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 스님의 청춘 고민 상담소
“저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스펙과 연봉을 받고 있는 전문직 여성입니다. 워낙 제가 잘나가다 보니 만났던 사람들 역시 굉장한 학력과 스펙을 자랑하는 사람이었어요. 근데 속을 들여다보니 오만하고 허세로 가득하더라고요. 그 당시 수직적인 직장생활이 너무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미국으로 도망치듯이 가서 살았어요. 그곳에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적어도 결혼할 사람은 착하고 배려심 있고 긍정적인 사람이면 좋겠다, 나를 사랑해주는 부드러운 남자면 좋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려고 하니 제 눈에 안 찹니다. 학력이 저보다 낮아서 그런지 토론이 안 되고, 연봉도 낮고, 영어도 못해 쩔쩔매요. 정말 제 성에 안 찹니다. 존경할 만한 것이 없는 남자친구, 결혼해야 할까요?”
결혼은 본인이 결정할 사항입니다. 아시죠? 전 다만 그 결정을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볼 수 있을 정도의 도움만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생각의 범위를 현재 남자친구에서 일반적인 남자를 대상으로 넓혀서 ’나의 남편감은 이래야 돼!’라는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종이에 적어보세요. 그냥 사랑하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인지 정리가 좀 될 거예요. 제가 조심스럽게 위 질문을 통해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사랑만으로는 만족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원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결혼 상대를 찾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원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만 존경할 만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존경할 만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일곱 가지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다. 첫째,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둘째, 연민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셋째, 남을 기쁘게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넷째, 남을 보호하고 감싸는 마음을 가진 사람, 다섯째,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비운 사람, 여섯째, 부질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 일곱째,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
<중일아함경> 중에서
법우님이 생각하는 존경할 만한 조건과는 좀 다르지 않나요? 하지만 2500여 년 전 세상을 살아갔던 훌륭한 선배의 조언이라고 생각하고 참고하여 적어놓은 조건들을 조금 수정하는 것도 좋은 일일 것 같습니다.
법우님은 미국에 가게 된 상황을 ’도망’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미 최고의 스펙을 가진 분이 ’도망’을 쳤다는 것은 한국의 상황이 잘 맞지 않았고, 또한 성공적이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그것은 최고의 길을 자부심 있게 걸어온 자신에게 일종의 실패로 인식되고, 어찌 보면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조건이 좋은 남자를 만나서 멋지게 결혼해야 인생의 ‘옥에 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죠. 이러한 판단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고 중립적입니다.
요즘은 두 가지 이유로 결혼을 하는 것 같아요. 정말 사랑해서 떨어져 지내기 싫고, 평생을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반자로 화합해서 살아가고 싶어서 결혼하는 경우, 조금 덜 외로운 동시에 자신이 기대하는 조건에 맞는 사람을 만나서 이익을 좀 보고 싶은 경우. 전자는 사랑이 근본이고, 후자는 이익이 근본이죠. 일단 이 둘 중에 어떤 결혼을 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선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도 좋고, 두 번째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양다리는 안 된다는 거예요. 양다리를 걸치는 순간, 어떤 결과가 나와도 자신의 뜻에 온전히 맞지 않기 때문에 뜻대로 안 되서 다양한 고통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러니 확실히 선택하고 책임지면 그만이에요.
첫 번째를 선택한다면 다양한 관계 속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사람과 결혼하세요. 많이 만나보고 그 중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죠. 가슴 설레는 것은 연애할 때 중요한 것이고, 결혼은 오랫동안의 마라톤이기에 편안한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편안한 사람과 결혼하세요. 다만 다른 모든 조건들은 이 편안한 사랑보다 우선순위를 뒤로 두거나 상관하면 안 되겠죠?
두 번째를 선택한다면 내가 가진 조건과 그 사람이 가진 조건을 현명하게 분석해보고 나에게도 이익이 되고 상대에게도 이익이 될 만한 사람을 잘 골라야 돼요. 한쪽만 일방적으로 이익을 보면 이익 본 사람이 손해 본 사람에게 나머지 부분에서 ’헌신’해야 되거든요.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그럼 결혼을 통해 이득은 봤으나 이후 한국의 직장 사회보다 더욱 수직적인 가족관계 속에서 비참해질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니 적당히 욕심 부리셔서 잘 맞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너무 사랑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혼한다’는 것은 더 이상 보편적 현상이 아닙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문화 자체가 이제는 조건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이기에 사랑 없이도 결혼할 수 있겠죠. 그래도 상관없고요. 다만 그 선택을 하셨다면 그에 따른 다양한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관계로 살아가는 무미건조함, 조건이 달라졌을 때의 허망함, 자신이 부족한 것에 대한 수치심 등을요. 만약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면 사랑만 보시고 나머지 조건은 따지지 마세요. 그렇다고 아주 조건이 안 좋은 사람과 결혼하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고 편안하고 가슴 설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부자든 부자가 아니든 조건이 좋든 아니든 상관하지 말고 사랑해보고 결혼도 해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죠.
다만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기꺼이 지겠다는 마음이 없을 때 그 해결이 곤란할 뿐이죠.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기에 하나를 가지면 나머지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선택하고 책임지세요. 다만 선택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과 성향을 잘 고려하여 적절한 선택을 할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전 그래서 결혼을 그냥 안 하는 걸로 선택을 했습니다. 이러다가 어떤 인연에 콩깍지가 눈에 씌워지면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겠죠? 하지만 최소한 조건 때문에 이익을 보기 위해 결혼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이익을 보고 내가 ‘을’이 되느니 손해를 보고 내가 ‘갑’의 자세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게 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어느 정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좋은 선택을 하시고, 많이 사랑하시고, 행복한 결혼 하시길 기원합니다.
글 : 칼럼니스트 원빈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