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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칼럼

귀족들에게 '커닝 페이퍼'가 필요했던 이유는?

단어로 읽는 5분 세계사 [에티켓]

by 인터파크 북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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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에티켓(etiquette)은 티켓(ticket)과 어원이 같다고 말하면 믿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거예요. 사람들 머릿속에 에티켓은 ‘예절’이고 티켓은 ‘입장권’이나 ‘승차권’일 테니까요. 그런데 이 두 단어는 어원이 같아요. 에티켓의 어원은 고대 프랑스어 에스티켓(estiquette)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 에스티켓은 천이나 종이 같은 라벨이나 티켓을 의미했죠. 여기서 말하는 티켓은 카드 크기의 작은 종잇조각을 말했던 것 같아요.


이 작은 종이가 ‘예절’을 뜻하는 에티켓이 된 것은 궁정 및 군인 생활과 관련이 있지요. 간단히 말하자면,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에티켓’을 잘 지키기 위해 ‘티켓’과 같은 작은 종이에 이를 적어 놓았다고 생각하면 돼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외우기 힘든 것을 적어 둔 일종의 ‘커닝 페이퍼’였던 셈이지요.

중세가 끝날 무렵 시작된 궁정 생활에서는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보통 사람들은 힘들어했어요. 지켜야 하는 예의범절을 작은 종이에 적어 두고 그것을 보면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작은 종이가 예절 지침서 역할을 한 것이에요. 군인 생활과 관련해서는 프랑스 장교들이 작은 종이에 그날 일과를 적어 부대 주위에 붙인 다음 그것을 계획대로 실행하도록 했다는군요.


이것 말고도 에티켓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참 많아요.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일어난 장소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입니다. 17세기부터 왕궁으로 사용된 이곳은 더없이 화려했지만 화장실을 갖추고 있지 않았어요. 일설에 의하면, 화려한 궁전과 지저분한 화장실은 어울리지 않아서 일부러 그렇게 설계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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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변 문제는 늘 골칫거리였어요. 왕궁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약 5000명, 하루에 방문하는 사람도 약 5000명으로, 모두 1만 명이 북적거리며 지냈는데 변변한 화장실이 없었으니까요. 상주하는 사람들이야 요강을 사용하면 되었지만, 궁을 방문한 사람들은 요강을 가지고 다닐 수 없었지요. 이들은 궁 안에서 생리 신호가 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어요. 일단 그것을 처리할 곳을 찾아 밖으로 나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실례를 했지요.

이 문제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사였어요. 정원을 아무리 아름답게 가꾸어 놓아도 방문객들이 밟고 지나가기 일쑤였지요. 다들 적어도 한두 번 경험해서 잘 알겠지만, 배에 신호가 오면 사람이고 장소고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지요? 그러니 정원사의 모든 노력이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요.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 군대에서 복무한 적이 있는 한 정원사가 좋은 생각을 해냈어요. 정원 곳곳에, 어디로 가야 대소변을 볼 수 있는지를 표시해 두는 것이었지요. 그것은 군 복무 시절에 경험한 에티켓이었어요. 이 안내문은 성공적이었고, 서서히 궁정 생활 전반에 걸쳐 이용될 만큼 발전했답니다.

궁정 에티켓은 루이 14세 초기에 섭정을 맡았던 안 도트리슈가 17세기에 완성했어요. 루이 16세 때는 좀 느슨해지고 프랑스 혁명 때는 유명무실해지기도 했지만, 나폴레옹이 부활시켰답니다. 1830년에는 법령으로 지금의 국내 공식 의전 형식을 확정했고요. 19세기 말에 프랑스 사교계의 ‘관례’ 및 ‘예의범절’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오늘날 우리도 ‘에티켓’이라고 부르게 된 거죠.


사진 : 글담출판사 제공


※ 본 연재는 <단어로 읽는 5분 세계사>(장한업, 글담출판사, 2016)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글 : 칼럼니스트 장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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