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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Dec 29. 2015

고등학생 박정연, 위안부 할머니의 눈물을 그리다

책 출간 후 나눔의 집 할머니들께 책과 도서수익금을 전달했다. 이옥선 할머니와 함께.


자꾸 책을 쓰다듬었다. 두꺼운 종이를 한지로 감싼 듯한 책에서 전해지는 촉감이 좋았다. 약간 까끌까끌한 종이의 결 사이사이에 담긴 이야기의 숨결을 잡고도 싶었다. 그렇게 책장 넘기기를 늦추고 있었다. 표지만으로 책 내용을 예상한 탓이다.


빨간 인어 꼬리의 여자아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소녀의 눈물>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라는 부제에 이르면 머릿속으로 아픈 역사가 스쳐 지나간다. 아프니까 들추고 싶지 않은 마음을 <소녀의 눈물>이 찌른다. 아프니까 더 드러내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이 조용한 꾸짖음을 하는 18세 소녀는 나눔의 집의 인권대사로 미국 매사추세츠 주 윌리스턴 노샘프턴 고교에 다니는 박정연 양이다.

서울 예원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 중인 박 양은 방학 때마다 한국에 들어와 일본군 강제 동원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시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눔의 집에서 만난 할머니들이 들려주신 이야기들을 그림책으로 엮었다. 어떤 마음으로 <소녀의 눈물>을 냈을까. 이메일로 주고받은 박정연 작가의 마음을 전한다.


<안네의 일기>처럼 위안부 할머니 비극 알리는 책



박 작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접한 건 애니메이션 <소녀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2013년 여름, 광복절을 앞두고 신문에 소개 된 <소녀 이야기> 기사를 접한 후,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게 됐다. 슬픈 이야기가 예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돼 있었다. 만약 <소녀 이야기>가 사실 그대로 비참하게 그려졌다면 거리감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반대로 잔잔한 영상으로 이 문제에 다가갔다. 그 담담한 울림이 계속 그녀의 마음에 남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할머니들의 이야기 같았다.



그해 겨울방학 때 한국에 들어와서 바로 친구들과 나눔의 집을 찾아갔다. 할머니들은 친손자손녀처럼 그들을 반겨주셨다. 할머니들의 방 청소를 돕고 물건 정리도 같이 했다. 안마도 해드리고 손톱도 예쁘게 깎아드렸다. 함께 노래도 불렀다. 할머니들은 노래방 기계로 노래 부르며 아주 즐거워하셨다. 돌아가신 배춘희 할머니는 마이크를 잡은 후 우리말,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로 된 노래를 가사 하나 보지 않고 부르시기도 했다.


매일 산책을 나갈 정도로 건강한 분들도 있었지만 아파서 계속 누워만 있는 할머니, 휠체어를 타야만 이동이 가능한 할머니도 계셨다. 할머니들은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친구들이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진짜 가족’ 같다는 생각도 했다. 똑같이 겪은 고통을 가족처럼 서로를 의지하면서 함께 치유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할머니들은 늘 말씀하셨다.


“예전에 우리나라가 약했기 때문에 어린 소녀들이 그런 험한 일을 당한 거여. 그러니 너희들은 무엇보다도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야혀. 다시는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니까!”



할머니들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가 뭔지 몰라서 일본이 계속 ‘나몰라라’하는 거라면서 TV에 나와서도 얘기하고 일본, 미국, 프랑스 같은 외국에도 가서 증언하셨다. 그런 날이면 밤에 끙끙 앓기도 하셨다. 평생을 잊어버리려고 애쓰던 일을 기억해내 이야기하고 나면, 또 다시 그 일을 겪는 것처럼 몸이 아파왔던 것이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하는 중에 할머니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셨다. 올해만 일곱 분이나 돌아가셨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알리는 일. 아흔 가까운 할머니들이 하시는 일에 그녀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학교 선생님이 그녀가 그린 위안부 할머니들의 초상화를 보고 그림책을 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주저하던 그녀는 이 중요한 문제를 어린 친구들이 학교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안네의 일기>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알게 됐듯이 그녀의 책을 통해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를 알 수 있길 희망했다. 그렇게 그녀가 나눔의 집을 찾을 때마다 할머니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그림책 안에 꾹꾹 담았다.



유희남 할머니와 저자


‘오늘은 내가 아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해줄게’


‘오늘은 내가 아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해줄게’로 시작하는 <소녀의 눈물> 속엔 사실 여러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겼다. 같지만 다른, 또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 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느닷없이 끌려온 아이, 돈을 많이 버는 곳에 취직시켜 준대서 따라온 아이, 아버지가 돈을 받고 팔려온 아이, 여기 오는 대신 식구들을 굶지 않게 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온 아이…. 제각각 사연은 달랐지만 똑같이 어디로 무얼 하러 가는지는 몰랐던 소녀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야기 속 할머니는 인어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곳은 어느 군부대였다. 거리에 난 나무며 풀이며, 사람들의 모습까지 모두 낯선 땅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좁고 어두운 방에 갇혀 떨고 있던 인어 앞으로 군인이 하나 들어오더니 인어를 쓰러뜨리고 덮친다. 그 모습이 초밥에 묶여 눈물을 흘리는 인어로 표현됐다.

“가장 고민되었던 부분이에요. 군인들에게 겁탈당하는 장면을 어떻게 그릴까. 며칠 동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도 적당한 표현을 찾을 수 없었어요. 어느 날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인 초밥이 떠올랐어요. 자연스럽게 피해 당사자인 여성들을 인어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어공주> 만화처럼 예쁘게 그릴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배경은 인어가 사는 바닷속이 됐다. 끌려가는 장면은 해초가 인어를 휘감아서 끌고 가는 것으로 그렸다. 일본이 집에 있는 숟가락까지 가져간 공출은 <인어공주> 속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빼앗아간 문어마녀 ‘우슬라’처럼 탐욕스러운 입으로 소용돌이쳐 들어가는 것으로 그렸다. 아이디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하나하나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그녀는 소름이 돋았다. 하나의 주제에 깊이 파고든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경험이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할머니를 맞이한 것은 외로움이었다. 가족의 소식도 알 수 없었다. 할머니가 다가가면 마을 사람들은 부끄럽다고 외면해버렸다. 그러자 인어의 몸엔 여러 개의 눈이 새겨졌다.

“인어의 몸에 있는 눈 모양들은 평생 낙인 찍혀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몇 번이고 해주셨던 말씀이기도 하고요.”

그림책 내내 눈물을 흘리거나 슬픈 표정인 인어가 딱 한 번 웃는다. 할머니가 전쟁 중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들려줬음에도 할머니의 손을 ‘꼬옥’ 잡고 “우리 둘 다 외로운 사람들이니 서로 의지하면서 살자”고 했던 아저씨를 만난 장면이다. 그녀는 인어를 구했으므로 아저씨는 고래 아저씨라고 했다. 그래서 먼저 죽은 아저씨의 묘비에 RIP(편히 잠드소서) 글자와 함께 고래 그림을 그렸다고. 할머니가 된 인어가 김학순 할머니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는 장면에는 고래가 사람들을 감싸고 있는 가족사진 액자도 보인다. 구석구석 여러 장치를 숨겼다. 오래 보고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눔의 집을 찾아가는 할머니 인어의 몸을 정육면체가 감싼다. 그녀는 정육면체가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한 할머니들이 지닌 고통과 슬픔이라고 했다.

“여러 할머니들이 갖은 고통과 슬픔이 서로 모여 집(나눔의 집)을 형성하는 것 같은 모습을 그리면서 할머니들의 고통이 서로에게는 가족과 친구가 되는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담았어요. 잘 전달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롱 아일랜드 내소씨티 홀로코스트뮤지엄에 <소녀의 눈물> 영문판  증정 후 뮤지엄 관장과 기념 촬영.


손으로 써내려 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으로 써내려 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그녀는 그림으로 다 나타낼 수 없는 부분은 글씨로 썼다. <소녀의 눈물> 속 글들은 모두 인쇄체가 아니라 그녀가 직접 붓펜으로 쓴 것이다. 하루 열 시간씩 꼬박 이틀 동안 글씨만 썼다. 강조하는 말은 크게도 쓰고, ‘덜덜’은 덜덜 떨리는 것처럼, ‘탕탕’은 총이 발사된 것처럼 단어의 느낌 그대로 나타냈다. ‘비밀’이란 말 속에는 열쇠구멍을 그리기도 했다. 한글이 가진 독특함을 살렸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좀더 잘 전달하기 위해 그녀는 쓸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또 찾았다. 그 마음을 할머니들도 느끼셨나 보다.


“책이 나온 후 할머니들을 찾아가 낭독해드렸어요. 할머니들은 글을 모르시거나 눈이 안 보이셔서 읽을 수가 없는데도 내내 책을 쳐다보시고 쓰다듬으셨어요.”

박정연 작가는 친구들과 함께 인터넷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에 관한 정보를 전파하는 학생 모임(Justice For Comfort Women.org)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 나눔의 집과 함께 그림 동화책 <봉선화> 영문본을 제작해 국내외 주요 기관에 배포하고 있기도 하다. <소녀의 눈물>의 판매 수익금도 책의 영문본을 만들고 배포하는데 사용할 계획이다. “외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문제를 많이 알려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공감해야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될 테니까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뒤늦게 찾아본 애니메이션 <소녀 이야기> 속에서 할머니들이 말씀하셨다.

“이건 하도 험한 일을 당해놓으니까 잠들기 전엔 안 잊어져. 안 잊어지고. 새로 죽어가지고 새로 태어나서 남과 같이 시집도 가보고 애기도 낳으면 될까.”
“나중에는 오래 되니까 목숨만 부지하자. 목숨만 살면 내 몸을 뺏아 가도 내 마음만은 안 뺏아 간다. 그런 정신으로 내가 살았지.”


숱한 고통을 겪는 가운데도 마음만은 뺏기지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제 마흔여덟 분만 남아 계신다. 아직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했다. 광복이 된 지 70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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