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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칼럼

누군가 내 험담과 비난할 때 솔직하게 분노해도 될까요?

원빈 스님의 청춘 고민 상담소

by 인터파크 북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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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입니다. 힘들게 들어간 직장, 정말 열심히 잘 다니고 싶어요. 그런데 며칠 전 우연히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제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같은 여자고 비슷한 또래라 잘 지내고 싶었거든요. 근데 제가 한 말도 아닌데 부풀려서 다른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고, 특히 상사에게 능력 없어서 함께 일 못하겠다, 작은 실수를 크게 부풀려 이야기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상사도 저를 못마땅해 하는 눈치입니다. 이런 게 싫어서 평소에 그렇게 이미지 관리를 했지만 한 손으로 구멍 만 개를 다 막아내지 못하듯 애써 노력한 반대 부분에서 비난의 봇물이 용솟음치더라고요.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요. 내가 잘못한 건가요?”



본래 만 개의 구멍을 다 막으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 나를 사랑하기도 바쁘고, 꿈을 좇기도 시간이 모자라며, 주어진 행복을 누리기에도 손이 모자라는데 쓸데없는 구멍 막기에 이 손을 쓰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아깝습니다.

공자는 노나라에서 재상을 잠시 지낸 시절 외에는 평생을 유랑하며 자신의 정치이념을 펼 수 있는 나라를 찾아다녔는데 이런 모습을 빗대서 ‘먹을 것 없나 상갓집을 기웃거리는 비 맞은 개꼴’ 이라는 뜻의 상가지구(喪家之狗)라고 조롱과 수모를 받기도 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자하는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다양한 비판과 험담을 받았고, 결국 자민족인 유대인들의 모함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사형을 당했죠. 성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조차 만개의 구멍을 못 막습니다. 사실 비난이 용솟음치는 것에는 관심조차 없죠. 비난하는 것은 두려움 많은 이들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가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스스로 두려움을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너무 휘둘리지 마세요.


공자는 자신을 상갓집 개로 비유하는 그 말을 듣고, 스스로의 현 상황과 모습이 꼭 그 말과 같다며 쿨하게 인정해버립니다. 그러니 조롱이 더 이상 조롱이 아닌 것으로 돼버리고, 아무 문제가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예수는 자신을 모함하는 원수들을 원망하기보다는 세상 모든 인류의 선하지 못함을 대신 짊어지는 마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니, 원한의 상황을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붓다를 비난하는 외도들은 붓다의 삶 속에서 정말 많았는데 외도들이 붓다를 비난할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말 없는 이도 비난하고, 말 많은 이도 비난하고, 알맞게 말하는 이도 비난한다. 세상에 비난 받지 않을 이는 아무도 없다. 늘 비난만 받거나 언제나 칭찬만 받는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고, 현재에도 없다.”

<법구경> 중에서



사람이 사람을 비난함은 이전부터 항상 있었던 일이기에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상처 받을 것도 없고, 피하려고 노력할 이유도 없습니다. 두려움 많은 이들의 ‘시비’는 끝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목적은 법우님의 잘못을 밝혀 진실을 말하는 것에 있지 않아요. 그냥 법우님이 화가 나길 바라는 것이고, 고통스럽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걸려 넘어가면 안 돼요. 그들은 그 모습을 보고 즐거워서 비난의 강도를 증폭시킬 뿐이니까요.



누군가 당신을 헐뜯는다고 스스로 분노하고 폭발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분노 없이 그 일을 해결해보기 위해 노력해보세요. 가뜩이나 비난도 받아서 어려운 상황인데, 스스로 만든 분노 폭탄까지 받으면 1+1의 고통만 가중될 뿐이니까요. 누가 나를 씹으면 그러려니 하는 그 마음을 반드시 먼저 준비한 상태에서 그 비난에 대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냉철하고, 지혜로운 대처가 가능해질 테니까요. 다시 또 그 사람이 법우님을 험담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사람이 모이면 이런 일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열 받으면 지는 거다. 분노의 불을 끄자.”

그리고는 재빨리 심호흡을 해보세요. 세 번 깊게 숨을 내쉬세요. 마음이 차분해질 때까지 100번 정도 호흡을 헤아리는 거예요. 그래도 안 된다면? 빨리 화장실로 가세요. 그리고 찬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 속의 얼굴을 한번 봐주세요. 보통 이 정도면 분노의 급한 불은 끌 수 있는데, 불은 꺼졌지만 주어진 상황이 우울하고 짜증나는 것은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어요. 그럴 때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달달한 캐러멜 마끼아또 한잔 시켜서 잠시 마음을 달래주세요. “괜찮아, 아무 문제 아니야, 우울해할 것 없어.” 그렇게 평온한 마음을 되찾았을 때 그 비난에 대처한다면 지혜롭게 그 상황을 해쳐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길 거예요.

단발성의 시비라면 이렇게 대처하면 되지만 만약 지속적으로 누군가가 시비를 건다면 장기적인 대처 방안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읽을 만한 책 두 권을 소개해드릴게요. 좀 쉽게 읽을 만한 것으로는 틱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이 있고,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분노를 다스리는 정밀한 논리를 배울 수 있는 <입보살행론>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중에서 ‘제6장 인욕품’을 반복해서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지금 벌어진 문제뿐만 아니라 분노를 풀어내는 법을 배우면 인생을 풀어낼 수 있기에 꼭 배우고 수행하시어 상승의 길로 나아가길 축원하겠습니다.


글 : 칼럼니스트 원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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