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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02. 2016

강렬하게 또는 유쾌하게... 페미니즘에 대한 두 이야기

김홍기의 세상의 모든 책들

            

※ 지금 세계의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국내 최대 출판 에이전시 임프리마 코리아의 김홍기 디렉터가 유럽·미주·아시아 지역 출판계 동향을 친절하고 재미있게 읽어준다. – 편집자 말

해외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항상 빼놓을 수 없는 주제 중 하나는 '페미니즘'이다. 그런데 서구에서 이슈화 되는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동등한 권리와 평등, 배려 등에 대한 주제들이 대두된다면,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여성으로서의 행복한 삶에 대한 다양한 탐구에 사람들이 크게 공감하고 있다.

<아르고호의 모험가들> 영국판 표지


지난 1월 미국 그레이울프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논픽션 교양 에세이 <아르고호의 모험가들>(THE ARGONAUTS)은 21세기적 페미니즘에 대한 신선하고 독특한 비평 에세이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2015년 '전미 출판 비평 서클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미국 최고의 문예 교양지인 '뉴요커'와 '시카고 트리뷴' 등 유수의 언론 매체들의 극찬을 얻은 바 있다.


작가 매기 넬슨(Maggie Nelson)은 시인이자 평론가, 논픽션 작가로서, 그녀의 저서들은 지금까지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5번이나 이름을 올릴 정도로 지식인들과 대중들의 사랑을 널리 받고 있다. 구겐하임 펠로우상, 앤디 워홀 재단상 등 다수의 비평 부문 상을 수상하기도 한 넬슨은 이 책 <아르고호의 모험가들>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여자로서 겪게 되는 일상적이지만 독특한 경험들을 솔직하고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장르 블렌딩(여러 장르를 한 작품에 뒤섞어서 표현하는 방식)'적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어느 트렌스젠더와 사랑에 빠진 시절의 이야기에서부터 임신을 위한 노력과 여정, 하나의 가족을 만들기 위한 친밀한 과정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 등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아낌없이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 개인적 체험들은 흔히 페미니즘과 사회학 이론가들이 말했던 성(性)과 결혼 그리고 육아에 대한 적극적인 모험과 탐구를 엿보게 한다. 동시에 이 책에는 하나의 개인으로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작가의 강한 주장이 인상적으로 담겨 있다. 작가는 인간의 욕망과 정체성, 사랑과 말(언어)이 가져다 주는 다양한 가능성과 한계를 페미니스트적 요소뿐만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의 본연의 감정을 여과없이 훑어내면서 훌륭하게 전달하고 있다. 

<너도 철들 거야> 미국판 표지


한편 개인적 수필로서는 이례적으로 초판 10만 부를 찍었으며,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화제의 에세이, <너도 철들 거야>(YOU'LL GROW OUT OF IT)는 여성의 입장에서 '주도'하는 것이 아닌 '관찰'한 페미니즘의 실체를 공감 어린 스타일로 전해주고 있다.

미국 그랜드 센트럴 퍼블리싱을 통해 지난 7월 출간된 <너도 철들 거야>는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코미디언이자 코미디 작가인 제시 클라인(Jessi Klein)이 추억한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수기이이자 ‘비로소 여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반추하는 책이다. 제시 클라인은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라이브 코미디 쇼, SNL(Saturday Night Live)의 메인 작가이자 프로듀서로도 활동 중이다. 실제로 이 책 <너도 철들 거야>에 등장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개그 소재로 응용되기도 하였다.

느긋한 성격의 '톰보이' 소녀였던 클라인이 자라면서 봐온 어머니의 모습은 전혀 '여성스럽지' 않았다. 아이 셋을 좁은 집에서 키우면서 매일 빨래, 청소, 설거지와 씨름을 하고, 싸구려 샴푸로 머리를 감고 화장은 전혀 하지 않았던 억척스러운 어머니였다.

하지만 여성이 아닌(?) 그냥 주부이자 ‘어머니’였을 뿐인 클라인의 어머니가 유일하게 여자가 될 때가 있었다. 어머니가 아주 세련되고 예쁜 병에 들어 있던 고급스러운 향수를 허공에 뿌리면서 조용하고 우아하게 음미하던 그 순간! 이 순간만큼은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여성스럽고, 비밀스러운 여자들의 세계 한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작가 제시 클라인은 추억한다.

향수를 뿌리는 행위 하나로 어떻게 너무나 여성스러워질 수 있는 것일까? 여자와 남자를 사회적으로 구분 짓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너도 철들 거야>는 저자 제시 클라인이 바라본 21세기 여성들의 ‘진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흥미롭고 예리한 책이다. 여자들의 로망, 매끈하고 완벽한 몸매를 만들기 위한 노력부터 재미있는 포르노 영화를 찾으려는 시도, 그리고 오프라 윈프리가 목욕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한 분석까지! 제시 클라인의 목소리는 유쾌하면서도 노골적이지만, 너무나 공감이 간다.


글 : 칼럼니스트 김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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