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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16. 2016

'여행에도 궁합이 있다' 여행하는 심리학자 김명철



'유쾌한 심리학자의 기발한 여행 안내서'라는 부제가 달린 <여행의 심리학>은 한 번쯤 눈이 가는 책이다. 여행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설레는데 유쾌하고 기발하기까지 하다니. 더구나 저자 소개란에 있는 "동남아를 비롯해 몽골이나 중동에 가도 언제나 현지인처럼 보이는 묘한 외모에 사람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눈빛을 지녔다. 하지만 대학에서 강의할 때는 '웃기는 심리학자'로 불릴 정도로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라는 문구가 호기심을 바짝 끌어당긴다. 그렇다. 그는 미끼를 던졌고, 우리는 이미 현혹될 준비가 돼 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너무 기대가 컸던 것일까? 유쾌하다는 의미를 "재미가 빵빵 터지는 유머로 가득 찼다"라고 생각했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평소에는 제 바람과는 달리 그리 유쾌하진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는 최대한 유쾌함을 무기로 삼고자 합니다. 유쾌하다는 건 포장을 잘해준 거고, 사카스틱하다(풍자적이다, 비꼬다 - 기자 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긴 해요. 아무튼 죄송합니다."(웃음)


그렇다면 '기발하다'는 부분은 어떨까? 


"기발하다고는 생각해요. 일단 여행이라고 하면 자기 느낌이나 사유, 기억 중심으로 쓰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유서 깊은 학문들을 빌려서 체계적이고 전체적으로 여행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보거든요. 여행학이라는 것도 지금까지는 주로 공급자 입장에서 경영학적인 내용 위주로 다룬 게 대부분이에요. 여행자에 대해 심리적으로 접근할 때도 이 사람들을 내 여행지로 끌어들여 돈을 쓰게 만들려는 목적이지, 100퍼센트 여행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체계적으로 접근한 책은 많지 않거든요."



짐승 같은 여행자 vs 수도승 같은 여행자


흔히 여행서라 하면 저자의 기억이나 사유 중심의 에세이 또는 정보 위주의 가이드북을 떠올리게 된다. <여행의 심리학>이란 책의 제목만 접했을 때 다양한 심리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 좌충우돌하는 여행담으로 가득 차 있을 거라 생각한 것도 이런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행의 심리학>은 '여행학과 심리학을 접목해 여행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인문학 서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여행에 대해 진지하고 학문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말처럼 '기발한' 책이다. 여행자 유형을 나누는 5가지 성격 요인을 소개하거나, 여행하면 꼭 싸우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관계의 심리학을 설명하거나, 행동주의 심리학의 접근-회피 이론에 근거해 여행의 동기를 해석하는 등, 막연하게 생각했던 여행에 대한 궁금증을 명쾌하게 풀어준다. 


"박사학위를 준비할 때 첫 여행을 떠났는데 그 후로 여러 여행을 통해 무엇보다 제 전공인 심리학 공부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다양한 사회와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심리학 이론들이 헛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까요. 책을 쓰면서 저를 비롯해 여행하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생각들에 대해 근거를 달아주는 게 굉장히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마치 퍼즐 조각 맞추듯 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하나씩 뒷받침해나가는 과정이 짜릿하더라고요."


책에는 저자가 여행길에서 만난 짐승 같은 여행자 호세와 수도승 같은 여행자 에이미가 등장한다. 여행 기간 내내 잠시도 쉬지 않고 모험으로 가득 찬 활동을 즐기는 호세와, 조용한 곳에서 '도대체 여기서 뭐하는 거니?'라는 물음이 절로 나오는 여행을 하는 에이미. 둘의 차이는 어디서 근거하는 걸까? 저자는 성격심리학의 5가지 특질로 이런 차이를 설명했다. 우호성, 성실성, 신경증, 내외향성, 개방성 가운데 내외향성과 개방성이라는 특질이 여행에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외향성이 강한 사람은 심신 에너지가 높아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다이내믹한 여행을 즐긴다.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이와 반대로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며 자신과 마주하는 사색적인 여행을 좋아한다. 개방성은 외부 환경에 대한 수용 정도를 가리킨다. 개방성이 낮은 사람은 익숙한 것을 선호하며, 반대인 사람들은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저자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해한 뒤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라는 여행 동기를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성격심리학을 전공한 저자 자신조차도 스물아홉에 첫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내향적이고 개방성이 높은 유형에 속하는 자신의 성격적 특징을 간과한 채 호세처럼 외향적인 사람이 즐기는 배낭여행에 수많은 의문을 품게 된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출발점이었다. 


"한 달 일정으로 동남아 3국으로 떠난 것이 첫 여행이었어요. 카오산 로드의 포장마차에서 만난 다른 나라 여행자들과 허물없이 어울려도 봤고, 험한 산길과 비틀거리는 버스도 마다하지 않았죠.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관광 코스를 섭렵해보려고도 했고요. 아마 이런 노력과 도전의 절정은 앙코르와트의 땡볕 아래 왕복 40킬로미터 거리를 자전거로 오가며 유적지 곳곳을 누빈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온몸에 근육 약을 처덕처덕 바르고 발바닥과 발가락 곳곳에 반창고를 잘라 붙이면서 처음으로 회의를 느꼈어요. 막대한 통증을 대가로 지불해도 좋다고 여길 만큼 정신적 자유와 육체적 성취를 갈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여행 능력 높이려면 '여행 효능감' 가져야"


안전한 틀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공포로 여행을 두려워했던 그는, 첫 여행 후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한 여행을 떠났다. 지금까지 도합 500여 일에 걸쳐 12개국을 돌았다. 비록 한 달 중 좋았던 날은 열흘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는 왜 여행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고, 앞으로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행복을 누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는 이제 어디를 가든 재미있게 여행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게 된 베테랑 여행가가 됐다. 


그는 여행이란, 기대가 저절로 이루어지고 행복이 제 발로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활동이 아니라 기대를 이뤄나가고 행복을 쟁취하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성격과 가치관, 여행 방법, 여행 중 활동을 잘 일치시켜 '기가 막힌 궁합'을 만들어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그가 심리학자로서 과감히 도입한 개념이 바로 '여행 효능감'이다. 


"효능감이란 심리학에서 아주 오래되고 파워풀한 개념이에요. 무엇을 잘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것 말고도 뭔가를 '잘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심리적 요인들이 있다는 거죠. 기존 심리학을 바탕으로 여행에 대해 연구한 분들 중 아직 사용한 적이 없으니 제가 맨 처음 도입한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흔히들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표적인 게 아이큐죠. 여행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의 여행에 쉽게 실망하고, 역경을 경험하면 여행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죠.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것은 내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해버려요. 하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나도 여행을 잘할 수 있어'라는 여행 효능감이 있으면 여행 중 닥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완만히 해결하며 훌륭한 여행자가 될 수 있어요."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신을 꼽았다. 첫 여행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 카드를 적을 때 'occupation'이 '직업'이라는 것도 몰라 쩔쩔 맸다고 고백한다. 여행을 해본 적도 없고 여행을 공부한 적도 없는 상태에서는 누구나 '0'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자기 여행 능력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이런 책(자신의 책)을 보시는 게 좋아요.(웃음) 직접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성장한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태어날 때부터 여행 잘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여행 능력이 고정돼 있다고 보는 부류이이기 때문에 도움이 안 돼요. 여행을 통해 여행자들도 지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성장하듯이 여행 능력 또한 성장한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 책이 이미 재미있게 여행을 잘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자신의 여행을 객관화하고 다른 사람의 여행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고, 여행이 아직 힘든 사람들에게는 좀 더 나은 여행을 위해 어떤 측면을 살펴보고 어떻게 늘려가면 좋을지 지침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취재 : 이미회(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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