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이언스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by 인터파크 북DB

글 : 카오스재단 김수현 팀장

내 귀에 도청장치

1988년 8월 4일 역사적인 첫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들떴던 한국의 수도 서울. 공영방송국인 MBC 보도국에 한 남자가 침입한다. 그의 목표는 당시 전 국민의 절반이 시청하던 MBC 뉴스데스크다. 특별한 제재 없이 보도국 잠입에 성공한 그는 뉴스를 진행 중이던 앵커에게 다가간다. 방송 화면에 낯선 남자가 갑자기 나타난다. 그는 앵커의 마이크에다 대고 다급하게 이렇게 외친다.

’귓속에 도청 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 귓속에 도청 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저는 (끌려가면서) 가리봉 1동에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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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일어난 ’내 귀에 도청장치’ 사건

역대 방송사고 1위로 자주 언급되는 이 영상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서울대학교 강웅구 교수(그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기도 하다)의 ’자아의 탄생 : 나를 의식하는 나’ 강연을 들은 후 귓속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외쳤던 그가 떠올랐다. 딴에는 얼마나 진실(?)을 폭로하고 싶었을까. 누군가 자신을 도청하고 있단 생각을 참다못한 그는 전국 뉴스에다 대고 고발했다. 그는 간첩이거나, 정말 귓속에 도청장치가 있거나, 자신의 의식을 통합시키지 못하는 조현병 환자가 틀림없다.

조현병이란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은 통합된 하나의 나를 느낀다. 내 의식이나 무의식은 뇌에서 각각 제 기능(모듈화되어 있다고 말한다)을 한다. 그리고 이들은 통합도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통합된) 자아가 있다고 느낀다. 만약 이 통합성이 깨지면 어떻게 될까? 그럼 나는 정신병, 그중에서도 조현병(정신분열증)에 시달린다. 내 뇌에 누군가가 도청장치나 확성기를 넣은 것처럼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나의 뇌는 내 뜻과는 다른 결정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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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오늘 점심 메뉴를 어떻게 골랐나? 나는 중식당에서 짜장면과 볶음밥 중에 고민하다 짜장면을 골랐다. 짜장면을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면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내가’ 먹고 싶어서였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은 잠시 고민하더라도 결국 자신이 결정을 내린다. (가끔 상사나 어머니가 정해줄 때도 있다) 그런데 일부 조현병 환자는 뇌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짜장면을 선택했다고 여긴다. 나를 움직이는 것이 나 자신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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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결국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패널로 참석한 서울대 철학과 김기현 교수는 말한다.’자아는 특정한 개별적 상태라기보다는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여러 가지를 아우르는 하나의 통합체입니다.’통합되어야 하는데 조현병 환자에겐 이 자아가 둘 이상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조현병을 전에는 정신분열증으로 불렀다.

통합된 나, 즉 자아를 인공지능(AI)도 가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강연자 강웅구 교수와 패널 정두석 KIST 박사는 의견을 달리한다. 먼저 인공지능 연구자 정두석 박사는 말한다.

"저희는 기본적으로 경험 이전의 선험적 영역을 가정하면 안 되는 사람이란 점을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모든 것은 백지 위에서 인간의 경험에 해당하는 학습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 전제하에 만일 인공지능이 오감을 가지고 있고, 이들을 조직화할 수 있고, 실시간 학습에 해당하는 온라인 러닝(Online Learning)이 가능하다면 자아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여러 환자를 접해온 강웅구 교수는 다른 의견을 전한다.

"인간의 뇌는 근본적으로 생존이란 궁극적 목적을 위해 진화되어 왔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미 인간이 만들어놓은 목적 하에 행동하는 인공지능이 자아를 가지긴 어려울 것입니다."

진화란 관점에서 자아를 설명하는 의사인 강연자와 학습으로 설명하는 인공지능 전문가의 대립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경기를 통해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차원적 사고까지 위협한다는 사실을 안 지금, 어쩌면 ’자아’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설명할 최후 보루가 되지 않을까.

무의식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한 가지 실험을 가정해보자.

"무엇을 보았습니까?"

실험자는 여러 가지 예쁜 화면을 보여주다 아래 사진에서 멈추면서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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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연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강아지요, 귀여운 강아지네요."

실험자가 물어본다.

"그런데 왜 당신의 손바닥에 땀이 납니까? 심장도 평소보다 급하게 뛰네요."

귀여운 강아지 사진만을 본 당신은 왜 그런지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정말 내 심장이 급하게 뜁니까? 하고 도로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사실 실험자는 당신을 속였다. 위의 강아지 사진 앞에 아주 끔찍한 화면을 짧게 삽입한 것이다. 너무 짧은 시간 동안 삽입해서 인간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의 무의식은 그것을 다 보고 신체반응을 일으킨다. 다만 의식에 알려주지 않을 뿐이다. 지난 4강 권준수 교수의 <뇌를 읽다, 그리고 마음을 읽다>강연 때에도 이렇게 짧게 지나간 사진 실험에서 의식은 모르지만, 나의 뇌는 이미 이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fMRI 촬영 영상을 통해 보여준 바 있다. 그러고 보니 강웅구 교수(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병원 의사)의 말이 조금 와 닿는다.

"우리 뇌의 디폴트 모드(기본값)은 무의식입니다. 의식은 옵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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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뇌에서 의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무의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의식이 기본이란 말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인간에게 보다 중요한 부분은 의식이 아닐까. 이에 대해 강웅구 교수는 말한다. 오랜 진화 시간에서 의식이 생긴 것은 최근이라고. 그리고 의식은 무의식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의식의 어머니가 무의식이란 말. 하지만 가끔은 아들에 해당하는 의식이 부모에 해당하는 무의식을 조종하기도 한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 심리치료에 성공하는 사례가 그렇다.

강웅구 교수는 의식을 자동차 계기판에 비유했다. 자동차는 초기에도 지금도 그 근본 기능은 같다. 어딘가로 굴러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자동차는 컴퓨터가 삽입되어 계기판이 생겼다. 그래서 조금 더 똑똑해졌지만 굴러간다는 본질은 같다. 인간에게 의식의 유무도 살아가는 데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뇌 속에 의식이 생긴 덕분에 인간은 좀 더 똑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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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의식은 자동차의 계기판처럼 옵션일 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철학적 의미로는 여러 논쟁거리가 되지만, 뇌의 진화로 따질 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표현이 더 옳다.

’나는 존재한다, 더구나 생각까지 한다.’

우리는 존재하고, 더군다나 진화상 최신 상품 ’의식’이란 장식품을 달고 생각까지 하는 존재다. 그리고 생각을 하든, 안 하든 모든 뇌 속 활동은 나로 귀결된다. 우리의 뇌는 최신 상품과 골동품이 모두 한데 모여 조화롭게 정리된 ’자아’를 갖고 있다. 당신은 오늘도 통합된 자아를 가지고, 점심 메뉴를 결정한다. ’오늘은 뭐 먹을까?’를 고민하며 사는 당신은 꽤 괜찮은 존재다.

출처

KAOS ’뇌’ 강연 중 5강 ’자아의 탄생 : 나를 의식하는 나’

강연자 : 강웅구(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패널 : 김기현(서울대 철학과 교수)

패널 : 정두석(KIST 전자재료연구단 선임연구원)

사회자 : 김철훈(연세대 의대 교수)

강연 영상 : 카오스재단(http://www.ikao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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