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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칼럼

바르셀로나의 '낮은' 성당 이야기

김홍기의 세상의 모든 책들

by 인터파크 북DB

지금 세계의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국내 최대 출판 에이전시 임프리마 코리아의 김홍기 디렉터가 유럽․미주․아시아 지역 출판계 동향을 친절하고 재미있게 읽어 준다. 국가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부터 우리가 기다리는 글로벌 작가들의 신작 발표 소식까지, ‘세상의 모든 책들’로 생생한 현장에서 전해온 소식에 함께 귀기울여보자.(편집자 주)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그 어려운 과정을 잘 알기에, 출판 칼럼니스트로서, 기획자로서, 에이전트로서 또한 독자로서, 그 작품이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져가는 것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너무나 완벽하고 여러 흥행 요소를 갖췄음에도 당시 시장 환경에 어울리지 않았거나 문화 정서적 차이 때문에 힘도 못 써보고 모습을 감춘 저 수많은 저주받은 걸작들만 매일 칼럼에 소개한다 해도 지면이 모자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6년 3월에 스페인에서 출간된 역사소설 <바다의 성당(La Catedral Del Mar)>. 실제로 바르셀로나 항구에는 같은 이름의 성당이 있다.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건축한 '사그라 다 파밀리아 대성당'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스페인 교회 건축물 중 하나인 '산타 마리아 델 마르(Santa María del Mar)'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책의 저자 일데폰소 팔코네스(Ildefonso Falcones)는 현직 변호사로 당시에 약 4년여에 걸친 구상과 고증, 자료 수집을 통해서 이 불멸의 역작을 창조해냈다.



<바다의 성당>은 2006년 당시에 약 40주 이상 스페인 베스트셀러 1위를 유지했으며, 이탈리아에서도 10주 이상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이후 약 40개 나라에 번역, 출간되어 전 세계적으로 500만 부 이상이 팔려 파란을 일으켰다. 이 작품으로 작가 팔코네스는 2007년 이탈리아 지오반니 보카치오 외국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에 전 유럽을 강타한 이 책 덕분에 실제 성당을 보기 위해서 바르셀로나를 찾는 관광객들이 급증하기도 했었다.


원서1.jpg <바다의 성당> 스페인어 판 표지


14세기 초, 스페인은 엄격한 가톨릭 종교의 윤리가 왕권과 함께 균형을 이룬 중세 사회였지만, 새로운 시대(르네상스)로 서서히 재편되는 모습 또한 혼재하는 변화의 시기였다. 소설 <바다의 성당>은 스페인 어느 시골 지역의 농노 베르나와 그의 신부 프란체스카와의 결혼식 장면부터 시작된다. 이때, 갑자기 들어닥친 영주 롤랭은 결혼하는 모든 농노의 신부는 반드시 영주와 첫날밤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조항을 들먹거리면서, 프란체스카를 납치, 겁탈한다. 영주의 심한 압제 속에, 베르나는 아들 아르나우를 데리고 여동생이 있는 바르셀로나로 떠나고, 프란체스카와도 헤어진다.



14세기의 항구 도시, 바르셀로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중세 도시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프리카와 이슬람의 상인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활동하는 국제적이며 르네상스적인 모습을 띠고 있었으며, 베르나도 여기서 막노동을 하면서 겨우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일련의 토박이 귀족 패거리들의 음모 때문에, 베르나는 폭도의 주동자로 몰려 공개 처형을 당하고 10살 난 아들 아르나우는 이를 속절없이 지켜본다.



아르나우는 고모 집에 맡겨졌지만, 그 고모마저 세상을 떠난 후 고모부의 새 부인으로부터 심한 구박과 폭행을 당한다. 하지만 아르나우는 항구 근처의 '바다의 성당'이 건축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겪게 되고, 그러면서 한 사람의 '위대한' 인물로서 성장해간다. 친한 친구의 배신, 귀족들의 박해, 친척들의 폭행과 탄압 등을 겪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당시 가장 천시되던 인종이었던 유대인들과의 교류와 우정 등을 통해 도시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최고의 지위인 '환전상'이 되어서, 그의 이름을 떨치기에 이른다.



저자.jpg 저자 일데폰소 팔코네스 © Joan Tomas


지위와 명예를 획득한 아르나우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들고, 자신의 어머니를 겁탈했으며, 자신을 탄압하고 모욕했던, 당시의 힘 있는 모든 반동 인물들(주로 귀족과 성직자들)에게 매우 합리적인 방법으로 하나씩 복수를 해나간다. 그러면서 왕과 교황의 명령으로부터도 자유로우며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일반 시민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신분인 '영사(일종의 로마시대의 호민관)'가 되어 모든 사건과 복수를 해결하고, 64살의 아르나우는 '바다의 성당'이 완공되는 것을 보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주인공 아르나우가 귀족들의 모함으로 종교 재판을 받는 장면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차근차근 논거를 들면서 핵심을 찌르는 모습은 변호사인 저자 팔코네스 특유의 노력이 깃든 백미이다.



역사성을 기반으로 한 팩션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낯선 이국의 이야기라는 정서를 느낄 틈도 없이, 한 위대한 '영웅'이 탄생하는 과정을 숨 쉴 틈 없이 꽉 차게 전개하는 작가의 역량은 도저히 이 책이 작가의 처녀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하다.



작가는 이 책에서 '아르나우'라는 매력적인 주인공을 등장시켜서, 밑바닥부터 하나씩 밟아가며 정도와 신념으로써 살아가는 가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습과 압제 등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자유인'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바로 이 '자유인'이라는 단어는 앞으로 있을 르네상스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으며, 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배경이 된다.



또한, 각 등장인물 간의 우연적인 만남과 행운, 질기고 질긴 숙적의 관계, 원수, 어긋난 운명, 우여곡절, 숙명 등 인간들이 살면서 겪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주인공의 운명과 결합해서 훌륭한 복합체를 이루어내고 있다.



배경적인 측면에서, 14세기의 흑사병, 관용과 잔악함을 동시에 지닌 종교의 이중성, 이러한 종교와 왕권을 등에 업고 비이성적인 압제를 펼치는 귀족들과 이에 대항하는 소작농과 일반 시민, 가장 천한 계급으로 인식되던 유태인과 이로부터 힘을 얻어 성공해나가는 주인공 간의 아이러니 등이 플롯의 극적 긴장감을 한층 밀도 있게 만든다.



그리고 평론가들은 이 소설을 정태적인 측면에서, <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쓴 알렉산드르 뒤마의 필치를 많이 닮았다고 평가했다. 뒤마가 연재소설에서 쓰는 특유의 '단절 기법'과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하는 긴장의 요소를 매우 현대적인 감각으로 독자의 입맛에 맞게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베스트셀러의 요소를 갖추었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바다의 성당'의 '바다'는 바다의 선원들과 부두 노동자들을 의미한다. 부두 노동자들의 삶은 실로 고단한 것이었지만, 이들은 길드를 조직해서 일이 없이 한가로울 때는 자신들의 노동력을 '바다의 성당'을 짓는데 아낌없이 봉사했다. 실제로 바르셀로나에 있는 이 '바다의 성당'은 화려하거나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먼, 소박하고 단순하며 예배당이 무척 넓게 지어진 대중적이고 '낮은 곳으로 임하는' 종교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당시 부두 노동자나 하층민의 마음속에 있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 신의 존재는 분명히 귀족과 성직자들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나의 엄마는 어디 있나요?"라는 주인공 아르나우의 질문에 아버지 베르나는, "너의 엄마는 저 '바다의 성당'에 있는 성모 마리아님이시다."라고 대답해주고, 이때부터 이곳 '성당'이라는 공간은 아르나우의 순수성과 용기를 끊임없이 북돋는 부활과 재생의 공간이며, 원동력의 역할을 한다.



<바다의 성당>은 독자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소설이자, 낭만주의 시대의 대중을 위한 소설들의 문체와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한층 세련되고 복잡하지만 읽기의 재미를 그대로 음미할 수 있는 멋진 작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이 책의 한국어판은 절판되어 우리 독자들이 다시 찾아볼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언젠가 새로운 판형으로 복간되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독자로서 기대해본다.



한국어판.jpg 절판된 <바다의 성당> 한국어판 표지


글 : 칼럼니스트 김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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