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세상이 좋아져서 그러제, 차말로 인공 때에는 사람 사는 것도 아니었다."
"여그도 공산군이 들어 왔대요?"
"들어왔다 마다. 여그 백수 지역이 전국에서 젤 꼬래비로 수복이 된 디여. 길룡리나 대신리 쪽은 산이 험허고, 또 바다가 툭 터져서 접근허기가 좋그든. 이북에서 배를 띄우고 가만히 놔두먼 이리 닿는다고 안 허디야? 조류(潮流)가 고로코 해준다 그 말이여어. 그런게 휴전이 되고나서도 빨치산들 땜에 군인들이 못 들어왔단 게. 그래 갖고 머슴이 주인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젊은 놈이 낫으로 사람들 목을 쳐 죽이고 그랬제 어쨌디야?"
"어째서라우?"
"맻 년 전에 저한테 욕했다고 배때아지 쑤시고, 또 농사 지음시로 밭뙤기 쪼까 먹어 들어왔다고 옆집 한아씨 목을 치고 그랬어. 그도막 즈그덜이 설움 받고 살았넌 디, 인자 못사는 사람들 세상이 왔다고, 세상이 뒤집어졌다고. 그때 애문 사람들 많이 죽었니라."
"차말로 개새끼들이네요 이."
"너는 배우는 학생인 게, 욕은 허지 말고. 그래도 우리 서촌 같은 디는 양반 동네라 쪼까 덜 했넌 디, 다른 동네는 땅 가진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야. 막상 말로, 요즘에도 못사는 사람들은 세상이 뒤집어지기를 은근히 바래는 것 아니냐? 왜냐먼 죽지 못해 사는 목숨일 바에야, 뒤집어져 본들 손해 볼 것이 웂그든. 밑져야 본전이란 말이여어."
".........."
"내 말을 정리허자먼 에...첨에는 인민군한테 당허고, 쪼까 더 있다가는 빨치산허고 머슴한테 당허고, 난창에 해방되야 갖고는 서북청년단인가 뭇인가 들어와서 난장판을 치고..."
"그때 아부이는 뭇했넌디요?"
"나? 내가 그때 스물두 살, 대학교 댕길 땐 게 군대에 잽해가먼 다 죽는 디 어찔 것이냐? 동네서 내 동갑이 열둘인 디, 그때 끌려가 싹 죽어뻔지고 인자 포도시 나 포함해서 둘 살아 있다. 그래서 잠깐 피해 있었지야. 병역기피자라고 어뜬 사람은 그러제마는, 박 대통령 나오고 나서 부역으로 다 때았어야. 죄 닦음 했다 그 말이여어. 암튼 그때 느그 큰아부지가 동네 이장을 허셨그든. 근디 인민군들이 들어와서 총구먹 갖다 대고 밥을 해 주락 헌 디, 천하장사라도 안 해 주고 전디겄냐? 그랬다고 인자 수복이 되야 갖고는, 또 군인들한테 당헌 것이여어."
"어째서라우?"
"공산당에 협조했다고, 부역인가 뭇인가 했다고 개 패드끼 팼단 게. 마당이 피로 낭자 되야 버리고... 아이고! 징헌 노모 세상. 김태식이라고 좌익 운동했든 사람이 하나 있었넌 디, 참 재주가 뛰어나고 몸 할라 무저게 날랍고 그랬그든."
".........."
"사람들이 말은 안 했제마는, 모다 좋아했었넌 디... 아이! 이 양반이 수복이 되야 갖고 피해 댕기다가 하로는 우리 동네로 들어왔든 생이드라. 친척 집 곳간에 숨어 있넌 디, 딱 군인들이 들어 닥친 것이여어. 밀정! 요새 말로 허먼 스파이한테 정보를 얻은 것이제에. 그런게 소막간으로 꺼꾸로 뛰어들어 갖고 그 자리서 죽어 버렀지야."
"죽어 버러라우? 차말로라우?"
"쌀밥 먹고, 내가 뭇 헐라고 너한테 그짓말을 허겄냐? 잽해 갖고 이리 저리 당허고 죽는 것보당 낫다고 생각헌 것이제에. 요새도 밴소에 빠져 죽은 아그덜 간혹 안 나오디야? 그런디 거꾸로 퐁당 빠져 버렀으니... 그 징헌 냄새는 고하간에, 숨 못 쉬먼 죽제 밸 수 있디야? 그런디 군인들이 그 시체를 끄집어내 갖고, 총으로 맻 번을 더 죽이드란다."
"징허네요 이."
"그런 게 밸 일이 있어도 전쟁은 안 되야. 전쟁은 사람을 짐승으로 만든다고 안 허디야? 생각해 봐라. 머리 우게는 하늘이 있고 발밑에는 땅이 있넌 디, 사람이 그래서야 쓸 것이냐? 내 부모 죽인 원수라고 내가 그 사람을 죽이먼, 그 사람 아들은 또 나를 원수라고 죽일 것 아니냐? 따지고 보먼 우리 모두가 단군의 후손들이고 한 핏줄 한 형젠 디, 동족끼리 총부리 겨누고 그랬으니. 세계역사에 이런 일이 웂다고 안 허디야? 그럼에도 그것이 또한 이 땅에서 일어난 엄연헌 현실이었고, 피맺힌 역사였다 그 말이여어."
"아부이가 살아 있은 게, 나도 생개나고 그랬제라우 이?"
"그러지야. 내가 죽었어 봐라. 니가 세상에 나오기나 허겄냐? 나보고 기피자라고 허는 디, 솔직히 그때 기피 안 허먼 살아남기나 했디야?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단은 살고 봐야 허는 것이여어. 아까도 말했제마는, 잽해 간 사람은 싹 죽었단 게. 군인이 아니라, 총받이여 총받이..."
".........."
"그러고 그때 글깨나 배운 인테리치고 좌익에 안 빠진 사람이 맻이나 되간디? 좌냐 우냐 어느 쪽이 옳은가 확신이 안 스는 디, 고냔시 한쪽에 섰다가 쌩목숨 바치먼 쓸 것이냐?"
".........."
"우리 생전에 순사들 허고 서로 좋게 지낼지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은 게..."
"순사라우?"
이 대목에서 이씨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시방은 순경이라고 안 허디야? 막 수복이 되야 갖고 빨갱이 잡으러 댕길 때는, 고것들도 군인들이랑 한 통속이었그든. 그런 게 동네사람들이 철천지원수로 생각했지야. 누가 지 식구들 잡으러 댕기는 사람을 좋아허겄냐? 서로 숨개 주니라고 바뻤제."
“그러먼 아부지. 어디 쪽이 우리 팬이라우?" "응? 그때그때 다르지야. 미국이 우리를 도왔다고 허제마는, 엉뚱헌 사람들도 많이 죽앴그든. 또 인민군이 사람을 많이 죽이긴 했어도 김일성이가 시키지 안 했을 수도 있고. 야이 놈들아! 다 죽애버리먼 누구허고 정치허란 소리냐고 막 무시락했다는 말도 있드라. 그래도 애당초 전쟁을 일으킨 쪽은 고놈들인 게, 당연히 고놈들이 잘못했지야."
징집되어 가는 즉시 한 줌의 재로 돌아오는 또래들을 바라보며, 또 어느 쪽이 옳은가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아 병역기피자가 되었다고 하는 이씨의 자기정당화. 태민은 스스로의 몸을 만져보며 그의 선택이 참으로 현명했다고 생각했다.
"전쟁은 끝났넌 디 기피자를 잡으러 댕긴다고 해서, 하로는 느그 외갓집 동네로 숨어 버렀지야."
"신하리로...라우?"
영광읍에서 서쪽으로 오 리 남짓 떨어진 촌락.
"무라리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해 갖고 서로 고발허고 복잡했넌 디, 그 동네는 기피자가 웂다고 소문이 나 있었그든. 그런게 잡으러 댕기는 사람도 웂겄지 싶드라. 장개 막 가 갖고 을마 안 되았을 땐 디, 느그 큰이모네 집으로 안 갔디야. 동네 끄턴머리 젤 높은 디가 있은 게, 읍에서 들어오는 껄막이(골목이) 멀찌막히 내래다 보이는 디다가, 아차 허먼 나무가 찍찍헌 뒷산으로 도망치기도 좋고 그래서..."
방 윗목의 아래를 파서 지하방을 만든 다음, 아차하면 그곳으로 피신해 있다가 더 다급해질 경우 굴뚝과 다른 방향으로 난 길로 빠져나가면 바로 뒷산이 나오도록 되어 있었단다.
"따지고 보먼, 느그 아부지 땜에 큰 이모 고생도 많이 했어야. 그 공도 모르고, 친정에 조까 갈란닥 허먼 소리치고 그러는 디..."
"나는 외갓집이 좋드라."
"나사 점빵(가게)허고 농사 땜에 한시도 틈을 못 낸 게, 느그덜이라도 댕개야제 어찔 것이냐? 지척이 천 리락 허데이, 엎어지먼 코 닿을 디를 일 년에 한 번도 제대로 못 가니. 나 같은 불효자식도 웂을 것이다. 살아생전에는 그랬다 헐망정, 느그 외한아씨, 외할매 일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제삿날도 못 가니, 인자 죽어서 저승에 가먼 어쭈코 낯바닥을 뵈오끄나?"
친정 말이 나올 때마다, 김씨는 눈물 바람을 했다. 하지만 태민의 경우, 외가만 생각하면 신이 났다. 외사촌 형들이 끔찍이 아껴준 데다, 무라리에서는 구경하기 쉽지 않은 참외나 수박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까닭. 외가에 가려면, 가게 앞에서 버스를 타고 사십여 리를 달려 읍에 조금 못 미친 언덕에서 내리면 된다.
이곳에서 산길을 따라 걸어가노라면, 길 양편으로 콩과 옥수수, 수수, 고구마, 참외 잎 등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하얀 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가 이 꽃, 저 꽃을 옮겨 다니며 부지런히 꿀을 모으는 장면 앞에서 넋을 잃고 있다가, 벌들이 윙윙거리는 통에 질겁하기도 했었다.
황토밭 가운데의 노란 참외. 맹렬한 기세로 뻗어 나간 넝쿨을 좇다가, 진녹색의 이파리를 살짝 들추어내면 금색의 '보물'이 부끄러운 듯 몸을 숨기고 있었다. 줄무늬가 둘러진 단단한 껍질 속에 불꽃과 같은 정열을 감추고 있는 수박은 태민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의 하나. 작열하는 태양 아래, 흙 속의 물기를 흠뻑 빨아 고이고이 간직하였다가 땀 흘린 농부들에게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수를 제공하는 그것이야말로 자연의 최고급 선물, 신의 걸작품이 아니던가.
무라리와 신하리. 태민에게 친가와 외가를 제공한 두 곳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논밭이 그런대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무라리에서는 벼나 보리가 주곡이었던 데 반하여, 황토밭이 태반인 신하리에서는 콩이나 옥수수, 고구마, 감자 등이 대종을 이루었다. 무라리 사람들이 '거칠고, 무식한 해변 촌놈'이라 업신여김을 받는다면, 신하리 사람들은 '속이 협량한 산골 무지랭이' 정도로 조롱을 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서로 닮지 않은 지리 및 지형, 환경은 이씨와 김씨를 서로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쯤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두 사람의 식성, 기질, 성격, 인생관은 너무나 판이했다. 이씨가 돼지나 닭 등의 육식을 즐기는 데 비하여, 김씨는 나물이나 채소, 과일 등 식물성 음식을 선호했다. 똑같은 국이 나와도 이씨가 국물을 좋아하는 반면, 김씨는 건더기를 더 챙겼다. 이씨가 성미 급한 다혈질인 데 반하여, 김씨는 냉철하고 차분한 편이었다. 이씨가 매사에 도전적, 적극적, 공격적인 데 비하여, 김씨는 모든 일에 현실적, 소극적, 방어적이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하는 것이 이씨의 신념이라면, '사람이란 모름지기 분수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김씨의 철학이었다. '남의 돈을 꾸어서라도 사업을 확장하고 보자'는 이씨와 '빚 없이 알뜰하게 사업을 꾸려나가자'고 하는 김씨. '돈이란 쓴 만큼 들어오게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이씨와 '단단한 땅에 물이 괸다'고 믿는 김씨. '내 몸과 내 인생도 충분히 중하다'고 생각하는 이씨와 ‘나야 어떻든, 자식들이 잘되어야 한다'고 믿는 김씨.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뿐'이라고 말하는 이씨와 '죽음 후의 세상은 반드시 있다'고 주장하는 김씨. 이씨가 말하기를 즐기는 편이라면, 김씨는 상대방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다. 매사를 '남의 탓, 나의 덕'으로 돌리는 이씨와 모든 일을 '나의 탓, 남의 덕'이라 말하는 김씨. 공평과 정의를 부르짖는 이씨와,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는 김씨. 보면 볼수록 둘은 너무나 닮지 않은 부부였다.
"그래도 부부간에는 안 타긴 것이 좋단다. 생각해 봐라. 둘이 다 똑같으먼, 어쭈코 살림을 헐 것이냐? 내가 느그 압씨같이 푹푹 쓰기나 좋아허먼, 결국에는 모다 쪼빡 찰 것 아니냐?"
"아부이도 어메같이 안 쓰먼, 더 좋제에."
"아니여. 남자는 베포도 있어야 허니라. 그래야 사업을 헐 것 아니냐? 또 예를 들어서, 국 한 그릇을 먹을 때도 그래. 똑같이 국물만 찾는달지, 건데기만 찾으먼 어쭈코 되겄냐?"
생각해 보니 딴은 그랬다. 서로 닮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 한 몸을 이룬 것은, 음과 양의 조화요, 하늘과 땅이 서로 돕는 이치일 터. 살다 보면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해야 할 때도 있고, 내실을 다져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돈을 써야 할 때도 있고, 아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타인을 귀하게 여겨야 하지만 나 자신도 소중한 존재이고, 내세도 좋지만 현세도 등한히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되, 내 주장도 할 때는 해야 한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경우 무작정 화를 내는 것도 곤란하지만,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잠자코 있는 일도 바람직하지는 않을 터. 산해진미의 진수성찬을 받아 이씨가 육류를, 김씨가 채소를 취한다면 깨끗하게 상이 비워질 것 아닌가? 국 한 그릇도 이씨는 국물을, 김씨는 건더기를 나눠먹었을 때 낭비가 없을 터. 그렇다면 두 사람이야말로 천생연분이로구나.
"우리 동네 호수가 백 이십 호가 넘제마는, 점빵은 우리뿐이지 않냐? 그런게 장사가 되는 것이제, 예를 들어 이 코딱지만헌 동네에 두 개, 시 개가 생기먼 물건이 팔리겄냐? 동네 사람들도 우리 점빵이 있어서 편리허고, 우리도 동네사람들이 있어서 좋고. 꽁꽁 얼어붙은 시한(겨울)만 있어도 못 살제마는, 이마빡 뱃개질 것 같이 땡뱉 여름만 있어도 징헐 일 아니냐? 세상 모든 이치가 조환 것이여어."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