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집 이야기

by 인터파크 북DB

1년 중 추석과 더불어 가장 기다려지는 때는 설날.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있었으니, 그것은 작은 이모에 의한 강제 목욕.

"아이고! 이 노모 새끼야. 카마이 조까 있어야. 시상에, 까마구가 성님, 성님 허겄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일라치면 '찰싹'소리와 함께 여지없이 등에 불이 붙었다.

"오메이! 씨이..."

"씨이라니? 요노모 새끼가 이모한테, 씨이가 무이냐? 씨이가..."

다시 찰싹! 그녀의 손맛은 청양고추보다 더 매웠다. 가게 때문에 눈코 뜰 새 없는 김씨를 위하여, 그녀는 명절 때마다 목욕을 위한 ‘특별원정’을 감행했다. 역사적 사명을 띠고 내려온 듯, 그녀는 다섯 개의 손가락이 선명하게 찍힐 만큼 사정없이 등을 후려갈겼다. 십오 년이나 손아래인 막내 동생이 농촌 구석에 박혀 고생하는 여러 요인 중에, 태민 형제도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여기는 듯 보였고, 그 이글거리는 복수심을 한껏 모아 손끝에 작열시키는 것이었으니. 그러기에 식구들 옷이 가득 담긴 보따리를 풀어놓을 때에도, 태민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반갑기는커녕 어떻게 해야 공포의 순간을 피할 수 있을까 궁리하며, 살살 눈치를 보는 형편이었다.

목욕은 주로 부엌이나 외양간에서 이루어졌다. 눈보라가 치던 어느 겨울밤에는, 외양간 창살 틈으로 들어오는 세찬 바람에 온몸이 노출되어 오랫동안 떨어야 할 때도 있었다. 가마솥에 물을 펄펄 끓여 플라스틱 ‘다라’에 퍼낸 다음, 찬물을 섞어 적당히 온도를 맞추면 대강 준비가 끝난다. 보통은 태민을 먼저 불러 그 안에 들어가게 한 다음, 미처 때가 불기도 전에 빡빡 문질러댄다. 이때 불평을 하거나 몸을 뒤틀기라도 하면, 그녀의 손은 여지없이 작동을 한다. 그래도 허벅지를 꼬집히는 것에 비하면, 등을 두들겨 맞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던가? 한결 가벼워진 몸에 때때옷을 걸쳐보는 것이야말로,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설날까지는 절대로 입지 말라!'는 김씨의 엄명(嚴命)에도 불구하고, 장롱 속에 숨겨놓은 새 옷을 꺼내 입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그때마다 구김을 펴서 조심스럽게 집어넣긴 했으되, 김씨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태민에게 설날은 때때옷 차림으로 세배를 하고, 떡과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곶감과 대추, 밤이 푸짐하게 주어지는 날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김씨는 '새로이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라는 데에 지나치리만치 큰 의미를 두며, 어느 때보다 '경건'을 강조했다. 온 식구가 잠들어있는 꼭두새벽부터 방과 부엌, 가게, 헛간, 당산나무 밑과 외양간 등, 집안 곳곳에 상을 차리느라 동분서주했다. 교회는 물론 성당이나 절에도 나가지 않는 김씨였지만, 무릎 꿇고 두 손을 싹싹 빌며 기도하는 모습은 감히 범접하기조차 어려웠다.

그 바쁜 중에도 짬을 내어 광주에까지 점이나 사주를 보러 다니는 정성 또한 비범(非凡)하였거니와, 꿈을 꾸고 나면 반드시 그날의 운수를 가늠해 보는 버릇 또한 유별났다. 이처럼 종교심이 뛰어난 김씨였기에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 화를 내거나 궂은 일이 생기면 일 년 내내 불길하다고 믿는 눈치가 역력했다.

때문에 이날만큼은 고운 한복을 차려 입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일 년 내내 들어보지 못한 덕담을 건네는가 하면, 아무리 큰 실수를 저질러도 화내는 법이 없었다. 이 옷을 달라, 저 옷을 달라 보채거나 음식을 먹다가 서로 싸워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하찮은 일에도 벌컥벌컥 화를 내는 이씨 역시, 이날 아침만큼은 이상하리만치 관대했다. 물론 타고난 성벽(性癖) 때문에 한나절을 못 넘기기 일쑤이지만.

아침밥은 반드시 큰집에서 먹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개는 눈곱을 떼는 둥 마는 둥, 실밥이 두터운 '고리땡' 바지에 울긋불긋한 무늬의 스웨터를 입고 아내미 길로 내달아야 했다. 대청에 차려진 차례 상에 건성으로 절을 한 다음,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는 것으로 명절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세뱃돈 대신 곶감이나 밤, 대추를 받는 것이 고작이었고. 그나마 곶감은 종손인 태준의 몫으로 돌려지는 때가 많았다. 그 다음 서열인 태민이 밤을 받았고, 그 나머지 동생들은 구분 없이 무조건 대추.

세배를 갔을 경우, 집집마다 꼬마손님들을 대하는 모양새가 달랐다. 다짜고짜 상을 차려 내놓는 집이 있는가 하면, 따뜻하고 찰 진 쑥떡을 조청(造淸, 물엿)에 찍어먹게 하는 집도 있었다. 불문곡직하고 귀하디귀한 동전을 하나씩 집어주는 집이 인기순위 1위였던 반면, 이도저도 없이 멀뚱하게 쳐다보는 집은 맨 꼴찌 순위. 그런 집은 간혹 빠뜨리되, '한 집도 빼먹지 말라!'는 이씨의 명령에는 입을 맞추는 공동전선으로 대응했다.

모두들 맘껏 먹고, 신나게 노는 날. 하지만 김씨는 이날도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 차례와 세배 등 중요한 절차가 끝나기 무섭게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단 하루라도 맘 편하게 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보채는 태민을 그녀는 이렇게 달랬다.

"우리가 문을 닫쳐버리먼, 사람덜이 을마나 성가시겄냐? 그러고 모처럼 절값도 받었넌 디 아그덜부터 까먹을락 헐 것이고, 으런들한테도 쏘주라든가 댐배, 식용유나 밀가리 같은 것들이 다른 날보당 앨라 더 필요허고. 화토치고 윷노는 디서도 잔돈이 필요헌 게, 그것도 바까 주어야 헐 것 아니냐?"

".........."

"그러고 외지(外地)서 모처럼 고향에 와 기마이 낼라고, 돈을 쓰는 사람덜이 있그든. 그런게 보통 때보당 매상이 헐썩 많애야. 누구한테 말은 허지 마라마는."

그토록 악착같이 벌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해 돈을 쓴 적은 없었다. 사치나 낭비, 오락 등은 애당초 그녀와 거리가 멀었다. 번듯한 옷 한 벌 해 입는 것도, 맘 편하게 고기 한 점 집어먹는 것도 태민은 본 적이 없었다. 당산나무 아래에서 쉼 없이 중얼거리는 그 기도문 가운데 김씨 자신을 위한 말은 단 한마디도 들어있지 않았음을, 태민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섣달 그믐날 일 년분 새경을 받아 간 머슴들은 늘어지도록 쉬다가 대보름날이 지나서야 출근(?)을 한다. 따라서 연말연시 장기휴가임과 동시에 '연봉' 재협상 기간이기도 한 이때에 그는 기존의 주인과 재계약을 하든지, 대우가 더 좋은 집으로 옮겨가든지, 아니면 '종살이'를 벗어나 스스로 소작이라도 짓든지 그것은 각자의 의사와 능력에 따라 결정될 일이었다.

그런데 태민이 육 학년 되던 해. 놀랍게도 '땅콩집'의 길선이 머슴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갈수록 땅은 늘어나는데 집안에 일할 사람은 없고, 더욱이 송정동네 아래 모래땅을 개간해야 할 형편이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김씨의 설명. 과연 길선이가 누구인가? 땅콩을 재배하는 중국 사람들의 충실한 종, 땅콩서리를 한 아이들 가운데 한 아이만 지정하여 끝까지 추적하는 잔인한 근성의 사나이, 그가 바로 길선이었다. 태민의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함께 '이제 우리도 머슴을 부리게 되었다'는 뿌듯함이 교차했다.

"근디 을마씩 주기로 했단가?"

"새경 말이냐? 길서이, 아니 느그 아제는 상머슴인 게, 쌀 스무 섬에서 서른 섬 이짝저짝 주고, 내년부터 들일 새끼머슴한테는 댓 섬 주먼 될 거이다."

"와! 되게 많네 이."

"많기는. 허기사 맥애주고 입해 주고 간혹 용돈도 주어야 허고 그런게, 모트는 사람은 제법 모트기도 허지야. 그래봤자 여태껏 머슴살이해 갖고 돈 벌었다는 소식, 들어 보들 안 했다. 시상에! 일 년 내내 빼빠지게 번 새경 갖고, 화토가 치고 싶으끄나?"

"누가?"

"누구긴 누구여야? 방앗간에 머슴 살았든 사람이제."

동네 방앗간에서 삼 년, 알부자라고 소문난 필수네 집에서 삼 년을 일했는데, 손에 한 푼도 쥐지 못했다는 것. 이유인즉 본인이 술을 너무 좋아한 데다 도박에 중독되었기 때문인 바, 일 년 새경을 하룻밤에 다 날린 적도 있단다. 주인이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읍내로 데리고 나가 밤새워 술을 먹인 다음, 화투를 치게 하여 새경을 다 날려버리게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저는 그 옆에서 고리짝이나 뜯고. 시상에, 그것이 사람이끄나? 우리 같으먼 찐꼴나게 부래 먹었은 게, 그 돈 갖고 가서 밭뙈기나 사서 벌어먹고 살으락 해야 쓸 것 아니냐?"

오갈 데 없는 그가 다시 머슴 일을 시작하고, 연말에는 또 다시 없애버리고. 이런 일을 되풀이하다 보니, 가는 세월에 늙어가는 육체는 견뎌내지 못할 수밖에.

"일 년 열두 달 죽어라 일만 허는 디다가 안주도 웂이 술을 양씬 먹고, 저녁에는 잠도 못 자고 화토만 쳐대니, 그 몸이 바와 낼 것이냐? 쇠 떵어리라도 못 바우제. 그런게 대개는 일찍 병에 걸려 죽든지, 몸이 바근바근해져 갖고 난창에는 일도 못헌다고 주인한테 쫓개나고 그러지야. 느그덜 끔(껌) 먹드끼 단물만 빨아먹고 발로 톡 차버리니, 기가 맥힐 일 아니냐?"

결국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니아까에 태와 갖고 백수 의원한테 갔넌 디, 살충제를 먹어버렀는 갑이여어. 염병헐 노모 인간이, 뭇헐라고 새경을 미리서 받었을 것이냐? 작년 것 엎어먹고, 올해치까장 미리 땅거서 옴막 말아먹었으니, 문 낙으로 살 것이냐? 필수네 아부지도 아부지여. 일이 고로코 생갰으먼 안 주어야제, 뭇헐라 뿌덕뿌덕 돈을 대줄 것이냐?"

".........."

"하니나, 너는 화토짝 갖고 놀지 말어라 이. 자고로 도박허는 사람치고 패가망신 안 헌 사람이 웂단다. 고것이 한번 맛 디리먼, 손목때기 짤라도 못 끊는다는 것이그등."

이 대목에서 김씨는 도박 때문에 패가망신한 둘째 오빠를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어떻든 보름까지는 푹 쉬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충직한 머슴들은 소에게 여물을 주거나 마당을 쓸기 위해 수시로 들렸다. 한동네에 사는 경우에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출근하여 새끼를 꼬거나 멍석, 가마니를 짜기도 한다.


대보름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농악놀이. 동네 사람들 사이의 친목을 도모하는 축제이자 올 농사의 풍년을 신령님께 기원하는 제례. 신나는 가락에 맞추어 더덩실 춤을 추다 보면,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도 활짝 펴지게 마련일 터. 농악대는 집집을 돌며, 가내만복(家內萬福)을 기원했다. '도둑'처럼 그들이 들어오면, 주인은 서둘러 떡과 술을 내와야 한다. 신명나는 '한마당'을 벌여준 답례로, 돼지고기 안주에 막걸리로 목을 축이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쌀가마니나 제법 큰돈을 희사하기도 한다. 물론 태민네의 경우, 작은집과 더불어 동네에서 가장 많은 '찬조금'을 내는 집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해. 마당에서 재주까지 부리며 장구(장고)를 치는 이씨의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거의 수직으로 세워진 장고를 두드리며 옆으로 쓰러질 듯 말 듯 몸을 돌리는 모습이 어느 풍물패 장구잽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일제시대 때에 학교를 다닌 덕분에 그런 놀이까지 배울 수 있었다나.

"요새 아그덜은 지질이 갈쳐놔도 못도 하나 못 박고, 악기 하나 못 다루고 그러지 않냐? 지게 질 줄을 아냐, 모 심을 줄을 아냐? 깝깝헐 일이지야."

하지만 조선 사람에게 실기실습 위주의 교육을 시킬지언정, 철학이나 역사, 정치학 등 인문학 분야는 고의적으로 가르치지 않은 그들의 속셈을 나중에야 들어 알았다. 민족의식이나 독립정신이 싹트는 것을 원초적으로 막으려 했던, 저열한 그 속뜻을.

평상시 무서운 독재자로만 인상지어진 이씨. 하지만 '장고 사건'에서처럼, 간혹 태민의 선입견을 깨버리는 파격이 몇 번 있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동네 콩쿠르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여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를 때, 그리고 어느 날 밤, 술에 잔뜩 취하여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 이때마다 이씨의 얼굴은 무척이나 고독해 보였다. 장고를 세워 신들린 듯 손을 놀려댈 때,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남...남쪽 섬의 나...라...'를 부를 때, 그리고 술에 취한 채 '성혜야! 성혜야!' 하며 사촌누나의 이름을 부르며 목 놓아 울 때, 그 얼굴에서 사무치는 외로움을 발견했다. 늘 자신만만해 하고 큰소리만 치던 그였기에, 그런 일탈된 모습은 태민을 무척이나 당황하게, 그리고 슬프게 만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태민은 늘 혼선을 빚곤 했다. 무쇠처럼 강한 듯 보이다가 갈대와 같이 약해 보이기도 하고, 장수(將帥)처럼 대범하다 싶으면 소녀처럼 여린 구석도 발견되었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 한다'며 꼼꼼하게 계산하다가도, '세상에 돈처럼 더러운 것이 없다'며 허망하게 써 버리기도 했다.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비처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다가도, 어느 순간 '다 쓰잘데기 웂는 짓이다'라며 도인(道人) 같은 말을 내뱉기도 했다.


by 강성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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