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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10. 2016

"부모 말 듣지 마라!" 배철현의 수상한 당부

종교학자 배철현 작가 인터뷰


그런 글이 있다. 길을 헤매는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해결책을 제시하면 읽는 사람은 평온을 되찾고, 글쓴이의 한마디에 공감하며 그 길을 따라가고 싶어지는 그런 글.


이런 글도 있다. 위안을 주기보다는 편견과 상식, 전통과 관습을 깨고 자신의 위대함을 찾으라고 꾸짖음을 주는 글. 그리고 자기 삶을 통째로 되돌아보게 만드는 글. 일상에 찌들고 관습에 젖어가는 자신을 깨어야 할 필요를 느낀 순간, <심연>을 만났다.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의 새 책 <심연>을 읽다보면 내 마음이 궁금해지고, 내 삶을 되돌아보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28개의 아포리즘은 편견에 사로잡히고 일상에 저당잡힌 삶을 망설임 없이 깨뜨려놓는 탓에 책을 읽다말고 잠시 멈춰야만 했다.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멈출 줄을 몰랐다.


"자기 잘못을 직시하는 사람이 천재이고 혁신가”


머리말부터 인상적이었다. 매일 아침 5km씩 달리고 히브리어로 시편을 읽는 것이 배 교수의 명상법이라고 했다. 사실 달리기와 성서 읽기가 명상이 될 수 있는지 몰랐다. 명상이라고 하면 산 속에 있다든지, 기이한 자세로 호흡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어리석은 질문에 그는 자기만의 장소와 시간을 지킬 때 '거룩함'이 생긴다며 자기 삶에서 중요한 것을 생각하고 그런 삶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삶에 대한 사랑이 인내가 될 때 비로소 '위대한 개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명상이 생각하고 사유하는 활동에 다름 아니라면, <심연>은 어떤 사유의 결과 탄생한 책일까? 그는 최근 ‘대한민국이 미끄러지고 있는 것’은 개인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우리가 얼마나 대화를 못 해요? 그냥 싸우기만 하잖아요. 그 이슈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사드 문제 생각해본 적 없고, 쌀 문제도 생각해본 적 없어요. 어떤 이슈가 생기면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의견이나 진영논리에 편승하는 게 전부예요. 그런 걸 보면서 개인이 깨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자신을 깊이 보는 힘을 키워야죠.


어떻게 자기 마음을 볼 것인지 고민하면서 '위대한 인간' 시리즈를 기획했어요. 첫 번째 시리즈 <심연>에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면, 자기의 못난 모습을 발견하게 돼요. 못남을 고치려고 수련을 하고 나면 자신을 한 단계 승화시킬 수 있어요. 그 과정을 거쳐 위대한 인간이 되는 거죠."


우여곡절 끝에 새끼 거북이들은 바다에 도착한다. 그들이 향해가는 곳은 바닥의 가장 밑바닥인 심연이다. 이곳은 그들이 가야하는 본연의 장소이다. 그곳에는 이들을 위협하는 큰 물고기들이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수압이 높아서 자신을 보호하는 등딱지와 배딱지를 단단하게 만드는 수련의 장소이기도 하다. 새끼 거북이는 1년을 홀로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비로소 '바다거북이'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 - <심연> 중에서 


<심연>은 고독, 관조, 자각, 용기, 네 단계로, 또 각각의 단계는 7개의 아포리즘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28개의 아포리즘은 어떻게 고르고, 또 어떻게 순서를 매긴 걸까? 자기를 찾아가는 사유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걸까?


"사람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12분이래요. 하루에 아포리즘 하나씩 12분만 읽으라고 나눠 놓은 거예요.(웃음) 젊은 분들이 쉽게 읽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고 했지만, 짧고도 강렬한 아포리즘을 순서대로 읽다보면 어느새 생각의 방향은 자기 마음을 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자기를 찾는 첫 번째 단계는 고독. 고독은 '자기가 꼭 해야 할 것을 알도록 주변으로부터 자기를 탈출시키는 작업'이며 그때 비로소 자신을 '관조'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자기를 보는 연습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못나 보이는지를 '자각'한다. 사람들이 자기를 관찰하지 않는 것은 자기의 못남을 볼 용기가 없어서이다. 그러나 자신의 못남을 받아들이고 자기 승화의 발판으로 삼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며 천재성이다.  

"자기를 관찰하면 내 자신이 못나 보이는 거야. 다른 사람은 모르는 내 잘못이 생각나요. 그런데 이걸 직시해야 돼요. 그게 천재고 혁신가예요. 부정적 자기를 껴안는 거죠. 자기 인식을 통해서 자기가 해야 할 임무가 생기는 거거든요. 자기 부정성을 인정하고 자기 삶에 새로운 걸 만들겠다고 작정하는 순간 천재가 나오는 거예요."


"답 잘 외우는 애들이 대학 와서 취직 공부만... 이런 사회는 죽은 사회"


우리가 사유하지 않기 때문에 천재가 되기는커녕 대화조차 하지 못한다는 배 교수의 진단에, 속은 쓰리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어쩌다가 대화도 못하고, 어쩌다가 사유하지 않는 삶에 익숙해졌다고 보는지 물었다. 


"학교 교육 시스템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거예요. 질문하는 힘이 정말 중요한데, 답을 잘 외우는 애들로 만들고. 그런 애들이 대학에 와서 다시 취직 공부만 하잖아요. 대학이 진짜 위기예요. 우리는 아직도 잘 외우는 사람을 똑똑하다고 하는데, 정보는 인터넷에 다 있잖아요. 정보를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그걸 자기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 똑똑한 거죠.


비행기를 만드는 건 칼텍(Caltech, 캘리포니아공대)이나 MIT(매사추세츠공대)가 아니라 조그만 동네에서 자전거포 하는 라이트 형제가 만드는 거지. 현실성 없어 보이지만, 글로벌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 첨단 과학을 끼고 결과를 산출할 능력까지 갖추는 게 천재성이죠. 그러려면 젊은 사람들이 풀리지 않는 이슈에 집중하고 남들 안 하는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런 사람이 없어요. 이런 사회는 죽은 사회예요." 



학교뿐만이 아니다. 미디어에서도 집에서도 스스로 생각해볼 기회는 없다. 부모님이 정답이라고 생각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따라 살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성공도 하고 행복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나 멘토를 따라 살고 흉내 낸다고 정말 행복해질까? 배 교수는 멘토를 찾고 거기서 위안을 받으려는 태도 역시 생각하는 습관을 방해할 뿐이라며 대답을 이었다.

 
"어릴 때부터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가는 걸 행복이라고 교육받고 자랐는데, 이건 후진국에서나 통하는 얘기죠. 인생을 내가 쥐고 가야 돼요. 뭔가를 할 때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 하고 싶어서 하는 힘이 있어야 돼요. 그래야 다른 사람의 열정도 내가 느낄 수 있어요. 그게 사랑이고, 사랑으로 연결돼야 다 같이 행복할 수 있어요.


핵심은 스스로 행복한 거예요. 그러려면 자기한테 집중하고 자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돼요.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내공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생각하게끔 자극을 주고 자기 삶에서 중요한 걸 가려내야 돼요. 이게 종교의 핵심이기도 하고요." 


배 교수는 자신이 '너무 윤리선생처럼 말했느냐'면서 껄껄 웃었지만, 학교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다른 사람의 진부한 말, '특히 부모님 말씀 듣지 말라'는 것이 그가 전한 당부였다. '스스로 화두를 만드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 위에 있는 것'이므로. 


그는 하루에 딱 한 번, 오후 다섯 시에 스마트폰을 켠다고 했다. 그날을, 자기 인생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보내는 방법 중 하나이리라. 행복해지는 길 위에 서기 위해 매일 12분만 고독한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취재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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