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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12. 2016

영원한 청년 김창완 "청춘의 반항은 세상을 바꾸는 힘"



"그러면 나는 잠시 전화기를 꺼둘게요. 매너니까."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찰나 휴대폰의 전원을 끄면서 그가 말했다. 가수 혹은 연기자로 익숙한 김창완이다. 그는 올해로 16년째 진행을 맡고 있는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의 오프닝 멘트를 모아 <안녕, 나의 모든 하루>를 출간했다. 벌레, 안경알, 계절, 행복, 사랑, 친구의 안부 전화 등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소한 모든 것들에 대한 안부 인사와 같은 이 글은, 매일 아침 그가 방송 직전에 직접 손으로 써 내려간 것이다. 말하자면 16년 동안의 아침이 기록되어 있는 셈이다.


잠시 책을 살펴보던 그는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 했다. 자신의 글을 예쁜 일러스트와 함께 가지런히 정리된 모습으로 마주하는 것이 새삼 낯선듯했다. 찬찬히 한 장씩 넘겨보다가 어떤 페이지에서는 마치 처음 보는 글처럼 새로워하기도 했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마치 어제 쓴 것처럼 생생히 기억이 난다고 즐거워하기도 했다. 


이번 인터뷰는 <안녕, 나의 모든 하루>처럼 그가 일상 혹은 삶의 화두로 삼고 있는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한 편안한 대화로 이어졌다. 책, 아주 오래전부터 고민해오고 있다는 인생의 질문, 청춘, 가난 등에 대한 것들이다. 그는 때때로 그림을 그려 자신의 대답을 설명하기도 했고, 차를 음미하며 고심하기도 했다. 이 책 속의 글 역시 이런 시간을 거쳐 완성되었을 것이다. 



"기성세대, 청춘의 야성을 우리 안에 가두고 있다"


Q <안녕, 나의 모든 하루> 읽으면서는 내내 '쉬어간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부터 신경 쓰지 않게 된 것과 그런 기억들에 대해 상기시켜주는 시간이었다고 할까요.


아직 나오지 얼마 안 돼서 나도 들은 건 많이 없는데, 오늘 아침에 엄마가 "친구 좀 주게 몇 권만 더 갖다 줘." 그러더라고. 재밌대요. 그러더니 뭐라고 그러더라? 글을 쫀쫀하게 썼다나? 할멈이 뭐라고 그랬는데. 아무튼 아기자기하게 읽히는 모양이더라고. (웃음)


Q 개인적으로는 233-234쪽에 있는 '나는 어디쯤에'와 '질문 하나'라는 글이 정말 좋았어요. 


이거? 어디보자. 이거 올 봄에 쓴 글 같은데… 어떤 글은 십몇 년 전에 쓴 것도 어제 쓴 것처럼 생생히 기억나는가 하면, 얼마 전에 써놓고도 기억을 잘 못하는 게 있어.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그런데 이 글이 왜 와 닿았어요?


Q 글쎄요. 딱히 답이 있는 글은 아니었지만 '나는 지금 어디쯤에 와있는지' 고민했던 마음을 읽어준 것 같았어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들이 아닐까요?


그렇지. 실존과 연결된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실존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자주 듣고 또 이야기하는데, 사실 실존을 체험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경험에 의해 이미 사실로 인지하고 있어요. 왜냐면, 우리는 사라지는 것만을 경험하니까. 하지만 어떤 존재가 탄생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요. 그 과정이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그 존재가 생겨나는지는 영원한 비밀이 되겠죠.


Q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니 젊은 세대에 대한 애틋함 같은 것들이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안녕, 나의 모든 하루>도 청춘들을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는데요. 선생님의 청춘은 어땠나요? 언뜻 소심하고 비관적인 사람이었다고 얘기하셨던 걸 본 적이 있는데.


누구는 대단했나 뭐… 다 포기하고 살았지, 정말로. 엄청 가난했어요. 정말 말도 못하게 가난했다니까. 그러나 가난한 삶이라는 게 어떻게 없을 수 있겠어요. 시대적으로 보나 수평적으로 보나 그런 세상은 늘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가난이 숙명이라면,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려는 힘들이 결국에는 이 세상의 역동성이 될 수 있다고 봐요. 그 세대의 방황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예요. 언제, 어디서든 존재하는 속성이에요. 나 역시 그랬어요.
 



Q 전에 1981년에 발표한 노래 '청춘'의 가사가 너무 슬퍼서 심의에 걸렸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는데, 25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 세대가 보이지 않는 프레임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프레임에 갇혔다고 해도 청춘들은 늘 슬픈 노래만 해요. 누군가 "청춘들은 발랄해야 해"라고 한다고 해서 발랄한 청춘들이 어디 있나요. 청춘이란 것은 늘 구질구질하고 늘 어른들이 재수 없게 느껴지는 것이죠. 만약에 지금도 그런 기준의 심의가 있다면 지금의 청춘들도 모두 심의에 걸릴 거예요. 청춘은 모두 '제임스 딘' 인 거예요. 그 반항, 청춘들이 불편해하는 것들이 사실은 세상을 바꾸는 어떤 힘인 거지.


청춘은 원래 그러한데 그것을 기성세대들 흔히 '어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런 '청춘의 야성'을 갖다가 좋은 방향으로, 사회의 거대한 에너지로 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우리에 가두다 보니 청춘들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이죠. 물론, 청춘들이 만족할 수 있는 그 세상이 바람직하다는 보장은 없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청춘들이 스스로가 만든 프레임에 가두는 것도 위험하다는 거예요. '청춘은 원래 이런 모습이면 안 되는데'라고 자기부정으로 시작한다면 그거야말로 웃기는 상황이 되는 거지. 스스로 프레임을 갖다 대고 '이건 내 모습이 아니야'라고 한다면 그 청춘이야말로 웃기는 청춘이죠. 거울 보듯 자신을 대면할 줄도 알아야 해요. '이건 내 모습이 아닌걸?'하고 부정한다면 곤란해요.


Q 사물이나 감정들에 대한 짧은 단상들이 그려진 책이잖아요. '안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도리어 책을 떠올렸어요. 책이라는 게 작가가 맞춰둔 초점으로 세상을 보게 해주는 안경과 같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선생님은 책이라는 사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실제로 책에 힘입은 바 없지 않지만, 나는 책이 너무 미화돼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본질을 오해하게 만들고, 또 그것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고. 그런 면에서는 책이 어쩌면 우리를 점점 더 미궁에 빠트리는 것이 아닌가.


책이 끌어내고 있는 세상, 책이 받치고 있는 이 문명이 인간의 실재와 얼마나 맞닿아 있는 것인 것, 그것에 대해서는 모르죠. 모르는 채로 계속 읽어왔고 간직해왔는데 과연 그 안에서 무엇이 해결됐으며 우리가 무슨 답을 얻었고 실제로 그것으로 무슨 힘을 얻었고, 또 사람이 얼마나 더 고양된 존재가 되었느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요즘에는 책이라고 하면 '출판업계 불황'이나 '표절 문제'나 이런 가시적인 문제들만 있지. 책이라는 것이 인간사와 어떻게 얽혀있는지에 대한 고찰은 별로 없잖아요.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 베스트셀러냐, 아니냐. 대부분이 이런 문제들이지. 하지만 이런 것들을 너무 상업적이라고만 비난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상업적이라면 또 어떻게 할 거야.



 "책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 시대의 로망 같은 것이 없을 수도 있어요."


Q 얼마 전에 인터뷰를 하면서 인상적이었던 말이 있었어요. 은희경 작가님과의 인터뷰였는데 "이제는 책을 당연히 읽어야 한다거나, 책을 읽지 않으면 더 이상 문화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고방식은 통하지 않는다"(2016년 07월 20일 북DB 인터뷰)라고요. 오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이것에 대해 한 번 여쭤보고 싶었어요.


책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고전적인 뉘앙스가 있어요. 그 뉘앙스를 현대에 와서 새롭게 해석할 수가 있느냐. 보통 책에는 지식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현대에 와서도 책이 그런 것을 담아내는, 혹은 수행하는 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겠죠. 현대에 와서 책을 읽어야 한다, 아니다라는 것 자체를 시시콜콜 이야기하기에는 책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 시대의 로망 같은 것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없는 것을 가지고 자꾸만 되살리자고 하는 모양새로 보일 수가 있는 거죠. 저는 요즘 나오는 3D보다 그 옛날의 흑백필름을 더 좋아해요.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 "흑백영화 너무 좋지?"그러면 그들 입장에서 어떻게 흑백필름이 더 좋을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그들에게 "흑백필름이 왜 별로야?"라고 물어볼 자신이, 저는 없어요. 결국에는 책도 똑같은 거예요.


Q 'TV 책을 보다' 진행자로 출연하고 계신데요. "프로그램 때문에 반강제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고맙다"라고 하셨어요. 단순히 책을 소개하기보다는 책 읽기의 방식에 대해 소개해주는 진행자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프로그램 진행 전과 후에 책에 대한 생각들이 어떻게 바뀌셨는지 궁금해요.


나처럼 책을 잘 안 읽는 사람이 진행하기를 잘한 것 같아.(웃음) 요즘 체험 프로그램 많잖아요. 난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책 읽기 체험’을 하는 셈이에요. 체험을 해 보니까 재밌더라고. 저에게도 이런 기회는 참 신선해요.

제가 책을 읽기 싫어했던 이유는 책을 정말 느리게 읽기 때문이었어요. 정말 하루 종일 읽어요. 찬찬히 읽다 보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없고 '아, 이거 토씨를 왜 이런 걸로 했을까?' 그러면서 그 부분에서 맴돌다가 진도를 못 나가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프로그램에 합류하면서) 책 보라고 이렇게 구박당한 건 내 평생 처음이야.(웃음) 읽는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빨리 읽으려니까 정말 한없이 빨리 읽겠더라고. 암기를 할 필요도 없이 무슨 내용인지만 알면 되니까. 그걸 터득하고 나니 너무 좋아요.


Q 대화의 주제가 넓어졌다는 점에서 선생님께 '책 읽기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책을 통해서 100년 전의 작가를 알게 됐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글이 너무 좋은 거예요. 정말 옳은 말만 있어요. 그래서 그 시대보다 더 이전의 책을 찾아서 봤어요. 300년 전의 책을 읽었는데 또 그 작가의 말이 옳아요. 더 거슬러 올라가서 500년 전의 책을 읽어요. 그 책의 내용도 옳아요. 그러면서 생각을 해봤어요. '아, 어쩌면 책이라는 것이 그냥 무언가의 집대성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책과 인간사가 하나의 프랙탈(Fractal :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그 시대의 이야기가 현재의 이야기와 맞물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고전을 좀 더 일찍 봤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내가 알고자 하는 것 너머의 큰 구조를 볼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여기서 이만큼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거대한 어떤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어릴 때부터 고전 읽으라는 소리를 귀 따갑게 들었는데 그때는 그 이유를 정말 몰랐거든. 물론 지금 젊은 친구들에게 내가 그 얘기를 한다고 해도 똑같을 거예요. '젠장, 당장 내일 아침에 일어날 일도 모르는데 왜 그런 얘기를 할까' 싶을 거예요. 나역시 그랬고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된 거죠.



Q 예를 들면 어떤 책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었나요?


100년 전에 한 신부님이 쓴 책을 읽었어요. 이 사람은 왕정에 대해서 아주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야말로 왕당파 입장에서 글을 썼는데, 뭐랄까. 엄격한 잣대로 세상 보기를 권하고, 그런 엄격한 잣대로 세상을 비판하고 있어요. 지금 사람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거북하게 느껴지겠지만, 그 사람이 누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쓴 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 안의 아름다움이 너무나 좋더라고.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살아라" 이런 말들보다도 더 따뜻하더라고요. 그 책이 <침묵의 기술>(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아르테/ 2016. 02)이라는 책이에요. 이 책 너무 좋아요.


또 다른 책을 소개해줄게요. 1998년이면,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이죠? 제가 아버지와 점점 더 친해지고 있어요. 작년보다 올해 더 친해졌고 아마 내년에는 더 친해질 것 같아요. 사실 우리 아버지는 18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친해져요. 그런 느낌을 전해주는 책이 있어요. <엄마, 사라지지 마>(한설희/ 북노마드/ 2015. 05)라는 책인데 실제로 권해주고 싶어. 되게 좋아요.


Q 최근 '고전의 중요성'을 깨달으신 것만큼이나 선생님께 중요한 화두가 또 있나요?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화두로 잡고 있는 것은 '초록은 왜 초록인가?'예요. 그 화두는 아마 15년은 됐을 거예요. 앞서 '실존'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어지는 이야기예요. 존재의 탄생이 결국에는 미스터리인 것처럼 '초록은 왜 초록인가?' 역시 존재론적 물음이 될 수 있는 거죠. 물론 그것에 대한 답은 아직도 몰라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인식론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접근 방법이 다양하겠지만 그것이 어떻게 초록으로 '시작'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어요. 


음악을 하든, 미술을 하든, 그게 누구든 사람들이 존재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초록은 왜 초록인가'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저는 그 답만 알 수 있다면 배고픈 것도 잊을 거예요.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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