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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26. 2016

국정원에 고발당한 불온작가 임승수, 더 쎄게 돌아왔다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임승수의 말, 말, 말


- "남자들한테 부인은 뭐하시냐고 물으면 '집에서 놀아요' 그러거든요. 그런데 부인이 자기 집이 아니라 남의 집에 가서 가사노동을 하면 논다 그래요, 일한다 그래요? 일한다 그러죠."

- "지금 청년들이 애를 안 낳잖아요. 생명체의 유전자적 사명은 생존과 번식이에요. 그런데 집단적으로 번식과 생존에 장애가 온 사회. 본능적 수준의 위기가 온 거죠."

- "직장을 다니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내 시간을 바쳐야 한다는 것. 죽을 때 못 벌어본 돈을 후회하는 게 아니라 못 살아본 시간을 후회한단 말이에요."


[프리즘②] 중국으로 '역수출'한 마르크스 경제학


▷ 임승수는 누구? : 그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두 단어가 꼭 필요하다. '차베스'와 '자본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이끈 선거혁명을 연구한 책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시대의창/ 2006년)은 그를 '작가'로 만들었다. 그리고 제목부터 도발적인 '자본론 해설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시대의창/ 2008년)은 뜻밖의(?) 인기를 끌며 스테디셀러가 됐다. 명문대 석사 학위까지 있는 '공대남자'이지만, '1만 원보다 한 시간이 소중하다'는 삶의 진실을 깨닫고 전업작가가 된 사람. 책 안 팔리기로 유명한 사회과학 출판계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확고히 다진 '파워라이터'다.


▷ 어떤 책을 냈나 :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완전히 새로 쓴 개정판이다. 그래서 제목도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시대의창/ 2016년)이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지난 8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은 책. 문학이 아닌 사회과학 책으로는 드물게 중국에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중국은 아시아 사회주의의 '원조' 격이니, 마르크스 경제학을 ‘역수출’한 셈이라고 할까? 임승수 작가는 "그동안 '원숭이도 이해하는 책이라는데 나는 왜 이해가 안 되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했다"며, "그래서 더 쉽게, 더 대중적으로 새로 썼다"고 이 책을 소개했다.


▷ 인터뷰 뒷이야기 : 멀리서부터 임승수 작가의 티셔츠가 눈에 확 띄었다. 노란색 셔츠의 한가운데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책 표지. 홍보를 위해서 특별히 '주문제작'한 티셔츠란다. "진심으로 구매할 의사가 있는 분"한테는 판매도 한다고 한다나. 인터뷰 현장을 촬영하는 사진작가에게 "그림 좀 나올 겁니다"라고 너스레를 떠는 통에 현장에는 시작부터 웃음이 넘쳤다. 즐겁게 같이 웃고 떠드는 동안 책 이야기, 한국 자본주의 이야기, 작가 임승수의 삶 이야기로 이야기는 흘러갔다. 웃음 속에도 순간 순간 뒤통수를 딱 때리는 '알맹이'가 꽤 단단한 것이, 꼭 그의 책을 읽는 것 같았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8년 만에 나온 개정판입니다. 개정판 출간의 계기부터 먼저 듣겠습니다.


이 책을 꾸준히 찾는 분들이 있는데, 저도 지금까지 수많은 강의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성장한 게 있잖아요. 지금 보니까 좀 더 채우고 좀 더 좋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거의 신간 수준의 개정판을 내보자고 처음부터 끝까지 원고를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어요. 편집도 시원해지고 표지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저는 대중서를 쓰는 사람이잖아요. "원숭이도 이해하는"이라는 제목에 좀 더 걸맞은 책, 진지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더욱 더 쉬운 책을 쓰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Q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사회과학 서적으로서 상업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고, 아시아 사회주의의 '원조' 격인 중국에도 번역 출간돼 국제적인 인정도 받은 책입니다. 이 책은 작가님 개인에게 어떤 의미의 책인지 궁금합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찾자면 가장 많이 팔렸다는 것. 우리 애들 키우는 데 큰 기여를 한 책입니다.(웃음) 또 하나는 이 책 덕분에 경희대에서 수업을 하게 됐어요.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라는 제목의 교양과목입니다. 2013년 1학기부터 강의를 했는데, 처음에 30명밖에 없던 수강생이 그동안 200명 넘게 늘어났어요.


학생들 중에는 경제학과, 경영학과, 세무회계학과가 굉장히 많아요. 자기네들 학과 정규 커리큘럼에서 배우지 않는 세상의 다른 면모를 재밌고 쉽게 전달하는 수업이 있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거예요. 한 학기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과제물에 '정말 충격적이다', '이런 걸 왜 정규 커리큘럼에서 안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써서 내는 걸 보면서 희망을 느끼죠. '마르크스 사상에서 부족한 것은 시의성이 아니라 접촉면이구나'라는 걸 경험으로 느끼게 됐어요. 그 모든 경험의 계기가 된 책이 이 책이에요.


Q 그런데 강의를 하던 중에 학생한테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면서요.


2013년 2학기 첫 강의를 하러 가는데, 학교로부터 어떤 학생이 나를 국정원에 신고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나를 신고한 신입생이, 마르크스 경제학이나 철학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자체를 싫어했던 것 같아요. 이 사건이 뉴스에 나니까 갑자기 책 판매량이 크게 증가하더라고요. 물론 국정원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요. 분단국가인 한국의 왜곡된 학문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 해프닝이 아닐까 싶어요. 결론적으로 책 판매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은 더욱 아이러니컬하고요.


Q 대중강연을 통해서도 독자들을 참 많이 만나십니다.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한 토막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500명을 대상으로 학교 강당에서 <자본론> 강의를 했던 순간입니다. 1시간 30분 정도의 한정된 시간에 <자본론>의 핵심 내용인 잉여가치론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강당을 나서는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아주머니 한 분이 저한테 "마르크스 <자본론>이 어렵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쉬운 거였어요?"라고 웃으며 말을 건네시더군요. 그때 '내가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책에서도, 경제학과나 경영학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주류 경제학의 맹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주류 경제학, 또는 주류 경제학적 시각의 가장 큰 맹점은 무엇일까요?


인간이 대상화되고 노동이 수단화되는 거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윤을 낼 것인가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거든요. 이윤이 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고 합리화되잖아요. 제가 어디 강연을 가서 남자들한테 물어요. 부인은 뭐하시냐고. 그럼 좀 짓궂은 사람들은 "집에서 놀아요" 그러거든요. 가사노동, 육아노동을 그렇게 말하는 거죠. 그런데 자기 부인이 자기 집이 아니라 남의 집에 가서 그 일을 하면 논다고 그래요, 일한다고 그래요? 일한다고 그러죠.

차이는 그 노동이 화폐로 교환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거, 그거예요. 모든 것이 이윤 창출 동기로만 계산되면서 더 중요한 가치들이 상실되고 우리 사회가 병들어간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마르크스 경제학은 모든 것을 사람을 중심으로 본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죠. 우리가 잃어버린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새로운 경제학적 시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어요.


Q <자본론>은 자본주의를 해석하기 위한 하나의 '생각의 틀'이잖아요. <자본론>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자본가 중에서도 질이 아주 나쁜 자본가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자본가의 이윤은 노동자들의 빼앗긴 시간에서 나온다는 것이 <자본론>의 시각이잖아요. 시간을 더 많이 빼앗아야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갈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OECD 최장 수준의 근로시간을 자랑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모자라서 고용형태를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바꿔서 인건비를 줄이고 완전히 쥐어짜는 거죠. 최악의 저질 자본가 계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어디 하나 썩지 않은 데가 없으니까, 정치, 사회, 경제, 백화점식으로 최악이 구린내들이 풍겨 나오고 있잖아요. 지금 청년들이 애를 안 낳잖아요. 생명체의 유전자적 사명은 생존과 번식이에요.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번식과 생존의 확률이 확 떨어진 거예요. 이렇게 집단적으로 번식과 생존에 장애가 온 사회, 이게 이 사회의 문제점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부분이라고 봐요. (기자 : 인간으로서의 위기가 아니네요. 생물체로서의 위기.) 그렇죠. 본능적 수준의 위기가 온 거죠.


Q 한국에서 '자본주의 이외의 경제', '대안적 경제'에 대한 상상은 상당히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임승수 : 제약을 넘어서 탄압 수준이죠.) 기껏해야 복지확충이나 재벌개혁 정도만이 이야기될 뿐인데요,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교육제도 안에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보여줄 수 있으면, 내 현실을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눈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정규교육 안에서 외눈박이 시각을 가지게 된단 말이에요. 경제를 보는 관점도 주류 경제학에만 딱 머물러 있죠. 교육제도에 의해서 맞춤형 인간을 찍어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상상력이 발전하기가 어렵죠. 교육 부분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해요.




Q 지금부터는 '작가 임승수'에 대한 질문을 좀 드려볼까 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드리죠. 공대 나온 남자, 심지어 서울대, 심지어 석사. 임승수는 왜 사회과학 책을 쓰는 전업작가로 살고 있습니까?


제가 그런 주제로 진로 강의도 해요. 강의 제목이 '1만 원보다 한 시간이 소중하다'예요. 저는 돈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해요.(웃음) 그런데 제가 직장을 다니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내 시간을 바쳐야 한다는 것.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는 건 좋긴 한데, 갈수록 돈과 시간을 천칭에 놓고 생각하니 점점 더 시간 쪽으로 기우는 거죠. 누구나 죽을 때 못 벌어본 돈을 후회하는 게 아니라 못 살아본 시간을 후회한단 말이에요. 딱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결국 중요한 건 가치관이에요. 언제부턴가 제 인생관이 바뀐 거예요. 돈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차면서 선택이 쉬워진 거예요. 어마어마한 계획을 짜고 고민을 하다 선택한 게 아니라, 숨 쉬듯 자연스럽게 (직장을) 그만뒀어요. 그때는 잠자는 시간이 제일 행복했어요. 재밌는 꿈을 꾸다 깨면 너무 성질 났어요. 하루 중에 제일 재밌는 시간이 꿈꾸는 시간이었으니까. 그런데 (직장을) 더 다닐 수 있겠어요? 못 다니지.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만뒀어요. 저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Q 글도 잘 쓰고 말도 잘 하는 작가입니다. 강사로서 찾는 곳도 참 많은데요, 솔직한 대답을 한번 듣고 싶습니다. 작가 임승수와 강사 임승수, 스스로 어느 쪽이 더 경쟁력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돈은 강사 쪽이 더 많이 벌어요.(웃음) 그런데 나눠서 생각할 수 없는 게, 제가 강의 기술로 승부하려고 한다면 백전백패죠. 아나운서들처럼 발음이 좋을 수도 없고, 연극배우들처럼 무대를 장악할 수도 없는 거거든요. 그런데 저한테서 그런 걸 보고 싶어서 사람들이 저를 부르는 걸까요? 차베스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자본론>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부르는 거예요. 그러면 내 중심은 무엇이겠는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어야 강사를 할 수 있는 거죠. 결국 내가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작가로서 성실하게 살아야만, 나만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Q 과거 '책 값'에 대한 작가님의 글을 본 적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온 인생을 통해 갈고 닦고 깨우친 노하우들을 책 한 권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남는 장사'라고.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정가는 15000원입니다. 시장의 수요-공급 이런 거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노력과 책의 가치를 생각할 때 솔직히 생각하는 이 책의 정가는 얼마인가요?


1만5000원이죠 뭐. 정가 그대로 받습니다.(웃음) 이 책보다 더 훌륭한 책들도 그 가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이 책을 스캔을 떠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하고 싶어요. 가격으로 지식을 따지는 것은 웃긴 것 같고, 지식의 가치는 공유될수록 더 커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싸게 얻은 걸로 좀 더 소중한 가치들이 중시되는 사회를 만든다고 하면, 100원에 팔려도 좋죠. 그런데 그러면 먹고살기가 좀 힘들어지니까 1만5000원에 사주시면 딱 좋은 것 같아요.(웃음)


Q 마지막으로 작가로서의 꿈과 다음 책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들은 결국 젊은이입니다. 젊은 분들이 진보적인 사상에 관심이 많아져야만 우리 사회도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 꿈은 좀 더 많은 젊은 분들에게 책과 강의로 진보적인 사상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다음 책은 ‘사회주의’라는 주제를 다뤄볼 생각입니다. 자본주의 첨단국가 미국에서도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는데요,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은 특히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이 심한 것 같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취재 : 최규화(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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