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감으로는 솔가지 외에 볏짚이나 겨가 있었다. 하지만 땅뙈기가 없는 집에 볏짚이 있을 리 없었고, 어찌어찌하여 방앗간에서 얻어온 겨는 물기에 젖어 있을 뿐더러 화력(火力)에 있어서 솔가지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느그 큰집 마당에 가 보먼 짚베눌이 산같이 쌓여 있넌 디, 느그 큰어메가 짚 한 뭍을 안 주드라."
빈손으로 돌아오기를 거듭하다가 하루는 큰맘을 먹고 갔단다. 그러나 백모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악다구니를 써댔다.
"아이고! 내가 작은집 식구들 땜시 못 살겄네. 누구는 빼빠지게 농사짓고, 누구는 카마이 안거서 이것 주라 저것 주라 허니 복통 터져 죽겄네."
그냥 돌아가 버릴까 하는 중에 놀랍게도 짚을 빼주더란다.
"그런디 시상에! 짚 한 뭍도 아니고 반 뭍을 빼주는 디, 그것도 썩다썩다 망단헌 것을, 맨 밑바닥에 깔려갖고 거진 다 썩다 만 것을 주드란 게. 동냥아치한테도 고로코는 못헐 것이다." 입술을 깨물며 허리를 굽히는 김씨에게 그녀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자! 이거 가지고 가소. 나도 살아야제. 안 그런 가?"
"누가 저 보고 못살게 했겄냐? 그러고 아닌 말로, 지가 뭇을 빼빠지게 농사 지었디야? 다 일꾼들이 했제. 차말로! 기가 맥히드라. 그래도 '고맙소. 성님! 내가 잘 살먼, 이 은공 갚으리다' 허고... 왔지야. 그런다고 내 말을 믿겄냐? 니가 은제 잘 살기나 허겄냐 허는 눈으로 쳐다 보드라."
그러나 좋아하기는 일렀단다.
"오메이! 척척헌 놈을 억지로 때 디낀 게, 냉갈(연기)이 나는 디... 내가 눈물, 콧물을 을마나 흘려 버렀는고. 그런 디다가 밥은 설익어 갖고 이러도 저러도 못허고 부석작(부엌) 한가운데에 우두게이 서 있넌 디, 느그 압씨가 배락 치드라."
"어째서라우?"
"밥이 늦다고 그러지야. 승질이 급헌 디다가 배고픈 것을 못 참는 양반이라, 백락 같이 소리를 치는 디..."
"그래 갖고, 또 맞었는가?"
"밤나 투드러 맞는 꼴이제, 어찐 디야. 염병헐 노모 농사할라 안 지슨 게, 짚 뭍이 고로코 아숩드란 마다."
짚이란 땔감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마람(이엉)을 엮어 초가집 지붕을 덮고, 마당의 가장자리를 따라 울타리를 두르고, 가마니나 덕썩(멍석), 망태기, 소쿠리, 달걀꾸러미 등의 재료로 쓰인다. 새끼줄을 비벼 꼬는데 사용되기도 하고, 겨울철 소의 여물로도 요긴하며, 외양간이나 돼지우리, 닭장의 밑바닥에 깔았다가 가축의 똥, 오줌과 섞어 훌륭한 거름으로도 활용된다. 콩나물시루 주위에도 둘러쳐지거니와, 짚을 태워 만든 재는 콩나물의 영양분이 되기도 한다.
"우리 집이사, 다른 어디 쓸 디나 있냐? 접방살이 헌 게, 지봉이나 우타리 칠 일도 웂고, 농사를 안 진 게, 가메이(가마니)나 덕썩 같은 것 만들 필요도 웂고. 그런다고 맥일 짐승이 있기를 허냐, 남같이 콩노물 질러먹기를 허냐? 오직 땔나무 헐 것 배키 웂넌 디, 그것도 수월찮은 것이여어."
".........."
"느그 큰어메 처지도 이해는 가지야. 먹을 ‘입’은 많은 디다가, 또 지사(제사) 할라 오직이나 많냐. 느그 큰아부지가 점잖기야 허시제마는, 절대로 논에 들어가는 승질이 아니그든. 그저 시조니, 바둑이니, 기생이니 험시로 노는 디만 정신이 웂으시지 않냐. 본디 한량 기질을 갖고 나신 양반이라, 그것이사 헐 수 웂는 일이고. 그런게 안에서라도 빼빠지게 애깨야제 어찔 것이냐?"
"짚 말고, 다른 것은 웂었단가?"
"맷재라고 있기는 했지야. 방앗간에서 나락을 찧고 나먼 나오는 껍딱(껍질)인 디, 고놈이라도 천신(차지)헐라고 그 문지(먼지) 무름쓰고, 맻 시간이나 일허고 그랬지야... 그것도 주인이 다 걷어가고 나먼 맨 밑창에 깔려있는 것을 갖고 오다 본 게, 항시 축축헐 것 아니냐. 그래도 그것이 어디냐고 쪼끔이라도 안 흘리게 해 갖고 와서는 아궁이 속에 늫는 디, 염병허게 기뚝(굴뚝)할라 안 뚫어 논 게, 그 축축헌 맷제가 타겄냐?"
".........."
"어깨가 빠져라고 손풍구를 돌래 갖고 바람을 집어넣어도 바람길이 맥해논 게, 냉갈(연기)이 꺼꿀로 새나온다. 그러니 부석작에는 냉갈만 꽉 차버리고 사람 눈에서 눈물만 쏙 빼제, 밥은 안 익는 것이여어. 그런 디다가 손풍구 고무줄은 두어 번 돌릴 때마닥 뱃개지고, 또 지질이 입해 갖고 서너 번 돌리고 나먼 또 뱃개지고. 비 오는 날, 미친년 치매 뱃개지득끼 오살나게 잘도 뱃개지니라."
"어째서 기뚝(굴뚝)이 웂단가?"
"놈(남)한테 내줄 작은방이라고, 실럼 실럼 맹글어서 그러지야. 큰방이랑 정지(부엌)할라 같이 쓴 게 냉갈이 맵다고, 작은 딸년은 날마닥 꼬라지를 내싸코. 난창에는 우리 집이서 싸게 나가 버리시오! 요로고 염병허드란 게. 아그들도 밸라 더 시끄럽다고."
"개 같은 년이네. 이?"
"나이 할라 째까(조금) 먹은 가시네한테 당허는 일이 분허고 억울허제마는, 내 가진 것이 웂넌 디 참어야제 어찔 것이냐? 눈 꼴랑지를 치캐 뜸시로 정지문을 차고 나가 버리먼, 진짜 속이 뒤집어진다 이. 그러먼 누구한테 말은 못허고, 혼자서 징징 울제 어찐 디야. 그때 내 속으로 '너도 시집 한 번 가봐라. 나도 누구 부럽지 않게 살았든 집안의 막둥이 딸이었다' 그러지야."
"칵! 대갈통을 때래 버리제 그랬는가?"
"어쭈코 그러겄냐? 속으로만 그러제. '내가 요로코 시퍼렇게 두 눈 뜨고 있어도 애린 새끼덜이 설움을 받는 디, 나까장 웂어져버리먼 그 설움을 어쭈코 감당허끄나' 싶어서 꾹꾹 참기로 헌 것이여어."
".........."
"느그 아부지는 어째서 밥이 되다 말았냐고 무시락 허제마는, 손풍구 돌려 감시로 불을 꼬실라도 늘 그 모양이라 밥이 어설프게 되지야. 너, 생각 나냐? 하로는 냉갈이 깍 들어찬 정지를 나옴시로, 너한테 솔가지 조까 꺾어 주라고 안 허디야?"
솔가지들은 태민의 키보다 훨씬 더 길었다. 고사리 손으로 힘껏 잡아당기자 '탁! 탁!' 소리를 내며 꺾어지는데, 그 순간 손이 아프도록 얼얼했었다.
"니 우게로 느그 누나가 살아 있었드라먼 갠찮했을 턴 디, 니가 큰아들이다 본 게 어찔 것이냐?"
그 이전의 어느 날.
"꾸끔스럽게 그 방은 밑바닥에 구들장도 웂었다 이. 생각해 봐라. 명색이 온돌방임시로 독때이(돌덩이)는 웂고 밑에가 맨땅이다 본 게, 부석작에 아무리 불을 때도 따스와지들 않는 것이여어. 근디 참, 조상님이 굽어 살피셨는가 어쨌는가 아이! 아랫목 한가운데에 으런 궁데이 하나 걸칠 만헌 독데이 하나가 들어 있었는 갑드라."
".........."
"근디 그 자리를 놓고 너허고 느그 앱씨허고 쌈이 난 것이여어. 그런디 시상에! 자식 해 보는 부모가 어디 있겄냐? 느그 압씨가 항시 너한테 졌지야."
"차말로?"
"그래. 니가 아랫목에 딱 앉어 있다가 내가 불을 때고 나서 손을 호호 붐시로 들어가먼, 느그 압씨가 그러그든. '악아. 느그 어메 쪼까 앉어 보라고, 이쪽으로 조까 비껴 보그라.' 그런디 니가 말을 듣냐? 인자 댓 살 먹었넌 디, 문 눈치코치가 있을 것이냐? 여러 번 재촉허먼, 그때사 포도시 궁데이를 살짝 틀어주고..."
"헤헤헤...그래도 아부이가 무시락 안 했단가?"
"움마! 느그 아부지가 나한테는 그래도, 느그 새끼들한테는 을마나 잘헌지 아냐?"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