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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27. 2016

그 무엇도 아니다, 나는 나 '아저씨'다

'꼰대'리 '개저씨'리 부르지 마라...이 시대 아저씨를 위한 책 

   


          



"왕이 궁에 가기 싫을 때 하는 말은?" "궁시렁 궁시렁."



’아재개그’ 한 토막. 아저씨들의 썰렁한 말장난이 요즘 새삼 인기라나 뭐라나. 듣고 있는 아저씨들의 마음은 애매하다. 놀린다고 생각하면 기분 나쁘지만, 그래도 이런 건 귀여운(?) 관심이라 볼 수 있지 않나. 아저씨들을 정말 힘들게 하는 것들은 따로 있다.



살을 빼고 ’식스팩’을 만들며 젊음을 붙잡으려 애쓰기도 하고, 젊은이들의 유행어를 배우며 어울려 보려고 기웃기웃 눈치 보는 아저씨들. 처자식 먹여 살리고 부모 모시고 노후대책 준비하느라 아등바등 돈에 쫓겨 살아왔다. 하지만 현실은 직장에서는 아래에서 치이고 위에서 눌리고, 사회에서는 '꼰대'라 '개저씨'라 손가락질 받기가 일쑤. 아저씨의 삶은 여기저기서 부정당하기 십상이다.



이제 그만하자. 시간을 되돌려 '오빠'가 되려 하지도 말고, 아직 먼 노후의 공포 때문에 돈벌레로만 살지도 말자. 과거를 추억하지도, 미래만 준비하지도 않는 '지금'을 긍정하는 삶을 살자. 아저씨를 위로하고 아저씨를 이해하고 아저씨 그대로 존재하기 위한 책들. 나는 나, 아저씨다.





진짜 개가 돼버린 우리 아빠 <시바 아저씨>



회사의 후배 여직원이 이 책을 나한테 추천했다. "시바 아저씨"라는 제목을 보고 멈칫, ’이 친구가 지금 나한테 욕하고 싶은 건가’ 싶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다. 여기 있는 ’시바’는 일본 고유의 견종인 ’시바 개’를 뜻하는 것.(’시바 개’라고 쓰니 더 욕 같다. ’시바견’이라고 하자.) 표지를 보니 시바견들이 넥타이도 매고 서류가방도 들고 신문도 보고 있다. 뒤표지에 "속지 마! 이건 강아지 만화가 아니라 아저씨 만화야, 멍멍!"이라고 쓰여 있는 이 책은 시바견으로 변한 이 시대 진짜 아버지들의 모습을 그린 만화책이다.



시바견은 우리나라 진돗개처럼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시바 아저씨> 속의 남자들은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여자와 똑같이 사람으로 지내다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갈수록 시바견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만원 전철 속에서 시바견의 털이 덥고 짜증난다며 불평하는 젊은이들, 아빠가 냄새나서 싫다는 딸, 세대차이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젊은 부하직원 등, 중년 남성들의 애환과 고민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17쪽     까지만 넘겨보다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덮었다. ’시바…… 아저씨’.





웹툰작가 세 명의 아버지 이야기 <우리 집 꼰대>



꼰대.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뜻이 두 개다. "1.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2.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 사전의 뜻은 간단하지만 현실에서는 좀 복잡하다. 말끝마다 "우리 때는 말이야"를 달고 살면서 훈계하고 참견하고 정작 모범은 보이지 않는 말귀 안 통하게 기성세대, 정도면 정의가 될까? 어쨌거나 행여나 어디서 ’꼰대’ 소리를 들을까 조심해야 하는 아저씨들에게 "우리 집 꼰대"라는 이 책의 제목은 쉽게 스쳐 지나가기 힘든 제목이다. ’혹시 우리 아이도 나를……?’



<우리 집 꼰대>는 3월 30일 EBS에서 방영된 동명의 다큐를 바탕으로 나온 책.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인공은 세 명의 웹툰작가 김수용, 정이리이리(이정일), 버선버섯(정가연)이다. 꼰대라 불리는 아버지. 아버지가 이해하기 힘든 웹툰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아버지와 자식들의 관계는 더더욱 단절된다. 세 명의 웹툰작가가 아버지를 인터뷰하며 웹툰 작업을 하는 과정을 다큐로 만들었고, 책 역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다큐 촬영 장면 사진을 넣어 다큐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줬고, 출연 작가들의 다큐 뒷이야기를 추가했다.





아저씨를 위한 사회심리학 <한 평의 남자>



내가 출판사 사장이라면 이 제목을 뽑은 편집자 또는 기획자에게 포상휴가를 줬을 것이다. "한 평의 남자"라니. 대한민국 중년 아저씨들의 처지를 이보다 더 와닿게 표현할 수 있을까. 뜨겁지만 그만큼 흔들렸던 청년 시절을 보내고 이제 인생의 정점에 안착했다고 생각되는 서늘한 중년의 때. 하지만 넓어지지 못하고 높이만 올라가려 애쓴 남자에게 지금 주어진       ‘마음의 땅’은 고작 한 평뿐이다. <한 평의 남자>는 성공한 남자의 화려한 열정 이면에 놓인 약하고 외롭고 서러운 ’아저씨’의 시시콜콜한 속내를 털어놓은 에세이집이다.



"한 평의 남자"라는 고백은,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외로워지는 일이라는 깨달음이다. 집에서는 왕따, 사회에서는 꼰대로 설 자리를 잃은 아저씨들의 소회와 미처 토해내지 못한 설움을 다각도에서 풀어냈다. 마흔엔 뭘 해야 한다, 쉰에는 이렇게 살아라, 하는 자기계발서 식의 인생 지침이나 해법을 제시하려 들지는 않는다. 다만 ’남자라면 모름지기……’라는 강력한 고정관념의 틀 속에서 살아오느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도, 자신의 아픔을 내보이는 것에도 서툴고 어색했던 남자들을 따뜻한 감성으로 감싸 안을 뿐이다. 





은밀하고 사소한 욕망일기 <아저씨, 욕망하다>



책 제목이 <아저씨, 욕망하다>라니, 이거 참 말하기 조심스럽다. ’아저씨’와 ’욕망’이라.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지위를 손에 넣은 중년 남성들은 종종 ’욕망의 덩어리’로 인식된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저씨들의 욕망은 충분히 문제적이기에. 하지만 그럴수록 반대편에서는 욕망 자체를 숨겨야만 하는 아저씨들도 생겨난다. 나도 저렇게 비쳐질까, 내 욕망도 저렇게 추한 것으로 보일까 두려워서. 욕망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권리, 또는 사회적 통념이나 도덕적 기준 사이에서 제어력을 잃어버린 욕망이 문제다.



이 책을 쓴 아저씨도 그렇다. 표지에는 옆으로 누운 여인의 뒷모습이 보이고, 허리 라인을 따라 제목인 듯 아닌 듯 조그만 글씨로 "은밀하게"라고 써놨다. 소심한 욕망을 담은 그림 또는 사진과 유쾌한 위트를 담은 한 줄의 글로 만든 책. 야하다기보다는 귀엽게, 추하다기보다는 짠하게(?) 아저씨의 욕망을 드러낸다. 예를 들면 이런 식. "’왜 아빠는 여자만 그려?’ 하고 딸이 묻기에 ’네 엄마 핸드폰 바탕화면이 소지섭인 것과 같은 이유다’라고 답해주었다." 김두식 경북대 교수의 책 제목을 빌려 편들어주고 싶다. "욕망해도 괜찮아!"


취재 : 최규화(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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