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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칼럼

이웃집 여자와 공포의 밤

by 인터파크 북DB

내 방과 거실 벽의 두께는 약 20cm. 그 너머는 타인의 세상인데, 젊은 아낙이 어린 아들과 함께 그곳에 산다. 2m도 아닌 20cm라니, 가까워도 너무 가깝다. 어쨌든 우린 이웃이고, 그 벽은 우리 관계의 그 물리적 증거다. 이웃집 여자와 이렇게 가깝게 붙어 살 줄이야. 그것도 3개 도와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이 넓디 넓은 지리산에서!



내막은 이렇다. 이전에 살던 집의 임대 계약 기간은 4월 말로 끝났다. 새 집을 구하러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지리산 아래 전남 구례군도 귀촌자들이 꾸준히 찾는 곳이다. 빈집은 수요보다 적다. 집을 못 구한 나는 서울로 다시 유턴할 판이었다. 유턴 신호가 켜질 즈음, 지인이 빈집 하나를 소개했다.



엄밀히 따지면 ’빈집’이 아닌 ’빈방’이었다. 펜션이었는데, 이젠 숙박업을 하지 않고 나 같은 귀촌인에게 방을 임대하는 곳이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지인에게 큰절이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큰절을 하기도 전에, 나는 두 개의 면접을 통과해야만 했다.



우선 집주인과의 면담. 주인아저씨는 똑바로 바라보지도 않고 고개만 옆으로 돌려 눈으로만 내 아래위를 훑었다. 나보다 저 멀리 지리산 왕시루봉을 더 오래 바라봤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는 몸의 신호였다.



"제가 지금 산에서 고사리를 따다가 내려왔어요. 목욕하고 면도하고 이발도 하면 그래도 좀 봐줄 만합니다."



나는 버벅대면서 씻고 광내면 내 외모가 지금보다 훨씬 좋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내가 신고 온 슬리퍼를 슬쩍 바라봤다.



"아니 외모가 문제가 아니라…."



주인아저씨는 잠시 뜸을 들였다. 계속 저 멀리 왕시루봉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바로 옆방에 젊은 여자가 어린 아들이랑 사는데, (당신 같은) 남자가 이사 오면 서로 불편하지 않겠어요? 여자면 모를까, 남자는 좀 곤란할 거 같은데."



나에게 방을 줄 수 없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이때 집을 소개한 지인이 나섰다. 내 체면을 생각해서 주인아저씨를 한쪽으로 데려갔다. 그래도 이야기는 다 들렸다.



"저 사람 외모는 저래도요. 괜찮은 사람이에요. 내가 설마 아무나 소개시켜드리겠어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상규씨, 면도라도 좀 하고 오시지…. 슬리퍼는 또 뭐야."


"내가 사람 외모 갖고 뭐라 하는 사람이야? 옆방에 젊은 여자가 사니까…."


"외모가 문제 아니죠? 그럼 내가 옆방 여자 만나서 이야기해볼게요."



지인은 용감했다. 내가 ’복비’를 주는 것도 아닌데, 고맙게도 방을 구해주려 많이 애를 썼다. 지인은 이번에도 옆집 여자를 저쪽으로 데려갔다. 또 목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 외모가 저래서 그렇지, 생긴 것처럼 나쁜 사람 아니에요."


"(작은 목소리로)네…."


"저 사람 저렇게 생겼지만 무서운 사람 아니에요. (또 나를 보면서) 아, 진짜 왜 ’쓰레빠’를 신고 왔어!"



아, 정말이지 슬리퍼, 아니 ’쓰레빠’를 당장 벗어 저 아래 피아골 계곡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집주인과 옆집 여자를 약 한 시간 설득 끝에 입주를 허락받았다. 이제 나는 ’생긴 것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걸’ 증명해야만 한다.



20160603143338149.jpg 아마 그날도 ’왼쪽’ 모습이었을 거다. 필자도 목욕하고 양복 입으면 ’오른쪽’ 정도는 되는데. (사진 박상규 제공)



나는 ’생긴 것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걸’ 증명해야 한다



20cm 두께 벽 너머에 이웃집 여자가 사니 신경 쓸 게 많다. 우선 방귀도 마음대로 ’빵빵’ 뀔 수가 없다. 무의식중에 괄약근에 힘이 풀리고 예상보다 큰 소리가 나면 누구보다 내가 먼저 놀란다. 내 방귀 소리에 내가 놀라는 건, 태어나 처음 겪는 일이다.(아마 이웃집 여자도 나 때문에 괄약근 힘 조절에 꽤나 많은 신경을 쓰며 살 것이다.)



밤 외출도 최대한 자제한다. 깊은 밤에 내 방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이웃집 여자는 얼마나 신경이 쓰이겠나. 깊은 밤,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별 생각 없이 소설가 정유정의 <7년의 밤>을 펼쳤다. 일명 ’세계문학’을 읽느라 요즘 한국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7년의 밤>을 펼친 건 읽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심심해서, 할 일이 없어서, 대충 훑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다 밤 샜다. 한국 소설을 이토록 정신없이, 떨리는 가슴으로, 공포에 휩싸여 읽은 건 무척 오랜만이다. 다음 페이지가, 이어지는 장이 궁금해서 책을 덮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다가 새벽에 창문과 문을 꼭꼭 잠갔다.



무서웠다. 이 깊은 새벽, 창밖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몸이 떨리고 침이 바짝바짝 말랐다. 소쩍새 우는 소리가, 산짐승의 움직임인 듯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신경에 거슬리고 불길했다. 그래도 책을 덮지 않았다.



한적한 ’세령마을’에서 벌어진 어린아이 실종과 살인,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히스테리, 이웃끼리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 범인이 누군지 알면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사적 복수를 계획하는 사람, 살인자의 아들….



그동안 세상 사람들의 평가처럼 정유정의 이야기 구성력과 필력이 강렬하게 빛나는 소설. 나는 그걸 읽느라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밤을 꼴딱 새고 말았다. 현관문과 창문을 꼭꼭 잠그고서.



책을 다 읽고 여명이 동틀 무렵 자리에 누웠지만, 뛰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도 마음이 찜찜하고 그게 얼굴로 드러났다. 밖으로 나가니 이웃집 여자가 빨래를 널고 있었다.



"어디 아프세요? 얼굴이 왜 그래요?"


"아니요…. 소설을 읽다가…. 제가 좀 놀래서요…."


"아…. 겁이 디게 많나봐요. 소설 읽다가 얼굴이 그 정도 됐으면… 이 산에서 어떻게 살려고…."



나도 방으로 들어와 세탁기를 돌렸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는 고스란히 옆방에 들린다. 빨래를 마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또 이웃집 여자도 나와 있었다. 그녀가 나를 훑었다.



"빨래는? 안 널어요?"


"아니… 괜찮아요. 거실에 널었어요."


"왜요? 밖에 널어요! 안에서 말리면 냄새나지!"


"아니… 괜찮아요."


"봐봐요. 어디에 널었어요?"



그녀는 내 방문 안쪽을 힐끗 바라봤다. 솔직히 말해야 했다.



"속옷이 좀 많아서요. 사람들(바로 당신) 보는데… 속옷 밖에 널면 좀 그렇잖아요."


"무슨! 나도 속옷 그냥 밖에 너는데 왜 그래요! 그냥 밖에서 말려요. 생긴 것과 달리 진짜 소심하시네!"



무섭게 생겨서 집 구하기도 어려웠던 나는 <7년의 밤>을 읽다가 얼굴이 사색이 됐고, 빨래도 마음대로 못 널 정도로 소심하다. 이웃집 여자는 예상과 달리 터프하고 담대하다. 그녀에게 나도 생긴 것처럼 막나가는 사람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나는 속옷을 그냥 밖에 널었다. 그걸 바라보니, 민망하다.



이웃집 여자에게 <7년의 밤>을 건네줄 생각이다. 다음 날 아침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필 예정이다. 복수의 아침, 곧 다가온다.


글 : 칼럼니스트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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