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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칼럼

301호 여관방, 훅 가는 이야기

by 인터파크 북DB

내가 사는 여기에는 없는 게 많다. 우선 굴뚝 공장이 없다. 그래서 작업복 입은 노동자도 눈에 띄지 않는다. 높은 빌딩이 없고, 거리를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도 보기 힘들다. 그 늦은 밤, 닭다리 한번 뜯어보겠다고 30분간 여기저기 전화 돌리다 이웃에게 한 소리 들었다.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치킨을 시켜?"



어디긴 어딘가. 지리산 아래 작은 마을 전남 구례군, 그것도 피아골 깊은 계곡이지. 여기에서 치킨 배달을 모색하다니, 그래 내가 미쳤나보다. 깊은 밤에도 언제든 원하는 걸 배달시켜 먹겠다는 건 순전히 도시적인 생각이다. 여기서는 꿈꾸면 안 되는, 감히 그랬다가는 배만 더 고파지는, 허무한 욕망이다.



조용한 밤, 가만히 방에 누워 있으니 그 남자와 함께 보낸 여관에서의 이틀이 생각난다. 밤새도록 붉은색 불빛이 창문을 때리고, 밖에서는 "오빠, 놀다 가!"라는 젊은 여성의 외침이 새벽까지 이어지던 그 낡고 넓은 우리의 여관방.



창밖을 내다보면 '성인용품 24시간 배달'이라 적힌 간판이 붉은 빛을 뿜으며 춤을 췄고, 짧은 치마의 여성은 오래된 간판처럼 피곤한 모습으로 거리를 지켰다.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고, 창밖을 한참 내다보던 그 남자는 전화기를 눌렀다.



"여기 OO여관 301호인데요. 지금 배달 되죠?"



저 인간이 미쳤나. 왜 나랑 있는데 성인용품을 배달시킨단 말인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치킨 무 좀 많이 갖다 주시구요. 생맥주도 한 통 부탁합니다."



오해해서 미안하다. 남자가 배달을 시킨 건 성인용품이 아니라 치킨이었다. 잠시 뒤 거리의 여성처럼 피곤해 보이는 앳된 남자가 방문을 두드렸다. 치킨 기름 냄새가 순식간에 301호를 점령했다.



"형, 뭔가 좀 허전한데 맥주나 한잔 마시고 잡시다. 내가 살다 살다 성인용품까지 배달된다는 건 여기서 처음 알았다니까! 정말 스펙터클한 세상이야."



녀석은 선배인 나를 앞에 두고 과감히 닭다리를 집어 우적우적 씹었다. 참았다. 닭다리는 두 개니까. 닭다리를 앞에 두고 서열을 따지는 건 체면이 안 서는 꼰대 짓이니까. 닭다리에 이어 날개를 씹던 녀석은 여관방 서랍장을 뒤져 종이 한 장을 내게 보여줬다.



"형 이거 봐봐.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심란하고 슬플 거야."



어린 아이의 작품인 듯한, 앵그리버드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삐뚤빼뚤 그려진 앵그리버드가 우리를 노려봤다. 녀석의 말대로 정말 심란했다. 그림을 그린 아이는 이 여관 301호 방에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 성인용품도 배달된다는 팩트를 온몸으로 알 수 있는 하루 1만5천 원짜리 여관방에서 살던 아이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20160610133342547.jpg 사진 : 정기훈 제공



질투와 시기심으로 다시 온몸이 뜨거워진다



우리가 있는 곳은 경남 창원이었다. 버스를 타고 바닷가로 가면 거대한 조선소가 보이던 그곳. 후배 허환주 프레시안 기자는 조선소 하청업체에 위장취업을 해 일을 하는 중이었다. 나는 응원, 격려를 하겠다며 KTX를 타고 내려와 녀석과 OO여관 301호에서 이틀을 보냈다.



이전까지 내가 머문 적이 없는, 앞으로도 머물고 싶지 않을 정도로 301호 방은 낡고 누추했다. 주로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월세를 내고 장기투숙 하는 여관이었다. 한 가족이 방 하나에서 살기도 했는데 부모가 조선소로 출근하면 어린 아이들이 종일 여관방을 지킨다고 했다. 그러다 부모가 소리 소문도 없이 해고되면, 한 가족은 조용히 여관방을 뜨고.



창밖의 붉은색 간판 불빛보다 이 여관 저 여관을 옮겨 다니는 '앵그리버드 가족'의 삶이 더 심란했다. 허환주 기자는 이 여관에서 살며 저 바닷가 조선소의 노동을 기록하고 있었다. 뻑뻑한 닭가슴살을 씹으며 내가 물었다.



"야, 안 무섭냐? 조선소 일이 보통이 아닐 텐데. 사람도 많이 죽고."


"형….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골로 가는 거야. 한 방에 훅 가. 끝장이야 끝장."



허 기자는 닭뼈를 쪽쪽 발라 먹으며 골로 가는 세상의 노동을 길게 이야기했다. 내가 경험한 적 없는 신물 나는 노동의 세계, <소금꽃나무>의 저자 김진숙이 일했던 조선소의 나날, 해고 문자메시지 하나로 여관방을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하는 파견 노동자의 일상이 녀석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다음 날 나는 서울로 올라왔고, 녀석은 301호 여관방에 남았다. 다음 날에도 조선소로 출근해야 하니까. 노동을 하며 기록을 하고, 그걸 곧 기사로 써야 하니까. 얼마 뒤, 허환주 기자도 서울로 올라왔다. 기사가 세상에 나왔으나 난 읽지 않았다. 허 기자는 조선소 르포 기사로 제1회 한국온라인저널리즘 어워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났다. 허환주 기자는 여전히 울산, 창원 등 조선소로 내려가 취재를 한다. 그러더니 최근 <현대조선 잔혹사>라는 책을 펴냈다.



하루 1만5천 원짜리 여관방의 일상과 앵그리버드 그림을 남기고 떠난 노동자 가족의 삶, 그 귀한 소고기를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임신한 아내를 술자리로 불러낸 어떤 가난한 남자의 사연, 소주 한잔 마시다 느닷없이 서빙 일 하는 아줌마의 엉덩이를 주물러대는 늙은 노동자의 손까지, 허환주 기자는 생생하게 기록했다.



읽다 보면 슬프고, 짠하게 읽다가 어느새 낄낄대게 만드는 르포. 한국에도 참 괜찮은 르포 작품이 드디어(?) 탄생했구나 싶다. 조지 오웰이 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1900년대 초중반 영국 탄광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 책이라면, 허환주 기자의 <현대조선 잔혹사>는 우리 시대 슬픔과 분노의 노동을 담은 기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거 큰일이군' 싶었다. 뭔가 조바심이 나고 가끔 짜증도 났다. 그건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을 향한 일종의 질투와 시기심이었다. 내 엉덩이가 무거워진 사이 허환주 기자가 저만치 앞에서 우직하게 기록하는 중이다. 기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세상은 얼마나 써야 할 이야기로 가득한지 그가 새삼 알려준다.



치킨도 배달되지 않는 산골에서, 그와 닭다리를 뜯던 301호 여관방을 추억하며 이 글을 쓰니, 아… 질투와 시기심으로 다시 온몸이 뜨거워진다. <현대조선 잔혹사>, 이래저래 뜨거운 책이다.


글 : 박상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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