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집 이야기

by 인터파크 북DB

영(靈)의 세계


"시상에나 만상에나. 이것이 문 일이단가? 느그 큰 아부지가 돌아 가겠닥 안 허냐? 이 일을 어찌끄나 이. 싸게 꿩바탕으로 나가 보그라. 광주에서 시방 택시로 오시는 갑이다."

언젠가 큰집 안방에 반듯이 누워 있는 그를 본 적이 있었다. 백모는 연신 아궁이에 솔가지를 꺾어 넣는 중이었고, 방바닥에는 쇠똥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큰아버지가 쇠똥 위에 누워 있다니. 세월이 흐른 다음 나온 김씨의 설명은 이랬다.

"고것이 다 사변 끝나고 얻어맞은 '얼'을 빼실라고 그러셨단다. 징헌 놈들. 시상에! 사람을 고로코 개 패득끼 패야 쓰끄나?"

"누가라우?"

"그...서북청년단이라디야 뭇이라디야? 인민군들이 물러가고 나서 그 깡패 같은 놈들이 들어 왔넌 디, 느그 큰아부지가 이북 군인들한테 밥을 해 주었다고 그 지경으로 만들었단 게. 그때 동네 이장으로 계실 때라 이마빡에다 총부리 대고 밥 내놓으락 헌 디, 누가 안 해 주고 배기겄냐? 그때 본 사람들 말로 허먼, 큰집 마당이 피로 흥건했단다. 느그 큰아부지 말고도, 죽어 나자빠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였다여. 전쟁 통에도 개우개우 살아남은 목숨들이 그 통에 다 가버렀닥 헌 게."

태민 보다 한 살 위인 태준은 시신을 부둥켜안은 채, 꺼이꺼이 울어댔다. 입관할 무렵.

"큰 아부지 마지막 가시는 길인 게, 너도 인사나 해라."

"..........?"

적군을 위해 부역을 했다는 죄목(?)으로 몰매를 맞았고, 결국 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만 사연은 한참 후에 들었다. 그렇기에 열한 살 소년의 가슴속에 분노 같은 것은 없었다. 큰집에 가면 누구보다 먼저 찾는 백부였다. 하지만 오늘은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개의 눈동자에 이끌려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난생 처음,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을 끔찍이도 아껴주었던 고인(故人)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얼굴로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어 보였다.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함박웃음을 지으며 덥석 안아줄 것만 같았다. 떨리는 손이 얼굴에 닿으려는 순간.

"악아! 못쓴다. 손 대먼 못써."

"..........?"

소스라치게 놀라 무심코 내민 손을 거둬들이고 말았다. 왜 안 된다는 걸까? 내 몸통을 베개 삼아 누우시던 분, 내 허벅지를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으로 꽉 물어 꼼짝 못하게 하시던 분인데...왜?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태민이 큰집에 드나들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었다. 작은방에 누워 있던 할머니와 더불어 힘의 원천이었다. 그녀는 벌써 십여 년 넘게 누워있는 중인데, 태민의 부친인 넷째 아들 이씨를 낳은 후 산후조리를 잘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씨는 효자로 소문이 날 만큼 극진한 정성으로 노모를 보살폈다. 여름에는 나무로 짠 평상을 사 드리고, 누워있는 자세로 대소변 받아내기가 불편하다 하여 광주에 나가 최신식 좌변기를 사 오기도 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몰라도 태민은 자주 그 방엘 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매번 '신걸이'를 만났다. 동네에서는 '팔푼이'로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할머니에게는 충견(忠犬)처럼 정성을 다해 수발을 들었던 그.

"긴 병에 효자 웂다드니, 느그 큰어메는 똥 침시로 구시렁구시렁 허고 난리여야. 근디 그 신걸이가 물건이단 마다. 시키먼 시키는 대로, 죽자 사자 헌 게."

"어메. 그 사람 옆에 가먼, 구렁내 을마나 많이 나는지 아는가?"

"그런 소리 허지 말어라. 그 사람 웂으먼, 누가 그 똥을 받어 낼 것이냐? 니가 헐래? 내가 허끄나?"


동네 가가호호의 제삿날을 죄다 기억하고 사람들 이름을 줄줄이 외던 분, 장난기가 발동한 손주들이 살금살금 걸어가 방문 앞에 섰을 때에도 정확하게 그 이름을 알아맞히던 노인, 여태껏 한 번도 태민을 나무란 적이 없는 맘씨 좋은 할머니. 하지만 장남의 죽음을 전해들은 다음부터는 '내가 먼저 죽어야 허는디...'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서럽게 울어댔다. 태민 역시 다정다감했던 백부를 위해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열심히 울어 드리는 것이 최선이다 여겨져 용을 써보았다. 하지만 이상스럽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남모르게 침이라도 찍어 바를까 하다가 혹시 들킬까 봐 그마저 포기했다.

몸을 뚫고나온 구멍마다 꽉꽉 솜이 채워지고 두 손과 두 발이 꽁꽁 묶인 다음, 시신은 목관 속에 넣어졌다. 그날 밤. 상여 옆에는 장작불이 타오르고, 상복을 걸쳐 입은 사촌형 태준은 '칼싸움'한다며 막대기를 들고 싸돌아다녔다.

사흘째 되는 날. 처량한 노래 소리와 함께 상여는 느릿느릿 골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옮기기 싫어하는 망자(亡子)의 한(恨)인 양 상여는 늘 제자리걸음이었고, 건을 쓴 사람들이 차례로 올라 새끼줄에 '노잣돈'을 찔러주었다. 앞산에 도착한 상여의 지붕은 불태워 졌고, 목관은 가파른 언덕을 급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시신 위에 휘장을 덮은 다음, 다시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는 위쪽과 아래쪽에 대못 하나씩을 쾅쾅 박아댔다. 그 음향은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된다!'는 엄포소리가 되어 대대로 내려온 선산의 골짜기를 울렸다.

'큰아버지는 지금 얼마나 답답하실까?'

겨울밤, 서촌 아이들끼리 두 편으로 나누어 동네 전체를 무대로 삼아 숨바꼭질할 때가 있었다. 돼지우리의 지붕 밑, 닭들의 침소로 올라간 적도 있고, 어느 비어있는 머슴방 부엌 가마솥 속의 삶아놓은 고구마로 실컷 배를 불린 일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무라리 모래땅 밭들과 드넓은 무논 평야를 양분(兩分)하는 신작로, 그 밑을 횡단하는 배수관 속에 여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것은 악몽,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어두컴컴하고 비좁은 데다, 앞은 막히고 뒤에서는 밀어 대고. 더욱이 태민의 바로 앞 녀석은 그 통에 방귀까지 뀌어 댔으니. 숨이 딱 막혔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그 배수관이 오늘 눈앞에 어른거렸다.

사촌형이 제일 먼저 삽을 들었다. 한 줌도 안 되는 흙이 관 위에 뿌려졌다. 그것을 신호로 어른들이 재빨리 손을 놀렸다. 작업은 순식간에 마무리되었고,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셨다. 참 비위도 좋은 어른들. 불룩해진 배를 내밀며, 일당을 받은 노무자마냥 포만해진 얼굴로 그들은 산을 내려갔다. 망설임. 손을 잡아끄는 성화에도 불구하고, 태민의 눈은 자꾸 뒤로 향했다. 자리에 누웠지만 낮의 일들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려 한다. 그런데 차디 찬 땅속에서 주무시는 큰아버지는? 춥지는 않으실까? 밤중에 깨어나시지는 않을까? 답답하여 소리를 지른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텐데...'

깨어나 깜짝 놀라실 것을 상상하니 소름이 끼쳤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세상모른 채 주무시는 것이 더 낫겠다. 아! 산 자와 죽은 자의 간극이 이렇게도 큰 걸까? 과연 큰아버지는 어디로 가셨기에, 우리와 이렇게도 다른 세상을 사시는 걸까? 화를 내거나 욕하는 법이 없으신 분, 말소리조차 크지 않으셨던 분, 조카를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하고, 맛있는 것도 곧잘 챙겨주셨던 분. 그러기에 만약 살기 좋은 곳, 행복한 곳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리 가셨을 거다. 아니, 꼭 그리 가실 것으로 믿는다.


세월이 흘러 다시 앞산으로 향했다. 흙을 걷어내고 널을 꺼내어 녹슨 못을 빼내는 순간, 아! 그곳에는 큰아버지 대신 백골이 누워 있었다. 낯설기 짝이 없는 앙상한 뼈. 태민은 놀래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태평했다.

"아따! 아조 푹 잘 썩었네. 이."

"학실히 여그가 명당은 명당인 갑이여어."

"작년에 누구네 일을 허다 본 게 썽썽해 갖고 그대로 누워 있넌 디, 아따! 사람 상허겄대. 날은 더웁제, 살 썩는 냄새는 콧구멍으로 진동을 허제. 썩다 만 살점들이 붙어 있어 갖고, 고놈을 칼로 일일이 긁어내는 디... 아따! 내가 매칠간 밥을 못 먹었네."

"그러고 보먼 사람이 살아있을 때 양반 정승이제, 죽어 버리먼 그런 흉물이 웂어 이."

"그래도 이 양반은 오뉴월 거름 썩뜨끼 잘 삭았네야. 암만해도 끌텅이 있고 빼따구가 있는 집안이라, 후손들이 다 좋을라고 그러는 것이제에."

큰아버지의 흔적, 그 백골을 수습하여 새로운 묘로 옮겨놓으면 어떻게 될까? 언젠가 썩어 한 줌의 흙이 되겠지. 아! 그래. 사람이 죽으면 땅속에 묻히고, 언젠가 썩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구나. 그렇다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걸까? 우리의 영혼도 육체와 함께 없어지는 걸까?


by 강성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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