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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12. 2016

박상률의 청소년 문학20년...또 한번의 '낯설음'


[프리즘①] 박상률의 말, 말, 말


- "이 작품에는 한 명도 이름이 안 나와요. 모두 익명으로 표현했죠. 그 시대를 산 사람은 이름이 굳이 필요치 않다는 거죠. 그 시대를 산 젊은이라면 다 똑같다는 거죠." 

- "처음 청소년소설을 쓸 때도 출판사 편집자들이 ‘감이 안 온다’고 그랬어요. 낯설어서. 저는 운명적으로, ‘낯설게 하는 것’이 제 역할이지 않은가 해요."

- "요즘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가지고 다니는 것만 보지 말고,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문명과 문화가 아무리 발전해도 절대 안 변할 것들, 그런 보편성을 놓치지 말자는 거예요."


[프리즘②] 청춘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한 곡의 긴 음악 

▷ 박상률은 누구? : 한국 청소년문학의 개척자. 1997년 그가 발표한 소설 <봄바람>은 한국 청소년문학의 물꼬를 튼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일반 소설도 아니고 동화도 아닌 '낯선' 청소년소설을 가장 먼저 쓰기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도 ‘낯설게 하는 것’을 자신의 운명이자 역할로 여기고 있다. "사람보다 개가 더 유명한 진도에서" 태어난 '58년 개띠'. 새 책을 낼 때마다 저자소개 란에, 계간 '청소년문학' 편집주간을 오랫동안 맡았다는 사실을 빼놓지 않는다. 그를 빼놓고는 청소년문학을 말할 수 없고, 청소년문학을 빼놓고는 그를 말할 수 없는 그런 사람.


▷ 어떤 책을 냈나 : 지난 8월, 3주 사이에 두 권의 책이 나왔다. 먼저 나온 책은 <나와 청소년문학 20년>(학교도서관저널). 한국 청소년문학의 개척자이자 '지킴이'로 살아온 지난 20년을 돌아본 에세이집이다. 그리고 3주 뒤에 나온 책은 장편소설 <저 입술이 낯익다>(자음과모음). 1980년과 2008년, 광장과 골방, 시간과 공간을 잇는 '촛불'을 통해 내밀한 청춘의 상처를 깊이 들여다본 작품이다. 굉장히 사회적이면서 굉장히 개인적인 소설. 읽고 나니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한 곡의 긴 음악을 들은 것 같다. 작가가 다시 한번 시도한 '낯설게 하기'. 곱씹을수록, 함께 아프다.


▷ 인터뷰 뒷이야기 : 갸름한 얼굴, 날렵한 몸매. 50대 후반 ‘아재’들의 흔한 넉넉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첫인상. 하지만 그와 한 인터뷰는, 인터뷰라기보다 정담에 가까웠다. 숨길 수 없는 전라도 사투리와 상대를 배려하는 대화의 태도가 참 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날카로운 말투로 단호한 모습을 보인 때도 있었다. 바로 청소년문학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현재 한국 사회를 "사람이 없는 시대"라고 규정하고, "문학에서만큼은 사람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청소년문학이 '시류'가 아닌 '사람'을 담아야 한다며, '문학적 보편성'을 강하게 주문했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저 입술이 낯익다>에는 개인 내면의 상처를 사회와 교감하는 속에서 극복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었는데요, 저는 이것이 10대 후반부터 20대까지를 '이명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보낸 지금의 청년세대에 대한 작가의 진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을 보면 사실은 청소년소설 같은 제목이 아니죠. (기자 : 조금 야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놓고 내용은 야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 좀 실망하셨을 텐데.(웃음) 제목이 먼저 떠올랐던 거예요. 처음에는 개인의 내면을 다룬 단편으로 써놨었어요. 노무현 시대, 이명박 시대를 거쳐오면서 어떻게 변해왔는가. 그러면서 개인의 삶은, 개인의 상처는 어떻게 변해왔는가. 심리적인 소설 요소도 있고 또 상당히 사회 비판적인 요소도 있어요. 청소년들한테는 둘 다 어렵죠. 둘을 결합하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Q 소설 속에서 '목우암'의 골방과 서울의 광장이 촛불을 통해 연결됩니다. 핵심적인 매개체로 촛불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방 안에 촛불을 켜는 것은 기도하기 위한 거죠. 개인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 하지만 촛불집회에서 촛불을 켜는 것은 뭔가 사회적으로 요구사항이 있을 때죠. 사람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싶을 때. 그래서 내면의 바람과 사회적인 목소리를 결합시킨 것이 바로 촛불입니다.


Q 이번에 나온 두 책이 이어지는 지점을 <나와 청소년문학 20년>에서 찾았습니다. 3장 대담 중에서 유영종 인하대 교수의 말 가운데 "커다란 사건이 있거나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보다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마음속 상처를 치유해 가며 커 가는 이야기들에 더 공감이 가거든요"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저 입술이 낯익다>는 유 교수의 말에 딱 맞는 작품인 듯합니다. 

촛불집회 당시 사회적인 문제에 아이들이 '올인'했죠. 그랬는데 남는 게 뭐냐.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상처를 전혀 보상하지 않고 개인이 다스려야 하는 거죠. 당시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텐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사회가 바뀌기는커녕 아무도 자기 얘기를 들어주지 않고 자기는 '루저'가 돼 있는 거죠. 어찌 보면 큰 이야기보다, 사회가 감당해주지 않는 개인의 상처 이야기에 독자들은 더 공감할 수 있죠. 그런 걸 많이 집어넣다 보니까 내면 서술, 심리적인 묘사로 많이 가게 됐어요. 

그리고 이 작품에는 한 명도 이름이 안 나와요. '그1', '그2', '그3', 모두 익명으로 표현했죠. 그 시대를 산 사람은 이름이 굳이 필요치 않다는 거죠. 누구나 똑같은 생각이었다. 생물학적으로 구분해서 '영철이', '순자' 할 필요가 없이, 그 시대를 산 젊은이라면 다 똑같다는 거죠. 그런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Q <저 입술이 낯익다>를 구상하는 데 모티브가 된 사건이나 개인적인 경험들도 있었나요? 

상당히 있죠. 제 아이가 '붉은 악마' 월드컵 응원 때는 광장에 나가지 않더니, 광우병 촛불집회 때는 광장에 나가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나이가 조금 더 드니까 좌절했고. 제가 제 아이한테 다른 건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시만 외우라고 했죠. 그 이야기는 이 작품 안에 들어 있죠. 촛불집회 때 제가 문예창작과 선생 노릇을 하고 있던 때였는데, 제자들한테는 촛불집회가 그냥 축제였어요, 축제. 저만 옛날 생각을 해서 괜히 심각하고.(웃음) 그런 개인적인 체험들이 들어가 있죠.


Q 내면의 상처는 외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주인공의 상처는 결벽증, 강박증으로 나타납니다. 강박증이라는 증상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누구나 사람은 강박증이 좀 있거든요. 하지만 그게 깊어져서 병적인 게 됐을 때는, 본인이 강박이란 걸 알면서 굉장히 힘들어요. 특히 (청소년기에) 사회를 변혁하고 싶다는 것은 사회가 깨끗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죠. 근데 자기네들 바람대로는 안 바뀌고, 그게 몸의 병으로 나타나는 거죠.



Q 청소년문학의 시작이 된 <봄바람> 이후 20년이 흘렀습니다. 20년째인 올해 나온 이 작품은 작가님 개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평론가들에게도 그렇고, 이 소설 자체가 좀 낯설어요. 저는 낯선 소설을 쓰는 게 운명인 거 같아요. 처음 청소년소설을 쓸 때도 출판사 편집자들이 '감이 안 온다'고 그랬어요. 낯설어서. 동화면 동화고 소설이면 소설이지, 이게 뭔가 한 거죠. 저는 운명적으로, '낯설게 하는 것'이 제 역할이지 않은가 해요. 이 소설도 평범한 청소년소설이 아니라 낯설게 한번 해보자 한 거죠. 물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 소설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거예요. 하지만 처음에 누군가가 테이프를 끊어줘야 하잖아요. 제가 테이프를 끊어주면 후배 작가들이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Q 집필 당시부터 염두에 둔 대상이 있나요? 어떤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읽어주면 좋겠습니까? 

오히려 청소년인 10대보다, 대학생 세대가 봤으면 좋겠어요. 지금 대학생들은 사회 현상에 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걸 무시는 못해요. 대학생 세대들이 이 책을 보면 그래도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겠죠.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지 알고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청소년소설을 써놓고 대학생 독자가 봐주길 원한다고 하니 좀 웃기긴 웃깁니다.(웃음)


Q 청소년문학의 문을 열고 그 길을 걸어오신 지 딱 20년 되는 해입니다. 간단하게 소회부터 듣고 이야기 계속 하면 좋겠습니다. 

옛날 노래 있죠? ‘아니 벌써!’(웃음) (<봄바람>을 발표한 뒤로) 한 10년 동안은 청소년소설을 쓰는 사람이 없었어요. 평론가도 평론도 해주지 않고. 한 10년을 혼자 했습니다. 10년쯤 지나니까 다른 작가들이 달려들었어요. 그때도 저는 감개무량하다고 얘기했거든요. 20년 되니까 지금은 작가도 많고 출판사도 너무 많죠. 그래서 지금은 감개무량의 제곱이죠.(웃음)


Q 지난해 7월 '사계절 1318문고' 100번째 책 출간을 기념해서 김태희 사계절 아동청소년문학팀장을 인터뷰했습니다.(관련기사 : 18년 만에 나온 100번째 1318문고 2015. 8. 7.) 청소년문학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가를 꼽아달라고 했더니, '가장 고마운 분이 박상률 선생님이다. 그 작품은 청소년소설의 전범이 될 만하다. 지금도 꾸준히 청소년소설 작품을 쓰시면서 지금 독자들에 맞게 스스로 잘 변화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작가님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좋게 말해줬구만.(웃음) 청소년소설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사계절 출판사에서 사계절문학상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맨홀> 박지리 작가, <푸른 사다리> 이옥수 작가, <열일곱 살의 털> 김혜원 작가, 이런 사람들을 발굴해낸 것이 상당히 의미가 있어요. 보통 공모전에는 상금만 타가고 끝나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 작가들은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속 쓰더라고요. 청소년소설 전문 작가죠. 한 명 더 하자면 <몽구스 크루> 신여랑 작가까지. 다른 데 도망도 안 가고, 참 고맙죠.


Q 그렇다면 인물이 아니라 사건으로 생각해보면 어떻습니까? 한국 청소년문학 역사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사건. 

청소년문학을 완전히 대중화시킨 건 아마 <완득이>일 거예요. 창비에서 청소년문학상을 제정했는데, 그 1회 수상작이었죠. 화제를 불러모으면서 영화화 되기도 했고요. 청소년문학의 저변을 확대시킨 점이 분명 있습니다. <완득이>가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하니까 그 뒤로 작가들이 (청소년문학에) 많이 달려들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고요.


Q <나와 청소년문학 20년>을 보니, 젊은 작가들에 대한 쓴소리가 좀 보이더라고요. 3장 대담 가운데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소재와 기법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는데, 정작 자신이 청소년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 하고 쓴 게 많구나 싶어 안타까웠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청소년의 겉모습만 보지, 자기 몸 안에도 청소년이 있다는 생각은 안 해요. 작가 안에 있는 청소년을 가만히 바라보고, 그걸 시대를 이동시켜서 요즘 아이들에게 입히면 되는 것이죠. 외피만 바뀌는 거예요. 옛날에는 걸어다녔다면 요즘은 버스 타고 다니는 게 달라지는 거지,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갖고 있는 감정은 똑같으리라고 봐요. 

요즘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가지고 다니는 것만 보지 말고,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문명과 문화가 아무리 발전해도 절대 안 변할 것들, 그런 보편성을 놓치지 말자는 거예요. 그런데 젊은 작가들이 요즘 청소년들 모습을 그린다고 하면서 자꾸 취재만 하려고 하지, 그 보편성을 놓쳐요. 그러면 당장 그해에는 그 소설이 독자들에게 읽힐지 몰라도, 한두 해만 지나면 묻혀버려요. 시간의 무게는 절대로 못 이깁니다. 금세 옛날이야기가 돼버리는 겁니다.


Q 책의 같은 부분에서 "이제 청소년 소설도 거품이 좀 빠지고, 정말 쓸 사람들만 남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라는 문장도 읽었습니다. 어떤 것이 거품이라는 말씀인가요? 

'나도 청소년 때 좀 놀았으니까 요런 거 쓰면 청소년소설이지?'라고 쉽게 생각하는 거품, 또 하나는 청소년소설을 쓰면 책이 많이 팔리리라 생각하는 묘한 환상. 요런 거품들이 좀 빠지고 정말 청소년소설을 이해하는 사람들만 남으면, 책이 팔리든 안 팔리든 좋아서 하는 거니까 좋은 작품을 쓸 거예요.


Q 앞으로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20년은 어떻게 전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작가님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도 밝혀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영리하니까 지금보다 다양해지고 업그레이드 된 작품들이 나오겠죠. 거기다가 보편성을 담을 수 있는 능력도 생길 거고요. 저는 앞으로 서너 권짜리, 역사문제 같은 것을 주제로 호흡이 긴 소설들을 써보려고 그래요. 청소년소설로는 그것도 또 '낯설음'이죠. 그리고 그동안은 청소년소설을 많이 썼으니까 청소년시나 청소년희곡 쪽도 잘 쓰든 못 쓰든 일단 문을 열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작품을 바탕으로 해서 젊은 작가들이 더 잘 써주면 고마운 일이죠. 저는 또 다른 일 하고요.


Q 작가님의 '작가인생'을 보실 때, 지금 어디까지 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직 저녁은 안 됐고,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후 시간에 편안히 낮잠을 잘 것인가, 저녁이 되기 전까지 뭐라도 할 것인가, 그런 기로에 서 있다고 봅니다.


Q 청소년소설을 쓰기 위해 준비 중인 예비작가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몇 권 추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문학 쪽보다 다른 분야 책을 많이 읽기를 권합니다. 문학에서는 기본만 알면 되고요. 굳이 소설을 이야기한다면 <죄와 벌> <안나 카레니나> 정도를 봐줬으면 좋겠고요. 우리 소설 중에서는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 정도 읽으면 될 것 같아요. 작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크게 있습니다.

사진 : 신동석

취재 : 최규화(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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