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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n 13. 2016

"지금 사람들 건성으로 사는 것 같아"

구도의 춤꾼 홍신자 작가 인터뷰

                        



한국을 들썩이게 만든 '구도의 춤꾼'.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전위예술가 홍신자의 <자유를 위한 변명>이 출간된 지 올해로 24년이 되었다. 남들 사는 대로 따라하는 삶이 아닌, 평생을 자기 고유의 삶을 일구어온 저자의 자유를 향한 삶을 책에 녹여냈다.



24년 전 책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저자의 춤과 삶을 따르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후 절판되어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책이 되었지만, 인기는 식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홍신자를 알아보았고, 그 삶을 동경했다. 홍신자의 삶을 입소문으로만 들은 사람들은 책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을 아쉬워했다. 홍신자의 책, 자유를 위한 변명이 지금 다시 나온 이유이다.



소감을 먼저 물었다.



"<자유를 위한 변명>이 92년에 처음 나왔어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책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감명 받았다고 사인 받고 싶다고요.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이 책을 구할 수 없냐고 많이 묻더라고요.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고. 한 번 더 이 책이 나와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24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도 신선하다는 얘기들이 있었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내 느낌인데, 그 때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절대 얻을 수는 없고.(웃음) 왜냐면 다른 유혹이 많잖아. 바빠서, 책 본다는 생각조차 힘드니까. 그때는 사인회 하면 사람들도 많고 그랬는데, 지금은 내가 막 뛰어다니면서 홍보해야 돼요." 



책이 처음 나온 때는 '지금처럼 자유롭고 개방된 때'가 아니었다. 독자들은 이렇게 자기감정에 솔직하게 멋대로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책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느낀 호기심과 통쾌함이 폭발적인 책의 인기로 이어졌을 터. 그러나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어떨까?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이 여전히 신선하다는 건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방증으로 읽혔다.



"여전히 유효하지. 지금 사람들이 건성으로 사는 것 같아. 수박 겉핥기식이지. 내적 깊이 없이 여기저기 정신없이 살고 있어요. 다들 건성으로 살고 있으니까 자기를 들여다볼 여유가 없지. 지금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많은 것이 발전했지만, 그렇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정신적으로 잃어버리고 가는 것도 있지.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 이 책을 보고 다시 한번 삶을 돌아보고 자기 성찰의 기회가 올 수도 있겠죠."





"자유는 자기한테 가장 자연스러운 것, 불편함이 없는 것"



저자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건성으로 사는 것'으로 표현했다. 무슨 뜻일까?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솔직하게 하는 거예요. 자기한테 가장 자연스러운 것, 불편함이 없는 거죠. 예를 들면 남이 원하는 대로 옷을 입으면 불편하잖아요. 그렇게 입거나 행동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게 가장 편하잖아요. 그런데 용기가 필요해요. 솔직하고 진실하면 그게 용기가 되죠.



사람들이 남을 너무 많이 의식하는 것 같은데, 그건 자기한테 솔직하지 못한 거예요. 자유롭고 싶으면 항상 자신한테 충실해야 해요. 그러려면 의식을 바깥으로 향하기보다 자기한테 집중해야죠. 사람들이 자유라고 하면 오해하는 게 많은데, 자유롭게 사는 걸 추구하지만 거기엔 책임이 있지. 자기 즐거움만 있고 정신없이 흐트러지는 게 아니거든. 그런데 그런 오해가 있으니까 '자유를 위한 변명'을 하게 되는 거지."



24년 전, 책을 읽고 '나도 한번 해볼까?' 싶은 생각에 자서전을 쓴 사람들이 있었다. 하고 싶은 것만을 하고 사는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삶에 매료되어 저자의 삶을 따라해본 것인데, 모두 '잘 안 됐다'. 그건 다른 사람을 흉내 낸다고 얻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답게 사는 자유를 추구하게 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혹은 그렇게 타고 난 걸까? 1940년에 태어나 올해 일흔일곱이 된 저자는 한국전쟁을 겪었고, 전쟁의 폭력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저자의 어린 시절은 늘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향한 물음표로 가득했다. '왜?'라는 질문은 혼자만의 사색으로 이어졌고 그 습관이 이후 삶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어렸을 때는 책 읽을 환경이 안 됐어요. 책이나 외부에서 영향을 받기보다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게 항상 영향을 줬어요. 어두운 시절에 봤던 깊은 상처가 깔려 있어서 인생을 즐겁고 밝게 보기보다는 염세적이랄까, 인간이나 인생에 대한 회의도 있고. 또 그때는 여성에게 여러 면에서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나는 여성이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해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뭐 실제로 (자유롭게 사는 데는) 남녀 차이는 없는 것 같고. 성별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그것을 원하는지가 중요해요. 그 의지가 삶을 결정하는 거니까. 그렇지만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처럼 살지 않을 수 있죠. 어려운 시기에 태어났고, 또 그런 시기를 보냈으니까 자유가 더 절실할 수도 있죠."



혼자 있는 시간에 깊은 사색에 잠기는 저자에게 결혼생활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뉴욕 유학 시절에 결혼한 저자는 결혼한 뒤에 '결혼은 나의 길이 아니고, 여기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경 써야 하는 가족관계가 늘어나고, 또 그 관계 안에서 지켜야 하는 규범에 숨 막힐 때가 많았다. 꼭 해야만 하는 강요도 버거웠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편안하게 보내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자유를 방해하는 매듭을 푸는 시간이기도 하다.



"깊이 내면으로 들어가서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정말 원하는 게 뭔지를 계속 확인하고 성찰해야 되는데, 그건 혼자 있는 시간에 가능해요. 내가 어디에 집착하고 뭔가에 욕심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내 흠을 자꾸 찾아보지. 매듭지은 게 없는지 돌아보고. 매듭을 다 풀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가 없으니까. 우리가 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듭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잖아. 매듭을 풀어야지. 그렇지 않고 계속 갖고 있으면 상처잖아. 우리가 외출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집에 오면 씻는 것처럼, 매듭도 매일 매일 풀어내야지."





"하루의 매듭을 매일 풀어내는 일, 혼자 있는 시간에 가능"



구도의 춤꾼 홍신자가 무용을 시작한 건, 알윈 니콜라이의 현대무용을 보고 '내면에서 폭발적인 변화'를 느낀 스물아홉 살 때였다. 춤에서 구도를 경험했으니, 춤을 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 번의 춤만 보고 어떻게 구도를 경험할 수 있는지가 놀라웠다. 춤을 추고 싶다고 생각한 처음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물었다.



"한동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고민했어. 단순히 성공하는 것, 돈 버는 것 말고. 이상하게 그런 것엔 관심 없었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느라 방황하고 있었지. 그래서 뭔가를 찾으려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면서 많이 봤죠. 그러다 무용을 봤는데, 무대 위에서 그 순간을 위해 열정적으로 존재하는 걸 보고 '나도 저걸 해야 될 것 같다'고 느꼈어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지. 다른 데를 볼 수 없고, 오로지 그 순간에 몰입해야 하니까. 순간을 사는 존재에 가슴이 뛰었어요. 그 춤을 봤을 때 '이거다!' 하고 알아볼 수 있는 준비를 그동안 해온 거지. 늘 승화를 위한 자기 공부를 해야 돼요. 먹고사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의식을 넓혀야 내 삶도 좁지 않고 넓어지니까."



방황했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았다는 저자는 인터뷰 내내 깊은 사색과 자기성찰을 강조했다. 그것이 결국 존재를 자유롭게 하고 삶을 여유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방황해도 좋아요. 그게 헛된 것은 아니니까. 방황도 하나의 체험이고 필요할 때가 있죠. 어떤 문제든 수학처럼 답이 나오지 않잖아요. 방황하면서 자기한테 필요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니까 방황도 거름이 되는 거지, 나쁜 게 아니라고. 방황하는 것조차 귀찮아서 안일하게 있는 것보다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도움이 되겠지. 내가 자유롭고 행복한 길을 찾아야 돼요. 그 숫자가 많을 필요는 없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거예요. 그건 자기가 찾아야지."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취재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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