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제1편>
당신의 대통령은 지금,
당신 편입니까?
소설을 탈고했다고 하니, 주변에서 무슨 내용인가 하고 묻습니다. 그 질문에 저는 간명하게 대답합니다.
“‘대통령이 주인공인 소설’이오.”
그러면 뒤따르는 질문은 한결같습니다. 소설 속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인데? 그 역시 저는 명료하게 대답합니다.
“절망하는 당신 마음속 대통령이오.”
*
어느 여름날 오후였습니다. 그 세월을 헤아리고 싶지 않아 그저 ‘어느 여름날’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 한 분과 함께 두 시간 가까이 서늘한 벽돌집 안에서, 얼마 전에 퇴임해 고향으로 돌아온 대통령과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 홀가분할 법도 했지만, 그의 표정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재임 기간 동안 겪었던 것 중 곤혹스러운 것 몇 가지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시간은 매우 각박하게 흘렀습니다. 가뭄 진창을 파고든 미꾸라지 같았다고나 할까요.
그 시간 동안 얘기는 주로 대통령이 하고 저는 들었습니다. 들었던 것 중 세 가지가 인상적이었고, 인상적이었던 것 중에서도 다시 하나가 오래 가슴에 남았습니다. 남았던 그것이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첫째는 매주 ‘정적政敵의 가십’을 가져오는 정보기관의 주례보고 얘기였습니다. 국익을 위한 정보보다 먼저 보스의 정치적 안위에 도움이 될 정보를 가져오는 충성이 대통령으로서는 좀 불편했을 것입니다. 서슬 퍼렇던 그 기관의 초라한 행색도 문득 서글펐을 것입니다. 정보기관은 그가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지, 그것을 그보다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감각이 독특하지요?
자신의 기업과 부동산 거래를 하여 터무니없는 이문을 남긴 언론사의 사주 이야기나, 그들이 드나드는 술집에서 벌어진 퇴폐적인 광경, 재벌기업 회장의 소유로 되어 있는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찾아낸 그의 내연녀 얘기였을 것입니다.
적절한 시점에 부적절하게 이용하는데, 효용성이 뛰어난 정보들이었습니다. 적절한 시점에 이르기 전에 판단하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임기 초 그 주례보고를 없앴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대통령으로서 누렸던 지위와 명예가 자연인으로서의 그를 행복하게 하지 않았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에 대고 허리 굽히는 것을, 권력의 껍데기 안에 잠시 들어앉았다는 것을 잊지 않았던 그가 즐겼을 리 없습니다. 그는 그것들이 불편하기만 했었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그 셋째입니다.
“셋째는…….” 하고 그는 오래 말을 멈췄습니다.
오후의 햇살이 서남향의 창으로 미어지게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는데
“하…….” 하는 그의 한숨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러고는 어느 순간 그의 말이 허공에 부려졌습니다.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전혀 짐작하지 못할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전혀 생소한 언어가 되어 제 이마를 쳤습니다. 굴욕의 부호들이 갑각의 균열의 틈을 비집고 나와서 몸서리치는 것이 보였습니다.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라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경찰에 지시해 종로 거리에서 힘없는 시민들의 가방을 뒤지는 것, 불의에 맞선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게 하는 일에서는 거칠 것이 없는 권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생각했던 ‘대통령의 일’이 아니었죠.
저는 비로소 그가 임기 중에 그것을 이미 편안한 말로 바꿔 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이었죠.
큰 권력이 시장에 있으므로 명목상의 행정부 수반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횡행하던 시절이기도 했었습니다.
대통령은 투표로 뽑힌 국민의 대리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을 대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었고, 그 자신에게는 시리도록 분명한 존재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가 수반으로서 국민의 맨 앞에 서서, 저 자본의 정글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는 재벌이며, 오직 자국의 이익을 우선에 두고 판단하는 저 열강을 상대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들과 싸우자는 것은 아니죠. 그는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국민의 편익을 위해 그 힘 있는 상대들과 타협하고, 또한 이익을 얻어올 일에서 국민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 당연한 일을 하러 가기 위해 플랫폼에 섰을 때, 정말 어이없게도 절망을 가득 실은 열차가 먼저 도착했습니다.
“하……!”
관료조직은 그 일을 위해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부대입니다. 그러나 관료조직 깊숙이 이미 재벌과 열강의 힘이 그보다 먼저 들어가 있었습니다. 명목상 그의 부하였지만, 그들은 그의 영역 밖에서 자신들의 주군을 따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아주 오래되고 익숙한 관습이었습니다.
*
과연 대통령이 당신 편에 서서 그들과 맞서 무슨 일인가를 하려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의 고단한 굴욕은 대부분 이 부분에서 벌어집니다.
당신의 마음속 대통령은 그 힘들에 맞서 굴욕을 겪을 각오가 되어 있을까요?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의 절망이고, 굴욕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는 대통령이므로 대체로 존엄한 지위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존엄 대신 누군가의 대리인이기를 선택한다면, 굴욕은 짓이겨질 가슴께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상징 존엄들은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만들어졌으므로 굴욕은 만들어진 그의 몫이다.
자신이 만들어진 권력자라는 것을 모른다면 그 굴욕은 언제나 치욕적일 것이다. 하지만 모른 채로 그 치욕이 그에게서 더욱 농밀해지면, 농밀해지게 되어서 자신이 누구인지 묻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되는 언젠가, 그 속에 꽃이 필 날도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이야 나쁘지 않겠지.
경호관에게 끌려가면서 사내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차 안에 앉아 있는 그는 여전히 사내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도로에 나뒹굴고 있던 부서진 그의 피켓을 보았다. ‘중소기업의 눈물’. 찌그러진 ‘눈물’이 눈에 아렸다.
굴욕의 대리인인 그를 그의 부하들은 코드원이라고 부른다. 코드원은 그가 타는 전용 항공기의 호출부호다.
_<대통령의 골방> 본문 중에서
이 굴욕의 대통령은 자신의 관저에 골방을 만듭니다. 그의 그 절망이 이 골방을 짓게 한 것입니다. 고치에 든 누에처럼 그가 골방 안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것은 그의 벙커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