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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n 17. 2016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곁'의 존재들 - <샹들리에>

[서평]

                       



어느덧 나도 커서 어른이 되었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다음에 크면 멋진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여전히 삶에 서툰 내 모습을 보며 '가장 보통의… 어쩌면 보통 이하의' 어른이 된 것 같은 자괴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런 심정이 들던 차에 마침 내 눈에는 소설 속 한 문장이 들어와 꽂혔다.



"내가 아직 어려서 세상을 잘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세상을 잘 아는 어른들은 그래서 뭐 얼마나 잘 사는데?"



김려령 신작 소설집 <샹들리에>(창비, 2016) 중 '만두'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당차고 야무진 만둣집 딸 손미주가 한 말이다. '잘 못 사는' 어른이 나 혼자만은 아니란 사실에 위안이 됐다. 그리곤 책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로운 질문이 만들어졌다. 어른들의 세계는 완숙한 '완성'이며, 아이들의 세계는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도중'인 걸까? 아이의 세계는 순수하고, 어른들의 세계는 그렇지 않은가?



김려령은 과거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트렁크> 등을 발표하며 대중과 평단에 모두 좋은 반응을 얻어낸 바 있다. 가르치는 어른과 배우는 아이라는 구도를 유쾌한 태도로 무마하고, 그 위에서 널도 뛰고 그네도 타고 팽이도 치고 상모도 돌릴 줄 아는 작가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에서도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웃고 울리는 요소가 곳곳에 있다. 과자에 비유하자면 짠맛과 단맛의 매력을 모두 갖춘 '허니버터칩' 같은 과자랄까.



사실은 나도 내가 형편없는 애일까 봐 매일매일 조마조마한데, 그래서 이것저것 자꾸 해 보는 건데 가망 없는 거였어? 내 부모가 나를 그렇게 진단하고 있었다니.('미진이' 중)



짠맛과 단맛의 매력을 모두 갖춘 '허니버터칩' 같은 소설집



그녀의 작품을 처음 읽는 사람은 '무슨 청소년물에 이렇게 욕도 많이 나오고, 등장하는 아이들은 순수하지도 않고 표독스럽기까지 한 걸까?'란 질문을 던질 법하다.



담임선생님을 '똥주'라는 별명으로 불러젖히지 않나('완득이'), 마을의 어른들에게 '싸가지가 자유로'운 되바라짐을 맘껏 표출하기도 한다('그녀'). 하지만 아이들은 무조건 부족하거나 모자란 대상이 아니다. 때론 어른들이 약하고 아이들이 더 강할 때도 많다. 어른들의 상처를 미리 깨닫고 나서서 치유하기도 하고('파란 아이'), '괜찮지 않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꿋꿋이 숨기고 살아가기도 한다('이어폰').



어른들의 세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폭력의 상황은 아이들의 세계에도 고스란히 존재한다. 겉으론 친한 척하면서 뒤로는 친구를 너무나 완벽히 따돌리는 무서운 두 얼굴('우아한 거짓말')을 갖거나, 함께 과외수업을 받던 친구에게 성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아는 사람') 청소년도 읽을 소설에 이런 폭력 묘사가 비교육적이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화목한 정상가족의 모습만을 표현하거나, 일관된 아이의 모습을 강요하는 태도가 더 폭력적이고 비교육적이라고 답하고 싶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을까. 무엇을 어떻게 조심해야 이런 일을 당하지 않는 걸까. 평범한 일상이었다. 학교, 과외, 집. 이 구간 어디에서 이런 일을 예측할 수 있었겠나.('아는 사람' 중)



일곱 편 모두가 무작정 유쾌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작품들이다. 입시 경쟁에 뒤처진 아이, 성폭행, 친족의 죽음 등의 제법 무거운 주제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김려령은 용의주도하게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예리한 시선의 메스로 내상(內傷) 부위를 드러내고 환부에 치료제를 바르는 방식으로 독자를 치유한다. 때론 '웃음'과 '넉살' 같은 아스피린이 투약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곧 나을 것'이란 옅은 희망이 비치며 막을 내린다.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많은 분량으로 마지막에 수록된 '이어폰'은 이런 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불의의 사고로 엄마가 사망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흔들리고, 다시금 가족의 힘으로 치유되어 가는 모습이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잘 드러난다.



어른에게도, 아이도 서툴고 어려운 게 삶이다. 그 길을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가 끝내 말하고자 했던 건 서로 기댈 수 있는 곁의 누군가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아니면 전혀 모르는 누군가이든. 곁의 누군가를 놓지 않을 때 지금의 이 상처도 치유되어 샹들리에의 불빛처럼 각자의 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글 : 주혜진(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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