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무렵. 서촌에 기적처럼 교회가 세워졌다. 무라리 일대에서는 처음 있는 일. 교인이라고 해 보아야 스무 명 남짓에 불과했지만, 이씨는 이마저 탐탁지 않게 여겼다.
"교회 댕기는 것들은 순 그짓말만 해야. 어쭈코 사람이 물 위를 걸어댕길 것이며, 죽었든 사람을 살래낼 것이냐? 그러고 거그서는 아부지가 따로 있담시로야? 그러먼 아부지가 둘이란 소린 디, 너! 세상에서 젤 큰 욕이 뭇인지 아냐? 이부지자(二父之子) 아니냐?"
".........."
"예를 들어, 나 말고 느그 아부지가 또 있단 소린 디, 그것이 말이 될 소리냐? 나나 느그 어메 웂으먼, 니가 어디서 생개 났겄냐? 또 우리는 조상님들한테서 났고. 커서 부모한테 효도허고, 조상님 잘 모시라고 가르치고 그러는 것이여. 그런디 조상들한테 절도 허지 마라고 허니, 그런 호로 자식들이 어디가 있냔 말이여?"
".........."
"더욱이 우리 집안은 종손 아니냐? 그런게 하니나, 너는 그런 디 물들먼 못쓴다. 눈에는 안 뵈도 조상들이 다 굽어보고 계시는 것이여. 즈그 아부지가 웂으먼 어디서 생개 났을 것이며, 또 그 아부지는 그 한아씨, 그 한아씨의 한아씨... 요로코 쪼르르 올라가는 것이여."
"그러먼 젤 꼭대기에는 누가 있간디라우?"
"젤 꼭대기? 시조 한아씨가 있제, 누가 있어야?"
"그 시조 한아씨는 누가 났간디요?"
"누가 낳기는. 아따! 너는 째깐헌 것이 문 말이 고로코 많냐? 우리 족보에 쭈르르 나와 있는 것, 너 안 봤냐? 좌우간 조상님의 음덕을 잊으먼 안 된단 소리여. 그런디 절도 허지 말어라, 지사도 지내지 말어라 허니. 그러고... 그것들은 밤낮 돈만 갖고 오라고 헌단다."
"광호가 그런 디요. 있으먼 내고, 웂으먼 마락 헌닥 허던 디요?"
"요로코 포리채를 만들어 갖고는 사람 코앞에다 내미는 디, 누가 안 내고 전디겄냐?"
"..........”
"그러고 술 먹지 말고 담배 피지 마락 헌 디, 사람이 술 먹을 자리에서는 술도 먹는 것이고, 피우라고 만들어 논 담밴 게 한 대씩 허는 것이제... 먹는 음식을 갖고 째째허게 그래싸먼 쓸 것이냐? 그러고 술, 담배 안 허먼 우리 점빵은 어쭈코 돌아갈 것이냐? 물론 내가 점빵에서 이역을 볼라고 허는 소리는 아니제마는..."
"광호가요. 복 받을라먼 교회 댕기라고 허드라고요."
"쓰잘데기 웂는 소리는. 지금까정 교회 안 댕갰어도 밥 굶은 일 웂고, 느그덜 육 남매, 삼남 삼녀 아무 탈 웂이 다 잘 컸다. 느그 큰집도 남매 낳아 잘 크고, 느그 작은집도 벌써 삼남 이녀 아니냐? 그러고 느그 고무네 아그들도 모다 잘 크고. 즈그 아부지들이 쪼까 일찍 죽긴 했어도. 좌우간 우리 집안같이 우애하고 사는 디가 어디 있는 줄 아냐? 일 년이먼 서너 번씩 돼야지 잡어다 나놔먹고, 명절 때먼 산소에 가서 모다들 절허고, 지사도 정성껏 모시고. 을마나 좋냐? 고냔시 교회 댕기락 헐라고, 고것들이 꼬시는 소리란 게."
".........."
하기야 태민 아래 두 살 터울로 태국, 그 밑으로 줄줄이 여동생 셋이 태어나더니 마지막 끝막이로 막둥이 태문이 태어났으니, 남부러울 것 없기도 할 만.
"생각해 봐라. 하나라도 더 와야 교회도 먹고 살 것 아니냐?"
"그러다가 죽으먼 지옥에 간단 디요?"
"아따! 너는 너를 낳아준 아부이 말을 믿을래, 생전 상판때기도 못 봤든 전도산가, 목산가 그 사람 말을 믿을래? 그것들이 사람이 죽으먼 천당에 간다고 헌담시로? 누가 천당에 가 본 사람 있디야? 사람이 죽으먼 땅속으로 가제, 문 천당으로 가? 너, 느그 큰아부지 돌아가실 때, 안 가봤냐? 순 그짓말만 헌단 게. 너도 카마이 봐 바라 이. 교회 댕기는 사람 치고, 사기성 웂는 사람 있는가..."
"광호는 무저게 착실헌디라우?"
"그 아그는 타고난 천성이 그런 게 그런다 치고, 다른 것들은 그런 척 허는 것이란 게. 속이 좋아야제, 껍딱으로 말만 좋으먼 뭇 헌 디야?"
대여섯 살 무렵. 셋방살이하던 단칸방 벽에 그려져 있던 빨간 십자가를, 태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씨는 그것을 볼 때마다 역정을 내곤 했었다.
"빨리 쪼까 뱃개 버러야. 에이! 재수 웂이. 새끼들이 이사를 갈라먼, 이런 것이라도 띠어내고 가야 쓸 것 아니냐? 야수쟁이들 허는 짓 꺼리라고는..."
그것을 벗겨내기 위해 태민은 무던 애를 썼다. 물을 찍어 바른 다음 빡빡 문지르기도 하고, 침을 묻혀 살살 떼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단단히 붙여놓은 때문인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교회는 신작로에서 서촌동네 첫들머리로 꺾어드는 지점과 큰 당산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 정월 대보름. 앞장선 농악대를 따라 온 동네를 휘감고 다녔던 커다란 짚 동아리 줄이 당산나무에 칭칭 감겼지만, 며칠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그것들을 벗겨내 불을 질렀다. 여름철 당산나무에 올라 그 몸통에 이름 석 자를 파고 놀면서도, 태민은 코앞에 보이는 교회에는 결코 들어가지 않았다. 맘씨 착한 광호가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씩 조르긴 했으되, 강권(强勸)하진 않았다. 동네의 분위기나 이씨의 성미를 잘 아는 데다, 또 어쩐지 자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 때문이기도 했다. 혹시 잘못 들어갔다가 자칫 붙잡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기만 했다. 동네 한복판, 가게 앞에서 출발한 버스의 뒤꽁무니를 부여잡은 채 '향기로운' 배기가스를 음미하며 가다가도, 당산나무 앞에 당도할 때쯤이면 손을 놓아버렸다. 거기서부터 버스가 속력을 내기 시작한 때문이기도 한데, 어떻든 교회건물 앞 20여 미터 전방은 태민이 넘어서는 안 될, 일종의 경계선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 성탄절 전야에는 교회엘 갔다. 교회에서 요란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선사했기 때문. 노래가 곁들여진 율동을 선보였고, 관중들에게는 떡과 '오다마' 사탕이 무상으로 제공되었다. 썰렁하던 곳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곤 하였으니, 여기에는 동지섣달 기나긴 밤에 딱히 할 일이 없는 농촌의 실정도 한 몫 거들었다.
"어메는 교회 안 간가?"
"점빵은 누가 보라고 내가 가겄냐? 하다! 오늘 같은 날은 손님도 밸라 웂을 턴 디,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 먹었으먼 나도 을마나 좋겄냐 마는..."
그렇다고 대신 가게를 봐 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른 날 같으면 몰라도.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내달렸다. 무대에는 강대상이 덩그렁 하나 놓여 있을 뿐, 특별한 집기도 없었다. 멀뚱하게 시멘트 외벽만 갖춘 교회는 의자가 없기는 물론, 바닥조차 콘크리트가 안 되어 있어서 아이들은 그냥 맨땅에 짚을 깔고 앉았다. 하지만 문 근처의 사람들이 밀치고 당기느라 법석을 떨 만큼 교회 안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두 개의 양초로 인해 눈이 부시도록 밝은 무대와 반짝 종이를 오려 붙인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글자, 하얀 옷차림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어린 천사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아이는 춘옥이었다.
평소 말이 없었고 공부 역시 썩 잘하는 편이 아닌 그녀가 이 날만큼은 말도 청산유수로 잘하고, 노래도 구성지게 불렀으며, 춤 또한 우아한 동작으로 관중들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파격적인 '변신'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은 그렇다고 할 것이로되, 왠지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것 같아 마음마저 찜찜해지는 것이었다.
'오늘 나는 떡만 먹고 가면 된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자기방어의 논리, 자존심.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도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찬송가를 배우는 일 역시 그 가운데 하나. '고요한 밤 거룩한 밤'과 '기쁘다 구주 오셨네' 등이 애타는 심정으로, 떡과 사탕을 향한 목마른 입술로 불려졌다.
어느 순간, 엉덩이가 질퍽거려 이리저리 비틀다가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이곳저곳 자리까지 옮겨 보았지만 별 무소용. 인파(人波)의 훈김과 아이들의 달구어진 몸뚱이로 말미암아 땅이 녹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변보는 자세로 엉거주춤 버티다 보니 다리가 저려 왔다. 장난이라도 걸어 볼까 옆을 살피는데, 오늘따라 광호 녀석의 얼굴은 근엄 모드. 이래저래 짜증이 났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그까짓 사탕발림에 눈이 멀다니.'
사실 과자나 사탕은 가게에 산처럼 쌓여있었다. 손만 뻗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처지인데, 내가 왜 그랬을까? 떡은 본래 좋아하는 음식도 아니었다. 맞아. 분위기에 휩쓸린 거야. 친구들, 동네 사람들 몰려오니 엉겁결에 따라온 거야. 그게 실수였어.
지루한 찬송가 배우기,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지는 기도가 끝나자 드디어 연극 차례. 무슨 내용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왔다 갔다 하면서 요란을 피우니 그런대로 볼만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몸집이 뚱뚱한 한 사나이가 무대에 등장했다. 스스로를 ‘전도사’라 부른 그 사내는 물고기가 때를 만난 듯, 장사꾼이 대목장을 만난 것처럼 정열적으로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물론 본인 혼자서) 온갖 제스처를 다 동원했다. 기대 밖의 성황에 감격해서였을까? 자신의 설교에 은혜 받았다고 착각을 한 걸까?
견디기 힘든 시간들... 온몸이 근질근질하고 졸음이 몰려오는데, 이때에 비하면 그래도 앞선 프로그램들은 괜찮은 편에 속했다. 비교적 짧게 짧게라도 끝났으니.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지는 설교에는 해 볼 재간이 없었다. 무엇보다 앞자리에 앉은 것을 엄청 후회했다. 이 고통스런 자리를 피할 방도가 없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시선이려니와, 전도사의 커다란 손이 뒷덜미를 낚아챌 것만 같아 감히 일어서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의 억양은 점점 높아졌고, 설교는 밤샘이라도 할 태세로 끝없이 이어졌다. 눈까풀 위에 성냥개비가 얹힌 듯 잠기는 눈 속에 그의 커다란 얼굴이 들어왔다.
"모두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예수님 믿으면 천당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여러분! 지옥에는 얼마나 무서운 방들이 많이 있는 줄 아십니까? 첫째 방에 들어가면요. 시뻘겋게 불에 단 인두로 배를 막 지져대는데, 지지직! 지지직! 소리가 나고요, 두 번째 방에는 널빤지 같은 디다 수많은 못들을 거꾸로 박아 엎어 놓고는 맨발로 지나가라고 헙니다. 피가 찍찍 나겄지요. 또 세 번째 방에 들어가면, 큰 쇠몽둥이를 든 거인... 놀부가 박을 탔을 때 나온 깡패 같은 사람 생각나지요? 이런 인간이 나와 갖고 하루 종일 두들겨 팹니다. 넷째 방에는 에... 말허자먼 큰 불 못이 있어 갖고 사람이 그 속에 떨어지면 마치 불에 소금이 튀기듯 허지요. 연탄불에 소금 튀는 것 보셨지요? 그런 모양으로 타는데, 문제는 한 번 빠지면 나오지도 못허고, 죽지도 않고 평생, 아니 영원히 벌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런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교회에 나오셔야 헌다 그 말입니다."
".........."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