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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칼럼

우리는 어떻게 닭이 됐을까

by 인터파크 북DB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 한다. 지리산이 품은 고장 구례로 귀촌한 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것이다.

"구례 맛집 좀 알려줘. 어디서 뭐 먹어야 하냐?"

지금, 여기서, 무엇을 먹어야 하느냐는 물음은 "너 여기로 왜 이사 온 거야?"라는 질문보다 늘 앞선다. 당연한 일이다. 먹어야 사니까. 내 몸의 피가 살고 살이 되면서, 영혼까지 위로하는 건 입에 들어가는 음식밖에 없으니까.

도시에서 내려온 지인들은 구례에서 뭔가 특별한 먹을거리를 찾는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머리에 팍 떠오르는 음식은 없다.

구례에서 조금 유명한 다슬기수제비? 솔직히 전국 어디에나 있는 바지락칼국수 정도의 맛이다. 게다가 고작(?) 수제비집을 맛집으로 추천하면 ’도시 것들’은 눈을 흘긴다. 섬진강 참게탕? 단언컨대, 참게탕 먹는 현지인 나는 한 번도 못 봤다. 그럼 섬진강 메기매운탕이나 자연산 쏘가리회? 이거 추천하면 "민물고기 먹어도 괜찮냐?"는 질문만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지리산 산채비빔밥? 굳이 지리산이 아니어도 산 좋고 물 좋은 동네 어디서나 파는 음식이다. (그 나물이 국산인지도 장담 못 하겠다) 게다가 애들 딸린 가족 단위 지인에게 풀(산채)이 핵심인 비빔밥을 추천하면, 애들은 "지금 저 아저씨 우릴 염소로 아나?"라고 따지듯이 무섭게 날 노려본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구례는 인구 2만여 명이 사는 ’노인 농민’ 중심의 작은 사회다. 외식하는 농민은 드물고, 식당은 그보다 더 드물다. ’맛집’은 고사하고, 해 떨어지면 주린 배 채울 식당 찾기도 어렵다. 저 멀리 보이는 편의점 불빛이 반가울 정도다. 컵라면이라도 파는 곳이니까.

그래도 이 작은 동네에도 구세주 같은 음식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치킨, 아니 요즘 도시 것들이 받들어 모시고 산다는 그 치느님!

"구례 같은 시골까지 와서 치킨을 먹어야 하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사람도 일단 그 치킨을 맛보면 얼굴빛이 달라진다. 정말이지 마음 깊은 곳에 치느님이 강림하여 구원받은 표정으로 돌변한다.

구례 사람들은 그 치킨을 ’산동 치킨’ 혹은 ’구판장 치킨’이라 부른다. 구례군 산동면에 가게가 있어서 ’산동 치킨’이고, 동네 구멍가게(구판장)에서 술안주로 닭을 튀긴 게 그 기원이어서 ’구판장 치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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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의 나는 치킨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시원하게 치킨을 뜯고 있는 필자 (사진 박상규)

"구례 맛집 좀 알려줘 어디서 뭐 먹어야 하냐?"

취재를 해보니, ’구례 치느님’의 기원설은 다양하다. 그래도 나름 정사로 통하는 내력은 이렇다. 어느 시골이나 동네 구멍가게 앞에서 주야장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 구멍가게 주인은 깡소주 들이켜는 동네 사람을 그냥 볼 수가 없어 김치, 마른멸치 등을 안주로 내놓는다. 그 안주마저 다 떨어질 무렵, 술에 취한 사람이 버럭 외친다.

"기름지고 씹을 만한 거, 뭐 그런 거 없어?!"

구멍가게 주인은 집에서 키우던 닭을 잡아 기름에 튀긴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그 닭의 맛은 김치, 마른멸치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야말로 맛의 신세계를 열어제꼈다. 방금까지 마당을 거닐던 울긋불긋한 빛깔의 근육질 닭이 치킨이 되어 상에 올라왔으니 그 맛이 어떠했겠나.

한 번 열린 맛의 신세계는 닫히지 않았다. 동네 아저씨들은 김치를 밀어내고 계속 치킨을 요구했다. 구멍가게 주인의 마당에서 닭은 한 마리 두 마리 사라졌다. 닭 튀기는 기름 냄새는 산동면을 넘어 구례군 전체로 퍼졌다.

그리하여 이제 구례 귀퉁이 산골의 그 치킨은 KFC, BBQ, 소녀시대가 유명 치킨의 반열에 올려놓은 굽네 치킨 등 프랜차이즈 치킨 맛에 길들여진 도시 것들의 입맛마저 사로잡았다. 주말이나 휴일에 그 집에 찾아가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배달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산동 치킨은 지리산, 산수유, 참게를 밀어내고 구례를 빛낼 대표 브랜드로 성장할 수도 있다. 괜한 말이 아니다. 지리산은 한 번도 ’지느님’의 반열에 오른 적이 없고, "남자에게 정말 좋다"고 광고하는 산수유는 비아그라가 굳건한 이상 ’넘버 원’이 되긴 힘들어 보인다. 참게가 ’짱’이 되기에는, 태안 꽃게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게다가 ’꽃게’는 ’참게’보다 이름마저 예쁘다.

하지만 치킨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치느님’으로 모실 정도로 한국을 휘어잡은 대표 음식이 됐다. 확장성 면에서 다슬기, 쏘가리, 메기에 비할 게 아니다. <대한민국 치킨전>의 저자 정은정의 말대로, 한국의 대표 음식은 구절판, 신선로, 비빔밥, 불고기, 김밥 등이 아니다. 치킨, 라면, 믹스커피다.

생각해보라 당신은 지금까지 구절판을 몇 번이나 먹어봤는가. 요리 프로그램에 종종 나오는 신선로, 그거 먹어나 봤나? 어느새 김밥은 도시의 ’싸구려 음식’으로 전락했다. 그에 반해 치킨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외식 음식 1위’에서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선행 사례도 있다. <대한민국 치킨전>에 나온 대로,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 페리카나는 대전에서 출발했고, 호식이두마리치킨은 대구에서, 멕시카나는 안동과 대구권에서, 교촌은 구미와 경북에서 시작됐다. 치킨 하나로 전국을 주름 잡는 구례, 내 생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닭으로 시작해 닭으로 끝나는 우리 삶 <대한민국 치킨전>

내 취향이긴 하지만, 구례에서 제일 맛있는 게 치킨이라니. 정말이지 웃기면서도 슬프다. <대한민국 치킨전>을 보면 왜 ’도시 것들’이 지리산 아래까지 와서 줄 서서 치킨을 뜯고 있는지, 동네 술꾼은 어쩌다 치킨에 매료됐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애초 프라이드 치킨은 아메리카 대륙 흑인 노예들의 ’소울푸드’였지만, 이제는 한국인의 삶을 주무르는 음식이 됐다. 지금의 30, 40대는 콜라로 느끼함을 무마시키며 열심히 치킨을 뜯으며 자랐고, 이제는 ‘치맥’으로 노동의 고단함을 달래고 알 수 없는 미래의 불안감을 견딘다. 이들의 자식들 역시 어느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환장하며 닭다리를 뜯고 있다.

그렇게 "닭을 튀겨 먹다가 찐 살을" 다시 "닭가슴살 먹어가며 다이어트를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직장에서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다 닭 모가지 비틀어지듯이 하루아침에 해고되면, 적금 깨고 퇴직금 합쳐 다시 대출금까지 얹어 치킨점 차려 기름기 넘치는 노년의 삶을 모색하는 게 오늘날 한국인의 보편적 삶이다.

태어난 지 35일 만에 기름에 튀겨져 치느님으로 부활하는 닭이 불쌍하게 느껴지다가도, 치킨에 포위된 우리의 삶을 생각하면 뻑뻑한 닭가슴살을 애써 씹어 넘기는 것처럼 목이 막히는 듯하다.

"그런데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맛있게 먹고 그걸로 끝인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면서 우리 또한 맛의 지옥에 갇힌 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늦은 시간까지 노동을 하고, 그 노동의 고통을 치맥으로 달래다 결국 치킨집 사장님의 삶에서 내 미래를 간보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오늘 한 마리의 치킨과 한 잔의 맥주가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 치킨전>을 읽으면 맛있는 치킨이 생각나고, 눈물 젖은 눅눅한 치킨도 떠오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닭으로 시작해 닭으로 끝나는 우리의 처연한 삶이 선명하게 보인다. 우리가 어쩌다 닭이 됐는지 알려주는 고소하고 서늘한 책이다.

이제는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겠다. 도시의 후배 기자들은 종종 산골에 처박힌 내게 전화를 걸어 묻는다.

"선배, 취재 아이템 좀 주세요! 아침마다 보고(발제)하는 게 너무 괴로워요."

그들에게 <대한민국 치킨전>을 추천한다. 이 세상은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한지, 하나의 닭다리에도 이렇게 많은 사연이 숨어 있다는 걸 기자들은 알 필요가 있다. 열심히 취재하시라. 산골의 나는 치킨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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