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제2편>
대통령 앞에 앉은 장관이
울상이 되었습니다.
임명된 지 한 달 된 장관입니다. 그가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을 대통령이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한 달 전, ‘우리 시대의 어른’이라며 모셔온 장관인데, 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걸까요? 담당 부처 실·국장들의 신임 장관 길들이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관료들의 장관 길들이기, 모르셨던가요?”
대통령은 먼저, 다 아는 얘기로 물꼬를 텄다.
“실·국장들이 정신 못 차리게 결재서류 올리죠? 읽어볼 틈도 없이 시급하다 채근하면서, 붙들고 좀 읽어보고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 결재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그러니 눈앞에서 당장 도장 안 찍을 수도 없고, 그래서 도장 찍다 보니 이게 무슨 짓인가 싶고, 읽어보지도 못한 것들이 장관 도장 달고 나가잖아요.”
그러자 장관이 대통령의 말을 이었다.
“그랬는데 얼마 지난 후 점심 먹으러 나가는 길에 따라붙은 기자가 물어요. 어제 자회사 간 거래현황을 대기업 집단이 공시토록 하기로 한 방안을 유보하셨던데, 설명 좀 해주시죠.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돌아다보니 정책기획관이 눈을 꿈쩍꿈쩍해요. 며칠 전 제 도장 찍혀 나간 것이 그것인 것을 기자에게 듣는 거죠.”
_<대통령의 골방> 본문 중에서
관료들의 장관 길들이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이 장관은 2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었습니다. 사임의 형식을 빌려오긴 했지만, 사실상 경질이었습니다.
그런데 퇴임을 앞둔 장관이
이번에는 대통령 앞에서 웃습니다.
입각한 지 두 달이 지나면서 장관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국무회의에서 발언 시간도 길어지고요, 장관의 직책에 안착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갈수록 대통령과는 소원해집니다. 입각 전에는 통화도 자주 하고, 가끔 만나 차를 마시는 일도 더러 있었는데, 정작 입각하고는 가까이서 장관을 볼 수 없습니다.
그보다 먼저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장관은 대통령이 내민 개혁안에 반기를 드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냥 반기가 아닙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학자적 면모를 과시하는 반기였습니다.
장관은 어느새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 편이 아니라 관료 편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개혁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했던 입각 초기의 견해로부터 더욱 그럴싸한 이유로 무장한 채 돌아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쫓겨나는 걸 몰랐을까요? 마주 앉은 그가 웃고 있습니다. 그가 웃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장차관은 퇴임하면 갈 곳이 미리 정해집니다. 지난 정부의 교육부 장차관 10명 중 9명이 대학총장이나 학장, 산하 공단 이사장이나 연구원장에 재취업했습니다.
장관이 재취업을 하는 순간, 부처의 실·국장과의 상하 관계가 역전됩니다. 과거의 부하 직원에게 감독을 받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관들이 재취업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부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갈 곳을 미리 정해둔 시한부 보스를 보는 부하들 역시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관료들이 장관을 두려워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역시 관료들도 퇴직 후 갈 곳을 미리 정합니다. 특히 민간기업에 취업하는 경우에는 재임 중 그 기업에 많은 공을 들입니다. 그쪽의 편익을 도모하는 일에 몰두하면 할수록 당연히 퇴직 후 재취업에 유리하겠죠. 그들은 철밥통 위에 앉아 그 일을 합니다.
기껏 1, 2년을 버티는 장관은 그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정부 밖에 보스를 모신 이 수행자들은 그 보스의 이익과 관련한 문제에서는 저항하고 또 저항합니다.
그들을 다른 부서로 보낸다 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한직을 향해 그들은 웃으며 떠날 것입니다. 이 수행자들은 자신의 희생을 지켜볼 또 다른 보스의 눈길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니까요. 그 보스들은 그 희생을 반드시 보상함으로써 그 이후 같은 일에 저항해야 할 또 다른 수행자들을 안심시킵니다.
이 깊은 신뢰의 메커니즘을 깰 징벌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이 관료들이 장관을 두려워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장관은 퇴임하면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자리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웃는 이유였지요. 그러나 코드원은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자리를 사양하고 학교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사실상 경질이었습니다.
장관의 표정이 굳었다. 원망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대낮 여름 창문은 푸르게 열려 있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차가운 물에 우려낸 커피 원액에 얼음을 넣고 생수를 부었다. 거기에 코냑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마주 앉은 장관에게 잔을 내밀며 생각했다. 이 사람이 다시 7개월 전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평생을 교단에 서왔던 선생이자 연구자였다.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장관으로서의 그 7개월은 그 인생에서 참 가혹한 시간인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_<대통령의 골방>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