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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l 27. 2016

괴짜과학자 이종호 "로봇이 밥하는 시대? 택도 없다"

              

100권. 한 출판사가 출판한 책의 숫자가 아니다. 한 저자가 세상에 내놓은 책의 권수다. 그것도 보통 사람은 접근도 어려운 과학 분야만 파고들었다. 한 과학자가 37년 동안 쓰고 또 쓰는 사이 실험실에 갇혀 있던 과학지식들이 대중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진정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아닐 수 없다.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이 쌓은 공적이다. 프랑스에서 공학박사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난 핸드폰이 없어요. 이동할 때도 BMW(버스, 메트로, 워킹)만 이용합니다."라고 하는 그는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와 가까워 보였다. 까다로운 과학 이야기를 '순 뻥', '대대박' 같은 말을 섞어가며 설명하니 친근한 할아버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100번째 책도 그의 이런 감성이 담겼다. 로봇의 과거, 현재, 미래를 쉽게 훑음으로써 알파고로 많은 관심이 쏠린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로봇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라는 도발적인 책 제목에 대한 그의 답은 인터뷰 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기자가 사진을 찍자 이종호 박사는 "나도 찍읍시다"라며 작은 카메라를 꺼내 인터뷰를 하고 있는 기자와 사진기자를 한 프레임에 담아 마주 사진을 찍었다. "현장 확인 증거를 만드는 겁니다. 내가 몸으로 때우는 건 선수요. 버티는 거지, 뭐."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그가 100권의 책을 낸 비결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Q 100번째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소감이라기보다는 내가 100권을 냈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많이 쓸 수 있을 거요. 머리 좋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일단 내가 내봤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내서 쓰면 될 거요.


Q 책을 그렇게 많이 쓸 수 있었던 비법은 뭡니까?


책이 많은 건 원전(原典) 덕분이에요. 내가 1976년 말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들어갔는데 그 이듬해 우리나라가 미국 독립기념 200주년 기념으로 에밀레종을 복제해서 선물로 보냈어요. 그때 KIST 복제 시설을 봤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거요. 지금도 이렇게 하는데 신라 때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하더라고. 그땐 크레인, 자동주입기, 컴퓨터도 없었잖아요. 그래서 논문을 찾았는데 제작법에 대한 건 하나도 없어. 그저 '에밀레종 소리가 아름답다' 이런 것만 있고. 웬만한 사람은 신통치 않다고 했을 텐데 나는 그 순간 '대박을 터뜨렸다'고 생각했지. 없으면 내가 쓰면 원전 아니오? 그렇게 논문을 쓰면서 내가 문화재랑 과학을 접목시킨 글쓰기의 1세대가 됐지.  


당시 내가 에너지, 태양의 집 따위를 연구했는데 우리 문화재 중 창호지, 온돌, 초가집들이 연관되잖아요. 실험을 했더니 과학적으로도 우수해. 그런 것들을 엮어서 우리 유산의 과학성에 대한 책을 썼는데 그게 '대대박'이 터진 거요. 그 뒤에 쓴 <세계의 불가사의>도 50쇄쯤 나갔고. 과학이 좋은 게 5~6년쯤 지나면 내용이 업그레이드돼요. 같은 주제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지. 그러다보니 권수가 많아졌지.(문화재와 과학을 접목시킨 책은 현재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 <과학 삼국유사> <한국의 과학기술 이야기> 등으로, <세계의 불가사의>는 <미스터리와 진실> <세계 불가사의 여행> 등으로 업그레이드돼 있다. – 기자 주)


Q 그 밖에도 다양한 과학 책을 쓰셨어요. 몇 권만 소개해주세요.


<노벨상이 만든 세상>(물리, 화학, 생리/의학)은 2007년에 중국에서도 냈어요. 그 책이 과학 분야에서는 <동의보감> 다음으로 정식 수출된 책이지. 또 내가 SF영화에서 뭐가 뻥인지 찾는 걸 잘하지. 그걸 엮어서 쓴 책이 바로 <영화 속 오류>입니다. 훈족과 한민족의 관계를 좇은 <황금보검의 비밀>은 30년에 걸쳐 완성한 책이고요.


Q 문화재와 과학에 대한 책을 쓰면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자부심도 느끼셨나요?


옛날 우리 거면 모두 좋다고 하는데 그건 뻥이죠. 어떻게 다 좋을 수 있어요? 좋은 건 좋은 거고 나쁜 건 나쁜 거지. 그런데 폄하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내가 강의 때 많이 하는 얘기인데, 세상은 물구나무 서서 거꾸로 볼 필요도 있어요. 거꾸로 선다고 없던 게 생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못 보던 걸 볼 수 있지. 에밀레종만 해도 소리가 왜 그렇게 좋으냐. 에밀레종을 밑에서 뻥 뚫린 곳을 보면 말끔할 것 같지만 실은 안이 아주 엉망진창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소리가 진동이 되는 거지. 그런 걸 찾아내는 거요.

'40년 과학저술가의 길' 이종호 박사의 100번째 책


Q 100번째 책으로 로봇 책을 쓴 까닭이 있습니까?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박살 나는 통에, 로봇을 인공지능이라는 각도에서 쓰면 독자들의 이해가 빠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봇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뤘죠. 로봇 책은 쓰기 참 힘들어요. 두뇌에 대해 써야 하는데 내가 나를 모르는 판에 남을 어떻게 압니까? 내 마음이라는 게 있죠?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지구촌 70억 명에겐 70억의 '내 마음'이 있거든. 알 수 없는 그걸 밝히는 게 인공지능이죠. 


Q 이제 인공지능이라는 말은 널리 쓰이지만 정작 인공지능이 뭔지 설명하기는 힘듭니다. 


로봇에게 "술 가지고 와" 했을 때, 그냥 술을 갖고 오는 건 기본이고, "계속 술 마시면 당신은 죽는다. 그러니까 주스 마시쇼."라고 변형할 수 있는 게 인공지능이죠. 우리 마누라가 하는 것처럼 대처하는 거요. 현재 인공지능의 수준은 술 갖고 오라고 하면 술을 갖다 주는 정도에요. 


Q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졌을 때 사람들이 인간이 로봇에게 밀려간다고 불안해했는데, 아직 그럴 필요는 없겠군요.


걱정할 필요 없죠. 알파고 때 놀란 건, 바둑은 경우의 수가 워낙 많으니까 그걸 컴퓨터가 다 알 수 없다고 예상했던 건데 (실제로는 알파고가) 이겨서죠. 그런데 컴퓨터는 이세돌이 둔 점을 바탕으로 경우의 수를 따져서 그 다음 수를 둬요. 이세돌이 안 두면 걔가 그런 고생도 못하지. 이번 알파고의 장점은 이세돌의 머리로 들어가서 그걸 역이용했다는 거죠. 한마디로 알파고를 만든 프로그래머가 이세돌을 이긴 거요. 다른 분야는 전혀 다른 얘기라고.


Q 현재는 인공지능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말씀이군요. 


책에도 썼지만 구글 인공지능 사진 서비스에서 고릴라를 검색했더니 흑인 여성의 사진이 나와서 문제가 된 적이 있어요. 또 어린아이는 길을 가다가 똥이 있으면 똥을 안 밟아요. 금세 아니까. 그런데 로봇은 똥인지 알려면 냄새도 맡고 만져도 봐야 하고 아주 복잡해요. 로봇이 인간과 다른 점은 이처럼 정보를 주입시켜야 한다는 거죠. 


앞으로 로봇이 부엌에서 밥도 하고 국도 끓이고 김치도 담근다는데 난 그거 '택'도 없다고 봐요. 사람은 2족이어서 문턱을 쉽게 오르지만 로봇이 그러려면 어마어마한 투자를 해야 해요. 그렇게 비싼 로봇을 사느니 가사도우미 세 명 쓰는 게 훨씬 쌀 뿐더러, 사람은 대화가 되잖아요. 그게 중요하지. 그리고 사람 입맛이 다 다른데 로봇이 어떻게 그걸 다 맞춰요? 토스트 정도나 되겠지. 그건 안 된다고 보지만 일반 단순작업은 로봇이 많이 하게 될 거요.


Q 인공지능의 발달로 일자리가 굉장히 많이 사라질 거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없어질 자리는 당연히 없어지겠죠. 옛날에 계산기가 나왔을 때 주판이 작살나고, 컴퓨터가 나오고 나선 계산기가 작살났거든. 그러면서 주판 관련 직업은 없어졌어요. 그런데 컴퓨터 시대가 되니까 컴퓨터 고치는 사람도 밥이 되고, 고장 난 컴퓨터를 수거해가는 사람도 밥이 돼요.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라고. 없어지는 만큼 수없이 많은 분야가 생길 거라는 말입니다. 밥이 되는 틈새를 찾아서 챙기는 게 중요하죠.

"로봇이 지배하는 시대? 인간 욕심 때문에 그럴 리 없다"


Q 없어지기 쉬운 일자리와 살아남을 일자리는 어떤 게 있을까요?


제일 먼저 기자들이 없어진다는 얘기도 있거든.(책에는 미국 시카고 지역신문인 <시카고 트리뷴>이 로봇 기사 송고 회사와 제휴하면서 기자 20명을 정리해고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 기자 주) 날라리 기자들은 잘리겠지. 특히 세무사가 굉장히 주는 걸로 나와요. 변호사도 그렇고. 변호하는 건 몰라도 방대한 자료를 순식간에 찾는 건 컴퓨터가 사람 10명보다 빠르지. 


반면 감성이 있는 건 안 잘리죠. 소설가가 잘리겠어요? 로봇도 소설을 쓴다고는 하지만 로봇이 쓴 글이 박경리의 <토지>나 조안 롤랭의 <해리포터> 시리즈하고 같겠어요? 문학은 감성을 자극하는 건데 컴퓨터가 눈물을 흘려봤어야 알지. 다큐멘터리는요? 옛날에 다큐로 사자를 찍었다고 한 번으로 끝나나. 매번 가서 사자를 찍는 거 아니오? 안 없어지지. 야구 심판은 없어질 수도 있는데 안 없어진다는 거 아니야. 컴퓨터로 했더니 재미없다고.
       

Q 인공지능이 현재 한계를 극복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갈 거라고 보십니까?


인공지능이 인간을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비행기도 사람들이 처음엔 새처럼 어깨에 날개를 붙이는 걸로 했다가 비행기를 만들었거든. 하늘만 날면 될 거 아니야. 로봇도 그렇게 될 거요. 인간의 두뇌를 복제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따를 수 있는 시스템화를 하는 걸로. 


Q 그럼에도 사람들은 영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에서처럼 로봇이 지배하는 시대가 올까봐 두려워합니다. 


인간은 욕심이 많아서 그렇게 안 돼요. 로봇에 기초 정보를 넣어줘야 하는데 인간이 인간을 잡는 이야기를 왜 넣어주겠어요? 물론 영화에는 악당 박사가 나오긴 하죠. 그렇게 되려면 엄청난 돈을 지원해야 하는데 그건 어디서 생기느냔 말이지. IS 같은 나쁜 나라 팀에서 한다? 말은 되는데 나 같아도 그런 연구를 왜 거기서 해요? 아이디어만 있으면 어마어마하게 지원해줄 미국으로 가지. 그런데 우려성은 틀림없이 있어요. 왜냐. 착한 나라 팀도 악당 짓을 하거든. 군대 같은 데서 악당 무기를 많이 만드니까. 그래서 자정작업이 필요해요.  


Q 40년을 과학계에서 일했습니다. 과학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뭐라고 보십니까?


과학은 항상 변한다는 거죠. 자기가 하는 게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것. 아무리 중요한 거라도 보완이 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는 게 과학인의 자세죠. 또, 나는 가사 로봇은 안 된다고 했지만 그걸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있어요. 말릴 거 없죠. 과학은 안 되는 것도 해야 된다 이거지. 그래서 진짜 안 된다는 걸 알기도 하고, 하다 보면 또 다른 새로운 걸 얻기도 하니까.


Q 마지막으로 책 제목이 <로봇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인데 박사님이 내린 답은 무엇인가요?


할 수 없지. 그런데 로봇이 인간의 속은 더럽게 썩일 거요. 전쟁터에서 로봇 군인이 사람 죽이는 거 자체가 속 썩이는 거지. 그렇다고 무서워하지는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로봇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로봇을 친근하게 활용할 방법을 찾으면 미래는 좋아지겠죠. 

만화광이라는 이 박사의 집에는 42권까지 나온 <드래곤볼>이 1권부터 빠짐없이 있다고 한다. 만화책을 사면 가족들에게 "내가 샀으니까 나 보고 며칠 있다가 보라"고 얘기한다고. 인용을 많이 하는 글쓰기 스타일에 대한 비판도 있다고 하니 "그걸 좋게 보는 놈도 있고 아닌 놈도 있겠지. 그런 거지, 뭐."라고 '쿨'하게 말하는 그는 만화에서 바로 튀어나온 괴짜 과학자 같았다.

사진 : 신동석

취재 : 신정임(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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