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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05. 2016

"심리학 상품화, 인간 이해 왜곡"

거리의 심리학자 김태형 작가 인터뷰

  

심리학자 김태형. 기존 심리학과 다른 주장으로 매번 새로운 이슈를 던지는 탓에 그는 학계의 이단아이며, 동시에 대중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거리의 학자'다. 인터뷰를 약속하고 그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정보도 인터뷰 기사도 별로 없다. 몇 되지 않는 기사 내용은 그가 과거에 노동운동을 했고, 지금은 주로 진보단체에서 강연을 한다는 정보가 대부분이다.


노동운동가와 심리학자라니 낯설게 느껴졌다. 낯설음은 그의 책 <심리학을 만든 사람들>(한울아카데미/ 2016년)을 읽는 동안에도 계속됐다. <심리학을 만든 사람들>에는 그동안 다른 심리학 책에서는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내용들이 수두룩했다. 심리학자, 그리고 김태형이라는 인물에 궁금증이 일었다.

8월의 한낮, 서울 행운동에 있는 그의 연구소 ‘함께’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심리학이 몰락해가고 있다며 과학적이고 민중을 위한 심리학이 필요하다고 여러 번 되풀이했다. 학계보다 대중들에게 신뢰를 주는 학자가 되고 싶었다며 심리학자가 된 이유를 들려줄 때, 연구소에 걸린 "함께"라는 낱말이 눈에 들어왔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세상에 내놓은 책은 20권이 넘는다. 1년에 두세 권씩 꼬박꼬박 책을 쓴 셈이다. 처음 <부모-나 관계의 비밀>(새뜰심리상담소/ 2005년)을 시작으로 다양한 인물 분석과 세대심리까지, 쉽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으로 대중들을 만나왔다. 친근한 심리학을 목표로 하는 그가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누가 읽을까?’ 싶은 심리학사(史)를 썼다. 심리학 역사를 쓴 이유를 먼저 물었다. 대답은 딱 하나. 지금 심리학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심리학이 인기 있는 학문이 되면서 상품화됐어요. 가볍고 내용이 비슷한 책이 쏟아져 나왔죠. 무엇보다 심리학 개론서 자체가 문제가 많아요. 미국 심리학에 편향돼 있고 심리학 이론을 병렬식으로 소개하는 역할밖에 못해요. 그런데 심리학사를 읽으면 이론의 근거와 배경, 전후 관계를 따질 수 있고 그럼 심리학이 어떤 학문인지 그림을 그릴 수 있거든요. 심리학 역사를 알아야 한국에서 올바른 심리학이 나온다고 생각했죠."

책에서도 여러 번 나오는 말이다. '올바른 심리학'. 올바른 학문을 정의할 수 있을지, 또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그는 지금까지 주류를 이룬 미국 심리학은 생물학적 인간관을 바탕에 둔다며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 대한 이해가 왜곡돼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인간 심리를 세상에서 분리된 것으로 이해하고, 현실적인 인간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 추상적 인간만 논의하는' 경향 역시 문제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불러일으킬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민중을 연구하지 않고 사회와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류가 생긴다며, 결국 심리학이 인간 행복을 추구하는 데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미국 심리학 편향·이론 소개 수준... 심리학 개론서 문제 많아"

"지금의 심리학은 인간 의식이 무조건 주어져 있다고만 생각하지, 왜 만들어졌는지 관심 없고 무엇보다 변화발전 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아요. 인간 심리를 어떻게 건강하고 성숙하게 만들 것인지 별 관심이 없어요. 그런 심리학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잖아요."

미국 심리학이 주류를 형성하는 동안, 그에 의문을 품고 오류를 지적한 학자는 없었을까? 김태형은 에리히 프롬이나 마르크스가 심리학 역사에서 ‘완전히 추방된 것’ 역시 미국 심리학이 얼마나 편향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때 윤리 선생님한테 에리히 프롬을 배우고 심리학과를 지망했는데, 대학에 와서 들어본 적이 없어요. 책에도 안 나오고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는 입장에서 심리학을 전개했던 사람은 에리히 프롬이 유일해요. 심리학계에서 그의 견해를 배척하고 있는 거죠. 마르크스 역시 심리학에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어요. 심리학 역사에 포함하는 게 맞다고 봐요."

심리학 계보에 마르크스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마르크스 이후 인간 심리에 과학적인 이해가 가능해졌다는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주류 심리학에서 그의 이름을 보기 어렵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주류 심리학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한국에서 대부분은 '진화심리학 만세'예요. 그 뿌리는 1900년 초 사회진화론인데요, 이론은 단순해요. 동물 세계에 작용하는 법칙이 인간 세계에도 그대로 작용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치에게 크게 환영을 받았죠. 이 논리에 따르면 제국주의가 식민지 지배하는 것이나 자본가가 노동자 착취하는 것도 자연법칙에 맞는 현상인 거죠.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는 것도 당연한 명제고요.

그래서 히틀러가 국가 이데올로기로까지 이용했는데, 나치가 깨지면서 사회진화론은 쏙 들어갑니다. 이후에 에리히 프롬의 사회심리학도 나오고, 미국에서 인본주의도 나온 거죠. 그런데 다시 미국 주도의 일극체제가 되면서 90년대 생물사회학으로 부활해요. 그렇게 진화심리학이 탄생한 건데, 진화심리학에서 중요한 건 생존본능이에요. 살기 위해 경쟁하다 보니 자본주의가 인간 본성에 딱 맞는 제도가 되는 거죠."

진화심리학 등장과 인기는 그가 심리학으로 복귀한 계기이기도 하다. 누구도 비판하지 않는, 틀린 이론에 반대하는 의견이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복귀 이후 1년에 두세 권씩 꾸준히 책을 쓰면서 강력하게 진화심리학을 비판해왔는데도, 유행은 말릴 수가 없었다. 체험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끔찍한 체험을 한 사람들은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고립된 인간의 내면 심리가 아니라 관계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요새 유행은 '엄마 탓'... 사회를 보지 않는 심리학 팽배"

"요새 유행은 엄마 탓하는 거예요. 물론 그것도 맞지만, 더 깊이 연구해야 돼요. 부모 탓이라고 하면, 그 부모는 왜 그랬을까요? 그 부모의 부모가 잘못한 거고, 그렇게 따지면 단군할아버지가 문제인 거 아니에요?(웃음) 그러니까 사회를 안 본다는 거예요. 우리 부모들은 왜 이럴까 보려면 식민지 일제강점기, 박정희 군사독재를 알아야 하고 분단체제를 이해해야 되는데, 분단문제 다루는 심리학자가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습니다. 심리학자들이 비겁한 거죠. 이런 게 심리학계에 팽배해 있어요."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자본가와 노동자 두 개의 계급으로 분할된 이후에는 학자도 어느 입장에 설 것인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정신장애로 몰고 가는' 상황에서 자본사회에 항의하고 억압받는 민중의 편에 설 것인지, 살아남기 위해 침묵할 것인지 선택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민중 편에 섰다는 그는 학자들이 미국 학문을 맹종하고 연구소나 학교 눈치를 보느라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대놓고 까'면서도, 오히려 이런 한계 때문에 결국 올바른 심리학이 탄생할 거라고 예고했다. 미제국주의 몰락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약화시킬 것이고, 또 한편으로 인간과 사회를 분석하지 못하는 현대 심리학은 더 이상 대중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리학의 무능력이 오히려 새로운 이론을 불러올 것이라며, 그는 올바른 심리학이 정립되면 심리학은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제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진정한 심리학의 탄생을 위해 독자들 역시 ‘권위에 쉽게 굴종하지 말고 비판적으로 소화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다른 심리학자들처럼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학을 다녀온 것도 아니다. 올바른 심리학을 목표로 혼자 공부했을 뿐, 학교에 소속되지도 않고 학회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김태형을 욕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비슷비슷한 과정을 걷는 학자들과 달리 민중을 위해 심리학을 공부하고, 주류 학계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사람들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심리학의 어두운 과거와 비겁한 현재의 얼굴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건 ‘학교에 없으니 눈치 볼 게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인간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고 적자생존은 자연법칙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헬조선’에, 인간은 착하고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귀가 따갑도록 말해주는 심리학자가 있어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사진 : 신동석

취재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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