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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05. 2016

[김형훈의 진짜제주 2] 제주는 제주대로 좀 냅둬요!

                 

☞ 1편에서 이어집니다.([김형훈의 진짜제주 1] 카페 가려고 왜 제주에 와요?)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저자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

밭담을 둘러본 뒤 우리는 월정리 해변을 지나갔다. 육지 사람들에게 카페촌으로 유명한 곳이다. 김형훈 국장은 그곳을 "이미 제주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 "10년 후 완전 개발될 제주도의 예고편"이라고 비판했다. '이곳만은 제발 가지 마라' 하고 뜯어말리고 싶은 곳으로도 월정리 해변을 꼽았다. 제주 사람들은 월정리를 찾는 육지 사람들을 보고 '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려고 굳이 제주까지 왔을까' 의아해 한다고 한다. 김형훈 국장 역시 "그 지역다운 걸 찾는 게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데, 왜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월정리 해변의 땅값은 제주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치솟았다. 평당 천만 원을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 이미 눈길 닿는 곳마다 카페가 자리했지만, 아직도 카페를 하려는 사람들이 꾸준히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월정리 해변은 제주도 최대의 해안사구가 발달한 곳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지. 김형훈 국장은 "월정리 모래언덕은 해안도로 건설 탓에 1차 파괴를 당한 데 이어, 계속 지어지는 건물 때문에 2차 파괴를 당하고 있다"(<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300쪽)라고 걱정했다.

312쪽 분량의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를 딱 세 글자로 줄이면 "냅둬요"가 될 것 같다. 김형훈 국장은 책 곳곳에서, 무질서한 개발 때문에 제주다운 모습을 잃어가는 제주의 현실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제주를 제주 그대로 지키기 위해서 제주 사람들은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을까? 김형훈 국장은 "좋은 답을 해드리지 못하겠군요"라는 말로 대답을 시작했다.


"개발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극히 적습니다. 자본이 만들어둔 틀에 제주도민들이 갇히고 말았어요. 부동산이 들썩입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폭으로 가격이 오르고 있어요. 그걸 문제라고 인식하기보다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죠. 땅값이 오르면서 자신이 딛고 있는 땅과 자신이 경작하는 밭도 덩달아 높은 값을 매기고 있구나 그런 생각만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제주도에는 제2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2015년 11월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에 586만1000㎡에 달하는 후보지를 발표했다. 주민들은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형훈 국장은 "제2공항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같은 제주도 사람들도 잘 이해를 못해요. 그 마음만 이해를 한다면 개발의 문제점에 대해서 공유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토지가 수용되면 갈 곳이 없어지는 이들의 절박함에 마음에서부터 '연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주가 잃어가고 있는 것은 자연의 경치나 삶의 터전만이 아니다. 문화와 생활의 틀인 언어, 제주어가 사라지고 있다. 유네스코는 2011년 제주어를 '소멸 위기의 언어'로 분류했다. 김형훈 국장은 현재 제주어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세대가 70대 이상인 점을 상기시키며, 가정에서부터 제주어를 좀 더 써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제주도와 교육청이 제주어를 지키기 위한 조례 등을 만들어 노력하는 점을 인정하면서, 개인 차원의 노력이 더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고유의 자연과 고유의 문화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비단 제주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서나 수십 년째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다. 김형훈 국장은 "싱크 글로벌, 액트 로컬"(Think global, Act local)이라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말. 그만큼 보편적이지 않은 특수한 것은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그는 "대한민국만의 것의 가치를 알리고, 제주도만의 것의 가치를 서로 공유할 때라야 그 지역이 지닌 가치를 더 드높일 수 있는 겁니다"라며 지역 고유의 가치를 지키고 공유하는 것의 중요함을 재차 강조했다.


제주의 숲 곶자왈, 동백동산


깎이는 오름, 사라지는 곶자왈… 제주를 지켜주세요


이튿날 여행을 시작한 곳은 제주시 선흘리의 동백동산(冬柏東山). '제주의 허파'라 불리는 곶자왈을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선흘리 동백동산은 제주도기념물 제10호로 지정돼 있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난대성 상록활엽수 천연림. 식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숲길에서 보는 광경부터 육지의 그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돼 곶자왈을 지나면서 '말 한 마리 제대로 지날 수 없고 하늘도 보이지 않는 길'이라고 표현한 것이 딱 들어맞는다.

제주가 개발에 신음하기 시작하던 때에도 곶자왈만은 '생명의 숲'으로 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숲이라고는 하나 돌밭이라서 목장이나 농지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곶자왈에도 개발을 넘어 파괴의 손길이 뻗쳐 있다. 김영훈 대표는 "제주 시내 골프장은 전부 곶자왈이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말이 어느 정도나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에도 동백동산과 바로 맞닿아 있는 곶자왈에 '사파리월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걸 보니 곶자왈의 위기가 심각한 상황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나저나 참 신기했던 것이 하나 있다. 7월 말은 최고의 휴가철. 비행기를 타기 전에 김포공항에 들어찬 사람들을 보며, 제주에서도 여행객들이 너무 많아서 여행을 제대로 못할까 걱정했다. 하지만 1박 2일 동안 우리 일행을 제외한 육지 여행객들을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의 곳에서는 아예 다른 여행객 자체를 찾아볼 수 없었고, 그나마 동백동산에서는 제주 현지 여행객들 두 무리를 만났을 뿐이다. 정말 어떻게 '그런 곳'만 골랐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이어 찾아간 곳은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아부오름이었다. 구좌읍은 '오름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오름지대. 아부오름은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등 잘 알려진 오름들과 이웃하고 있다. 분화구 주변의 화구륜을 따라 걸으니 가까운 곳의 오름들부터 멀리 한라산까지 눈에 들어왔다. 7월 말의 땡볕이 유일한 방해꾼이었지만, 구름 없이 맑은 날씨 덕분에 깨끗한 경치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으니 나쁘지 않았다.


김형훈 국장은, 오름은 오직 제주 사람 곁에만 머물러 있는 "정말 제주만의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를 진정 느끼려면 한라산보다 오름에 올라야 한다며, 오름에는 "한라산이 주지 못하는 감칠맛이 있다"고 했다. 제주에 있는 오름의 수는 모두 360여 개. 하루에 하나씩 올라도 1년이 꼬박 걸린다. 누군가 제주의 오름들을 1년 동안 모두 오르고 나서 그에 대한 책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상적인 것은 오름을 내려오며 만난 소떼였다. 우리 일행들이 내려가는 앞길을 가로질러서 느릿느릿 걸으며 풀을 뜯고 있었다. 소 방목지와 사람의 통행로를 구분하는 것은 없었다.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본 소 중에 가장 깨끗하고 예쁜 소의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오름 곳곳에 지뢰(?)처럼 떨어져 있던 소똥만 보고 갔더라면 좀 섭섭했을 텐데, 소떼의 장관을 봤으니 참 다행이었다.


'오름의 천국' 구좌읍의 아부오름



아부오름에서 만난 소떼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혼인지(婚姻池)와 삼사석(三射石)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제주 사람들의 시조인 고씨, 양씨, 부씨, 삼성신인(三姓神人)은 삼성혈에서 솟아났다. 세 신인이 동해변에 떠오른 석함을 보고 쾌성을 질렀다는 쾌성개, 석함이 닿은 천연포구인 오통, 석함에서 나온 벽랑국 세 공주들과 신인들이 상견례를 했다는 의자바위(왕자의 석), 세 공주가 목욕재계를 했다는 옥탕(갱의탕), 신인들과 공주들이 혼례를 올린 혼인지까지. 서귀포시 온평리에는 제주의 삼성신화가 현실의 이야기로 존재함을 확인시켜주는 현장이 여러 곳이다.


제주도기념물 제17호인 혼인지에서는 세 신인들이 공주들과 첫날밤을 보냈다는 굴도 볼 수 있었다. 땅 아래로 나 있는 굴 속으로 들어가 봤더니, 몇 발짝 들여놓지도 않았는데 바깥의 더위는 싹 사라지고 없었다. 원래는 혼인지를 둘러보기 전에, 제주 사람들도 정확히 어디인지 쉽게 찾지 못한다는 오통을 찾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물때가 맞지 않아서 가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제주도기념물 제4호인 삼사석은 화북주공아파트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있었다. 신화의 현장 바로 앞에서 먹고 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떨까 잠시 생각해봤다.



삼성신인과 세 공주가 혼례를 올렸다는 혼인지


삼성신인이 쏜 화살이 꽂혔다는 삼사석


김영훈 대표는 "외국인들은 온평리 삼성신화 유적지를 굉장히 흥미로워 하는데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단순히 유적지에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온평리는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의 핵심. 공항 예정 부지의 약 76%가 온평리 지역이다. 오름이 깎이고 동굴은 사라질 것이다. 온평리 곳곳에 눈에 보이지 않게 살아 있는 제주 사람들의 신화는? 김형훈 국장은 제주 사람들뿐만 아니라 육지 사람들의 관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주를 제주답게 지키는 것은 "생각의 공유"로 가능하다.


"(육지 사람들이 제주를 지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생각의 공유라고 봅니다. 그에 앞서 제주도민들의 자각이 필요합니다. 주변에 돈을 버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는 착각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죠. 개발이 된다면 그렇지 않다는 걸 인지시키는 게 우선입니다. 우선 도민 스스로 깨우치고, 그렇게 깨우치는 환경을 육지 사람들이 공유해주는 겁니다."


취재 : 최규화(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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