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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l 29. 2016

"우리는 개인주의 아닌 고립 상태"

'눌변'의 사회학자 김찬호 작가 인터뷰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김찬호의 말, 말, 말  


- "공동체는 과제를 갖고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소속되고, 인정받고, 외로움을 해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드는 관계가 공동체다." 


- "보여주지 않아도 충만한 것이 인문학이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삶을 단순하게 하려면 생각을 많이 하고 멈춰서야 한다." 


- "왜 불안한지를 들여다보면 (남들 때문에) 덩달아 불안한 것도 많고, 내가 욕망에서 쳐내지 않아서 불안한 것도 많다. 감정이라는 것은 어차피 기류니까 그런 기류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자기 삶의 공간을 잘 가꿔야 한다."  

[프리즘②] 감정이 사회를 움직인다 


▷ 김찬호는 누구? : 이 사회를 감정으로 읽어낼 수 있을까? 성공회대학교 김찬호 교수는 이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원천 중 하나인 '감정'에 주목하는 사회학자다. 그가 쓴 <모멸감>(2014)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모멸감'이란 정서를 고찰하며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1월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 어떤 책을 냈나 : <눌변>은 김찬호가 2010년부터 2015년에 걸쳐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쓴 칼럼들을 모아 펴낸 책이다.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글쓰기는 근원적으로 '눌언'일 수밖에 없다"고 썼다. 즉각적인 의사소통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신중과 숙고하는 소통의 자세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가 쓴 글의 대부분은 수업을 하거나, 학교 행사에 참여하거나, 식사를 하는 등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경험했을 사건들로부터 시작하지만 글이 전개될수록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차원으로 발전하며 잔잔한 감동을 준다.  


▷ 인터뷰 뒷이야기 : 올 들어 최고 기온을 경신한 여름날, 서울 신촌동 연세대학교 교정에서 그를 만났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교내 교회로 자리를 옮겨 인터뷰가 진행됐다. 저자의 재학시절, 직접 종교활동도 하던 장소라고 했다. 정작 저자는 책 제목처럼 눌변은 아니었다. 다양한 주제에 따라, 다른 시기에 쓰여진 칼럼들을 모은 책이라 하나의 인터뷰 주제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사회의 부재'를 필두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게 됐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책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승인하는 타자가 없고, 고유한 나를 알아주는 '사회'가 없어서 사람들이 외롭고 고단해졌다는 분석에 깊이 공감했다. 그런 '사회', 그런 공동체는 어떤 곳인지 좀 더 자세히 말해준다면? 


나는 가족들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내 모습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편이다. 그런 식으로 자기 모든 모습을 드러내도 괜찮고, 자기의 약점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관계가 나는 진짜 공동체라고 본다. 가령 동창회 같은 모임에서는 왁자지껄 모여서 시간을 보내고, 친함을 과시하더라도 거기서 누구도 깊이 있게 만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요즘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 모르는 채로 만나는 허전한 만남일 경우도 많다. 진정한 만남은 소규모일 때에야 가능하다. 마음을 열고, 마음을 여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새로운 잠재력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만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Q 우리 사회에서 그런 영역이 실종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은 빠르게 도시화가 됐다. 그래서 과거엔 도시민이더라도 다 농촌 출신이었다. 전통 공동체 마을 경험이라는 바탕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인데, 지금은 농촌 경험, 마을 경험이 없는 사람이 주류가 되어 가고 있다. 물론 옛날 마을이 다 바람직하거나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세대는 그런 경험을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강의해도 별로 감이 없다. (지금 세대와 공동체의 경험을 공유하는 소재는) '응답하라 1988' 정도밖에 없는 것 같다. 


Q 대한민국은 더 급속도로 개인화 되어 가고 있다. 1인가구도 증가하고 있고, 말했듯이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공동체를 다시 되살릴 수 있다고 보나? 


굳이 사례를 찾으면 없는 것도 아니다. '모 아니면 도'는 아닌 거니까 조금씩 해나가면 된다. 1인가구끼리 모여 사는 셰어 하우스도 중요한 시도라고 본다. 가족을 넘어선 차원에서의 만남이잖은가. 마을 차원에서도 이미 유명해진 사례인 성미산 마을 공동체도 있고, 중랑구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놀이터를 직접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공동체라고 해서 매일 화기애애한 게 아니라, 무엇인가 과제를 갖고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소속되고, 인정받고, 외로움을 해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드는 관계가 공동체다. 


Q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아닌, 과제를 공유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개인의 과제가 공동체를 통해 함께 풀려야 한다. 우리는 개인 과제는 개인이 알아서 하고, 공동으로 하는 건 공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둘을 연결시켜야 하는 거다. 

Q 요즘은 개인들의 시대다. 한국 전통사회에서는 공동체가 개인에 지나치게 간섭해왔는데, 그런 구습을 경계하는 이들도 많다. 과연 개인주의와 공동체가 양립할 수 있다고 보는가? 


북유럽 스웨덴 같은 국가는 1인가구 비율도 높고 굉장히 개인주의이지만 고독사는 우리보다 적다. 뭐냐면 다 각각 살지만 일상은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더 넓게는 유럽도 훨씬 개인주의지만 더 공동체적이다. 철저히 개인적으로 살지만 그건 주거형태일 뿐 활동은 다르다. 매일 집 밖에서 누군가를 만날 공간이 마련돼 있고, 그런 곳에서 어떤 사람이 안 보이면 바로 체크하니까 고독사가 적은 거다. 우리는 개인주의도 아닌 채로 고립이고, 개인주의화 없이 개별화만 된 것이다. 


Q 개인주의와 개별화는 어떻게 다를까? 


'개인주의'는 '나는 나'이지만 관계는 맺는 것이고, 개별화는 단절된 상태다. 그런데 우리는 개인주의를 자기 것만 찾는 거라고 잘못 해석한다. 그게 아니라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 지는 것이 개인주의이지 나밖에 모르는 건 이기주의다. 자기 인생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오히려 편안하게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Q 오히려 개인주의가 제대로 섰을 때 공동체도 만들 수 있다?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둘 다 아닌 거다. 


Q 대한민국은 왜 '개인주의'도 '공동체'도 놓치게 된 걸까? 


고도성장 자체는 다 집단주의로 이루어졌으니 개인주의를 허락하지도 않았고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개인주의는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되었던 거다. 


Q 방금 말했듯이 아직 공동체의 경험도 없지만 개인주의를 확립하지 못한 개인들이 공동체를 결성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단 타인을 발견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일수록 타인이 중요하단 걸 모른다. 혼자서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혼자선 안 된다는 걸 깨닫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일단 학교 체제는 아이들을 혼자서만 하도록 만들지만 정작 어른이 되고 나서 혼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같은 아파트 주민끼리 인사를 하지도 않고 관계를 맺는 일에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마을에서 어른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끝난 거였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자기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 관심도 갖지 않는다. 


Q 어떻게 보면 인사하는 것부터가 시작일 수 있겠다. 


그렇다. 내 나름대로 실천은 엘리베이터에서 애들이든 어른이든 만나면 무조건 인사하는 거다. 그렇게 해서 관계가 맺어지든 안 맺어지든 그것은 둘째 문제고. 분위기를 그런 식으로 바꿔가야 한다. 우리는 너무 공동체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야 한다. 택시 운전사처럼 모르는 사람, 한 번밖에 안 만날 사람조차도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 게 중요하다. 

Q <모멸감>도 그렇고 <눌변>도 그렇고 모두 사회학적으로 한국인들의 감정에 주목해서 연구했다. 현대 사회에서 감정은 보통 마케팅적인 면에만 이용당한 채 방치되는 것 같다.


감성을 자기가 잘 보살피고 가다듬어야 한다. 욕망은 타고난 것이든 사회가 부여한 것이든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욕망은 조작된 것들이 많다. 욕망과 감성 중 감성이 더 큰 영역인데 감성을 욕망으로 덮어씌우면 삶이 불행해진다. 욕망 이외에 다른 감성들을 가꿔야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꽃을 따고 싶어하는 것은 욕망이지만, 꽃을 보고 좋아하는 건 미적 체험이다. 스스로의 감성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감성의 주인이 되도록 한다면 마케팅이 비집고 들어올 수는 없을 것이다. 


Q 1장 '시간의 주인이 되려면'에서는 걷기나 은은함의 미덕을 강조했다. 하지만 요새는 다들 바쁘다고 하는 세상 아닌가? 오히려 바쁘다는 게 칭찬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그렇게 바쁠 필요가 없는데 강박적으로 바쁜 경우가 많다. 잠시 머물러서 깊이 생각해 보면 많은 일들이 정리가 된다. 트위터 그렇게 안 해도 되고, 요리 사진 찍어서 페이스북에 안 올려도 된다. 그걸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바쁜 거다. 뭔가 보여줘야지만 자기가 채워진다고 생각해서 자기 일상을 끊임없이 진열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여주지 않아도 충만한 것이 인문학이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삶을 단순하게 하려면 생각을 많이 하고 멈춰서야 한다. 친구들 다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바쁜 거고, 다른 사람들 쓰는 물건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돈 더 벌어야 하지고, 조기교육 안 시켜도 되는데 시키니까 바쁜 거다. 그 사교육비만 안 벌어도 얼마나 여유 있을까? 일류대학 가는 건 아무 효과도 없고, 그 돈 아껴서 애 나중에 사업자금 대주는 게 낫다. 


Q 그렇게 바쁘게 지내지 않으면 불안한 것 같다. 이 불안함의 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론 무엇이 있을까? 


왜 불안한지를 들여다보면 (남들 때문에) 덩달아 불안한 것도 많고, 내가 욕망에서 쳐내지 않아서 불안한 것도 많다. 감정이라는 것은 어차피 기류니까 그런 기류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자기 삶의 공간을 잘 가꿔야 한다. 자기 시간과 공간을 가꾸지 않아서 불안한 것이다. 


Q 세월호 참사에 대해 오히려 이것을 직면하고,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흐리면서 확인된 유대감을 사회적 기억으로 변환하여 지속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세월호 문제는 오히려 많이 가라앉고 사회적으로 망각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세월호는 한국의 근대 압축적 경제성장의 치부를 한번에 드러낸 것이라 본다. 아이들을 다 살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많은 인원이 죽었다. 그런데도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고, 정치적으로 복잡해지면서 양 극단으로 나뉘어, 이 자체가 정치 사안이 되어버렸다. 세월호 언급하면 빨갱이고, 보수는 아예 입도 뻥긋 안 하는 식으로 된 것이 가장 비극인 것 같다. 물론 세월호를 이용하는 세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주 일부일 거다. 


한국에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같이 가야 한다. 진상규명은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가야 하고,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는 굉장히 깊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 각자 할 수 있는 역할들을 해야 한다. 그분들의 경험을 객관화하고 공유하고 승화시키는 것이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기록 작업도 있고 이미 다큐로는 나왔지만 언젠가는 영화로도 나올 수 있을 거다. 우리나라는 각각의 사건만 있을 뿐 공유된 기억이 없다. 비극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를 차분히 따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Q 현재 연구하고 있거나 앞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다면? 


작년부터 유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유머의 기법이 아니라, 기쁨과 같은 사람들의 감정이 어떻게 표출되고 공유되는지 사회적 맥락을 짚어보는 작업이다. (기자 : 특별한 레퍼런스가 있나?) <모멸감>도 그렇고 난 늘 기존에 없던 작업을 하는 것 같다.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토스튜디오)

취재 : 주혜진(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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