역가들의 특성을 살려 각기 다른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매력을 전달해 준다. 4대 비극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각자가 선택한 4대 비극을 각자의 관점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해학이 넘쳤던 낭만 희극의 시대 :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중 젊은 연인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희극적 성격을 띈 낭만희극이 넘쳐난 시대를 셰익스피어의 두 번째 창작시기로 꼽는다.

이 중 예외로 꼽을 만한 작품은 <베니스의 상인>일 것이다. 인종 차별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잔인한 복수심에 사로잡힌 샤일록과 사랑과 우정을 위해 위험한 거래를 하는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우정과 사랑의 가치와 인간의 목숨에 대한 고민을 한다면 이 작품의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여겨질 것이며, 작품 내내 멸시받다 재판으로 인해 전재산을 몰수당하고 강제로 그리스도교로 개종 당한 유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비극이 될 것이다. 입장 차이에 따라 작품을 달리 보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셰익스피어다.

각기 엇갈린 방향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네 남녀의 사랑이 요정들에 의해 우여곡절을 겪고 결국엔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한여름밤의 꿈>은 다양한 캐릭터와 흥미로운 사건들로 재미를 자아내고 있다.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일의 어려움을 네 쌍의 연인들 간의 갈등을 통해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그려지는 환상적인 경험들이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중 최초의 유성영화와 TV드라마로 제작되어 가장 멀리 전파된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천방지축 숙녀 카타리나가 한 남자를 만나 길들여져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의 대표적인 낭만희극으로 손꼽히는 <십이야>는 얽혀 있던 사랑의 갈등이 해결되고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흥미롭게 담고 있다. 대부분의 여자 캐릭터를 남자배우가 연기했던 당대의 시대 분위기와, 오빠를 구하기 위해 남자로 변장하고 가명을 쓴 채 운명처럼 뜨거운 사랑을 만나게 되는 작품 속 사건이 잘 맞아떨어져 독자들과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5대 희극 중 가장 덜 알려진 <뜻대로 하세요>는 궁정생활의 관습적인 사랑 대신 진정한 사랑을 통해 상대방을 신뢰하고자 하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듯이 명징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나라와 언어와 인종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다. 다양한 성격의 사랑이야기들조차 각기 다른 색깔과 매력을 장착함으로써 몇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것은 그 캐릭터의 매력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도 여전히 유효한 까닭일 것이다. <셰익스피어 5대 희극>과 <셰익스피어 전집1>은 유쾌하지만 우습지는 않은 그의 희극들을 통해 참다운 세상을 엿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셰익스피어를 읽는 다양한 방법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한 편씩 떼어 읽어도 재미있고 여러 작품을 묶어서 한꺼번에 읽어도 즐겁다. 셰익스피어가 여러 명이었다는 가설이나 여자였다는 소문, 그리고 그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해부하듯 헤집고 뜯어놓은 탓에 셰익스피어라는 다섯 글자만 검색해 봐도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 작품들 역시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일본 내 셰익스피어 연구 일인자인 오다시마 유시 교수가 가려 뽑은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는 초보자뿐 아니라 셰익스피어 팬들까지 만족시킬 만한 작품이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 위에서 소개했던 4대 비극과 5대 희극들 외에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시저>까지 담아 다양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세계를 맛볼 수 있게 한다. 아홉 개의 작품들의 핵심 줄거리와 주요 대사들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매력에 빠져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또한 유시 교수가 함께 출간한 <셰익스피어, 인생의 문장들>은 그의 대표작들뿐 아니라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까지 총 28개의 작품 속 명대사를 모아 소개하고 있다. SNS나 블로그 등 짧은 글귀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수많은 작품들을 '사랑의 기쁨과 슬픔', 미덕의 가르침', '악덕의 속삭임' 등 흥미로운 분류로 나누고 각각의 대사를 배치하여 즐겁게 셰익스피어의 글맛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 준다.

포셔부터 멕베 스 부인까지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25명의 여주인공들을 깊이 있게 분석한 페미니즘 비평서인 <셰익스피어의 여인들> 역시 한 번은 읽어봄 직한 작품이다. 소극적이고 답답했던 당대 여성 캐릭터에 생명력을 부여하여 살아 있는 캐릭터로 변모시킨 셰익스피어의 인물 창조법은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순수성을 극대화한 <햄릿>의 오필리어나, 열정과 정열의 화신으로 포착한 <로미오와 줄리엣> 속 줄리엣은 이 책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여성 캐릭터들을 얼마나 정성껏, 새롭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거의 모든 책에 주요 예시로 셰익스피어를 인용한 빌 브라이슨은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근거 없는 모함과 음모설을 논리적이며 재치있게 해부한다. 어찌 보면 후대의 작가가 바치는 셰익스피어의 제대로 된 평전이자 전기로 읽을 수 있는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는 비밀스럽던 그의 개인적 생활에 대한 기록을 추측하며, 그의 희곡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를 같은 작가적 입장에서 조망하고 있다. 새로운 셰익스피어를 만나고 싶다면 그만큼 유쾌한 빌 브라이슨의 눈을 통해 다시금 그의 생애를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일 것이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분석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작품이 담고 있는 사랑과 야망, 배신 등 흥미로운 소재로 셰익스피어의 문학작품들이 탄생한 배경을 살펴보는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당대 엘리자베스 왕조 시대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작품과 연결 지어지는 사회적 환경을 서술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집필 연도와 극장 공연 순서를 짚으며 조망하는 이 책을 통해 인물과 주제, 원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천여 명이 넘는 캐릭터를 창조했으며, 이 캐릭터들의 수만 가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2만 여 개의 단어를 적절히 사용했던 언어의 마술사 셰익스피어. 수많은 작품과 주옥 같은 대사를 남기고 연극처럼 살다 간 셰익스피어는 인도와 바꾸지 않을 거라 말했던 영국인들의 자부심의 결정체일 것이다. 또한 문학이 아닌 문화가 된 전설적인 작가로 지난 400년만큼 남은 400년의 세월 역시 꿋꿋하고 뜨겁게 버텨낼 것이다. 이것이 문학의 힘이자, 셰익스피어의 저력인 셈이다.


취재 : 김정원(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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