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몽
"어메 어메. 우리 누나가 이뻤단가?"
"옥란이라고, 이뻤지야. 막 낳아 갖고 친정에를 갔데이, 지내가는 사람마닥 쳐다보고 몬차(만져) 보고. 오직했으먼 애기 닳아지겄다는 소리까장 나왔겄냐?"
"헤헤헤..되게 웃긴다 이."
"눈썹허고 눈알은 시컴허고, 낯바닥은 백설같이 히커고 그래논 게, 입 달린 사람마닥 오메이, 이것이 사람이디야 인형이디야 험시로 정신이 웂었단 게는."
".........."
"이뻐 봤자 뭇헐 것이냐? 메주같이 생갰어도 명이나 질었으먼 좋았을 턴 디...아홉 달 만에 죽어 버렀어."
생후 반년이 지난 5월의 어느 날. 아기는 젖을 거부하며 자꾸 고개를 숙였단다. 김씨는 아기를 들쳐 업고 읍내로 달음질쳤다. 의원 앞은 환자들로 북적였다.
"그때는 느그 압씨랑 신하리 있을 땐 디, 배까테서 애가 터지게 지달리다가 들어갔데이... 노인네가 암 뭇도 않고, 고개만 찌우뚱 짜우뚱 허고 있다. 아따! 폭폭증 나드라. 그런다고 모감지를 땅에 떨어치고 들어가먼, 느그 압씨가 카마이 있냐? 어째서 병원에 갔다 왔담시로 애기는 안 낫는고 험시로 내일은 다른 디로 한번 가보란 말이여, 소리만 백락같이 치고. 본래 타고난 승질머리에다가 숨을 구멍만 찾어 댕길 때라 더 승질이 사납고 헐 때그든. 그래서 또 다른 디를 가 봐도 마찬가지이고, 그 다음 날도 차도는 웂고..."
".........."
"몸에 병이란 것이 한 군디서 진득허게 치료를 받어야 낫든지 어찌든지 헐 것 아니냐? 그런디 여그 쪼까 댕기다가 쩌그로 가고, 쩌그 갔다가 또 다른 디로 가고. 그러다가 두어 달이 후딱 지내 가드란 마다."
"두 달이나...라우?"
"그때 내 애간장, 다 녹아 버렀다. 하로는 느그 작은 이모가 백수면 사무소가 있는 중앙교에 용허다고 소문난 의원이 있은 게, 한 번 가보라고 그러시드라. 그래서는 들쳐업고 막 쫒아갔지야. 들어슴시로부텅 체면 불고허고 매달렸어. 내 새끼가 죽어가는 판에 뭇을 개리고 말고 허겄냐?"
뜨악한 표정의 의원 앞.
"으런 양반! 죽일 때 죽이드래도, 문 병으로 죽는가나 알라고 왔구만이라우. 그래야 덜 억울헐 것 같어서라우."
"젖을 주어도 안 먹는다고라우? 그러먼 고개를 앞으로 숙입디까? 뒤로 젖힙디까?"
"예?...앞으로 숙이는 것 같던 디요? 근디 어째서라우?"
"알겄소. 뒤로 젖힌닥 허먼 어쭈고 해 보겄넌디, 앞으로 숙인닥 허먼 폴쎄 틀린 이야기구만이라우. 몸속에 있든 열이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 말이그등."
"..........!"
'애초에는 감기와 같은 가벼운 병이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것이 화근'이라는 의원의 말을 전하자, 이씨는 천장을 쳐다보며 끔벅끔벅 담배만 피워댔다.
석 달째 되던 팔월의 어느 비 오는 날 밤. 잠자리에 누우려는 찰나, 문짝 근방이 대낮처럼 환해졌고, 김씨는 질겁하였다.
"오메이! 저것이 무이다요?"
"응? 뭇이? 문 일이까? 이 밤중에 올 사람도 웂는 디..."
이씨가 문을 나가며 동서(同壻) 내외가 잠들어있는 큰방 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성님, 성님. 아까 혹시 후라쉬 비쳤습디요?"
"아니. 나는 배까테 나가도 안 했네마는..."
"거 참. 이상허네요 이."
"혹시 애기 혼불이 나간 것 아닐란가 싶네. 죽을라먼 미리서 나간다고 허그든."
"성님도 참 밸 소리를. 잠이나 주무이씨요."
아이를 팔베개하고 있던 김씨.
"옥란이 아부지. 암만 해도 내일은 무라리로 내래 가야 쓸란 갑이요. 죽이드라도 고향에서 죽애야 안 쓰겄소?"
"애팬네가. 죽이기는 누구를 죽애?"
무라리로 내려온 지 사나흘이 지난 날 밤. 초저녁부터 아기는 까무러쳤다 깨어 났다를 반복했다.
"시(세) 몸뚜이 어디 거천헐 디도 마땅찮고 그래서 큰집 작은 방에서 자고 있는 판인 디, 으런들 눈치 볼라, 일은 많은 디다가 몸은 고단허고. 오메이! 사람 상허겄드라. 그런 디다가 가시네는 오살나게 밤만 되먼 더 보채싼다. 저도 아퍼서 그랬겄제마는, 내 몸뚜이가 무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포도시 잠이 들었다 허먼, 느그 압씨가 소리를 질러싸코."
"어째서라우?"
"애기가 죽을지 살지 모르는 판에, 에미 년이 되야 갖고 시방 잠이 오냐고..."
깨어 있으려 애를 썼지만, 몰려오는 잠에는 장사가 없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다음, 이씨 앞에서의 변명.
"아이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 갑이네."
"에미가 그런 게, 애기가 안 났제에."
"...밸 소리를 다 허는 갑이요."
"뭇이 밸 소리여? 저 노모 애팬네가...칵 안!"
"인자 나도 모르겄소. 기왕에 죽을라먼 싸게 싸게 죽어라. 너도 고상 덜 허고, 나도 발 뻗고 잠 좀 자자. 느그 아부지 땜에 내가 몬차 죽개 생갰다.”
"저년이 저절로 터진 입이라고, 암치키나 씨부렁거리고 있네 이."
그러나 김씨는 이쯤해서 미련을 버리기로 맘먹었단다.
"말이 씨가 되얐는가 어쨌는가, 그날 저녁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버러야."
"죽어 버러라우?"
"응. 몸이 꼭 불때이 같이 펄펄 끓데이 꼴까닥!..."
엉겁결에 튀어나온 자신의 부적절한 표현에 김씨는 잠시 움칫거렸다. 그러나 절명을 확인하는 순간, 슬프다기보다 차라리 후련했단다. 첫 아이가 세상에 나온 지 아홉 달 만에 저 세상으로 갔다는 사실이야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일이지만, 그 슬픔을 감당할 여유가 그녀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석 달 동안 밀린 잠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큰 짐을 부려 놓은 육신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들어있는 이씨에게는 딸의 죽음을 알리지도 않은 채.
"이런 말은 쪼까 이상허제마는, 잠이 꿀같이 달드라."
팔에 시신을 걸쳐놓은 채 한참을 자다가 누군가의 발길질에 놀라 퍼뜩 일어나 보니, 어느새 봉창이 밝아 있었다.
"어이! 일어나 봐. 애기가 어째 아무 기척이 웂네?"
"애기, 죽었어라우."
"뭇이여? 그러먼 새끼 죽애 놓고, 잠을 퍼질러 잤단 말이여 시방?"
"오는 잠을 어째라우? 아이고, 나도 찌긋찌긋허요. 지 팬허고 나 팬허게 잘 죽었제 어째라우?"
"저년 말허는 꼬라지 조까 보소 이. 저 노모 애팬네가 시방 정신이 해까닥 갔다냐 어쨌다냐?"
"그래. 해까닥 가 버렀소. 한 번 죽어버린 자식을 난들 어쭈코 허겄소? 그것도 지 운인디 밸 수 웂제라우."
김씨는 어느새 독해져 있었다.
"호래이보다 더 무서운 서방도 그 때는 눈에 안 뵈드라. 내 속으로 난 자식이 죽었넌 디, 세상에 뭇이 무섭겄냐? 그짓말 같제마는, 눈물 한 테기 안 나야."
"차말로?"
"차말로!"
이씨는 시신을 거적에 말아 항아리에 집어넣었다. 전갈을 받고 달려온 큰집 머슴은 항아리를 번쩍 들어 지게 위에 올려놓았다.
"본래 부모는 자식 묻는 디까장 따라가먼 안 된다는 말이 있그든. 근디 느그 압씨는 따라 가드라."
마당을 나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김씨의 눈에서 비로소 눈물이 쏟아졌다.
"시상에나 만상에나! 불쌍허기도 허다. 내 새끼야. 불쌍헌 내 딸아. 뭇헐라고 나와 갖고 고로코 급허게도 가냐? 저 시상에 가서라도 지발 편히 살어라. 악아, 부모 원망허지 말고 지발 잘 가그라 이."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