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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08. 2016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 미국판 '국제시장'

김홍기의 세상의 모든 책들


※ 지금 세계의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국내 최대 출판 에이전시 임프리마 코리아의 김홍기 디렉터가 유럽·미주·아시아 지역 출판계 동향을 친절하고 재미있게 읽어준다. – 편집자 말

<촌놈의 엘레지>(HILLBILLY ELEGY) 미국판 표지

우리가 접하는 모든 ‘콘텐츠’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아무리 보편적인 주제와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할지라도 분명 여기에는 문화적 차이가 한편으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지역적, 인종적, 언어적, 역사적 환경에 따라 형성된 문화적 다양성은 하나의 콘텐츠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하고 그 특성을 다르게 해석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록 그 변주는 다르게 들릴지라도,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 정서를 벗어난 콘텐츠는 별로 없었다.


6월 말 미국 하퍼 출판사를 통해 출간돼, 8월부터 판매 순위가 급등한 <촌놈의 엘레지>(HILLBILLY ELEGY)는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미국인들의 감수성을 강력하게 자극하는 에세이이다. <촌놈의 엘레지>는 8월부터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아마존닷컴 종합 순위 6위, 분야별 리스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현재 미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책이다.


저자 J. D. 반스(J. D. Vance)는 스스로를 미국 오하이오주 남부의 애팔레치아 산기슭에서 나고 자란 ‘촌놈’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미국 해병대로서도 복무했고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와 투자 컨설턴트로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야말로 시골 ‘촌놈’이 화이트칼라 상위 계층이 된, 현대판 아메리칸 드림의 산증인이었다. 


반스는 많은 미국인들이 추구하고 열망하는 인생을 일구었지만, 그의 내면에서 그를 지탱한 다른 관점과 감수성에 대해 이 책 <촌놈의 엘레지>에서 밝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미국. 그러한 미국의 발전의 이면의 소외된 한 장소로서, 러스트 벨트라는 미국 북부의 사양화된 공업지대가 있었다. 그리고 반스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하층민과 백인 중산층의 모습들을 경험하면서 자랐다. 


J. D. 반스 (사진 아마존닷컴 amazon.com)


반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뼈저리게 가난하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들은 지독한 가난을 벗어날 희망을 가지고 켄터키에서 오하이오 남부의 러스트 벨트로 이주하게 된다. 조부모의 고생과 노력으로 가족들은 생활이 그나마 나아질 수 있었고 손자인 반스는 가족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신분 상승을 꿈꿀 수 있는 하나의 발판인 명문 예일대학교에도 입학한다.


그러나 신분이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는 법. 반스의 조부모를 비롯한 모든 가족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중산층의 삶을 누리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했지만, 계층적 차별과 학대, 왕따, 그리고 이로 인한 가족 간의 불화와 일탈 등으로 빚어진 트라우마의 어두운 그림자를 쉽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그들이 숙명적으로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었고, 반스는 이 혼란스럽고 깜깜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왔는지 날카롭고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사랑과 정감 어린 에피소드들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촌놈의 엘레지>는 미국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했던 백인 중산층과 노동자들의 수많은 땀과 눈물을 작가적 경험과 더불어 투영한 산증인들의 기록이다. 또한 저자 반스는 사회적, 지역적, 그리고 신분적으로 밑바닥에 머무르는 것이 얼마나 황폐하고 암울한 일인지를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이 부분을 유머러스한 필체와 생생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표현하고 있다.


영국의 영화이자 뮤지컬로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빌리 엘리어트’나 미국판 ‘국제시장’과 같은 정서로서 비교할 수 있는 <촌놈의 엘레지>는, 하지만 중장년층이 열심히 살았던 흘러간 과거를 추억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 나를 위해 애써준 여러 사람들과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이겨내면서 지금도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미국’이라는 사회에 대한 공감 의식을 공유한 것이 이 책의 성공 비결로 꼽힌다.


글 : 칼럼니스트 김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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