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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17. 2016

한강 “광주는 끊임없이 되태어나고 있다”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 자신의 표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다. 한국문학사에서 ‘80년 5월 광주’는 여전히 그러할 뿐 아니라 가장 그러한 소재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소설가 한강은 기어코 80년 5월의 광주를 소설 속으로 불러왔다. 그녀는 이번 소설 <소년이 온다> 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적 단면을 개개인의 내면을 통해 드러낸다.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중학생 동호를 비롯한 주변인물들, 그리고 그 후 남겨진 사람들. 지워지지 않고 불현듯 떠오르며 상처를 곪게 만드는 당시의 경험을 한 피해자는 피폭이라 칭했다. 피폭은 끝나지 않는다. 광주도 그렇다. 소설을 읽으면서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던 모든 것이 사실이었고, 그 사실은 광주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라 했던 그녀의 말처럼.






Q 보통 인터뷰 때 작가 분들 만나면 “출간 축하한다” “책 잘 봤다” 이런 말씀 드리는데 <소년이 온다>는 그런 말을 섣불리 드리기가 힘드네요.


이 책을 출간한 후에는 축하한다는 말을 거의 못 들은 것 같아요. 다들 위로를 해주더라고요. 고생했다면서.



Q 굉장히 어려운 주제를 택했습니다. 1980년 광주의 이야기로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내가 인간을 껴안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까 고민했어요. 인생이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이라는 존재를 껴안기가 이렇게 어려운 이유가 뭘까 생각하면서 내 안을 가만 들여다보니 뭔가를 발견하게 됐죠. 그게 1980년 광주의 기억이었어요. 저는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 그 일을 왜곡되지 않은 사실 그대로 알고 있었고, 그게 제 삶이나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다는 걸 발견하게 됐어요. 그걸 깨달은 후로는 무엇이 됐든 글쓰기를 통해 이걸 해결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마주하기 어려울 만큼 참혹한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서만 더 나은 어딘가로 갈 수 있다고, 그렇지 않고서는 어디로도 갈 수 없을 거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어요.


Q 당시에 작가님이 11살이었죠. 광주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모든 상황을 전해 들었는데, 어린 나이에 충격이 컸을 것 같아요. 그 기억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내 눈에 보이는 세계는 굉장히 아름답기만 한데 그 속에 이런 식의 폭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도 그렇고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같은 세계를 살고 있는 인류의 일원인데, 같은 인간에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어요.


Q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도 오래 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유족이나 피해자를 직접 만나기도 했나요?

당시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이미 잘 정리가 돼있어요. 저는 그 자료들을 최대한 열심히 찾고 읽는 것에 초점을 맞췄죠. 저는 글을 쓸 때 배경이 되는 장소를 알아야 해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도청상무관 등에 갔어요. 


Q 소설의 주인공 동호는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너’라고 더 많이 불리는 것 같아요.

‘너’는 세상에 하나뿐인 ‘너’잖아요. 그래서 더 간절하게 느껴지고요. ‘너’라고 특정 인물을 지목했을 때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로 문득 화살이 빗겨가는 그런 느낌도 독자들에게 주고 싶었어요. 그래도 사실 동호를 ‘너’라고 칭하고 소설 속에서 계속해서 부른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동호를 자꾸만 부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소년은 목숨을 잃었으니 불러도 오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계속 ‘너’라고 부르고 또 부르면 조금은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Q 6개의 이야기와 에필로그로 구성돼있는데 각 장마다 화자가 다르더라고요. 

이 소설이 시간을 건너오는 형식을 띠고 있어요. 5년뒤, 10년뒤, 20년뒤, 시간을 건너면서 한 화자에서 다른 화자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거죠. 이야기를 건네 받는다고 할까요. 시간을 건너면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소년이 ‘너’라는 이름으로 한발 한발 걸어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Q 신형철 평론가는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 자신의 표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다”는 말로 광주라는 소재를 다루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강조했는데요. 실제로도 부담감을 많이 느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써야겠다는 압박감이 컸어요. 생존자나 유족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죠. 그분들이 언젠가 제 소설을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썼어요. 사실 그 생각을 할 때가 가장 걱정스러웠죠. 있는 그대로 잘 증언하고 형상화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썼어요.


Q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나는 것. 지금 이 사건에 대한 왜곡도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고, 충격적이지만 실제로 이 실상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걸 잘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 행진 중에 벌어진 집단발포, 끌려간 사람들이 겪은 수용소에서의 경험 등이 많이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의 시간을 사건이 일어난 10일간에 맞췄고요. 객관적인 사실 전달과 함께 33년간 지속돼온 유족과 생존자의 고통도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인물의 내면을 그리는 데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Q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건가요?

인물들이 1대 1로 대응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인물들이 겪은 하나하나의 사건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 실제가 아니었으면 하고 바랐을 만한 것들 모두 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어요.


Q 소설 집필 과정 전체가 말할 수 없이 힘들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을 꼽는다면요.

모든 부분이 다 힘들었는데 그 중에서 특히 화자가 여성이었던 5장 ‘밤의 눈동자’를 쓸 때 힘들었어요. 여성으로써 화자가 겪었을 고통에 다가가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너무 고통스러워서인지 그 장을 쓰면서는 본능적으로 그 고통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멀어지게 되더군요. 유달리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걸 깨달은 뒤에 가까이 가려고 몇 번씩 고쳐 썼던 게 기억나요. 
2장 ‘검은 숨’의 경우에는 아무 기록도 없이 사라진, 그러니까 실종돼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상상력을 발휘해서 썼어요. 여태 시신도 못 찾은 분들을 대신해서 제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감정적으로도 동요가 많이 됐었죠.


Q 에필로그에 동호 어머님의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 부분 읽으면서 저도 많이 울었는데 이 부분은 쓰면서 어땠나요?

동호 엄마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해요. 뭔가가 폭발해서 파편이 튀는 것처럼 뭉쳐져 있던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부분이에요. 마지막에는 꼭 엄마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름 절제하면서 쓴다고 했는데 쓰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좀 쓰고 나서 한참 울고 또 조금 쓰고 울고 그랬어요. 엄마의 마음을 더듬어 갈수록 있어서는 안될 일,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Q 소설에서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질문을 던지고 있죠. 소설 집필을 끝내고 답을 좀 찾았나요? 


그 이야기 참 어렵죠. 제가 많이 느낀 건 인간이라는 게 정말 섬세한 존재라 조심스레 다뤄져야 한다는 거였어요. 특히 인간의 영혼은 유리 같다는 표현을 책에도 제가 썼는데요. 그게 깨지기 전까지는 투명해서 존재하는지조차 알 길이 없는지라 그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깨지고 부서지는 거예요. 투명해서 보이지 않던 것이 깨진 후에야 ‘아! 정말 영혼이 거기 있구나’ ‘이렇게 약한 거구나’ 라고 알게 되는 거예요. 저도 소설을 쓰면서 그런 걸 느꼈어요.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훼손되기 쉬운 존재인가, 그러니 훼손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Q “광주는 끊임없이 되태어나 살해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요즘 특히나 세월호 사고를 비롯해서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그런 걸 목격하는 심정이 어떤가요.

왜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시간이 지나도 변한 것이 하나 없을까요. 1980년 광주에서의 일이 반복될 때마다 여전히 우리가 당시의 광주와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소설의 마지막에 동호 엄마가 교복을 입은 아이를 따라가잖아요. 그 이야기를 제가 증언록에서 봤어요. 죽은 줄 알면서도 계속 교복 입은 아이를 보면 따라가게 된다고. 그걸 보고 정말 가슴이 아팠는데 지금 유족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모습들이 많이 겹쳐지더라고요. 분명 다른 성격의 일이지만 무고하게 죽어간 어린 목숨들, 국가라는 존재, 뭐 이런 것들이 겹쳐져 보였어요.


Q 작품적인 측면에서나 개인적인 측면에서나 이 소설이 큰 전환점이 될 것 같은데요.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지요. 

아주 해결한 건 아니지만 일단 제가 하고자 했던 건 이룬 것 같아요. 광주를 보여주고 참혹과 인간의 존엄에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시작했는데 그게 제 생각처럼 잘 표현됐는지는 모르겠어요. 에필로그에서 제가 동호에게 ‘이제는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 바랍니다’라고 썼는데요. 지금 딱 그런 마음이에요. 아직 끝났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요. 간절한 마음에서 끝이 났으니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겠다 싶어요.



Q 다음 작품 계획은요?

지금 단편소설을 하나 생각 중이에요. 이 소설이 워낙 헤어지기가 어려운 글이라서 시작이 조금 늦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순식간에 다른 작품으로 옮겨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어쨌든 소설이 끝나는 선에서 시작을 해야 하는 거니까. 전격적으로 밝은 곳으로 가진 못하더라도 차츰 밝은 곳으로 몸을 기울여가야겠죠.


Q <희랍어시간>을 쓰고 나서 인간의 가장 밝고 눈부신 삶에 대한 소설을 쓰자고 생각해 제목까지 지어놓았다고 했는데요. 지금은 어때요? 

이제 앞으로는 정말 밝은 데로 기울어지고 싶어요. 그걸 늘 바라왔지만 늘 잘 안됐고요. 그래도 이번엔 꼭(웃음).


Q 마지막으로 <소년이 온다> 독자들에게 한 마디.

<소년이 온다>는 저의 책 같지 않고 소년의 책 같아요. 고발형식으로 쓴 게 아니라 소년이 우리 곁으로 찾아와 머무는 그런 느낌으로 쓰고 싶었기 때문에, 소년을 만나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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