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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07. 2016

강신주 "날 비판하는 사람들?50년 후엔 나만 남는다"

'공격적이다! 논쟁적이다!' 대한민국 인문학 대중화의 일등공신 중 한 명인 철학자 강신주를 만났을 때 받은 느낌이었다. 강신주의 작업실 근처, 서울시 종로구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난 그는 핑크와 오렌지를 혼합한 색깔로 머리를 염색하고,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채 나타났다. ‘이래도 나는 철학자다! 어쩔래?’라고 외치는 모습 같았달까.

얼마 전 강신주는 <철학 VS 철학> 개정 완전판을 출간했다.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이라는 야심 찬 부제가 붙었다. 그의 이전 책들이 상담 내용을 정리했거나(<강신주의 다상담>), 시인 김수영을 통해 인문정신을 이야기하거나(<김수영을 위하여>), 영화평론가와 함께 영화를 다룬 것이었다면(<씨네샹떼>), 이 책은 철학자 강신주의 명함을 내건 본격 철학서다. 6년 전에 썼던 책의 뼈대만 남기고 내용을 풍성하게 했다. 머리말에서는 ‘읽자마자 철학자들의 텍스트를 넘기도록 유혹하는 철학사’를 언급하며 대중 독자들의 존재도 잊지 않았다.

전체 1,500페이지 분량. 서가에 꽂아 놓으면 웬만한 국어대사전보다 두껍다. 거의 뼈대만 살린 채 내용은 다시 썼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6년 전 초판이 작은 묘목이었다면 개정 완전판은 풍성한 나무요, 과거 책이 북한산이라면 이번 책은 설악산이란다. 덕분에 어깨 통증을 직업병으로 얻어서 치료를 받는 중이라 했다. 인터뷰 장소에서 강신주는 한껏 상기된 모습이었다. 자부심, 뿌듯함, 후련함… 소란스러운 오후의 커피숍, 테이블 한 개를 사이에 두고서 그런 감정이 전해져 왔다. 비로소 완전해진 ‘인생 책’ <철학 VS 철학>을 낸 강신주를 만났다.

문제적 철학자 강신주 "<철학 VS 철학> 내가 쓴 책 중 가장 중요한 책"

Q 어떻게 지냈나? 근황이 궁금하다. 

<철학 VS 철학> 개정 완전판 탈고한 후 마사지 받고, 어깨 치료받고 있다. 10여 년간 안 쉬고 스물몇 권의 책을 썼잖나. 그러다 보니 몸에 병이 온 거다. 글쟁이들의 '직업병'이다. 

Q <철학 VS 철학>을 처음 실물로 봤을 때 엄청난 분량이라 놀랐다. 개정판임에도 거의  다시 쓴 수준이라고? 

한국 인문학 수준을 어느 단계까지 올려놓아야 한다는 소명의식이었다. 마르크스나 프랑스 철학이 유행했어도 우리 것이 안 된 채 덧없는 유행처럼 지나가지 않았나. 내 나이가 지금 딱 오십이니까 지금 아니면 이걸 마무리하지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면 뒷사람은 거기서부터 출발하면 된다. 어디에서 배워와서 앵무새처럼 뜻도 모르고 읊조리는 게 아니라 동양철학이든 서양철학이든 휘둘리지 않고 한국 사람으로서 철저하게 소화된 철학사 그걸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와, 사람들이 되지도 않는 철학 개론서를 많이 공부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바탕이 됐다. 

Q 6년 전 쓴 책에서 가장 눈에 거슬린 부분이 있다면? 

기존에 다룬 내용이 불친절하고, 독자들에게 어렵게 읽힐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동양철학의 난이도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동양철학이 원효부터 신채호에서 김수영까지 내려왔는데, 6년 전에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같은 난이도로 썼다. 그런데 우리 독자들이 서구 교육을 너무 많이 받아서 동양철학을 어려워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난이도를 서양을 100이라면, 동양을 80으로 조절했다. 

6년 전 책 쓸 당시엔 거대한 작업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묘목이었더라. 그런 묘목이 지금은 크게 자란 거다. 이걸 쓰고 보니 예전 책이 보였다. 동일한 묘목에서 나온 큰 나무라 여겨서 '개정 완전판'이라고 표시했다. 이제 고등학생 서부터 대학교수까지 다 읽을 수 있는 책, 내가 쓸 수 있는 책 중에 가장 중요한 책이 완성된 것 같다. 어찌 보면 이 책이 완성되기까지 6년이 걸린 것이다. 누가 내게 어떤 책이 가장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내가 쓴 책 중 가장 많이 팔린 <감정수업>이 아니라 이 책이라고 할 거다. 


Q 책에서 참고문헌 목록만 14페이지다. 이 한 권의 책이 나오기 위해 얼마만큼 많은 책을 읽어야 했을지 가늠이 어려울 정도더라.


인터뷰를 내 집필실에서 하면 좋은데,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지금 집필실 바닥에 쌓여 있는 책만 육백 권 정도가 된다. 그래서 아무도 들어올 수 없고, 오로지 나 앉을 자리만 있다.(웃음) 아직도 사소한 오류가 있진 않은지 1쇄를 꼼꼼히 읽고 있다. 


Q 보통의 철학사 책은 플라톤에서 시작해서 현대철학으로 끝난다. 그런데 <철학 VS 철학>에는 파울 클레, 로스코 같은 미술작가, 리처드 도킨스, 움베르토 마투라나 같은 생물학자, 이어령, 김수영 같은 문학계 인물의 이름도 보이더라. 


자기 이성을 사용해서 판단하는 게 바로 철학의 정의다. 그러니 대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책에서도 말했지만 '철학'과 '철학함'은 다르다. 스피노자를 달달 외워서 하는 건 철학이 아니다. 이 책도 철학함의 정신에서 쓰여졌다. 예술에서 정치, 형이상학, 언어철학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강신주의 이성으로 말이다. 나는 외국 학술서에 있는 연구 내용을 자기 것처럼 떠들지 않는다. 내가 내 이성을 이용해 합리적으로 판단을 내렸다면, 미술이든, 문학이든, 과학인지는 중요치 않다. 


"'100분토론'처럼 철학자들끼리 싸우게 만들었다" 


Q 한 권의 운명적인 철학책을 만나서 "돌풍이 등을 밀고 있기라고 하듯 멈출 수 없었던" 경험에 관해 이야기했다. 철학자 강신주에게 있어 그런 철학자나 철학책을 꼽아준다면?


대학원 석사 과정 때 만난 불교 철학이 그랬던 것 같다. 나가르주나의 <중론>을 독해하느라 무척 고생했다. 그래서 석사 시절 나가르주나의 <중론>을 완독했고 이해했다는 희열이 가장 컸다. 박사 때 그런 무게감으로 다가온 철학자는 비트겐슈타인이었다. 그래서 <철학 VS 철학>에도 곳곳에 비트겐슈타인 얘기가 많다. 그땐 너무 어려웠는데 지금은 너무 쉽다. 난 산을 좋아하고 암벽도 탔던 사람이니 산에 비유하자면, 산 타는 사람들이 험한 봉우리를 만나면 험한 봉우리가 "올라올 수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들 한다. 일반 사람들은 그 앞에서 그냥 구경하고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산 타는 사람들은 그 봉우리를 오르지 않으면 물러나고 비겁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게 동양의 에베레스트는 나가르주나고 서양의 에베레스트는 비트겐슈타인이었던 것 같다. 


Q <철학 VS 철학>은 연대순이 아닌 주제별로 철학자들을 소환한 게 특징이다. 한 주제 아래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이 어우러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때론 등장한 철학자보다 저자이자 해석자로서의 강신주의 역할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머리말에서 ‘나의 철학사는 객관적 철학사를 표방하지 않는다’고도 썼더라.


(객관성을 내세운) 기존 철학자들이 거짓말쟁이란 것도 있다. 모든 책은 주관적이다. 일부러 객관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대개 비판에서 자유로우려고 그러는 것이다. 나는 인문학자이고, 인간을 억압하는 일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가치로 평가를 해야지. 내 삶에 도움이 안 되고, 그걸 배우게 되면 내 삶이 우울해지는 걸 배울 필요는 없다. 그런데 안 좋은 사회에 살고 있으면 자기가 원하지 않는데 유학도, 종교도 배워야 한다. 기존 철학자들이 객관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비겁했던 쪽에 가깝다. 그들은 교재를 만든 거다. 정보를 전달하면 철학을 전달하는 것일 뿐, 독자들에게 철학함을 배우게 하진 못한다.


일부러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하는 구성을 택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나에게 행복은 무엇인가?’란 물음이 있다면 스토어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가 각기 다른 대답을 한다. 내가 개입도 하지만, 독자들이 그것들을 가지고 행복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행복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해 일방향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만 다루면 독자들이 그걸 외운다고. 그래서 외우지 못하게 만든 거다. ‘100분 토론’처럼 막 싸우게 만들었다. 이런 게 더 철학함에 가깝지 않나? 



"여성, 남성을 일반화시키는 페미니즘은 파시즘적 담론에서 자유로운가?" 


Q 이 책은 앞에서도 말했듯 과거와 현대, 동양과 서양의 철학자들을 아우르고, 기존 철학이 수용하지 않았던 배타적 영역들도 끌어왔으며, 방대한 분량이 특징이다. 그런데 1,500페이지 중 등장한 여성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 단 한 명뿐이다. 


철학자 중에 여자가 없다. 물론 20세기 들어와서는 좀 있지만. 페미니즘은 여성적인 입장을 다루나, 아직 인간 보편까지는 수준이 안 올라갔다. 그래서 항상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다. 그 정도 가지곤 안 된다. 중요한 건 자기편만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다른 편마저도 동감하도록 하는 거다. 하지만 지금 시대를 보면 아직도 협소하다. 남성을 이해하고, 여성을 이해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야 하는데 아직 그 정도까지 안 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참정권이 여성에게 부여된 것이 20세기 들어와서니까.


이 책에 한나 아렌트 한 명 들어온 것이 우리 인류 문명의 현주소라고 보면 된다. 내가 대학원 시절에 가장 황당했던 게 여자인데 공자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나는 넌지시 "너 미쳤냐?"라고 묻기도 했다. 여성의 가치를 부정하다시피 하는 공자를 연구해서 뭐하게. 그런데 공자를 연구하는 이유는 동양 철학에서 유학을 공부해야 주류라는 쪽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철학함이 아닌 전형적인 철학의 논리인 거다. 여성들의 가장 큰 문제가 남성 주류 사회에서 남성한테 인정받으려고 해서 생긴다. 페미니즘을 여기에 한 항목으로 넣을까 생각도 했었는데 수준이 떨어져서 넣지 않았다. 


Q 페미니즘이 어떤 점에서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나?


이 책에서 다룬 내용과 비교해 아직 그 수준이 맹아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여성이며, 음악을 좋아하고, 음식을 잘한다는 등의 특징을 전체로서 봐야 인문주의 시선이 생긴다. 그런데 '여성', '남성'이라는 이유로 들어가면 파시즘적 담론인 거다. 그건 유대인이란 이유로, 친일파란 이유로, 일본 사람이란 이유로 비판하는 것과 같다. 여성, 남성을 일반화시키는 페미니즘이 파시즘적 담론에서 자유로울까? 이런 이론을 책에 올려놓게 되면 내가 비판할 수밖에 없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걸 확대하여 해석해서 그들이 얘기하지 않은 것 이상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거다. 


Q 대중철학자로 활동하면서 전문가, 학계로부터는 집중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난 그들에 대해 전혀 생각 안 한다.(웃음) 일고의 가치가 없다. 50년 지나면 나만 남고, 그들은 아무도 안 남을 텐데. 난 내 글을 써왔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 글을 쓰나? 내가 대학교에 강연 가면 가끔 후배들이 교수가 되어 있는 걸 본다. 강연 마친 후엔 이렇게 미성숙한 사람들이 제자를 가르치나 하는 느낌이 든다. 체제에 쫄아서 대학에 남아 있으려는 사람들이다. 내가 86학번인데, 내가 대학 다녔을 땐 선생들이 국가랑 싸워서 해직도 됐었다. 지금은 누가 해직되나? 다들 자본주의에 편입됐다. 그러니 대학에서 인문학이 죽는 거다. 거기(대학)서 죽으니 내 강연 듣고, 내 책 읽는 것 아닌가? 18세기까지 철학은 대학에서 하지 않았다. 대학이 생긴 이래로 대학에서 위대한 철학자가 나왔을까? 그냥 부르주아 지식인이다.


나무가 높으면 바람을 많이 맞고, 나무가 높으면 그림자가 길어진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그림자를 공격하는 거다. 그림자를 반으로 줄이는 방법은 나무를 반 토막 내는 것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한테 이렇게 얘기한다. "그림자만 줄이면 참 좋겠네요." 내 영향력을 발휘하지 말란 얘기다. 인문 저자로서 <감정수업>만 해도 40만 부 가까이 나가고 누릴 것 누렸다. 정상에 있었던 사람인데 욕을 안 하겠나? 애정을 갖겠나? 그래도 괜찮다. 나도 옛날에 치기 어리게 도올 김용옥 선생을 비판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냥 부러웠던 거지. 그 비판이 제대로 된 거면 내가 고칠 수 있다. 그런데 그 비판들에는 실체가 없더라. 


Q '인생 책' <철학 VS 철학> 개정 완전판도 나왔고, 베스트셀러 저자이며 인기있는 대중철학자다. 앞으로 철학자로서 더 이루고 더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 


최근 양자역학과 수학기초론을 공부하고 있다. 철학은 예술, 문학, 자연과학과 같은 것들을 다 포괄해서 그런 것에 보편적인 틀, 소통 가능하게 하는 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껏 그 작업이 그다지 성공적으로 된 것 같진 않다. 내가 지금까지는 기존 철학자와 싸우면서 비판적 개입을 해왔다면, 다음은 21세기, 나아가 22세기의 인문학적 지평을 보여줄 수 있는 고전과도 같은 강력한 형이상학 체계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지금 우리 시대에 문법 같은 형이상학 체계를 구축하고 싶다. 그게 철학의 역할이기도 하고. 그래야 대학에서 분과 되어 고립된 학문이 열리고, 그게 열려야 미래에 우리 땅에 태어날 아이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사진 : 신동석

취재 : 주혜진(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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