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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05. 2016

[김형훈의 진짜제주 1] 카페 가려고 왜 제주에 와요?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저자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

"제주도가 그냥 섬이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겠죠. 제주도는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섬입니다.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하죠. 단순하게 ‘즐긴다’는 목적으로서의 여행을 오는 이들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이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즐기는 이들을 위한 각종 시설이 넘쳐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결국 보전해야 할 가치가 있는 섬이 되는 게 아니라, 파괴될 수밖에 없는 길을 간다는 것이죠. 그래서 ‘진짜 제주’를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왜 '진짜 제주'를 알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은 위와 같이 대답했다. 김형훈 국장은 올해 4월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나무발전소)를 펴냈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제주. 하지만 제주 토박이 김형훈 국장은 제주가 해변 카페와 블로그 맛집으로만 기억되는 '그런 곳'이 되는 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몸소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제주의 이야기들을 모아,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내게 된 것이다.

김형훈 국장의 고민에 다른 '토박이'들도 뜻을 함께했다. 제주 토박이 여행업체인 '뭉치'가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의 내용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여행상품을 기획한 것. '작가와 함께 떠나는 제주 이야기 여행'은 7월 한국여행업협회 우수여행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7월 23일과 24일에는 '육지'의 기자들을 초청한 팸투어(답사여행) 행사가 열렸다. 이틀간 김형훈 국장과 함께 '진짜 제주'의 속살을 돌아보며 나눈 이야기들과, 이후 이메일 인터뷰로 더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해변 카페와 블로그 맛집…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여행의 첫 번째 이야기는 제주시 화북동 동마을에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바로 4.3사건의 유가족들이었다. 왜 여행의 첫 번째 코스로 이곳을 선택한 걸까. 여행을 기획한 뭉치의 김영훈 대표는 "진짜 제주를 알려면 4.3 이전의 제주 공동체를 알아야 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개방과 존중의 조화를 통해 자치적인 공동체 문화를 꽃피운 제주 사람들. 하지만 그 공동체는 1948년 4월 3일 이후 크게 부서져버렸다. "있었지만 없었던 것으로 죽어지내야 했고, 눈앞에서 펼쳐진 학살의 현장에 섰던 제주사람들도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또 다른 4.3의 공포에 떨며 감히 말을 하지 못했"(<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279쪽)던 세월 때문이었다.

열세 살 때 4.3사건을 겪은 김주전 어르신

동마을 김주전 어르신의 집에 기자들이 둘러앉았다. 김주전 어르신은 열세 살에 4.3을 겪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큰형, 샛형(작은형), 큰형수, 샛형수 모두 목숨을 잃었다. 김주전 어르신은 내창(내)에 수없이 널려 있던 시신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며 아버지를 찾아다녔다. 이웃 마을로 옮겨다니며 "여기 어디 시체 있는 데 또 없습니까?" 하고 묻던 열세 살 소년의 마음을 무슨 수로 헤아릴 수 있을까. 잡풀이 무성한 곳, 이듬해 봄이 돼서 뼈만 남은 아버지의 시신을 찾았다. 죽기 전에 입은 옷이 무엇인지 어머니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조차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4.3이 남긴 상처는 단순히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만이 아니었다. 김주전 어르신은 1950년대 후반부터 경남 진해에서 해군으로 복무했다. 하지만 '연좌제'의 굴레는 떼어낼 수 없는 무시무시한 꼬리표였다. 부사관으로 복무하던 당시, 제대로 된 이유 한마디 듣지 못한 채 자진 전역신청을 강요받기도 했다. "너 제주도 사람이지? 어디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있나 보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이유는 오직 '제주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그는 불명예 전역 압박을 견뎌내고 훗날 무사히 전역을 한 뒤 제주에 돌아왔다.

이야기를 들려준 김주전 어르신은 바로 김형훈 국장의 아버지다. 흔히 제주를 '삼다도'라 해서 돌, 바람, 여자를 그 상징으로 기억하지만, 김형훈 국장은 '진짜 제주'의 상징 세 가지를 돌, 신당, 그리고 4.3으로 꼽았다. 제주 사람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4.3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 그는 "이제 아픔을 털고 4.3을 제대로 알리는 일만 남았"다며, "색깔론을 펼치면서 흔들지만 않으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주전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가까이에 있는 곤을동 마을을 직접 둘러봤다. 정확히는 곤을동 마을'터'라고 해야 하는 그곳. 4.3 때 초토화되어 터만 남아 있는 "잃어버린 마을"이다. 군인들의 토벌 작전으로 전체 43가구가 모두 전소되고 24명이 희생됐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마을터 가운데,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던 올레(집 앞으로 난 작은 골목)의 흔적만이 확인될 뿐이었다. "진짜 제주를 알려면 4.3 이전의 제주 공동체를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4.3 당시 한 마을이 모두 초토화된 곤을동 마을터. 돌로 쌓은 올레의 흔적만 남았다.

'진짜 제주'의 향기는 4.3 이전 공동체의 향기

곤을동에서는 '환해장성'(環海長城)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제주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돌을 쌓아 성을 만들었다. 제주 바닷가 300리를 휘감던, 말 그대로 ‘장성’이었고, 17세기 기록에 따르면 "탐라의 만리장성"(김상헌 <남사록>)이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화북, 애월, 행원, 한동 등 열 곳 정도에만 남아 있고, 곤을동의 환해장성도 140미터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해안도로 건설 때문에 계속 파괴되던 환해장성은 1998년에야 제주도기념물(제49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그후 사라진 환해장성을 복원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김형훈 국장은 환해장성의 파괴뿐만 아니라 ‘복원’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원래 환해장성은 그곳 바닷가의 돌을 있는 그대로 쌓아 만들었는데, 복원한 환해장성은 돌을 다듬어 쌓고, 다른 지역의 돌을 옮겨다 쌓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환해장성을 통해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것 한 가지. '성을 왜 쌓아야 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단순히 눈앞의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깃들어 있는 사람의 흔적과 마음을 떠올려보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제주도엔 외세 침입이 늘 있어왔기 때문에 죽지 않기 위해 해야 했던 일은 성을 쌓는 것이었다. 무너지면 쌓고, 또다시 무너지면 쌓아 올리는 일을 해오며 우리는 제주라는 섬을 지켜왔다. 그래서 지금을 사는 이들은 멋진 제주도를 감상하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56쪽

곤을동 환해장성

흔히 제주의 자연과 문화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유네스코(UNESCO) 3관왕'이라는 표현을 쓴다. 제주는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지구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4년에는 또 하나의 '유산'이 추가됐다. 바로 제주의 '밭담'이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지정된 것이다.

제주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차창 밖 풍경에서 누구나 봤을 법한 밭담. 제주시 월정리에는 밭담 체험장이 있다. 돌로 쌓은 밭담은 경계를 구분 짓고 바람과 짐승들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제주 어디에든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기 때문에, '황룡만리'(黃龍萬里)라 불리는 중국의 만리장성에 견주어 '흑룡만리'(黑龍萬里)라 불리기도 한다.

환해장성과 마찬가지로 밭담 역시 그곳에 널려 있는 돌을 그대로 이용해 쌓는다. 돌을 다듬거나, 돌 사이를 메우는 짓은 하지 않는다. 손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만 '악명 높은' 제주의 바람에도 끄떡없다. 구불구불 곡선으로 쌓은 담과, 돌 사이의 성긴 구멍이 바람을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간혹 밭담을 허물고 콘크리트 담을 쌓는 경우가 있는데, 태풍이 지나고 나면 허물어져 있는 쪽은 늘 콘크리트 담 쪽이라고 한다.

김영훈 대표는 밭담을 "제주의 인문학"이라고 표현했다. 제주의 돌은 8모. 이웃한 돌과 맞는 면을 찾으려면 여덟 번을 돌려야 한다. 돌을 깎거나 다듬지 않고, 돌리고 또 돌리며 이웃과 어울려가려는 노력. 자연에 순응하고 사람을 존중하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인문 정신이 밭담에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김영훈 대표는 "정치인들이 제주에 오면 꼭 밭담 쌓기 체험을 해야 한다"라며, "돌을 돌리고 돌려서 맞는 면을 찾아야 하니까 싸울 일이 없어진다"라고 뼈 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제주의 인문학" 밭담

밭담 안쪽으로는 '산담'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산담은 오름 주변 또는 밭 한가운데에 돌로 담을 두른 무덤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주인은 돌에서 태어나 돌 속에 묻힌다"는 김형훈 국장의 말이 실감이 났다. 돌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 돌로 쌓은 골목길(올레)로 이어진 마을에 살고, 밭담을 두른 밭에서 일하면서 살림을 일구고, 산담 안 무덤에 눕는 것으로 삶을 마친다.

산담은 네다섯 겹의 돌담을 네모 모양으로 둘러 쌓아 만든다. 네 꼭지점은 기와집 처마처럼 끝으로 갈수록 솟아올라 있는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20세기 최고의 설치미술가인 크리스토(Christo Javacheff, 불가리아 출신의 미국 환경조각가)도 제주의 산담 앞에서는 오금을 펴지 못할 것이다"라고 극찬했다.(<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19쪽 재인용)

김형훈 국장도 산담을 "예술이 된 죽음"이라고 표현하며, 제주 여행을 할 때 반드시 들러야 할 한 곳을 고르라면 "오름에 있는 산담"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산담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주 고유의 매장형태로, "제주인들의 정신세계와 뛰어난 예술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그는 산담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꼬집으며 "10년 이내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덧붙여 산담을 시급히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예술이 된 죽음" 산담

☞ 2편으로 이어집니다.([김형훈의 진짜제주 2] 제주는 제주대로 좀 "냅둬요!") 


취재 : 최규화(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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