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이언스

필요가 아닌,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기술

by 인터파크 북DB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문명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인류 최고의 지성들이 밝혀낸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국내 최고의 석학들에게 듣는다. - 편집자 말

무언가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그 어원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과학을 의미하는 영어의 science(사이언스)는

'지식'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scientia(스키엔티아)에서 왔습니다.

이 단어는 ‘지식을 얻다’는 뜻의 sciens(스키엔스)의 명사형이고,

'알다'라는 의미의 scire(스키레)에서 출발했죠.

science라는 단어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초엽 정도입니다.

그전까지 science는 지금과 같은 의미가 아니었죠.

과학자, scientist(사이언티스트)라는 용어는 1833년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전, 우리가 과학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라 불렀을까요?

뉴턴이나 라부아지에 같은 사람들이 했던 활동에 대해서는 뭐라고 불렀을까요?

그때는 과학이 아닌,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이라고 했습니다.

로버트 보일은 스스로 자연철학자라고 했고,

19세기 인물 패러데이는 자신을 scientist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자신이 하는 것은 자연철학이고, 자신은 자연철학자라고 주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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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은 당시 과학자가 아닌 자연철학자였다

기술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technology(테크놀러지)라는 말은

라틴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에서 기원했습니다.

그리스어로 ‘체계적 관리’를 의미하는 tekhnologí(테크놀로기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기예를 의미하는 téhne- 와 –logí가 합성해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technology가 지금의 의미로 사용되는 19세기 중반 전에는 어떻게 불렀을까요?

중세와 근대 초기에는 mechanical art(메커니컬 아트)라고 불렀습니다.

또 mechanical art, machine art(머신 아트), steam engine(스팀 엔진) 등 개별 '기술'의 이름으로 불렀죠.

이런 것들을 추상화하여 통칭하는 technology라는 단어는 없었다는 겁니다.

과학과 기술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이렇게 어원만 봐도 매우 복잡합니다.

그리고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과학과 기술과의 관계입니다.

역사적으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기술은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새롭게 해석을 하는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마르틴 하이데거와 브뤼노 라투르입니다.

하이데거는 기술이 과학보다 훨씬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술이라는 것은 인간이 대상, 특히 자연과 같은 대상을

사람에게 유용한 대상으로 바꾸는 인간의 '의지'라고 보았죠.

즉 기술의 본질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죠.

그리고 과학은 기술이 필요에 따라 발전시킨 지식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과학은 17세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전합니다.

기술은 한참 이전부터 있어 왔고요.

브뤼노 라투르는 과학과 기술 모두 비인간이라는 것들을

(자연도 될 수 있고 기술도 될 수 있죠)

인간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행위라고 봤습니다.

인간이 아닌 것과 새로운 연관관계를 만들어가는 행위가 과학과 기술인 것이죠.

그에 따르면 과학과 기술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테크노사이언스(technoscience)라는 말을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기술이라는 것을 사용했을까요?

약 200만 년 전에 살았다고 알려진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있습니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handy man)이라는 뜻이죠.

이들은 돌도끼 등 간단한 도구를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뒤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는 불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sapiens neandertalensis)는

간단하지만 여러 곳에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도구를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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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호모 하빌리스의 두개골

조지 바살라라는 기술사학자는 신석기로 넘어가기 직전,

당시 나타나기 시작한 엄청난 기술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내립니다.

사람들은 기술이 어떤 필요에서 발명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낚시를 하기 위해서 낚싯바늘, 동물을 잡기 위해서 화살촉을 만들죠.

이처럼 필요에서 발명된 것이 기술이라고 생각하는데,

바살라는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습니다.

필요에서 발명되었다 하기에는 그 종류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필요를 충족하려면 몇 가지 기술만 있으면 되는데,

당시 굉장히 많은 기술이 생겨났던 거죠.

바살라는 기술의 발전은 어떤 구체적인 필요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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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의자를 한번 보세요.

전 세계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의자가 있습니까.

앉는다는 필요를 충족하려면 한두 가지 디자인의 의자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굉장히 많은 디자인의 의자가 있습니다.

왜 그런 수많은 기술이 생기는 걸까요?

단순한 필요가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숨겨진 욕망을 반영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 욕망, 희망, 갈망

이런 것들이 기술을 낳는다는 것이죠.

강연 : 홍성욱(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정리 : 휴머니스트 편집부

* 이 원고는 재단법인 카오스에서 2015년 상반기에 진행된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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