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가지 금기조항은 벗어났다 판단되는 외에, 이씨의 외모에 반하기도 했을 김씨. 그러나 이씨는 김씨의 외모에 처음부터 실망하고 말았단다.
"느그 어메한테 일곱 가지 숭이 있넌디... 첫째는 목이 짤릅고, 두째는 살이 검고, 시째는 눈 끄턴머리가 우게로 치달아 매고, 니째는 광대뼈가 불거지고..."
그럼에도 결혼이 성사된 데에는 백부님의 공로(?)가 컸단다.
"본래 느그 큰아부지한테 큰어메가 따로 있었시야. 시방 큰집에 있는 큰어메 말고, 큰큰어메락 해야 쓰겄다마는. 느그 한아씨가 고르신 양반인 디, 키는 짝달막허제마는 본 양심이 착허고 무던허니라. 그런디 느그 큰아부지가 기생년 치매폭에 싸여갖고 정신을 못 차리신 게, 하로는 큰큰어메가 방을 걸어 잠그고는 안 열어 주었든 갑이드라. 옛날에는 질투허는 것도 칠거지악(七去之惡)에 들어간다고 했그든. 시상에 문 그런 법이 다 있으끄나? 느그 할메도 첨에는 큰큰어메 편을 드시다가 언칸 고집이 시고 그런게, 큰아부지가 쫓아 내는대로 냅두고 보셨든 생이여."
그러나 비록 소박을 맞았을지언정 조강지처를 내친 큰 형님의 처사와 형수의 독수공방(獨守空房)이 부당하다고 여겨온 이신만씨가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들여오고자 했단다.
"나는 그런 속도 몰르고 엉겁전에 식을 올렸넌 디, 신하리 느그 외갓집으로 와서 첫날밤에 허는 소리가 내가 장개를 온 것은 그쪽이 좋아서가 아니요. 큰성님한테 소박맞고 지금 접방살이허고 있는 성수씨를 모셔올라고 그런 것인 게 그리 알고, 내일 무라리 가드라도 나는 성수씨 허고 같이 안 들어가먼 집에 안 들어갈란 게 그리 아씨요 그러드란 마다. 나 참, 기가 맥해서..."
"킥킥킥! 되게 웃기네 이."
"그때는 웃음도 안 나와야. 차말로 금방 결혼을 파토라도 낼 기세드란 게. 그래서 내가 첫날밤에 이 문 꼴이디야 싶어 암 말도 않고 있은 게는, 손꾸락 하나 안 대고 잠만 퍼질러 자야. 나 참..."
스물세 살 꽃다운 신부는 잠자는 신랑 옆에 족두리도 벗지 못한 채, 밤새도록 앉아 있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요 자다가 봉창 뚫는다데이, 이 문노모 도깨비 같은 짓인가 싶드라. 결혼이 아그덜 장난인 줄 아는가 싶기도 허고, 생각헐수록 비어(화)도 나고. 첫날밤 신방에서 성수씨 말이 왜 나오냐?"
이튿날. 무라리 시댁으로 향하는 신부의 가마 앞에는 투기죄(妬忌罪)로 소박맞았던 ‘큰큰어메’가 서 있었다.
"근디 큰큰어메는 어째 또 나가 버렀단가?"
"느그 큰아부지 맘이 벌써 기생년한테 가 계신 줄 알고 그랬지야. 그런 디다가 또 느그 큰큰어메가 연거푸 아들을 둘이나 낳았넌 디, 다 죽어버렀그든. 시상에! 고로코도 이쁘고 영리허끄나 이. 집안이 안 될라고 그랬는가 느그 큰큰어메 팔자가 사납게 될라고 그랬는가 몰라도, 인자 개우 딸 하나 남었지 않냐. 느그 분희 누나라고..."
"광주 사는...?"
"진작 시집가서 벌써 아그들이 닛이냐 다섯이냐? 큰놈이 우리 태국이 허고 동갑인 게, 쭈르르 아들 닛에 젤 끄트머리에 딸 하나 낳았구나. 그 가시네도 즈그 어메 따라 삼시로 고상 많이 했어야 거. 어찌됐건 그 뒤로 혼자 사시게 되고, 대신 처녀로 시집온 느그 큰어메가 태준이 허고 성혜 년 낳고 시방까장은 잘 살고 있지 않냐."
"그러먼 나는 은제 낳았는가?"
"너? 태준이가 너보당 한 살 우게지야? 또 니 우게로 누나가 죽었은 게, 그 뒤로 한 일 년, 아니 반년 있었으까? 6・25 끝나고 나서 전쟁 통에 장개 못 갔든 총각들, 시집 못 갔든 처녀들이 한 뻔에 가 버린 게, 동네에도 느그 또래가 많지 않냐?"
"맞어. 진짜 많네 이. 내 남자 동창만 스무 명이 넘어."
"꼭 모 부어 논 것 같이, 수를 실라먼 한도 끝도 웂지야."
태민이 태어날 무렵. 동족상잔의 비극이 끝난 지 삼 년이 지나 있었다. 전쟁의 포성은 멈추었으나, 아직도 그 상흔(傷痕)은 사람들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낮에는 국군이, 밤에는 인민군이 교대로 무라리 땅을 점령하던 때, 동네 사람들이 남쪽의 봉덕산 꼭대기에 꽂혀있는 깃발의 신호에 따라 움직여야 할 때를 이씨는 이렇게 기억해냈다.
"모다들 남촌 너머 산꼭대기만 쳐다보고 있다가, 기가 올라가먼 남녀노소 불문허고 터진게 넘어 대절산 쪽으로 도망을 치는 것이여어. 여그서 한 시오리 될 거이다마는. 산속에 깍 숨었다가 인민군이 물러갔닥 허먼, 또 동네로 오는 것이고..."
"걸어서...라우?"
"그러먼 걸어서 왔다갔다 허제, 그때 문 자전거가 있겄냐? 뻐쓰가 있겄냐? 그것도 큰길로는 못 오고, 석구미쯤에서 터진게 근방까장 바닷길로 오는 것이제에. 근디 하로는 그때가 음력 정월쯤 되얐을 것이다."
살을 에는 듯한 바닷바람이 귓불을 때리는데, 변변치 않은 옷가지와 공포감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잔뜩 얼어붙은 채였다. 납북(拉北)된 둘째 백부의 큰아들로서 당시 아홉 살이었던 사촌형 태봉은 여섯 살배기 동생의 손을 잡고, 사람들 틈에 끼여 돌아오던 중이었다. 사르르 얼음이 언 바닷물 아래의 뻘은 마치 철거머리처럼 가녀린 발들을 붙들어 맸다.
"느닷웂이 태성이가 자빠짐시로 백락같이 소리를 치는 것이여어. 느그 둘째 큰아부지 작은 아들이겄지야 이."
"..........?"
"째깐헌 것이 오메이! 성아야. 내 발이 막 빠진다고, 그랬을 것 아니냐? 그런게 태봉이, 그것도 째깐헌 것이 뭇을 알겄냐마는, 젖 먹든 심까지 써 감시로 손을 잡어 댕기는디, 그런다고 따라 오겄냐? 태성이는 아프다고 소리를 치제, 몸은 오무락딸싹도 않제... 사람 상헐 일이지야 이."
"으런들은 뭇허고라우?"
"으런들이라고 밸 수 있디야? 다지금 살기도 바쁜 시상인 디. 날은 오살나게 춥제, 인민군은 은제 쳐들어올지 모르제. 그런게는 앞만 보고 가지야. 그때는 사람 하나 죽는 것이 암 것도 아니여어. 포리 목숨이란 게. 그래도 한 핏줄이라고 느그 시방 작은 아부지, 신근이가 같이 잡어 빼다가 도저히 안 되겄은 게..."
이 대목에서 이씨는 담배를 빼 물었고, 태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시 열아홉 살 총각이었던 숙부의 슬픔어린 독촉.
"폴세 글렀다. 태봉아. 가자. 너라도 살아야제. 글 안허먼 둘 다 죽는다 이."
"안 해라우! 우리 동상인 디, 어쭈코 나만 간다우?"
아무리 죽음에 익숙해져 있다 한들, 한 몸에서 나온 피붙이가 두 눈 부릅뜨고 살려 달라 소리치는데 차마 그럴 수는 없었으리라.
"이 자석아! 빨리 가잔 마다."
"안 해라우! 나는 동상이랑 같이 가야 헌단 게라우. 삼춘, 우리 동상 조까 살래주씨요."
발을 동동 구르는 태봉을 ‘삼춘’이 힘껏 잡아끌었다. 그때 태성의 피맺힌 절규가 칠산 바다 위로 메아리쳤다.
"성! 가지 마. 나랑 같이 가잔 게. 성!...성!...성..."
"태봉아. 뒤 돌아보지 말고, 싸게 가자. 산 사람이나 살아야제에."
"안 해라우! 안 헌단 게라우..."
마침내 '삼춘'의 손이 그의 뺨을 갈겼다. 거꾸러진 그를 일으켜, 양쪽에서 한 사람씩 가녀린 팔을 동동 들어올렸다. 허공에 허우적거리며 그는 한사코 뒤를 돌아보았고, 태성은 점점 멀어져가는 형과 삼촌, 동네 사람들을 멀거니 바라만 보았다. 소리 지를 만한 기력도 사라지고, 양 볼에 흐르던 눈물마저 차디찬 칠산의 해풍에 얼어붙었다. 잔인한 바람은 그렇게 불고 있었다.
"말을 허자먼, 어디 그 뿐이디야? 느그 진수 성은 또 어쨌디야. 뻔히 눈앞에서 즈그 아부지가 총에 맞어 죽는 것을 봤지 않냐?"
"진수 성이라우? 그러먼 작숙도 고로코..."
큰 고모의 가족사 역시 한 편의 비극이었음을.
"그러지야. 느그 작숙, 말허자먼 고숙도 고로코 돌아가신 것이여어."
역시 대절산으로 피난 갔다 돌아오던 길에, ‘터진게’ 다리 위에서 인민군들에게 사로잡힌 그는 다른 마을 사람들과 함께 즉결총살을 당했단다.
"너, 인민재판이라고 아냐? 맬급시 사람을 죽인닥 허먼 안 되겄은 게, 재판이란 것을 허기는 헌단 게. 그런디 그것이 다 요식행위지야. 이 사람 죽이는 디 반대허는 사람 손 들으락 허먼, 누가 들겄냐? 그랬다가는 똑같은 반동분자라고 해서 그 자리서 죽애 버리는 디."
"개새끼들이네요 이."
"그러고는 그 자리서 빵! 총을 쏘아 버러. 민주국가에서 재판은 최소한 시 번은 허지 않냐? 그런디 딱 한 번으로 끝내 버린단 게. 아따! 눈뜨고는 못 봐야. 창시가 옴막 뀌어져 나왔넌 디, 인자 댓 살 먹은 아그가 뭇을 알겄냐? 즈그 아부이 몸뚱아리를 쳐다봄시로, 막 울기만 허는 것이여어."
눈앞에서 벌어진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앞으로 닥칠 자신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아! 사람 좋아 보이는 진수 형이 그처럼 피맺힌 과거를 안고 있었다니.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