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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칼럼

그 칼날이 이젠 내 가슴을 노린다

by 인터파크 북DB

사표 내고 살인을 택했다. 어디선가 누가 죽거나, 죽인 무수한 사건들. 직장에서 월급을 받지 않을 뿐, 지난 1년여 동안 계속 살인사건을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 깊은 밤 산골에서 살인사건 기록을 살피다보면 자주 소름이 돋았다.

'왜 죽였을까? 왜 자신과 타인의 삶을 그렇게 파괴했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의문은 피부의 소름처럼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대할 때만이 아니다. 오히려 특별한 원한 관계가 없는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사건을 볼 때면 더 큰 의문이 든다.

일명 '중곡동 부녀자 강간살인사건'이 그랬다. 경찰이 보는 앞에서 칼로 여성의 목을 찌른 살인범 서진환. 그는 나의 이웃이다. 그가 지리산을 보고 자랄 때 나는 여기에 없었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아직 내 곁에 많다. 그의 가족과 어린 시절 친구는 "착하고 순한, 말이 별로 없던 아이"로 그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세상을 향해 칼을 갈기 시작했고, 살인으로 체포된 뒤 심리검사를 받는 순간에도 여자 경찰을 성희롱 할 정도로 악마가 됐다.

'누가, 무엇이 그에게 칼을 쥐어준 것일까.'

서진환만이 아니라, '악마'는 우리 사회에서 많이 탄생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강호순, 1994년 세상을 놀라게 한 '지존파', 최근 안산 토막살인범과 '강남역 여성 살인범'까지. 악마가 탄생할 때마다 우리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 "야, 얼굴 공개해! 저런 놈에게 무슨 인권이 있어?!"

악마와 반대편에 서 있는 선인이라도 되듯이 우리가 아우성을 치면 가끔 경찰이 응답한다. 그렇게 몇 번 악마의 마스크와 모자가 벗겨졌다. 공개된 악마의 얼굴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당혹스러웠던 것일까? 분노 여론은 곧 잦아든다. 궁금하다. 악마의 얼굴을 봐서 뭐가 달라졌는가. 가슴속이 시원하고 후련한가?

둘. "왜 죽였대? 아, 사이코패스였구나…."

당연히 사람들은 '왜 죽였냐'고 따진다. '특별한 원한도 없이 죽였다'는 악마의 대답을 듣고 나면 일부 전문가가 덧붙인다. '악마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라고. 그동안의 모든 소란과 공포가 '미친놈'이 저지른 미친 짓에 불과해서 다행이었을까? 세상은 다시 조용해진다. 우리에겐 아무 잘못이 없고 오직 미친놈의 소란이었으니, 어쩌면 우린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대개의 사람은 파리, 모기를 제외하고 이유 없이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 살인사건의 원인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수학문제는 애써 문제를 풀면 답이 똑 떨어지지만, 대개의 살인사건은 잘 설명이 안 된다. 그래서 범죄심리학으로 살인범의 심리를 분석하기도 하고, 수많은 상담과 취재로 그의 과거를 추적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노력을 잘 안 한다.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일'로 뭉개고 넘어간다. 미친놈이 한순간 설친 일이라는데, 무슨 설명과 분석이 더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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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시민들은 피해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지하철 강남역 출입구에 메모지를 붙이고 헌화를 했다. (사진 이희훈)

국가를 향해 자신을 죽여달라고 외친 살인자 이야기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그 숱한 과거의 일 중에서 유독 슬리퍼로 어린 자신의 뺨을 때린 교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이웃 서진환은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으며 자랐다. 지존파의 두목 김기환은 어린 시절 가난과 부모의 방치로 학습 준비물을 못 챙길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교사에서 꾸중을 듣고 맞았다. 맞는 게 싫었던 김기환은 어느 날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훔쳐서 학교에 갔다. 교사는 준비물을 챙겨온 김기환을 칭찬했다. 그때 어린 김기환의 가슴속에 이런 생각이 퍼졌다.

'이렇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구나!'

가까운 사람과 세상에게 외면받고 상처 받은 이들은 종종 세상을 향해 복수의 칼을 휘두른다. 무엇이 그들의 가슴에 증오심을 키웠는지, 왜 그렇게 날카로운 칼을 갈았는지, 우리는 아프게 들여다봐야 한다. 그 진실을 대면하지 않으면, 날카로운 칼날은 어느 순간 우리의 가슴을 겨눌 것이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형수 게리 길모어의 삶을, 그의 동생 마이클 길모어가 정리한 책이다. 두 사람을 끔찍하게 죽이고, 국가를 향해 이제는 자신을 죽여달라고 외친 게리 길모어. 사형수 형의 삶을 좇던 동생 마이클은 자신은 거의 겪어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폭력과 부모 사이에 있었던 잔인한 싸움을 확인한다. 마이클은 형이 세상에 '두려움'을 되돌려주고 싶어 했다고 정리한다.

"그가 가장 받고 싶은 관심은 두려움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가 세상으로부터 받으려 했던 유일한 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너무나 오랜 시간을 두려움 속에서 잔인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고, 그래서 세상에 그것을 되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게리 길모어는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증오심과 자기파멸의 심성을 키웠다. 그는 세상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동생 마이클은 그 과정을 게리 길모어 '감방 동료'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누구든 그런 곳(소년원)에 갇혀 있으면 증오심으로 가득 찬 인간이 되지요. 그리고 만약 그 증오심을 밖으로 표출할 수 없을 때에는-혹은 표출한다 하더라도 총을 들고 은행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쏴버리겠다는 상상을 하는 정도로 그친다면-그땐 바로 자기 자신을 증오하게 됩니다. 자기파멸의 상태에 이르면 다른 누군가가 자기를 최악의 상태로 몰아가도록 만들지요. 그런데 때로는 그 유일한 방법이 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분노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최악의 상태로 몰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타인을 헤치거나 분노하게 하는 일이라니. 자기를 파멸한 세상을 향한 칼부림은 게리 길모어만 저지른 일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주변에서 숱하게 벌어졌다.

그 파멸이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건, 외부의 폭력 때문이건, 우리는 이제 숱한 칼부림을 목격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삶이 나아지지 않는 두려운 세상, 약자가 ‘악’ 소리도 못 내고 끝없이 희생되는 공포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누군가는 자신이 겪은 두려움과 공포를 세상에 돌려주려 칼을 휘두를 것이다. 그 칼날에 또 사회적 약자가 쓰러질 것이다. 사람들은 또 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하라고 외칠 테고, 전문가는 사이코패스였다고 분석하겠지.

그렇게 돌고 돌다보면 어느 순간 날카로운 칼날이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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