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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23. 2016

백무현 “노무현의 마지막 하루, 영화로 만들고 싶다"


며칠째 책을 가방 속에 넣고 다니기만 했다. “그의 마지막 하루”라는 부제 때문에, 쉽게 펼쳐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약속한 작가 인터뷰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나서야 마지못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만화 노무현 1 - 그의 마지막 하루>.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 또는 비판 여부와 상관없이, 그의 죽음 참 비극적으로 기억돼 있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면 “나는 노무현을 지지하지는 않지만…”이라고 말문을 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만화 노무현>을 그린 백무현 작가는 그것을 “친노라는, 극악한 언론이 만들어낸 주홍글씨”라고 표현했다. 백무현 작가는 그런 주홍글씨에 맞서 ‘정공법’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극에 개입된 ‘공모자’들의 면면을 그려냈다.

그동안 <만화 박정희> <만화 전두환> <만화 김대중> 등 대통령 만화 평전 작업을 해온 백무현 작가. 이번 책 <만화 노무현>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600여만 원을 모금해 제작했다. 서울신문 등 언론사에서 만평을 그리는 시사만화가로 살아온 백무현 작가는 2013년부터 전업작가로 작품을 그리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 책은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시작된 때부터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날’까지, 1년 동안 진행된 ‘노무현 정신 죽이기’에 대한 기록이다. “노무현의 결백을 주장하는 웅변”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제작기간의 70%를 취재와 구성에 투자했다는 백무현 작가. 그가 보름 동안이나 고민하며 그리지 못했다는 이 책의 ‘마지막 한 컷’은 어떤 장면일까.


“‘친노주의자’라는 주홍글씨... 정공법으로 맞서려 했다”

Q <만화 노무현>은 총 3권으로 기획됐다 들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1권의 부제가 “그의 마지막 하루”인데, 어째서 마지막 날의 이야기가 맨 먼저 다뤄지게 됐나요?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살아온 역사도 어마어마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결을 했다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잖아요. 한국 현대사에서 이렇게 죽음을 맞이한 대통령은 없잖아요. 이미 6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비극적인 죽음을 다룬 작품이 왜 안 나올까 궁금했어요. 언론인이나 기록자들이 그 죽음을 파헤쳐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도 안 나서더라고요. 노무현을 다룬다고 하면 바로 ‘친노주의자’가 돼버리는 세간의 편견과 오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함부로 다루지 못한 것 같아요.

이 책이 나오고 제가 지인들에게 선물하면서 SNS에도 글이라도 좀 올려주기를 바랐는데, 안 올리는 거예요. 한 친구가 도리어 “너 같으면 글 올리겠냐?” 하고 물어요. 왜냐고 물으니 “야 임마 이거 올리는 순간 친노로 찍혀버리는데” 그러더라고요. 되게 놀랐어요. 아직도 친노라는, 극악한 언론이 만들어낸 주홍글씨가 지워지지 않고 있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노무현의 마지막 날을 1권 주제로 삼은 것은 정공법이죠.

Q 3권이 한꺼번에 나오지 않고 1권만 먼저 나온 것은 왜인가요?

2권 부제는 “노무현과 김대중”, 3권은 “노무현과 조선일보”입니다. 연대기에 따르지 않고 각 권마다 테마를 잡아서 가는 거죠. 이런 테마를 통해서 노무현이 한국사회에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뭘까 찾아가는 거예요.

Q 책 속에 화자가 등장하는데, 끝까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 건가요?

날카로우시네요. 지금까지 그건 아무도 안 물어보던데.(웃음) 사실 그게 누구인지가 핵심이거든요. 만화적 장치로 숨겨놓은 건데, 그건 제가 3권의 마지막에 영화처럼 밝힐 겁니다.

Q 그럼 더 여쭤보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웃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직․간접적으로 관계있는 사람들이 모두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의 발언들을 모두 확인하려면 취재가 상당히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물론 실제 발언 그대로 옮긴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실에서는 벗어나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할 수 있으니까요. 노무현 측근 쪽은 직접 취재를 상당히 많이 했는데, 전 정부 인사나 검찰 등은 잘 만나주지를 않아서 언론사 출입기자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취재했어요.

Q 주인공이 등장하고 소설적인 스토리가 이어지는 만화가 아니라서 구성이 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구성에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숨어 있는 화자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다 보니까, ‘거리 두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화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도 안 되고 너무 멀어져서도 안 되고.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 제1의 조건이었기 때문에, 그게 제일 고민스러웠어요. 우스갯소리지만, “같은 이름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냐”(노무현 전 대통령과 백무현 작가)라는 얘기를 들을지도 모른다는 게 작가한테는 압력이 되거든요.(웃음)

Q 만화를 그리는 작업 이전에 취재와 구성에 걸린 시간도 상당했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렸나요?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려요. 취재를 한 다음에 1차로 영화처럼 일단 시나리오를 쓰거든요. 그게 A4용지로 200쪽 정도 나와요. 그럼 그걸 100쪽 정도로 절반을 쳐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콘티(conti)를 만들고요.  요즘은 디지털화가 많이 돼서,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많이 단축됐어요. 이번 책 제작기간이 1년 정도 되는데, 70%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든 시간이고, 30%가 그림 그리는 데 든 시간이에요.

Q 보통의 만화책보다 한 칸의 프레임이 큰 것 같습니다. 칸 분할이 적어서 만화책보다 웹툰을 보는 느낌이 나는데, 어떤 의도가 있는 건가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니까 얼굴을 크게 그리려고 그랬어요. 여백을 좀 주려고 노린 것도 있고요. 사실은 여백이 아니라 전략적인 흰색을 쓴 거죠. 그리고 이번 책에는 인물의 정면 컷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것도 일부러 한 거예요. 독자가 눈을 같이 맞춰보는 거죠. 그림 속 사람과 1:1로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들어요. 카메라가 위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고 옆에서 볼 수도 있는데 그러면 그림은 예쁘지만 집중도가 떨어지거든요.


“노무현은 어마어마한 콘텐츠... 영화 만들어 메가폰 잡고 싶다”

Q 저자서문에 쓰신, “노무현을 불러내되 ‘노무현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노무현의 웅변이나 주장은 이 책에서 다 빼버렸어요. 그러면 이 책이 노무현을 변명하는 책이 돼버리잖아요. 관찰자가 본 그 당시 상황을 전달하는 것 속에서 노무현의 진심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죠. “나는 죄 없어!” 하는 웅변은 이 책에 없습니다. ‘노무현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는 건 그런 뜻이에요.  

Q 역시 저자서문에 “정작 내가 궁금한 것은 (…) 그를 자결로 몰고 간 공모자들의 얼굴이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 권력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런 점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나요?

한 가지 각오한 게 있어요. 이 책이 논란이 돼서 법적 공방으로 가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대통령이 자결까지 한 어마어마한 사건인데, 세상에 국회에서 국정조사 한 번 이뤄지지 않았어요. 이런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만약에 이 책이 논란이 돼서 야당이 나서주고 국회가 나서준다면, 오히려 이 책이 진실을 밝히는 데 일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거죠.

Q 이른바 보수세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렇게 집요하게 정치적으로 공격한 까닭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만큼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요?

제가 이 책에 쓴 “노무현의 가치를 없애버려야 우리가 삽니다”라는 대사가 대답이 될 수 있겠네요. 저는 노무현의 가치란 정의로움이라고 봐요. 인권, 통일, 평화, 노동 등 여러 문제들에 대한 노무현의 관점을 하나로 관통하는 것은 정의로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저자서문에 “노무현과 관련한 책은 앞으로 계속 나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회고록, 인터뷰집, 추모집, 기록집, 이 만화 평전까지 참 많은 책들이 나왔는데, 어떤 책이 더 나와야 한다는 건가요?

노무현은 우리 현대사의 어마어마한 콘텐츠예요. 계속 그 콘텐츠를 발전시켜나가야 노무현의 가치가 계승될 수 있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뮤지컬 같은 것도 다 나와야 한다고 봐요. 사실 저도 처음에는 영화로 기획했어요. 그런데 돈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웃음) 엄두가 안 나서, 일단 만화로 해보고 여건이 만들어지면 영화로 해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죠. 제가 직접 메가폰을 한번 잡아보고 싶어요. 주변에는 국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한번 해보자는 사람도 있고요. 이 책을 내고 북콘서트를 하면서 그런 마음을 내비쳤더니, 제발 좀 영화로 만들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노무현의 등을 향해 돌을 던진 사람들이 이 책 보길”

Q 신문 만평을 그리다가 지금은 만화 평전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매일 정해진 지면을 채워야 하는 만평 작업과 한 사람의 삶에 대해 길게 연구하고 고민해야 하는 만화 평전 작업을 비교하자면 어떤가요?


신문사를 그만두면서 ‘이제 생명이 조금 더 길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매일 마감을 한다는 게 장난이 아니거든요. 확실히 지금이 마음은 더 편합니다. 차분하게 장편 작품도 해볼 수 있고요.

Q 그동안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까지 대통령 만화 평전 작업을 쭉 해오셨습니다. 그중 제일 어려웠던 작업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만화 노무현> 작업이 제일 어려웠죠. (1권) 제일 마지막 장면을 연출할 때는 한 보름 동안 그림을 못 그렸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올라가는 장면인데, 제 스스로 마음이 격해지더라고요. ‘그 바위 위에 서서 봉하마을을 내려다봤을 텐데, 그 심정이 어땠을까.’ 연출하면서도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마감이 늦어져서 출판사한테도 혼이 좀 났고요.(웃음)

Q 다음에는 어떤 대통령을 다룰 건가요? 순서대로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가나요, 아니면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 갈 생각인가요?

정봉주 전 의원은 우스갯소리로 이명박 편을 그려달라고 해요. 왜냐고 물으니까 “그래야 내가 나오지!” 그러더라고요.(웃음) 저한테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승만, 어렵죠. 그리고 굉장히 뜨겁죠. 노무현만큼이나 뜨거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죠. (평전 작업을) 누군가는 해야 할 것 같아요. 해방공간에 대한 평가를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현대사가 엉망이 돼버리잖아요.

Q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민주당 시민캠프 대변인을 맡으신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만화 평전 작업을 하시면서 특정 정당과 관련한 이력이 독자들에게 선입견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저는 민주당 당원이 아니었어요. 그야말로 시민캠프였기 때문에 시민 자격으로 함께했던 거죠. 하지만 어쨌거나 정계에 발을 담근 것은 확실하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작가로서는) 그 이력이 걸림돌이 된 건 사실입니다. 대선이 끝나고 이 책 작업을 바로 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대선 패배에 대한 변명만 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이 책 기획은 돼 있었지만, 1년 동안 쉬면서 스스로 냉철해지는 시간을 보냈죠.

Q 올해 초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이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로 이어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표현의 자유의 ‘선’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그 사건은 어떻게 보셨나요?

저는 그 (마호메트 풍자)만평을 보면서 불편했는데요, 그것 때문에 표현의 자유 논쟁이 심하게 벌어졌잖습니까? 저는 조금 의아했어요. 풍자는 조금 더 고급스러워야 하는데, 그게 과연 멋있는 풍자인가 싶었죠. 마호메트의 성기를 그려두고, 그런 건 초등학생들도 화장실 벽에 많이 그리는 거거든요. 저를 보수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풍자가) 아니라고 봤어요. 자기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도 소중하죠. 만평 수준도 높지 못하고 낙서 수준이라서, 저는 별로 점수를 못 줬어요.

Q 현재 우리나라의 시사만화가들 중에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나요?

경향신문 ‘장도리’(박순찬)가 참 잘하죠. 압권이에요, 압권. 세계적으로도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어느 혁명가의 삶 1920~2010> <그 여름날의 기억> 같은 작품을 그린 박건웅 작가도 굉장히 주목하고 있어요. 열정이 대단해요. 앞으로 대형 기획물을 하지 않겠나 보고 있어요. 한겨레에 ‘D.P’를 연재하고 있는 김보통 작가를 보고도 깜짝 놀랐어요. 대단한 실력이에요. 앞으로 대형작가가 될 거예요.

Q 어떤 사람들이 이 책 <만화 노무현>을 보면 좋겠습니까?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고요. 그때 노무현에 빚을 진 사람들, 그를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 좋겠어요. 노무현의 등을 향해 돌을 던진 사람들이 보면 좋겠어요. ‘노무현의 진심은 뭐였지? 이게 진심이었나? 아 미안하다, 노무현.’ 이런 반응만 나와도 좋겠어요.

Q ‘나는 노무현을 모른다’, ‘나는 노무현에게 관심 없다’ 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이런 점에서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라고 한마디 하자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어렵네요.(웃음) 우리 사회 집권층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네요. 책을 읽고 나면 ‘우리 사회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의 수준과 실력이 겨우 이 정도였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독자들이 그런 관심으로 이 책을 읽어주셔도 좋겠네요.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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