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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l 26. 2016

버지니아 울프에게 가는 길

산골독서가의 세상읽기 '자기만의 방'이 꿈인 사회

새벽부터 내린 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바람은 숙소 창문을 때렸다. 길을 나설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한 여자 때문에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여를 달려 남부 브라이튼까지 왔건만, 날씨가 길을 막다니. 브라이튼에서의 일정이 넉넉하지 않아 더 난감했다. 다른 길은 없었다. 우산을 들고 숙소를 나섰다. 우산은 금방 쓸모가 없어졌다. 비바람이 우산을 뒤집어버렸다.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이렇게 거칠고, 축축하고, 험했다. 코트 주머니에 돌멩이를 넣고 차가운 강으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삶의 마침표를 찍은 그녀의 인생처럼 말이다.

 
딱 작년 이맘때다. 동거인(나는 결혼이 아닌 동거를 한다)과 나는 2015년 6월, 7월을 영국 런던에서 보냈다. 런던을 떠나기 직전 우린 남부 브라이튼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바다가 보고 싶었고, 버지니아 울프는 바다보다 더 보고 싶었다. 그녀는 우리의 동거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니까.


나의 동거 생활은 2013년 봄부터 시작됐다. 여자친구의 집은 내 직장과 가까웠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집에서 자고 출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집에 가기 싫어졌다. 나의 출입이 동거로 굳어지던 어느 날, 여자친구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사달라고 했다. 

집까지 내준 여자에게 책 한 권을 못 사주겠는가. <자기만의 방>을 여자친구에게 선물했다. 우리 관계에서 첫 선물이었다. 여자친구는 그 책을 펼쳐 보지도 않았다. 오래전에 읽었다고 했다.

“시간 날 때 선배가 한번 읽어보라고. 여자에게 자기만의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거야. 선배는 내 소중한 공간에 침입한(?) 사람이잖아. 읽으면 느껴지는 게 있겠지.”


자기만의 방을 내준 여자의 제안을 어찌 거부하겠는가. 단숨에 읽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문학 작품을 쓴 작가들 절대다수는 왜 남성인지, 자기만의 방과 돈을 가져보지 못한 채 출산-육아-가사 노동에 내몰린 여성이 좋은 문학 작품을 쓰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게 분석한 작품. 책은 내가 사줬으나, 선물은 내가 받은 듯했다.

입사 최종면접이라도 치른 것처럼, 내가 여성에게 독립된 공간과 경제적 자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이라도 깨달은 후에야 우리는 함께 살 수 있었다. 그런 우리가 런던의 서점과 대학 등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흔적을 찾고, 그녀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영국 남부 서식스주 우즈강 옆 시골마을로 향한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흔적이 남은 집으로 가기 위해선 브라이튼의 작은 역에서 다시 기차를 타야 했다. 약 40분을 달린 기차는 비바람 막아줄 역사도 없는 시골 간이역 사우스이즈(Southease)에 우리를 내려줬다. 간이역은 비에 젖은 우리만큼 누추해 보였다. 


한국이라면 당연히 있을 법한 ‘버지니아 울프 집으로 가는 길’ 따위의 표식은 어디에도 없었다. 구글 지도에 의지해 길을 나섰다. 지도는 목적지까지 약 1시간을 걸어야 한다고 알려줬다. 간이역만큼 누추한 나무 다리를 이용해 강을 하나 건넜다. 다리 밑은 우즈강, 버지니아 울프가 생을 마감한 그 강이다. 하늘만큼 흐린 강물이 바람에 출렁였다. 


밀밭을 건너고, 차가 빨리 달리는 국도를 따라 걸어야 했다. 극동의 땅, 그곳에서도 지리산 아래 피아골에서 온 나와 동거인의 몸은 비에 젖고 진흙으로 더러워졌다. 젖은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무렵, 작은 시골 마을에 닿았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집은 마을 안쪽 제법 넓은 길 옆에 있다. 그 집의 이름은 ‘몽크스 하우스(Monk’s House)’. 버지니아 울프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어린 시절 의붓오빠의 성폭행 등으로 오랜 세월 우울증과 정신분열의 고통을 겪은 버지니아 울프는 요양과 글쓰기를 위해 1939년 이곳 남부로 왔다.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도 한 원인이다. 

여성혐오는 자기만의 방도 구할 수 없는 이들의 엇나간 증오

버지니아 울프의 집은 잘 보존돼 있었다. 그녀가 남편 레너드와 함께 쉬고 거닐었던 넓은 정원, 침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던 작업실, 그녀의 마지막 글이었던 유서가 놓였다는 거실의 테이블까지. 버지니아 울프는 이 집에서도 극심한 우울증과 정신분열의 고통에 시달렸다. 그녀가 남편에게 남긴 유서의 한 대목은 이렇다. 

제가 다시 미쳐가는 게 느껴져요. 우리가 또 다시 그 힘든 시간을 극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회복이 힘들 것 같아요. (중략) 저는 더는 견딜 수 없어요. 제가 당신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알아요. (중략) 당신은 제 모든 것을 참아내고 놀랍도록 친절했지요.


우울증과 자살이 주는 영향 때문일까. 이 세상에 남은 버지니아 울프의 많은 사진은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을 준다.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과 그림은 보기 힘들다. 몽크스 하우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바람이 심한 날임에도 이날 그녀의 집에는 십여 명의 관광객이 있었다. 백인 안내인이, 모두 백인이었던 관광객들에게 집을 안내하며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집 2층에 자리한 버지니아 울프의 침실에서였다. 안내인이 갑자기 내게 물었다. 


“여기 동양인이 있네요. 혹시 어디에서 왔나요?”


나는 “사우스 코리아”라고 짧게 답했다. 그녀는 다른 관광객들에게 환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저 멀리 한국에서 여기까지 찾아오다니요! 며칠 전엔 체코에서 여성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녀에게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고 물으니, ‘학교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배웠다’고 하더군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녀는 다시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죠?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읽어봤나요?”


이번에도 “그렇다”라고 짧게 답했다. 그녀는 다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와 이야기 맥락을 봤을 때, 기분 좋은 질문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너희 동양 사람들이 버지니아 울프를 알기나 하니?’라는 뉘앙스의 물음이었다. 더 말하고 싶었으나 부족한 영어 실력 탓에 입을 닫았다. 옆에 있던 동거인이 말했다. 


“한국에도 오래전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 번역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읽었고, 또 좋아합니다. 유명한 작가로 알려져 있어요.”

안내인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의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버지니아 울프의 집을 나왔을 때에도 비는 전했다. 왔을 때처럼 비를 맞으며 사우스이즈 역으로 향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인 1941년 3월 28일, 어쩌면 버지니아 울프도 이 길을 따라 우스강으로 향했을 거다. 젖은 몸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간이역에 버스정류장처럼 생긴 작은 공간이 있었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젊은 백인 여성 한 명이 그곳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그녀는 비에 젖은 우리를 위해 작은 공간을 마련해줬다. 기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어색함을 깨려는 듯 그녀는 내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다시 “사우스 코리아”라고 짧게 답했다. 그녀는 사우스 코리아가 어디에 있는 나라냐고 물었다. 딱히 할 말이 없어 손가락으로 대충 하늘 한 곳을 찔렀다. 


“East(동쪽)! East(동쪽)!”


그녀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녀가 또 물었다. 


“여기는 왜 왔어?”
“버지니아 울프 때문에. 그녀의 집에 다녀오는 길이야.”


그녀는 나를 빤히 보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버지니아 울프가 누구야?”
“버지니아 울프…… 누군지 몰라?”
“응.”
“너 여기 산다면서?”
“응. 버지니아 울프는 여기에 사는 네 친구야? 난 여기서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


버지니아 울프, 참 좋은 사람인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동거인이 나서 짧게 설명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 여성은 버지니아 울프를 모른다고 했다. 잠시 뒤 기차가 왔고, 우리는 서로 떨어져 앉아 더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기차는 비를 뚫고 브라이튼으로 출발했다. 

비바람 치던 그날의 흐린 풍경과 버지니아 울프의 삶의 닮아서일까, 아니면 몽크스 하우스 안내인과 간이역에서 만난 여인의 묘한 대조 때문일까. 영국에서의 두 달을 떠올리면 버지니아 울프에게 다녀온 그 하루가 맨 앞으로 툭 튀어나온다. 


인간의 역사에서 여성은 자기만의 방과 고정된 수입을 거의 가져보지 못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분석한 대로 위대한 시인, 소설가, 음악가에 여성이 별로 없는 건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사색의 공간과 여유가 없는 존재에게 재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인류는 오랫동안 ‘여성은 열등한 존재’라고 오해했다. 


여성이 자기만의 공간과 고정 수입을 조금이라도 확보하기 시작한 건 근대 이후의 일이다. ‘방’ 하나에서 출발한 이야기로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은 열등한 존재’라는 오해와 편견을 깼다. <자기만의 방>이 괜히 페미니즘의 교과서로 불리는 게 아니다. 


그나저나 요즘 우리 사회의 많은 여성혐오, 묻지마 살인 등은 고정 수입이 없어 자기만의 방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내뿜는 엇나간 증오와 괜한 화풀이가 아닌가 싶다. 자기만의 방과 고정 수입이 꿈인 사회.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 <자기만의 방>은 1929년에 출간됐다.


글 : 칼럼니스트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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