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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02. 2016

맥주엔 있고 소주엔 없다? 신기한 빛의 과학

사이언스 하우스




어렸을 적, 어머니는 아침마다 우유 심부름을 시키셨다. 졸린 눈을 비비며 커다란 대문을 열면 구석에 하얀 유리병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유리병에 맺힌 이슬과 차가운 느낌은 누군가의 부지런한 새벽으로 느껴졌다. 아직도 부지런함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차가운 새벽 공기가 느껴진다. 기억 속 차갑고 고소한 맛은 요즘 판매하는 우유에서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 고소한 맛은 유지방 때문인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마트에서 유리병 우유를 찾는 엉뚱한 짓을 하곤 한다.


분리수거를 하다 보면 엄청난 양의 유리병이 재활용 공병으로 회수가 된다. 유리병은 재사용 병(Returnable, Refillable)과 1회용병(One-way)의 재활용으로 나뉜다. 주류나 음료수 병과 같은   재사용 병은 수거된 후 상태가 좋은 것들을 세척, 소독 처리 후 최대 20번까지 다시 사용한다. 


감기약이나, 피로회복제 같은 조그만 병들은 한 번 사용 후 회수되어 파유리(破琉璃)로 재활용되는데, 파유리를 사용하여 얻는 이점은 생각보다 크다. 파유리 사용비율을 1% 증가시키면 연료 사용을 0.35% 줄일 수 있고 원료의 사용도 절약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리 회수와 재가공에 들어가는 비용은 다른 재질의 포장용기보다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의 용기가 고분자 합성수지로 대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리재질을 고집하는 제품들이 있다.


흔히 지나칠 수 있는 매니큐어 병이 유리인 이유가 자외선 차단 때문이라는 사실만으로 아이는 신기해 했다. 별 것 아닌 것에도 과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에 꽤 흥미를 가졌다. 이 날부터 병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유심히 살피거나 특이한 병을 보면 질문을 했는데, 어느 날 편의점에 다녀온 아들이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질문했다.


"아빠!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편의점 음료수 중에 갈색 유리로만 되어 있는 것을 찾았어요. 아빠가 늘 피로회복제라고 마셨던 병도 그렇고, 홍삼이 들어간 드링크제도 마찬가지고요. 비타민C 음료수, 감기 걸렸을 때 먹은 감기약병도 유리예요.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아빠가 제일 좋아하시는 맥주병까지 전부 병 색깔이 갈색이라는 거예요. 분명 어떤 이유가 있는 거지요?"


제법인데? 관찰력이 상당히 뛰어난데? 네 말대로 병 색깔이 갈색인 데에는 이유가 있지. 갈색 용기는 네가 본 것 이외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 학교 화학 실험시간에 사용했던 알코올 같은 대부분의 화학 용액들도 갈색의 유리병에 담겨 있단다. 


지난번에 유리라는 물질이 자외선의 투과가 어렵다는 것을 배웠지. 그렇다 하더라도 유리만으로 자외선을 100% 차단하지 못해. 그런데 적은 양의 자외선이나 가시광선으로도 내용물이 변형되는 것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건강음료나 화학약품 속 특정 성분 중에는 빛을 흡수 했을 때 빛 에너지로 인해 구조가 깨지는 분자가 있어. 또 에너지에 의해 내부에서 새로운 화학반응을 하는 경우도 있지. 이러한 현상을 ‘광분해’ 또는 ‘광분열’이라고 해.


분자가 빛을 흡수하여 분자를 형성하고 있는 결합을 파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해리에너지’라고 하는데 이 해리에너지 이상의 빛을 흡수하면 분자 구조가 깨진단다. 따라서 분자의 결합 상태에 따라 필요한 해리에너지는 전부 달라. 


예를 들어 볼까? 질산(HNO3)의 경우 빛을 차단할 수 있는 플라스틱 병에 보관해야 해. 질산이 햇빛에 잘 분해되어서 유독한 이산화질소(NOx)가 나올 수도 있고 유리병도 녹일 수 있기 때문이야. 이렇듯 빛을 차단하기 위해 갈색 병을 사용한단다. 또 병을 개봉할 때 산소와 접촉한 용액이 빛의 촉매작용을 받아 산화 작용이 활성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해.


"그럼 검은색 병을 사용하면 완전 차단이 되는데 왜 검은색은 사용하지 않죠?"

 

검은색 병으로 했을 경우 내용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검은색의 경우 빛 흡수율이 높아 열이 발생되기도 하는데, 열로 인하여 내용물에 변형이 되는 경우도 있어서 검은색 병은 적합하지 않아. 


에탄올(C2H5OH)을 예로 들어줄게. 에탄올은 아빠가 좋아하는 술의 주요 성분이지. 에탄올이 산소에 노출되어 광분해되는 과정은 술이 몸 속에서 소화되는 과정과 아주 비슷해. 둘 다 산화되는 거란다. 산소에 노출된 에탄올이 햇빛의 촉매작용으로 산화가 더 가속화 돼. 이런 촉진 현상에 의해 에탄올과 산소가 반응하면 아세트 알데하이드라는 물질을 발생시키고 한 번 더 산화되어 아세트산이 되었다가 다시 산화하여 결국 물과 이산화 탄소만 남게 되는 거야. 


이런 화학물질들에 가장 영향을 주는 빛은 근자외선 부근의 빛이야. 그러니까 290 ~ 450 nm 파장 영역의 빛을 말하는 건데 이 파장대역의 빛을 차단하기 위해 만든 용기가 바로 ‘차광용기’란다. 이 대역의 빛을 차단하기 위해 용기에 갈색을 쓴 거지. 보통 갈색 차광용기는 이 파장대역의 빛을 10% 이상 투과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졌어. 선글라스 중 갈색이 많은 것도 비슷한 이유지.

                           

"화학약품은 이해가 갈 것 같은데요. 비타민음료나 맥주도 같은 이유인가요?"


비타민C는 빛에 의해 분해가 잘 되고 상온에서 쉽게 산화돼. 마트에서 파는 건강보조식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병은 투명용기에 담겨 있고, 또 어떤 것들은 불투명 용기에 담겨 있어. 특히 멀티비타민은 불투명 용기 담는데, 바로 비타민C군이 들어 있기 때문이야.


비타민을 양철통 안에 은박에 씌운 후 다시 캡슐로 포장할 필요까지 있냐고 했었지? 과대포장 아니냐고 말이야. 그런데 비타민C는 공기 중에 쉽게 산화되기 때문에 3중 포장을 해야 해. 고체상태라도 공기 중 햇볕에 노출되면 산화가 빨라진단다. 나중에 흰색의 비타민C알약을 개봉해서 하루 정도 볕에 놓고 지켜보렴. 아마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산화가 쉽게 일어난단다. 특히 비타민C가 물에 용해된 상태라면 햇볕만 받아도 쉽게 산화되기 때문에 비타민C가 들어 있는 피로회복제들은 반드시 차광을 해야 해.


그리고 맥주병이 갈색인 이유는 맥주 안에 들어 있는 ‘홉(HOF)’때문이야. 홉이 자외선에 약하기 때문인데, 홉은 맥주 특유의 향기와 쓴맛을 내는 주요성분이야. 그런데 홉이 자외선과 만나면 변형이 생겨 좋지 않은 맛과 냄새가 나는데, 이것을 ‘일광취’라고 불러. 간혹 맥주 중 투명한 병이나 다른 색깔이 있는 병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때에는 자외선에 반응하지 않게끔 만든 ‘헥사홉’이라는 특수 맥주 재료를 사용하거나, 병에 별도의 자외선 방지처리를 한 것이란다. 


포도주 병이 무슨 색인지 기억 나니? 포도주와 같은 주류를 빛이 들지 않는 지하실의 서늘한 곳에 밀봉을 한 탱크에 오랫동안 보관을 하는 이유도 이런 산화과정과 광분해를 막기 위해서고 따라서 대부분의 포도주 병도 어두운 색의 병을 사용한단다. 그 외에도 감기약 병이나 드링크제 등 빛에 의해 내용물이 변질되는 것에 이러한 차광용기를 사용해.


"그러면 녹색 병은 어떤 차광효과가 있지요? 소주는 전부 녹색 병인데 이것도 같은 이유인가요?"


음, 소주병이 녹색인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 예전에 소주병은 맑고 투명한 유리병이었는데, 어떤 업체에서 푸른색 병 소주를 출시하자 경쟁회사에서 편안하고 신선한 느낌을 주기 위해 초록색 병 소주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뒤로 대부분의 소주들이 초록색 병에 담기게 됐지.


"소주병의 녹색은 과학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군요?"


굳이 과학적 이유를 찾자면 내용물 변형을 방지하기 위해서야. 그리고 투명한 병을 사용하면 반복해서 재활용 할 때마다 부식된 내부가 햇빛에 의해 뿌옇게 되는데, 색이 있는 병은 좀 덜해 보이기도 하지.


주변에서 특정 목적을 위해 특정한 색을 사용하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어. 자동차 브레이크 등처럼 말이야. 그 이유 속에는 대체로 빛의 과학이 숨겨져 있지.



위 일러스트는 책 속 배경을 가상의 공간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각각의 공간들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것들 속 과학원리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글 : 칼럼니스트 김병민·김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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