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하나뿐인 가게인지라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쉬는 날이 없었던 김씨에게 이 날이 바로 유일한 휴일이 된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이씨도 이날만큼은 대단히 너그러워 오뉴월 삼베 바지에 보리방귀 새 듯 동네 마실 가기에 바빴고, 김씨 역시 배짱을 부리듯 당당하게 누워 있곤 했다. 대신 물건을 파느라 태민의 몸만 바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맘속으로 이씨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태민 앞에서 절대로 이씨의 흉을 보지 않는 김씨의 처신이었다. 장남이 그에 대한 불만을 은근히 드러낼라치면, 도리어 나무라기만 했으니.
"하니나, 아부지한테 그런 말 허먼 못쓴다. 나사 내일이라도 돌아스먼 남남이제마는, 너는 죽으나 사나 천상 느그 아부지 아니냐? 하늘 아래 땅 우게, 느그 아부지는 하나뿐이고, 부부간에 결혼은 인륜이제마는 부모 자식 간은 천륜이란 말이여 천륜. 어찌먼 조상들이 고로코나 촌수를 잘 만들어 놓았는지 몰르겄어야. 나허고 느그 아부지는 무촌이락 해서 같이 살 때는 촌수가 웂을만치 가깝제마는, 헤어지고 나먼 아무 사이도 아니고. 너허고 아부지는 젤 가차운 1촌 아니냐? 2촌인 형제는 그 담이고. 그러고 잘허나 못허나, 잘나나 못나나 아부지는 아부진 게, 하니나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말어라. 방바닥에 누워서 침 뱉긴 게, 그 숭(흉)이 어디로 가겄냐? 결국에는 다 너한테 돌아오는 것이여어. 부자간에 사이가 좋아야 집안이 늘손(늘어날 징조) 있다고 안 허디야?"
"그래도 차코 어메를 때래 싼 게, 그러제에."
"부부간에 쌈허다 보먼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제 어찐디야. 나도 말대답 않고 참어 버리먼 될 턴디 고냔시 달랑달랑헌 게, 느그 아부지 입장에서는 승질도 나겄지야."
".........."
"그래도 느그 아부지 같은 양반도 웂어야. 무라리 모래땅에서 났제마는, 그만헌 인물이 어디 있냐?"
이야기가 이쯤 이르노라면 이씨에 대한 김씨와의 공동전선(共同戰線)의 꿈은 와르르 무너지고, 꼭 쥐었던 주먹도 스르르 풀리는데. 달걀로 눈덩이를 문지르면서도 그녀는 이씨를 두둔하기에 바빴다.
"느그 아부지가 승질이 조까 급해서 그러제, 문 흠이 있냐? 놈보다 배우기를 못했냐, 인물이 못나기를 했냐? 놈만큼 잘살기를 못허냐, 놈보당 말을 못허냐? 아닌 말로... 노래도 잘허고, 장구도 잘 치고. 그러고 양심 좋고, 깨끗허다고 이 일대에서 소문이 났지 않냐? 효자라 소문날 만치 느그 할메한테도 잘허고...하다! 나는 내 속으로 난 니가 느그 아부지 절반만 따라가도 좋겄다."
큰집 작은방에 십 년 넘도록 누워있는 할머니. 이란성 남매 쌍둥이 중 하나로 태어난 자신 때문에 몸져누운 모친을 위해 이씨는 온갖 정성을 다하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또 그 지긋지긋한 ‘절반’이란 소리. 별로 닮고 싶지도 않은 사람을, 그것도 절반만 따라가라니. 아무렴 내가 그만 못할까. 은근히 부아가 났다. 끓어오르는 분노가 전달되었는지, 그녀는 신속히 말머리를 돌린다.
"허기사, 너도 어디 하나 빠지는 디는 웂지야. 인물 그만허먼 되았고, 공부 잘허겄다, 부모 말 잘 듣고, 맘씨 착허겄다. 그러고 집안도 좋게 타고 났제 어째야? 외갓집은 빼따구 있는 집안인 게 말헐 것 웂고, 느그 친가 쪽도 그런대로 갠찮허지야."
할아버지는 대대로 내려온 종손이셨고, 제일 맏이 백부는 양반 중의 양반으로, 태민을 끔찍이도 예뻐했었다. 둘째 백부는 6?25 때 총 맞아 사망했으며, 셋째 백부는 사변 통에 북쪽으로 끌려갔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단다. 그리고 넷째가 이씨이고, 다섯째가 이신근 숙부. 이신만 씨 위로 누나(태민으로서는 고모) 두 분이 있는데, 역시 6?25때 남편들이 사망. 그러나 큰고모가 수절한 데 비해, 작은 고모는 팔자를 고쳤다 하여 이씨는 바로 손위 누나를 은근히 미워해왔다.
물론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호걸이나 위인, 학자가 난 명문세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여 천석꾼 만석꾼을 배출한 재력 집안도 아니었다. 다만 면면히 종손 집안의 혈통을 이어오는 동안 굶지 않을 만큼 먹고 살았으며, 역사에 기록될 만한 친일파나 망나니 같은 인간을 내지 않았다는 데에서 위안을 찾아야 할런지. 그렇게 보면 이씨의 허풍스런 집안자랑은 후손들에게 긍지와 자존감을 심어주기 위한 충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방할 것 같다.
그보다 김씨의 속내를 도통 알 수가 없으니. 도대체 저 질기고도 질긴 끈의 유래는 어디인가? 밤새워 얻어터지고 나서도 입에 침을 튀겨가며 지아비를 감싸는 저 붉은 마음(丹心)의 원천은 어디인가? 태민이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베개를 나란히 하고 잠을 잔다는 사실. 실컷 싸우고 나서 비록 등을 돌릴지언정, 한 이불을 덮고 잔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 점에 태민은 더욱 화가 났고, 고독했다.
언젠가 외가 쪽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에 갔을 때의 일이다. 친척들이 모여 밤늦도록 놀다가 함께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그러나 서너 개 밖에 되지 않는 방에서 여러 사람이 자려다 보니,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묶어져야 할 상황. 그러나 두 사람은 함께 자야 한다며 기어이 고집을 피웠다. 이종사촌 누나 선영의 비아냥.
"아이고! 다 늙어 갖고 문 주책바가진가 몰르겄어 걍. 평생을 같이 잤으먼, 하룻밤 조까 떨어져 잔다고 어디가 덧나요? 누가 금실 좋다고 안 허까 봐서 그런가 어찐가, 밸라 티를 내고 그랬싼단 게. 나 같으먼 영감태이 냄새 난다고, 쩌 만치 발로 차 버리겄네."
"히히히! 저년, 입주데이 조까 보소 저. 어디를 발로 차 버러야? 느그 이숙이 문 꽁이냐?"
모친의 핀잔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녀의 걸쭉한 입담은 계속 이어졌다.
"못 찰 것은 또 뭇이여? 꼬라지 할라 되게 사납담시로, 촌구석에서 저런 양반 뜻을 어쭈코 받들고 사냐고? 하도 고약해서 동네에서는 꼬치가리(고추가루)라고 소문났담시로? 이모도 속 조까 채리란 게. 세상에 쌔고 쌘 것이 남자여. 한 살이나 젊었을 때 골라 잡어야제. 늙발에 땅바닥 침시로, 신세한탄 허지 말고..."
"아이고, 저 썩을 년, 말허는 것 좀 보소. 히히히..."
태민에게 늘 다정하게 대해 주던 누나, 평소에는 이숙인 이씨를 잘 따르던 그녀도 이씨의 폭군 기질에는 진저리를 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어떻든 사소한 일로 항상 티격태격하는 데다 사흘이 멀다 대판 싸우면서도, 두 사람은 남들이 알 수 없는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있는 듯 보였다. 이씨의 경우, 김씨가 없으면 단 한 시간도 못 견뎌 했고, 김씨는 자나 깨나 이씨에 대한 염려뿐이었다. 자라나 온 환경이 다른 데다 학벌에 차이가 나고 생김새도 별반 닮지 않았는데, 평상시 두 사람의 말은 마치 한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닮아 있었다.
"그짓말 안 허고, 남의 것 도독질 안 허고, 남헌테 못헐 일 안 시키고, 양심껏, 부지런히 살다 보먼 은젠가 복을 받게 되야 있어. 천도(天道)가 있는 세상이라 내 대에서 아니먼 자식 대에서, 자식 대가 아니먼 손자 대에 가서라도 기언치 복을 받게 되어 있단 말이여어. 그것이 세상 이치 아니냐?"
"느그 아부지 말씀이 다 옳다. 내 한 몸 바르게 살고, 놈한테 피해 안 주고 부지런히 노력 허먼 은젠가는 성공허제, 못허겄냐? 아무리 웂어도 놈의 것 욕심내지 말고, 굶어죽어도 도독질헐 생각 같은 것은 애초부텅 허지 말고 살먼 되야야. 설마 산 입에 거무줄 칠라디야?"
부창부수(夫唱婦隨)요, 천생연분(天生緣分)이요, 천정배필(天定配匹)이었다. 혹시 먼저 죽은 이씨의 쌍둥이 여동생이 김씨로 환생(還生)한 건 아닐까?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