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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26. 2016

미소녀 화보집 사이, 눈에 띄는 '편의점 알바' 이야기

김홍기의 세상의 모든책들

             

※ 지금 세계의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국내 최대 출판 에이전시 임프리마 코리아의 김홍기 디렉터가 유럽·미주·아시아 지역 출판계 동향을 친절하고 재미있게 읽어준다. – 편집자 말

한동안 큰 이슈 없이 잠잠했던 일본 출판 시장이 여름이 되면서 눈에 띄는 신간들이 등장해 활발해지고 있다.

보통 일본은 여름이 되면 미소녀 수영복 화보집 등이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드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이는 특징이 있다. 이번 여름 시즌에도 약 10개 화보집 타이틀이 온라인 북스토어인 아마존 재팬 베스트셀러 순위 100위 안에서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코믹 만화 시리즈의 신간도 고정팬에 힘입어 항상 베스트셀러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곤 한다. 그 외에 토익 교재나 자기계발, 실용 등의 분야는 항상 인기가 유지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가벼운 책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현 세태를 반영한 문제작이자 잘 완성된 소설 한 편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7월 말 일본 문예춘추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소설 <편의점 인간>(コンビニ人間)”은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15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면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1위에 올랐고, 8월 넷째 주 현재 아마존 재팬 종합 베스트셀러 5위를 기록하고 있다.

36살의 여주인공 케이코는 '모쏠'(모태솔로)에,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까지 취업도 한 번 해보지 않은 채 18년간 같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동안 8번이나 이 편의점의 점장은 바뀌었고, 수많은 스태프와 다른 아르바이트 멤버들이 이 편의점을 거쳐 갔지만 케이코만은 그대로이다. 매일 먹는 편의점의 음식과 깨끗한 편의점의 풍경, "어서 오세요"라고 외치는 구호가 케이코 마음의 평화와 정체성을 선사한다.

그동안 직작인으로서 변변한 경력도 쌓지 못했고 가정을 이뤄보지도 못한 채, 매번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 그저 케이코의 모든 것이었다. 모든 것이 매뉴얼대로 움직이고, 아르바이트 직원인 케이코조차도 바로 그 편의점 시스템의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하지만, 이 단조로움이야말로 불가사의한 균형과 위안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이 편의점에 나타나고, 케이코에게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면서 부품처럼 살아가는 편의점의 삶이 부끄럽지 않은지 비판을 날리는데….

<편의점 인간> 표지

이미 군조문학상 신인상과 노마문예상을 수상한 바 있는 소설. <편의점 인간>의 작가인 무라타 사야카(村田 沙耶香)는 실제로 편의점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아쿠타가와 상 수상 인터뷰에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쓴 뒤 편의점에 출근해서 오후까지 근무를 해왔다고 밝혔다.(관련기사 : 36세 편의점 알바생, 일본 최고 권위 아쿠타가와상 수상 2016. 7. 20.)

<편의점 인간>은 21세기적 현대의 실존의 문제를 예리하고 날카롭게 풀어낸 완성도 높은 수작이다.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들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엇으로 구분하고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화두와 이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인과 현대사회의 모습을 편의점이라는 구체적인 배경과 창조적인 상징성을 바탕으로 위트 있게 그려냈다’고 호평했다. 

18년째 그것도 같은 장소애서 매번 같은 단순 업무를 하는 여주인공 케이코의 아르바이트 인생이 다수의 평균적 일반인들의 눈에는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서 결혼하고, 내 집을 마련하는 '평균적인 삶'을 우리는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케이코는 정해진 매뉴얼만 따르면 되는 편의점 알바 업무가 그 무엇보다도 보람되고 즐겁다. 케이코가 한심하다고 정의를 내리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근거로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일까? 

<편의점 인간>의 배경인 '편의점'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이지만, 이 공간에는 급격한 변화가 없다. 그렇다고 눈에 띄는 대단한 것을 파는 공간도 아니다. 보통의,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정한 퀄리티의 당연한 물품들이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유통되는 곳. 그래서 오히려 이 '편의점'이라는 장소는 저 수많은 정상적인 다수가 외치는 '평균적인 삶'이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잘 유지되는 아이러니한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에게 "이 모든 것이 잘 짜여 있고 문제라고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단조로운 ‘편의점’이 과연 정말로 정상적인, 불순물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 무라타 사야카는 이 두 세계의 대립을 그 차이로서만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비틀어 엇갈리게 배치하면서, 이 작가적 시점의 이동을 통해 작품 속에서 훌륭한 반전과 구성을 이끌어내고 있다. 


글 : 칼럼니스트 김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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