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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02. 2016

'언어의 요리사' 최승호, 카툰과 동시를 콜라보하다

                     

최승호 시인은 '동시를 노래한다'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 작가다. 작곡가 방시혁과 함께 동시에 멜로디를 입혀 <최승호 방시혁의 말놀이 동요집>를 만들었고, 이어 싱어송라이터 뮤지와 함께 탱고, 삼바, 재즈, R&B 등의 음악장르에 동시를 입힌 <최승호 뮤지의 랩 동요집>를 완성했다. 우리 말의 맛깔스러움을 살리고 동시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이루어진 시도다. 그가 새롭게 펴낸 <치타는 짜장면을 배달한다>는 그간의 작품들과 다른 참신성을 담고 있다. 이번엔 동시와 카툰을 더한 '카툰동시집'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소 독특한 제목에는 그 이유가 있다. 주인공들이 모두 각자의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탄광촌에서 일하는 아빠 두더지, 빠른 속도로 짜장면을 배달하는 치타, 등대지기 부엉이 등 동물도 직업도 다양하다. 최승호 시인은 어린 독자들이 동물이라는 친숙한 생명체를 통해 직업의 다양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두 번째 바람은 줄곧 그가 강조해왔던 ‘시 해석의 다양성’이다.

"제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획일화시켜요. 로봇처럼."

인터뷰 내내 최승호 시인은 암기, 정답을 요구하는 등의 획일화된 방식으로 굳어진 우리나라 시 교육의 문제성을 꼬집었다. 자신의 시가 출제된 모의고사 문제를 시인 본인도 틀렸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시인은 단어를 음미하고, 행간을 이해하고, 그 여운을 맛볼 수 있는 시 읽기의 자유나 해석의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교육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가 말놀이 동시집이나 랩 동요집, 카툰 동시집을 내는 이유들은 결국 시 해석의 다양성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다. 

서울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최승호 시인을 만났다. 이곳은 그가 작업실처럼 드나들며 수많은 동시를 창작한공간이기도 하다. 생태시를 쓰게 해준 유년시절의 환경,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5년간의 시간이 가져다 준 변화, 새로운 시도와 협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예술가로서의 목표 등 늦은 오후에 만난 시인은 오랜만에 다시 만난 사람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히 들려주었다.

"시의 주제 묻는 교육은 '가르침' 아닌 '가래침' 같은 것"

Q 말놀이 동시집, 말놀이 동요집, 랩 동요집에 이어서 이번엔 '카툰 동시집'이네요. 시의 주제를 짧은 카툰으로 함께 보여주는 형식인데, 신간 <치타는 짜장면을 배달한다>는 어떤 발상에서 시작된 책인가요?

이런 것은 처음이죠? 우리 말이 갖고 있는 특유의 맛깔스러움을 살리고 싶어서 여러 시도를 했었는데, 그러다보니까 어떤 욕심이 생겼어요. 동시라는 게 조금 단조롭잖아요. 시인은 일종의 '언어의 요리사'예요. 독자는 어린 미식가들이니까 맛있고 아주 재밌게 만들어야 하죠. 동시를 쓰면서 늘 아쉬웠던 점이 그런 것이었어요. 해석의 다양성. 무언가를 포착했을 때 하나의 의미로 귀결되기가 쉬운데, 카툰은 여러 명이 각기 다른 관점에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한 거예요. 

마치 스펙트럼처럼 분광하듯이 여러 화자들이 '난 아닌데?'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런 얘기들을 하는 거죠. 동시를 다양한 관점에서 음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작업의 목표였어요. <치타는 짜장면을 배달한다>의 테마는 직업이에요. 치타는 빠르니까 짜장면을 배달하고, 비행기 조종사인 펭귄은 북극에 북극곰들을 데리러 가고, 나무늘보는 암벽 등반을 하고요. 직업의 다양성을 동물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죠. 

Q 퍼포먼스를 전공한 백로라 숭실대 예술창작학부 교수와 화가 윤정주 씨가 이번 작품에 함께 참여하셨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관통해야 하는 작업이었을 텐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협업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상의는 없었어요. 다 독립적인 작업이에요. 내가 동시를 쓰면 백로라 교수가 그걸 보고 카툰의 말풍선을 채우는 식이었죠. 그걸 다시 그림 그리는 윤정주 화가에게 넘긴 거예요. 서로 한 마디의 의견도 교환한 게 없어요.(웃음)

Q 뒷부분에 실린 송미경 작가의 글이 인상깊었어요. "누구든지 이 그림 속 주인공이 되는 순간, 일상의 구도와 당위를 유연하게 뛰어넘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용기를 얻게 됩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부모세대들에게도 이 책의 역할은 조금 특별할 것 같은데요.

교육적인 측면보다는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기존의 동시들은 주로 뜻 중심이었거든요. 자칫 잘못하다 보면 계몽적으로 갈 수도 있는데, 난 동시를 통해 재미와 놀이, 유희를 추구하고 싶었어요. 윤정주 화가가 그런 면에서 웃음을 아주 잘 선물하는 것 같아. 윤정주 씨 그림이 굉장히 웃기거든.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물한다는 것, 그런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일 거예요. 그리고 '우리 말이 재미있네?'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이겠죠. 시라는 건 프리즘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리즘 같은 작품이 독자의 눈을 만났을 때 분광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게 내 지론이에요. 저는 정답을 요구하는 시험 같은 것을 아주 싫어해요.

Q 우리 사회에서는 시를 문학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전에 하나의 지식으로 습득하게 만드는 주입식 교육에 더욱 익숙합니다. 해석의 다양성보다 하나의 정답만을 추구하는 식이죠.

지금 인터넷에도 나와 있잖아요. 내 시가 출제된 문제를 풀었는데 저도 틀렸다는 기사들.(웃음) 어떻게 된 얘기냐면 고등학교 교사들과 시 스터디 그룹을 하는데 그 교사들이 모의고사 문제지를 갖고 온 적이 있어요. 거기에 내 시가 4~5개 정도 출제되어 있더라고요. 그 문제들을 풀었는데 다섯 문제 중에 네 문제를 틀린 거예요.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 같은 경우는 내가 찍는 것이 답이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답이 아니더라니까. 정말 황당하더라고.

교사들에게 "교육이 잘못된 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시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의미로 귀결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음미하는 사람에 따라서 맛을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것이에요. 답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어야 하는 거죠. 프랑스의 초등학교 시 교육 중에서는 이미 130년 전부터 시를 외우고 자신이 뭘 느꼈는지를 쓰는 과정이 있어요. 그 글을 두고 잘 썼는지 못 썼는지를 판단하면 되는 거지, 다섯 개의 지문을 주고 그중 하나를 고르게 만드는 것은 말도 안 되죠.
 

Q "시의 주제가 뭐냐, 사조가 뭐냐 묻는 교육은 가르침이 아니라 '가래침' 같은 것이다"라는 말을 하셨던 것도 같은 이유겠죠.

우리가 들장미를 하나 봤다고 칩시다. "들장미가 왜 이렇게 어렵지?", "이 꽃은 왜 이렇게 난해하지?" 이제껏 시를 그렇게 가르쳐왔다는 거예요. 시는 들장미를 음미하듯이 "이거 향기가 좋네?", "색깔이 묘하네, 어디서 왔지?" 이런 것들을 느끼게 해줘야 해요. 

우리 시 교육의 문제점 중 하나는 정답을 요구한다는 것인데, 시의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시를 음미하는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게 진실이고 정답이겠죠. 네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시를 두고 각기 다른 해석을 한다고 해서 누군 옳고, 누구는 그르다고 말할 수 없어요. 네 명의 이야기가 모두 옳을 수 있다는 거예요.

또 다른 문제점 중 하나는 자유로운 토론 대신 암기를 한다는 것. 대화란 그런 거거든요. 논쟁을 한다고 했을 때, 누가 이겼다 누가 졌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두 개의 산봉우리가 있다고 합시다.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겠죠. 중요한 것은 그 골짜기에서 나오는 메아리예요. 그게 대화의 진정한 유용성이라고요. 대화를 나누다가도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생각도 하네’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거요. 

사람들 모두가 다른 가치관 속에 살고 있어요. 예술은 개성이라고 하는 것을 중시하고, 각자의 삶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것이에요. 프란츠 카프카도 말했죠. 작가는 제도에 저항해야 할 사명감이 있다고. 제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획일화시켜요. 로봇처럼. 획일화되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사명인데, 그것을 아이들에게 동시로서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방법으로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거예요.

"동시 작업의 바탕은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의 마음"

Q 현재 숭실대 예술창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지만,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신 이력이 있습니다. 당시의 경험이 동시 창작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줬겠네요.

그럼요. 1977년부터 1982년까지 5년 6개월 정도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어요. 당시에 강원도 정선으로 발령이 났는데 경치가 너무 좋은 곳에 있으니까 매일 술만 마시게 돼서 시를 못 쓰겠더라고요. 그래서 교장선생님께 저를 탄광촌으로 보내달라고 그랬어요. 사북이나 함백으로. 그 황량하고 험악한 곳을 누가 가겠어요. 그런데 요청을 드리니 이분이 저를 사북으로 보내준 거예요. 그곳에 가서 제가 충격을 받았어요.

그 탄광촌 마을에 시냇가가 있었는데 물이 까만 거예요. 제 고향이 춘천인데, 시냇가 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늘 시냇가에서 노는 것이 일상이었거든. 그 까만 물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된 거죠. 그때부터 생태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놀 데가 없는 거예요. 하루 종일 공중에서 까만 재가 내리는 곳이었어요. 학교 간 사이에 문을 닫아놓아도, 다시 돌아와서 흰 걸레로 닦으면 그 걸레가 까매질 정도로. 태백산맥이니까 도룡뇽들이 4~5월에 알을 낳으러 내려오는데, 도롱뇽 알이 폐수에 썩어가고… 그런 충격 속에서 쓴 것이 바로 <대설주의보>예요. 그때 그곳의 아이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떠올린 게 문집이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동시를 60편씩 꼬박 써서 1년에 4권의 문집을 만들었어요. 한 학기에 두 번, 그러니까 세 달에 한 번씩은 출판기념회를 열고, 자기가 쓴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부르고 연극도 하는 축제처럼 즐기게 됐어요. 아이들이 그걸 그렇게 좋아했어요. 나중에 제가 KBS 사업단 교재 만드는 곳에서 일할 적에, 어떤 분이 학교 신문 하나를 들고 왔는데 거기에 '우리 선생님'이라는 글이 하나 써있더라고요. 3학년 때 내가 담임을 맡았던 아이인 거야. 내용이 뭐냐면 ‘우리 선생님이 수염도 기르고 만화 주인공처럼 생긴 사람이었는데, 1년에 네 번 축제를 했다. 나는 평생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라는 글이었어요. 아무튼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동시를 쓰는 것에도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Q '도시 문명의 이면을 가장 소름끼치게 묘사하는 시인'으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환경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 문제를 끊임없이 시를 통해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계신데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 시집 중에 <반딧불 보호구역>이라는 시집이 있어요. 그걸 두고 생태문학의 효시라고 말들을 하는데, 나는 '생태문학'이라는 말을 나중에 들었어요. 언젠가 몸이 좀 아파서 외할머니 집에 가서 요양하고 그럴 때 산책을 많이 했었는데, 그곳이 반딧불 보호구역이었어요. 그러다 문득 생각한 것이 '시에서 내가 왜 내 얘기만 하고 있지?' 싶은 거예요. 말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그런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된 거죠. <반딧불 보호구역>은 말 못하는 것들의 이름으로 쓴 작품들이 담겨 있어요.

유년시절에 경험한 동물들과의 친화가 이런 감성을 갖게 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남의 일 같지가 않거든. 몸은 다르지만 바탕은 나와 같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죠. 이 작업들의 바탕은 나와 같은 생명을 가진 것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고, 그 말 못하는 동물들의 소리를 경청하고자 하는 마음이기도 해요. 그게 제 동시의 바탕이 되어준 감성이라고 봐야죠.

Q 말놀이 동시집, 랩 동요집, 카툰 동시집에 이어 다음 콜라보레이션은 어떤 작품이 될까요?

이런 질문을 작가들이 많이 받아요. 황순원 선생님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대요. 그런데 절대로 대답을 안 하셨어요. 그걸 얘기하면 다른 놈이 먼저 쓸 수도 있다고 "야, 그건 비밀이지!" 그러시면서.(웃음) 하여간 두 번째 카툰 동시집을 작업하게 될 것 같아요. 올해가 가기 전에 시 작업을 끝내야 할 텐데 될까 모르겠네. (웃음)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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