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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l 15. 2016

"한국인들,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산다"

하버드점쟁이 황상민 작가 인터뷰

매의 눈으로 질문을 던지는 '황크라테스'부터 족집게 같은 분석의 '하버드점쟁이'까지. 황상민 위즈덤센터 고문의 별명이다. 속 시원한 분석과 아찔한 솔직함으로 이슈를 만들어내는 심리학자 황상민은 올해 2월,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연구'를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다. 대학 교수직에서 '잘린' 탓이다. 그는 '우주의 기운으로 혼을 불러 모아야 하는 나라에 살기에' 겪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며 여전히 속사포 같은 입담을 보여주었다.


7월 1일 서울 강남에 있는 위즈덤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해임 이후 근황부터 황상민표 성격유형검사(WPI, Whang's personality inventory)가 나오게 된 과정, 그리고 마음의 문제를 종교 문제로 해결하려는 한국 사회에서 심리학자로서 겪는 고민도 들었다. 


2월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먼저 물었다. 그는 해임되고 나서 2, 3개월은 '마치 미라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모든 것이 중지된 멍한 상태'에서 그는 '황당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고, 삶의 변화로 받아들였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마치 제 살을 도려내고 뼈만 남기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며 근황을 전했다. 


"가장 황당했던 건,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은 연구인데, 연구활동이나 학생지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핑계로(해임했다는 거예요). 내 딴에는 인간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이나 인간 심리를 비교적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절대적 모순 상황에 처하니까, 스스로 모순을 인식한다는 게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모순을 파악하는 데 3개월을 보냈어요. 뼈만 남기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 다시 살을 붙여 원(原)사람으로 돌아오는 심리적 경험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교수직 해임 이후 뼈만 남겼다 다시 살 붙이는 심리적 경험 했다"


사람 마음을 연구하는 게 좋다는 그는 해임된 이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위즈덤센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하고, 마음의 문제를 겪는 사람들과 상담을 하고 워크숍을 한다. 그렇게 연구한 결과가 또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번 책의 제목은 <마음 읽기>. 마음을 읽는다는 게 무슨 뜻일까?


"우리가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면 검사해보는 것처럼 내 마음을 MRI로 찍듯이 찍어보자는 거죠. 그렇게 찍은 프로파일을 해석하는 게 마음 읽기예요. 심리상담을 통해 자기 특성을 인식하고, 그것이 인간관계나 행동방식과 어떻게 연결돼서 나타나는지 설명을 해줘요. 자기 특성 때문에 삶에 이슈가 생기거나 지금 삶을 바꾸고 싶을 때, 프로파일을 통해서 변화의 단서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돼요."


사람의 마음을 찍어주고 현재 심리 상태를 나타내주는 지표들은 사실 많다. 인터넷만 들어가 봐도 온갖 종류의 심리검사 도구들이 널려 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성격유형검사는 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라, 외국의 기준으로 한국인의 심리를 검사한다는 게 '지적인 폭력'과 다름없었다. 그가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읽기 위한 도구로 WPI를 개발하게 된 이유를 들어보자.


"한국사회 많은 사람들이 답이 없는 문제로 싸우고, 심지어는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살아가는 일을 겪고 있어요. 이런 경우에 삶에 대한 답은 자기가 찾는 거라는 얘기하잖아요. 심리학자들도 심리검사를 통해 자기를 파악한다고 얘기를 해왔죠. 그런데 그 진단표가 대부분 미국에서 만들어졌어요. 미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목표와 방식이 한국 사람들과는 다르거든요.


미국은 독립적이고 자기 삶을 자기가 만드는 데 가치를 두고, 사회도 그렇게 살도록 환경을 조성해요. 한국은 스스로 삶을 만든다고 하면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껴요. 자기 생각을 얘기하기보다는 화합하고 맞춰야 하는 게 삶의 기본적인 가치인 사회거든요. 서양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심리검사를 가지고 한국 사람의 마음을 진단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심리검사를 만들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였죠."

"외국 성격유형검사로 한국인 마음을 진단하는 건 지적인 폭력"


WPI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평가뿐 아니라 타인 평가도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 그동안 심리학자들이 측정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타인 평가를 심리검사에 포함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나를 평가하기도 어려운데, 타인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지, 그걸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인 지표로 삼을 수 있을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자기(SELF)에는 스스로 보는 나(I)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나(ME)가 같이 있어요.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타인 평가를 측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타인을 누구로 가정하는지에 따라 평가범위가 달라지니까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하는 말을 들으면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 수 있거든요. 전 타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재밌는 건, 남들이 나한테 수백 가지 얘기를 하는데 그걸 다 기억하지는 않아요.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남죠. 내 기억에 남았다는 건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믿음을 동시에 반영하는 거예요. 그 사람 삶의 가치와 방식이 정확히 타인 평가를 통해 표현되는 거죠. 타인 평가를 같이 하니까 항상 남을 의식하면서 자기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고민하는 한국 사람들 고민이 잘 드러난다는 걸 알게 됐어요. "


타인 평가는 오랫동안 심리학계에서도 측정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러나 황상민 교수는 WPI를 통해 그것이 오히려 인간 심리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영역임을 일깨워주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읽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보면, 이제껏 잘못 알고 있는 게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 테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진짜 마음이 존재하고 현재 마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는 진짜 마음과 현재 마음을 구분하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비유로 드는 것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현재 자기 마음과 진짜 마음을 현재의 삶과 내세의 삶에 비유해봐요. 뭐가 더 중요해요? 내세의 삶보다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한 것처럼 현재 마음을 아는 게 더 중요해요. 진짜 마음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조차 몰라요. 현재 마음이 진짜 마음이 아니라면, 현재의 삶이 가짜의 삶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거죠."

"종교인과 심리학자의 얘기가 같아야 한다는 게 신기하고 황당"


사람들이 심리학이나 마음의 문제와 관련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며 마음 읽기를 종교의 사유방식에서 이해하려는 태도를 대표로 꼽았다. 


"제가 팟캐스트 (방송을) 할 때 누군가 글을 올렸는데, 제 얘기가 법륜스님이 얘기한 것과 왜 다르냐는 거예요. 종교인과 심리학자의 얘기가 같아야 한다고 믿는 게 신기하고 황당했어요. 종교의 사유방식을 자기 마음에도 적용하는 걸 보면, 마음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없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심리학에서 마음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걸 얘기해요. 종교는 마음을 과학적으로 탐색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종교가 마치 그 역할을 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종교 교리와 연결시키는 걸 보면 과학과 종교가 이상하게 버무려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많은 경우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종교의 힘이나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종교는 '내세를 위해 현재를 이렇게 살라는 사유의 틀'을 마음에 적용하고, 정신과 의사들은 약 처방을 정답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삶의 행복은 종교만으로 충족될 수 없고, 또 마음은 신체와 달라서 약을 먹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마음의 문제는 타인과의 관계, 혹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황상민은 사람들이 사는 게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자기를 사랑할 수 없어서,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라며 마음이 아플 때 현재 자기를 아는 것이 필요한 이유를 거듭 얘기했다. 그는 WPI라는 간단한 해법도구로 자기를 알고 타인을 이해하게 되면 관계 때문에 생기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서, 대한민국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수 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인터뷰를 약속한 위즈덤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는 누군가의 심리검사 진단표를 들여다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인사를 나누고 인터뷰 준비를 하며 책 읽은 소감을 전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라는 사람이 모두 까발려질 것 같아 불편했다는 말에 그는 대뜸 WPI 검사지를 내밀었다. '이거 직업병'이라는 말과 함께.


준비한 인터뷰는 잊고, "점쟁이 맞으시네요"를 연발하며, WPI 마음 읽기에 빠져들었다. 인터뷰이 황상민은 솔직하고 거침이 없었지만, 심리학자로서 상담하는 황상민은 자상하면서도 정곡을 콕콕 찔렀다. 그는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게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언제든 마음의 병이 생기면 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언젠가 삶이 위태롭다고 느낄 때, 아픈 곳을 진단해 줄 '마음의 MRI'가 있다는 게 든든했다.


사진 : 신동석

취재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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