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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02. 2016

떠나자, 마시자! 애주가를 위한 알딸딸한 여행

술과 함께라면 여행이 더 즐겁다...술꾼을 사로잡은 음주여행 책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가. 일본에 가서 사케를 마시지 않는 것을. 또 독일에 가서 맥주를 마시지 않고 프랑스에 가서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런 여행은 여행도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바로 당신, 술꾼, 주당 또는 애주가라 불리는 당신한테 그렇다는 말이다. 식도락(食道樂)의 재미를 빼놓고 어떻게 여행을 말할 수 있나. 그리고 그 식도락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솔직히 인생 어느 곳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바로 '술' 아닌가.

진정한 술꾼이라면 술이라는 묘약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마법처럼 배가시킬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일찍이 대한민국 구석구석으로, 지구상 방방곡곡으로 술과 함께 여행을 떠난 선배(?) 술꾼들의 발자취는 훌륭한 이정표가 된다. 술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술과 술집들, 책으로 만나보자.

[국내편] 서른의 두 여자와 주당 부부가 사랑한 술

이 언니들 '대박'이다. <서른, 우리 술로 꽃피우다>(김별, 이경진/ 처음북스/ 2016년)를 몇 장 넘겨보다, 금세 웃음이 '빵' 터졌다. 가지런히 '좌우로 정렬' 한 술독들 옆에, 한복을 입고 누워 있는 두 여인. 몇 장 앞에는 이런 노래 가사(?)도 있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처음 본 술독에 퐁당 담겨/ 푸른 달빛 아래/ 반짝 별빛 아래/ 술 마시는 술꾼의 순정."(18쪽) 이 책은 "서른에는 무엇이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던 두 여인의 전통주 여행기"다.


당연히 홍천, 전주, 여수, 제주, 부산, 경주, 포항까지 전국 곳곳에서 맛볼 수 있는 전통주가 상세히 소개돼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술을 찾아서 맛보고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본인의 진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스펙이라는 기름진 안주만 잔뜩 찾아서 먹고 있던" 서른의 청년들이 "누룩을 만들고, 고두밥을 지어서 잘 발효시켜 술 맛을 내는 '완성의 시간'"을 찾아가는 과정도 잘 녹아 있다. 낄낄거리며, 군침 흘리며,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글쎄, 막 너무 좋고, 싫고 그런 것은 없어. 우연히 '집에서 만든 술은 숙취가 없다'는 말을 듣고 직접 한번 만들어볼까 싶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배우다 보니 배울 게 너무 많은 거야. 그래서 계속 배우다 보니 벌써 수년 째 여기서 이러고 있네. 그냥 술을 빚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걱정도 다 사라지고…… 글쎄, 인연이었던 것 같아." '막 너무 좋고, 싫고 그런 것은 없다'는 말이 내 가슴을 쳤다. 운명이 아니라 '인연이었던 것 같다'는 덤덤한 말이 좋았다. - <서른, 우리 술로 꽃피우다> 중에서

<서른, 우리 술로 꽃피우다>가 서른, 두 여인의 이야기라면, <주객전도>(오승훈, 현이씨/ 웅진지식하우스/ 2015년)는 "멀쩡한 사람도 흡입하게 만드는 주당 부부"의 이야기다. ‘한겨레21’에 연재된 칼럼 ‘X기자 부부의 주객전도’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엽기적으로 보일 법한 음주 에피소드와 함께 주당만이 알 수 있는 고품질의 술집들을 은근슬쩍 소개하는 책. 대표적인 주정뱅이(?) 만화가로 알려진 웹툰작가 현이씨의 그림이 함께해, 더욱 완성도 높은 취기(?)를 선사한다. 소설가 김중혁은 “무섭고 웃긴 얼굴을 한 채 심각한 질문을 던지는 기묘한 책”이라고 이 책을 추천했다.

주신이 강림한 와잎과 친구 녀석은 2차를 외쳤다. 나직하게 한숨을 쉬며 내가 말했다. "내 이번 생은 포기했다." 그러자 와잎이 쿨하게 답했다. "그냥 나를 포기해. 그게 빨라." 집 근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이어진 술자리는 월요일 새벽에나 끝났다. 아침에 일어나니 휴대전화가 없어졌다. 내 휴대전화를 챙겼다고 한 것은 와잎이었다. 그러나 와잎은 이미 떡실신해 있었다. 월요일 아침,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생각하니 속이 쓰렸지만 다른 한편으론 쾌재를 불렀다. 아싸, 해방이구나! 다만 며칠이라도. ‘사당동 프리덤’이었다. - <주객전도> 중에서

[해외편] 술꾼 PD와 40년 경력 맛객의 명주여행

흔히 '정신', '영혼'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 단어 Spirit(스피릿). 하지만 이 단어에는 ‘증류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라는 뜻도 있다. 나 역시 <스피릿 로드>(탁재형/ 시공사/ 2013년)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자아와 영혼을 찾아 떠난 순례기인가' 하고 잠시 오해했다. EBS '세계테마기행', 지금은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로 유명한 탁재형 PD가 책의 저자다. 그는 '나라 밖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경험은 그 나라의 술을 마셔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진정한 세계시민적(?) 술꾼. 해외 취재와 여행 중 그가 맛본 수많은 술에 대한 때론 황당하고 때론 진중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현지의 전통 증류주를 마실 때마다 나는 일종의 접신과도 같은 체험을 한다. 한 민족이 발전시킨 먹고 사는 문화의 피라미드 정점에 위치하는 것이 증류주이기에, 그리고 그 제조방법 역시 곡물이든, 과일이든, 벌꿀이나 동물의 젖이든, 그 지역의 자연이 가진 풍미의 정수(Spirit)만을 모으는 어려운 과정이기에. 따라서 증류주를 마시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오랜 체험과 역사를 담은 대용량 USB 메모리를 내 몸에 꽂는 것처럼 단시간에 주입하는 행위다. - <스피릿 로드> 중에서

세계 명주(名酒)여행. 듣기만 해도 술꾼의 가슴이 설렌다. 일본에는 무려 40년 동안이나 세계 곳곳으로 명주여행을 해온 맛객이 있다니, 존경심마저 샘솟는다.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니시카와 오사무/ 나무발전소/ 2011년)을 쓴 니시카와 오사무가 바로 그 주인공. 저자는 사진가, 문필가, 화가, 요리연구가로 60권 이상의 책을 썼다. 이 책은 그가 40년간 해온 명주여행의 기록. 부화 직전의 오리알이든, 벌레가 우글대는 야자술이든 일단 먹고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저자의 도전정신(?)이 빛나는 책이다. 먹고 마시는 것 자체를 사랑하고 즐기는 '맛객'의 캐릭터가 글 속에 드러난다.

접시 위에서는 짧게 토막이 난 낙지의 다리가 한 마리 긴 애벌레처럼 여전히 꿈틀거린다. 블랙유머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신기한 음식은 본 적이 없다. 살아 있는 도미 회나 홍콩에서의 생새우 회도 멋진 경험이었고 가나자와에서는 그릇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투명한 빙어를 산 채로 먹어본 적도 있지만 그보다 몇 배는 더 유머를 느끼게 하는 음식이다. -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중에서


취재 : 최규화(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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