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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23. 2016

김이설 "어버이연합 세대 폭력성, 상징화하고 싶었다"



호오가 쉽게 갈리는 소설이 있다. 이를테면 김이설 작가의 소설이 그렇다. 그녀의 소설은 한국 문단에서 일명 ’불편한’ 소설로 통한다. 가혹하고 처참한 이야기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니, 정말 이런 게 가능해?’라는 질문이 들 정도다. 소설 속 인물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벼랑 아래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되어 있다.

벼랑 끝에 선 작가는 무심한 얼굴로 서 있고, 그 아래에는 숨을 헐떡이고 있는 인물이 놓여 있다. 카라바조가 그린 유디트의 얼굴이 떠오른다. 유디트는 담담하고 침착한 표정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에 칼을 찔러 넣고, 피를 내뿜는 홀로페르네스는 고통에 울부짖는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수도, 그저 외면해버릴 수도 있다. 다만 작가는 눈 감고 달음질치는 이들의 옷자락을 붙잡고 묵직한 물음들을 쏟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 년이라는 시간을 기념할 수 있다면, 내가 만든 소설 속 인물들을 모두 한자리로 불러들이고 싶다. 그러곤 그들에게 내가 막 끓여온 미역국을 대접하는 것이다. 뜨거운 국물로도 마음이 녹지 않는다면, 그래서 조금 더 바싹 붙어 앉아 화톳불이라도 피운다면, 기꺼이 내 소설이 박힌 책들을 찢어 불쏘시개로 쓰겠다. 내 소설을 태워 잠시나마 그들의 몸을 덥힐 수만 있다면, 내 무용한 소설이 가장 유용한 순간이 될 것이다." - <오늘처럼 고요히> ’작가의 말’ 중에서

김이설 작가는 등단 10주년을 맞아 새 단편집 <오늘처럼 고요히>를 펴냈다. 이는 2010년에 출간된 그녀의 첫 단편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이후 6년 만이다. 그녀가 그동안 발표한 소설은 총 12편. 그 중에서도 9편이 새 소설집에 수록됐다.

"굉장히 기다렸던 책이에요. 정말 좋고 기뻐요. 그런데 이렇게 책이 나온 뒤에야 소설가라는 느낌이 드네요. 주부로서 집안일과 병행을 하다 보니 집에서 소설을 쓰고 있을 때에는 그저 밥해먹고 치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책이 나오고 사람들이 김이설로 불러줄 때, 저 역시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 인식돼요."

보통의 단편집은 책에 수록된 단편 중에서 표제작을 선정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고요히>는 김이설 작가의 첫 단편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에 실린 단편에서 빌려왔다. 읽어보면 알 테지만 사실 이 제목은 반어적 표현이다. 소설 속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균열과 상처, 아픔, 고통들을 잔혹할 정도로 치열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조선대 교수는 "김이설의 소설은 읽기가 괴로워 피해 다녔다"라고 고백할 정도다. 하지만 그는 "고통을 느끼기 싫다는 이런 욕망조차도 이미 존재하는 고통들에 대한 폭력일 수 있다"며 "김이설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런 폭력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사실 그렇다. 우리는 살면서 믿는 구석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돈이 될 수도, 가족이나 친구, 하다못해 실낱같이 작은 희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이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 ‘믿는 구석’이 전무후무한 사람들이다. 폭력과 살인, 자살과 낙태, 성폭행과 이혼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로 인해 절망감에 빠져든 인물들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소재를 두고 ’막장’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김이설 작가의 소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와 인물을 통해 자극적인 재미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인간다운 삶은 어떤 것인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와 같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글빚’으로 허덕일 때 행복해지는 작가 김이설의 6년 만의 단편집

"세상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너무 많잖아요. 그런 점에서 제 소설은 좀 더 날카롭고 뾰족하고 거칠었으면 좋겠어요. 독자들이 ’이 인물들은 왜 이렇게 살지?’,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떻지?’라는 물음을 스스로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제 소설을 읽고 허무함에 대해 얘기하는 분들도 계세요. 소설 속 인물들이 대체로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끝에 닿아 있거든요. 이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보니 주로 체념이나 상실감에 빠져 있죠. 아등바등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비롯된 절망감 때문에요. 그런데 사실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나요?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는데 삶의 궤적은 나아가지 않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많잖아요.

무엇보다 저는 세대 갈등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이 불편해지기를 원했어요.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평생 놀기만 하셔서 2만 원이 부족하셨던 걸까요? 젊은이들의 경멸된 시선을 감수하면서까지 2만 원을 받으셔야 했던 그 상황이 안타깝더라고요. 저는 부모님 세대의 폭력성을 권위적인 아버지로 상징화하고 싶었어요. 이번 단편집에 실린 ‘한파특보’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대표적이죠. 이분들은 분명 우리 사회의 ‘꼰대’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려받은 것 없이 모두 자식들에게 내주었던 부모들이잖아요. 이분들에게 내세울 만한 건 오직 ‘내가 이렇게 살았다’는 것 정도일 거예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인물을 그리면서 작가로서 고통스러운 감정은 없었을까. 이에 김이설 작가는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무척 애를 쓴다고 했다. 인물에 감정이 동화되는 순간, 작가의 입장에서 자꾸 안아주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자신과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처럼 쓰기 위해 노력한다고.

김이설 작가는 처참한 장면을 쓸 때에도 암울한 음악을 듣는 대신 잔잔하게 흘러가는 테크노 음악을 듣는다. 보다 균일한 감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또한 소설보다 시집을 곁에 둔다. 시를 통해 문장에 대한 느낌이나 감각을 예열하기 위해서다. 짧은 시 한 편에 담긴 이야기의 가능성, 그 세계를 가늠하다 보면 어느덧 소설을 쓰고 싶어진다고 했다.

김이설 작가에게 이번 소설집에 담긴 비화를 물었다. 그녀는 소설집에 첫 번째로 실린 ‘미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낚시를 소재로 한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낚시를 하는 남편을 열심히 따라다녔다고 했다. 한번은 꽤 큼직한 가물치를 낚기도 했는데 물릴까봐 겁이 나서 풀어줬단다. 잔혹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일화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살짝 귀여운(?) 반전으로 느껴졌다.

’복기’라는 작품에 대한 일화도 있다. 냉소적인 분위기로 흐르는 소설이지만 이 소설에서 비롯된 그녀의 실제 경험은 그저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가족과 함께 어느 강가로 소풍을 떠났던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중 한 표지판을 눈여겨보았고, 이를 통해 ’복기’의 강렬한 도입부를 만들어냈다. 김이설 작가는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유독 낮은 탄식과 한숨을 자주 뱉었다.

"이 소설은 ’시사IN’이라는 잡지에서 해직노조원 가족들의 이야기를 보고 썼어요. 당시는 부모가 생활고로 인해 아이를 죽이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던 무렵이었죠. 이 두 가지의 정황을 머리 땋듯 엮어봤어요. 소설을 쓰면서 제가 키운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이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봤죠.(한숨)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건 정말 세상의 끝이거든요. 도대체 얼만큼, 어느 상황까지 가야 그럴 수 있나 생각을 했죠. 우리가 과연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 건가 싶었고요. 그래서 이 소설을 쓸 때 정말 쉽지가 않았어요. 마음이 무척 안 좋았죠.

한편 현실적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어떻게든 열심히 살려고 애쓰시는데 저는 소설적 재미를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가져온 셈이잖아요. 그분들을 정말로 위한다면 현장에 가서 서명운동이라도 하고 발로 뛰어야 하는 게 맞죠. 지금도 누군가는 고공에 올라가 시위를 하고 단식 투쟁을 벌이고 어떻게든 실천을 하고 연대를 맺는데 저는 편하게 책상에 앉아 마음으로만 동한 것이니까요. 처음에는 나름 용기를 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쓰고 나니까 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마치 그분들에게 나쁜 짓을 한 것 같아서 그저 죄송스러웠어요.(한숨)"



"세상엔 재밌는 얘기 너무 많아... 내 소설은 날카롭고 뾰족하고 거칠었으면"

이번 단편집에서 개인적으로 눈에 띈 작품이 있다면 바로 ’비밀들’과 ’빈집’이었다. 두 소설은 모두 평범한 일상에 놓인 여성들이 어떻게 병들어가고 아파하고 신음하고 있는지를 묘한 긴장감 속에서 풀어낸 작품이다. 특히 김이설 작가가 가장 최근에 쓴 ‘빈집’은 작가의 실제적 경험을 담은 소설이기도 하다.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오래된 아파트에서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생각에 마음껏 집을 꾸며보고 싶었지만 그러한 욕망 뒤에 따라오는 상실감을 경험했다고. 김이설 작가는 이러한 감정을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반면 ’미끼’는 아버지의 폭력성이 다소 극단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주인공이 제대로 반항도 못해보고 계속해서 맞는다는 사실이 쉽사리 납득되지 않았다.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이 작정하고 주인공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듯한 태도 역시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의 내면 심리가 좀 더 세밀하게 그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어찌 보면 두 작품은 양 극단에 놓여 있는 것 같아요. ’빈집’은 일상적인 소재로 인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인 반면 제 개인적인 만족도는 낮은 작품이에요. 쓰면서도 힘을 너무 많이 뺀 느낌이 들어서 이렇게 써도 되나 싶었거든요. 반면 ‘미끼’는 독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여지는 적을 수 있겠지만 저의 만족도는 높은 작품이고요. 이 두 작품 사이를 어떻게 조율하는지가 앞으로의 숙제 같아요. ’빈집’처럼 여성의 일상을 다른 결로 그려내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미끼’ 같은 작품을 더 쓰고 싶다는 욕심도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내몰리지만 바락바락 고개를 내미는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를요."

<오늘처럼 고요히>는 등단 10년 차 작가의 완숙함이 묻어나는 단편집이다.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집요함과 치밀한 묘사가 강점인 소설들이 주를 이룬다.

다만 반복되는 상징 기제나 소재로 인해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다. 이를테면 폭압적인 아버지나 성적 유린의 대상으로 쓰이는 여성들, 죽음의 빈번한 등장이 그렇다. 반복되는 클리셰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앞으로 더욱 큰 작가로 나아가기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늘 새로운 것을 원하는 독자들의 기대감을 뚫는 데 있어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작가로서 삶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자들에게 죽음 대신, 좀 더 새롭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김이설 작가의 소설을 덮었을 때, 문득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가 떠올랐다. 백석 시인은 이 시를 통해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테면 김이설 작가가 소설 속 인물을 대하는 마음 역시 이러한 시 구절에 빗대어볼 수 있지 않을까.

일상의 틈바구니를 바짝 조여매 글을 쓰는 ’독한’ 주부이면서도 여전히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그녀. 김이설 작가는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글빚’으로 표현하며 글빚이 많아 허덕일 때는 언제나 행복하다고 전했다. 앞으로 그녀의 발치에 더욱 많은 글빚이 쏟아져내리기를, 또 그로 인해 계속해서 독자들에게 ’김이설표’ 소설로 불편한 질문들을 끝없이 던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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