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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17. 2016

젊은작가상 대상 김금희 "누구나 찌질의 역사가 있죠"



’너무 한낮의 연애’로 2016년 제7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김금희 작가를 만났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에 작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작고 귀여운 웃음소리를 내며. 

"부끄러우세요?" 

"네~. 왠지 작품 읽었다고 하면… "

책을 읽을 때 작가가 아마도 여자 주인공 양희를 닮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양희보다 쾌활하고 웃음이 많았지만, 양희처럼 넉넉하고 포근한 인상이었다. 

"전 책 읽고 나서 대학 때 연애하던 게 생각났어요." 

"누구나 그런 ’찌질’의 역사가 있죠." 

책을 읽고 나서 자꾸만 20대의 내가 떠올랐다. 너무 많은 것이 떠올라서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막막했고, 늘 불안했던 연애의 기억에 한동안 우울했다. 누구나 찌질의 역사가 있다는 작가의 한마디에 우울하고 가여웠던 내 20대가 어딘가 귀엽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Q 제목이 눈길을 끌어요. ’한낮의 연애’인 것도, 또 ’너무’라는 단어도 그렇고요. 어떻게 탄생한 제목인지 궁금해요.

명절이 되면 혼자 카페에 가곤 했어요. 그땐 사람이 거리에 없잖아요. 거리에는 가족 모임에서 밀려나 있거나 스스로 나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렇게 카페에 가면 피로한 얼굴로 사람들이 와 있어요. 그런 광경이 좋았어요. 낮의 느낌, 트랙에서 벗어난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사회의 트랙에 올라서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트랙과 상관없이 자기 길을 간다는 느낌도 있어요. 그런 삶에 애정이 있거든요. 그래서 한낮의 연애가 됐고요. ’너무’를 붙인 건 이중적인 것 같아요. 너무 큰 사랑이기도 하고 또는 이게 사랑인가 싶기도 하고.

Q 권고사직을 받고 ’구해줄 사람이 필요한 얼굴’을 한 주인공 필용이 위기라고 생각한 순간에 떠올린 건 과거에 사랑했던 양희예요. 가족이 있는데도 과거의 연인을 떠올릴 때는 어떤 마음이었던 걸까요?

20대 초반은 ’되어가는 존재’잖아요.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르고, 시간으로 봐도 오전 11시쯤 되는 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되어가는 존재였던 때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어요.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있지만 되어가는 존재가 갖는 삶의 유연성이 있어요. 그게 불안하기도 했지만 마음이 유연했던 시기 같아요. 돌아간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생각하지 않을까, 뭐가 될지 모르지만 뭐라도 될 수 있는 시기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필용도 다방면에서 되어가는 존재를 생각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더 나갈 수 있다는 걸 포기하는 글쓰기는 내게 의미 없어"

Q 전 두 주인공이 별로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필용은 정말 평범하고, 별로 매력이 없는 남자 같아요. 양희와 필용의 관계가 공정치 못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작가가 해석을 얘기하는 게 조심스럽긴 한데요, 사랑의 형태도 여럿이잖아요. 이성으로서의 사랑도 있지만 사람을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사랑하잖아요. 양희는 그 마음이 컸던 인물 아닐까 싶어요. 이성적인 매력이었을까? 아니면 필용의 못남을 다독여주고 싶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을까? 시간이 지난 후에 양희가 나무를 만들어주는 행위는 인간에 대한 사랑, 서로의 못남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냥 남녀 간의 사랑이라면 필용은 정말 비호감이죠.(웃음) 

Q 소설에 등장하는 연극에서, 관객과 배우는 서로 말없이 바라보기만 해요. 그 연극을 보면서 ’마주봄’의 의미를 생각했는데, 소설 속 연극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양희는 몸을 감추고 등장을 하는데, 거울의 역할을 하는 거죠. 예술가라는 건, 제 생각에는 그래요. 자의식이 드러나기보다는 작가를 둘러싼 다른 공동체를 비추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조명 자체로도 상대가 생각을 하게끔 만들잖아요. 저도 그렇게 글을 쓰고 싶고요. 그런 역할을 양희에게 부여한 거고요.

Q 필용은 연극에서 양희와 눈을 마주치고 부끄러움을 느껴요. 매번 양희를 통해 필용이 느끼는 부끄러움의 정체가 뭘까 궁금했어요.

무거운 얘기지만, 세월호를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자꾸 돌아보게 돼요. ’언제부터 사회가 이렇게 흘러가는 걸 몰랐지? 아니면 알았는데 왜 방관했지?’ 이런 생각을 계속 하게 돼요. 이 작품에서 나오는 부끄러움의 정체는 거기서 오는 저의 부끄러움 같아요. 여러 방식으로 사회가 나빠질 수 있는데, 그 바탕에 속물주의 같은 게 있어요. 사람들이 거기에 투항하면서 살아온 거고요.

또 20대에 IMF가 있었고, 그때 돈의 위력을 실감했잖아요. 소비의 공간도 많아지고 부끄러운 공간도 많아지고 혼란스러웠죠. 저희 부모님은 고도성장의 기억에 ’하면 된다’는 신념이 있어요. 부모가 그런 신념으로 성장을 이뤘고, 우리도 이룰 수 있다고 해서 맞춰왔는데 결과적으로 세상이 나빠졌잖아요. 당황스럽죠. 필용도 권고사직 받고 황당해 하잖아요.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이었던 거예요.

Q 작가노트에서 ’사랑은 최후의 보루고 최후의 온기’라고 하셨는데요, 필용과 양희의 이야기를 쓰면서 작가님도 구원받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글을 쓰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못나게 살잖아요. 다 알아요.(웃음) 그 못남을 찌르고 날카롭게 베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요. 우리의 못남을 확인하고 나면 괴로움만 남는 것 같아요. 문학이라는 게 못남을 잔혹하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못났지만 한 걸음이라도 나가게 할 수 있지는 않을까, 그 정도의 구원은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가 너무 절망적이잖아요. 그런데 분명히 온기가 있거든요. 거기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사랑, 연민이라는 건 서로를 가엾이 여기고 자비의 마음을 갖는 건데, 이 소설에서는 연애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회가 갖고 있는 못난 모습도 많고 나 자신도 싫은 면이 많지만, 결국 오늘도 그 기대를 놓지 않는 거죠. 우리가 여기서 더 나갈 수 있다는 것, 그걸 포기하는 글쓰기는 저한테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위안이 되고요.



"공동체적 감수성 잃지 않을 때 결국 개인의 삶 지켜나갈 수 있다"

Q 작가노트에 작가님이 원하는 한낮을 설명해주셨어요. 작가님이 꿈꾸는 한낮은 어떤 곳인가요?

우리가 무결한 존재는 될 수 없어요. 다양한 욕망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이지만, 상대에 대한 존중과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낮에 우리가 부산한 상태로 살잖아요. 그런데 부산함이 유지된다는 건 바로 부산함이 질서이기도 한 거거든요. 그 질서가 어느 순간 질서가 아니게 될 수 있다는 것, 그걸 지키려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어느 한낮에 많은 사람들을 잃어버렸던 것처럼 엄청난 비극이 올 수도 있다는 거죠. 일상에서 그걸 느끼고 공동체에 반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공동체적 감수성을 잃지 않을 때 엄청난 비극을 맞지 않을 수 있고 결국 개인의 삶을 잘 지켜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사랑을 확인하는 필용에게 양희는 ’사랑하죠. 오늘도’라고 답하는데, 그 말이 마음에 남아요. 그런데 여러 이유에서 사랑을 망설이는 사람이 많잖아요. 사회 분위기도 한몫 하는 것 같고요. 사랑을 망설이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우리가 길게 보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게 분명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또 길어야 의미를 갖는다고 습관적으로 생각을 하는 거예요. 불안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안 되어 있다고 할까? 저도 불안이 많은데, 어찌 보면 그 불안이라는 것은 운동하는 것이고, 그게 살아 있다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사랑하죠. 오늘도’라고 할 때, 그 말은 에너지나 운동성이 있는 거예요. 살아 있는 거잖아요. 한계를 갖기 때문에 오히려 오늘이라는 단어가 갖는 확실함도 있고요. 너무 먼 시간을 여기선 알 수 없어요. 순간이라고 해서 무가치하고 옳지 않은 것이 아니거든요. 당장의 순간에 충실하고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면이 있잖아요. 저도 어떤 작가가 될까 생각하면 공허함이 있어요. 그런데 그 공허함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Q 젊은작가상을 수상하셨고, 등단한 지 오래 되지 않으셨잖아요. 어떤 소설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신인작가로서 욕심이 있을 것 같아요.

작품에도 시선의 위치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독자들 뒤에 있거나 평행의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위치에서 삶의 의미를 전해주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책을 읽는 사람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제가 생각하는 문학은 아닌 것 같아요. 예술가는 일상에서 벗어난 위치에 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지만 예술가에게도 일상이 있기 때문에 감을 맞춰간다고 생각해요. 예술세계보다 실감의 세계가 오히려 더 작용을 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따뜻했다. 한낮의 카페에서 작가와 나눈 모든 것들이.

작가는 소설로 내게 추억을 선사하더니, 대화로는 소설의 매력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소설이 나의 부끄러움을 어떻게 보여주고, 내 못남을 어떻게 위로해주는지를 이야기하는 작가가 내게는 양희 같았다. 양희가 필용에게 나무가 되어준 것처럼 이야기로 나무가 되어준 작가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꼭 껴안아주고 싶었다. 5월 출간되는 나무 같은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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