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Sep 09. 2016

류형돈 뉴욕대 교수 "적당히 가난한 사람이 장수한다"

          

100세 시대라고들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사는 시대다. 인류에게 장수가 새로운 '축복'이 될지, 또 하나의 '재앙'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누구도 무작정 오래 살고 싶지만은 않다는 것. 이왕이면 건강하게, 좀 더 여유롭게 나이 들고 싶다는 마음은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장수에 '잘 대비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붙여보자. 적어도 죽는 순간이 되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묘비명을 남겼던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처럼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은 없을 테니까.

 
류형돈은 뉴욕대 의대 세포생물학 교수다. 그는 초파리를 대상으로 색소 망막염과 같은 퇴행성 질환을 비롯해 세포가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노화 연구에 매진해온 과학자로서 최근에는 단백질 섭취를 줄이면 세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와 같은 여건에서 왜 실험동물들이 오래 사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올해 그가 펴낸 <불멸의 꿈>은 노화를 중심으로 펴낸 교양 과학서적이다. 과학의 최전방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가 노화의 '속사정'에 대해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그가 직접 부딪치며 겪은 이야기들, 이를테면 과학 문헌과 잡지를 찾아 읽고 석학들과 교류하며 쌓은 지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과학서적이라고 하면 전문용어로 인해 첫 장을 펼치기 무섭게 머리가 지끈거릴 것 같지만 <불멸의 꿈>은 다르다. 과학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도 단순히 '노화' 혹은 '장수'에 대한 관심만 두고 있으면 충분히 술술 읽어나갈 수 있다. 노화를 연구하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격한 토론과 논쟁을 이어온 과학자들의 도전 또한 흥미롭다. 그는 책을 통해 무엇을 먹고 어떻게 해야 오래 살 수 있는지, 장수에 대한 일선의 다양한 속설을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뚱뚱한 애연가' 처칠이 90살까지 살 수 있었던 까닭은?

Q 솔직히 처음엔 재미없는 책인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롭던데요. 

서점에서 판매하는 과학책들 읽다 보면, 왜 베스트셀러 있잖아요. 대체로 언론인들이 쓴 게 많더라고요. 반면 과학자가 쓴 책은 아무래도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아쉬움이 늘 있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쓰면서 언론인 흉내를 한번 내봤죠.(웃음) 대학원 다니고 연구원 생활 할 때에도 세포가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 연구를 했어요. 그런데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제 연구 분야를 소개할 때마다 함께 공감하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노인성 질환을 연구하게 되면서 노화에 관심을 갖게 됐죠. 

Q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어요? 

동물실험을 할 때 단백질을 적게 먹이면 어떤 생명체든 오래 살 수 있거든요. 장수마을에도 가보면 대부분 농촌인데 적당히 가난하고 고기를 적게 먹으면서 주로 채식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노화라는 주제가 좀 복잡해서 누구에게나 공통으로 적용되지는 않아요. 제 나이 정도 되면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늘고 배가 나오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되죠. 저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분들은 탄수화물이나 지방은 적게, 단백질은 많이 섭취해야 하고요. 그런데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단백질을 극단적으로 많이 섭취하는 경우는 장수를 하기가 어려워요.

Q 그러니까 단백질 섭취만 잘 조절하면 충분히 오래 살 수 있다는 건가요? 

잘 아시겠지만 영국의 정치가였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굉장히 뚱뚱했고 담배를 많이 피웠어요.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90살까지 살았죠. 이런 사실을 보면 장수라는 것이 단순히 식생활이나 생활습관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분명 유전자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장수를 여러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는데, 평균 수명이 늘어난다는 관점에서 보면 환경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줘요.

일례로 최근 미국의 한 신문에서 미국인들의 평균 수명을 분석해봤더니 소득별로 차이가 나더라고요. 돈을 많이 벌수록 평균 수명이 길었던 거죠. 이건 유전자가 우수해서라기보다 생활습관이 영향을 줬다고 보는 게 맞아요.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담배나 술, 마약에 노출되기 쉽고 특히 미국은 중서부로 갈수록 채식보다 고기를 먹는 비율이 아주 높거든요. 하지만 100세 이상 사는 사람들을 분석해보면 장수라는 게 꼭 환경적인 요인으로만 결정되는 문제는 아니고요. 

Q 놀랍네요. 어떤 유전자를 물려 받는지에 따라 장수가 결정되기도 한다고요?  

과학계에서 몸집과 수명이 반비례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정설이에요. 난쟁이들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들은 발육 부진으로 인한 문제는 있어도 일단 성인이 되면 노화와 연관된 질병은 확실히 적거든요. 몸집이 작은 사람의 경우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질병이 적다는 과학적 근거들도 있고요. 반면 거인증을 않는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고혈압, 당뇨병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직장암에 걸릴 확률이 증가해요. 지금까지 발표된 논문들을 살펴보면 몸집과 수명의 반비례 관계가 일반인에게도 해당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요.

"인간은 선천적으로 설탕 선호... 당분이 노화 속도 조절"

Q 그럼 대체로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건 왜 그런 거죠?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이유는 성호르몬의 차이 때문인데요. 조선시대에도 보면 거세를 한 내시들이 장수했다는 기록들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만약 사람을 대상으로 수명에 관련된 연구를 한다면 트랜스젠더를 중심으로 연구를 해보고 싶어요. 그들의 형제나 자매와 비교하면서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는 있겠지만 아주 좋은 연구 주제일 것 같아요.

Q 책을 보니까 텔로머레이스(telomerase)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견이 상당히 분분하더라고요. 교수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과학자들 사이에서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는 텔로머레이스는 일선에서 불멸의 효소라고도 불리죠. 이 세포가 노화를 조절하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라는 주장이에요. 하지만 저는 텔로머레이스가 우리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1994년에 연세대 교수로 계신 이한웅 박사가 텔로머레이스가 없는 쥐를 세계 최초로 만드셨거든요. 만약 텔로머레이스가 노화의 열쇠를 가진 게 확실하다면 그 쥐들은 더 빨리 늙었어야 했지만 수명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거든요. 저는 텔로머레이스가 노화의 열쇠를 쥐고 있다기보다 노화를 결정하는 아주 다양한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할 거로 생각해요. 

Q 그렇다면 노화의 속도를 결정하는 열쇠는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노화를 이야기하면서 당분에 대한 언급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당분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해요.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포도당을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원으로 쓰는 데다 화학적으로 설탕을 분해하기가 쉽거든요. 선천적으로 설탕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죠.

과학자들의 최근 연구를 보면 단맛을 느끼는 수용체를 갖고 있지 않은 동물도 설탕을 좋아한다는 결과가 나오는 걸 알 수 있어요. 캘리포니아대 교수인 신시아 캐년(Cynthia Kenyon)은 꼬마선충을 연구하면서 당분이 노화의 속도를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꼬마선충의 먹이에 설탕을 뿌리니까 꼬마선충이 빨리 늙어 죽었던 거죠. 그녀는 커피에도 절대 설탕을 넣지 않고, 피자를 먹을 때도 토핑만 먹고 빵에는 손도 안 댄다고 하더군요. 

Q 우와, 아무리 그래도 피자에서 토핑만 골라먹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교수님은 건강을 어떻게 관리하세요?

저도 예전에는 단 음식을 참 많이 먹었어요. 하지만 노화와 관련된 이 책을 쓰면서부터는 달라졌죠. 사람들과 다 같이 모여서 먹는 자리에서만 조금 먹고 일부러 찾아 먹지는 않아요. 먹고 싶은 만큼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 게 일상이었지만 이제는 건강관리에 더 신경을 쓰게 됐죠. 과식은 절대 하지 않고 나가서 햇볕을 자주 쬐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꼭 달리기를 하고요. 젊었을 때는 음식 가려 먹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다 잔소리로만 여겨졌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확실히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피자나 햄버거를 가끔씩 먹어요.(웃음)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취재 : 윤효정(북DB 객원기자)


기사 더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강신주 "날 비판하는 사람들?50년 후엔 나만 남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