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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칼럼

알베르토 망구엘 - 호기심의 모험

by 인터파크 북DB

지금 세계의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국내 최대 출판 에이전시 임프리마 코리아의 김홍기 디렉터가 유럽․미주․아시아 지역 출판계 동향을 친절하고 재미있게 읽어 준다. 국가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부터 우리가 기다리는 글로벌 작가들의 신작 발표 소식까지, ‘세상의 모든 책들’로 생생한 현장에서 전해온 소식에 함께 귀기울여보자.(편집자 주)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은 말년의 눈이 먼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방대한 지식과 교양을 음미하고 축적한 소설가이자 문학 비평가, 현존하는 최고의 독서가다. 망구엘은 세상 모든 편집자들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와 <밤의 도서관(The Library at Night)> 등을 통해 보여준 책과 지식 그 자체에 대한 향연을 뛰어 넘어,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이번 신작 <호기심(Curiosity)>(예일대학 출판부)에서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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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 <호기심>의 집필 동기가 바로 인간이 지닌 호기심에 대한 호기심, 더 나아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힌다. 망구엘은 르네상스 시대의 프랑스 회의주의 철학자였던 몽테뉴의 근원적 질문으로부터 그 화두를 찾는다.

"Que sais-je?(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인간이 쓰는 언어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구성되어서 인간이 많이 아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에 대한 비판과 의심을 전제로 망구엘은 회의주의자인 몽테뉴를 따라서, 21세기 최대의 역작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블랙 스완(The Black Swan :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에서 한 것처럼, ’우리가 무엇을 아는가?’에 대한 경험적 회의에 입각한 해답 찾기를 도서관에서부터 시작한다.

16세기의 몽테뉴를 넘어서면서부터 다윈주의자들은 ’인간의 상상력’이 환경에 생존하는 인간 종의 특유의 기제라고 바라봤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존재는 기존에 마주하던 환경에 대한 정의와 해석을 전혀 다른 식으로 내린다. 바로 ’의식(Conscious)’의 등장이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와 우리의 세상을 ’의식’하고 ’반영’하면서 사고를 무한 확장하고 정보에 대한 인식과 선택의 효율성을 극적으로 개선한다. 이는 몽테뉴가 동의하는 바이기도 한데, "인간은 존재하기 위해서 상상하며, 그 상상력이라는 욕망을 풍요롭게 살찌우기 위해서 호기심을 갖는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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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인 창조 행위로서 ’상상력’은 연마를 통해서 발전한다. 성공적인 결과가 아니라 시행착오와 실수, 실패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구현되었으며, 이는 수많은 철학과 예술, 문학의 역사가 증명한다. 그리고 더 잘 실패하기 위해서는 그 많았던 실패의 경험 자체를 ’실패’라고 직시하고 인식하는 과정 속에서 ’유레카’와 같은 강렬하고 통찰력 어린 깨달음과 성공이 탄생한다.


이쯤해서 작가 망구엘은 또 하나의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진다.

"왜 그 짧은 성공의 순간은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 속에서만 탄생하는가?"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들이 더 좋은 취직과 안정된 삶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어떻게(how?)"를 주입하는 방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16세기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 살던 시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대학과 고등 학문을 가르치는 공간에서의 주제는 단 하나였다.

"왜(why?)"

’왜?’라는 질문은 그 ’왜’가 기대하는 대답보다 훨씬 강력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니,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 ’왜?’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의심하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순간, 대답에 대한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발전과 진화라는 모습으로 함께 따라왔으며, 어린이들이 호기심을 통해 성장하고 사회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1566년 이전에 유럽에서는 ’물음표’가 문장부호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음표의 형식을 갖춘 질문 개념의 문장과 응답에 대한 개념은 현재 파리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르네상스 시대 후반의 책들에서 서서히 발견된다. ’의문문’이라는 형식이 책과 문장 속에서 등장하면서 인간의 사고와 기술이 극적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0414103102802.jpg 알베르토 망구엘 ©Política Argentina


망구엘은 몽테뉴의 저서, 단테의 신곡, 호머의 일리어드에 이르기까지 여러 고전과 역사적 관습, 사실, 그리고 사상가들과 과학자들, 예술가들의 다양한 활동과 경험들을 조명하면서 폭넓게 ’호기심’이라는 담론을 탐구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질문의 형식은 이미 ’의문문’이 생겨나면서부터 가늠할 수 없는 무한대의 형식으로 발전했다. 서로 처한 환경과 문화가 다르더라도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진 호기심에 기반한 정체성과 철학적 탐구를 위한 일반적인 질문들에서부터 보다 복잡하고 주관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 다양한 호기심과 문제의 제기를 통해,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과 비록 당대에 못하더라도 그 다음 세대에 전승되면서 정답을 찾아내고 다시 질문을 제기하는 순환과정 속에서, 인간의 문명과 의식이 끊임없이 진화해왔음을 이미 방대한 지식과 독서로 검증된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의 시각을 통해 <호기심>은 지적인 모험을 흥미롭게 펼친다.


글: 김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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